조바심
윤 춘 화
아침에 눈을 뜨니 여전히 목이 아프다. 이번 감기는 왜 이리 오래갈까? 불편하다 못해 짜증까지 난다. 다른 병원을 가 보기로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병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기다리지 않고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진찰을 마친 의사 선생님은 목이 부었고 비염이 있단다. 나는 심각한데 대수롭지 않은 듯 던지는 말이 섭섭하다. 주사 맞고 약 처방을 받아 병원을 나섰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들어서면서 ‘내가 너무 조바심을 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부터 몸이 편치 않았는데, 점심 먹고 잠시 짬이 나서 체온을 재니 38.4도였다. 몸이 좋지 않았어도 열이 나지 않아 안심했는데, 독감이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 독감,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자 의사 선생님께서 차라리 독감이면 치료제가 있는데 감기는 특별한 치료제가 없다고 하며 웃으신다. 주사와 수액을 맞고 집으로 와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다음날이 되니 몸이 낫기는커녕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은 오 개월 된 아기를 돌보러 가는 날이라 신경 쓰였다. 연락을 드려 사정을 설명하니 걱정하지 말고 쉬라고 한다. 감기에 걸리니 아이들에게 옮길 수 있어 일을 쉬게 되기도 한다. 빨리 나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목에 좋은 차, 보양이 되는 음식을 먹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로 했다.
이틀을 꼼짝 않고 있었는데도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급하다. 계속 일을 쉴 수는 없는데 어쩌면 좋을까? 누군가 병원을 옮겨보라고 해서 다른 병원을 찾은 것이다. 건성으로 진료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조바심을 내고 있나?’ 하고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을 시간이 되어야 낫겠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시간이 지나자 몸은 점점 나아졌다. 빨리 나아야 한다는 마음을 버리니 조금 불편한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다.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조바심을 낸 날들이 많은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조바심을 냈다. 또래 아이는 말을 잘하는데 내 아이는 입을 떼지 않았다. 엄마가 말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해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답답한 마음에 다그쳐보기도 하고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기도 했다. 엄마가 지칠 때쯤 아이는 말문을 열었다. 첫입 떼기가 어려웠을 뿐 아이는 수다쟁이가 되어 갔다. 끝없는 질문과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지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때를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아이도 나도 힘들게 했다.
인생의 후반전에 들어서면서 드는 불편한 마음이 조바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 친구들의 은퇴 소식을 들으며 당신도 이제 쉬어도 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다른 이들은 은퇴하고 느긋한 삶을 준비하고 즐기는 것 같은데, 아직 쉬면 안 된다고 하자니 미안함과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결혼을 앞둔 아들과 아직 사회 초년생인 아들에게 지원을 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부부 노후 준비도 든든히 했으면 좋겠다. 각자 사정에 따라 하면 된다고 말은 했지만, 결혼할 때 얼마를 지원했다느니 손자가 태어나면 얼마를 건네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조바심이 난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무리하게 일을 하게 하는 듯하다. 스스로 알아서 잘 살아가는 아이들인데 앞서서 걱정하니 마음이 힘들다.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시간이 지나면 수월해져야 할 것 같은데 점점 어려워질 뿐이다. 괜히 시작해서 고생을 사서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노력은 하지 않고 실력이 늘기 바라니 얌체 같기도 하다. 문학회 합평회에 함께 공부할 글을 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데,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손이 움직이질 않고 조바심으로 땀만 난다. 이번에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지 머릿속에 맴돌던 이야기는 흩어져 버리고 한숨만 시간을 채운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 공부를 게을리함을 탓하며 마음을 다잡아본다.
조바심의 본디 뜻은 조의 이삭을 떨어서 좁쌀을 만드는 일이다. ‘바심’은 요즘 잘 쓰이지 않지만 ‘타작’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조는 꼬투리가 질겨서 이삭을 떨어내기가 만만찮다. 너무 세게 떨어내면 이삭이 엉뚱한 곳으로 달아나 수확을 망칠 수도 있다. 하여 다른 농작물에 비해 조를 타작할 때는 힘이 더 들 뿐 아니라 이삭도 잘 떨어지지 않아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해서 원하는 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며 걱정을 하게 된다. 여기서 ‘조마조마하여 마음을 졸인다’ 고 하는 의미가 생겨났다고 한다.
조바심은 감기가 시간이 지나야 낫듯이 기다림이 필요하기도 하고, 지나친 걱정으로 스스로 만들기도 한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아서 생기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조바심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고 잘 대처해나가면서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