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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이 상은 저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 상장을 부모님 산소 앞에 바치다 -
■ <육군훈련소의 추억> 사진 ․ 사연 공모전 시상식(2019.10.15.)
윤승원(대상 수상자)
▲ 부모님 산소 앞에 상장을 바치다.
▲ 부모님 산소 상석에 올린 육군훈련소 <추억의 사진·사연 展> 대상 상장
▲ 육군훈련소 본부 현관에서 육군훈련소 구재서 소장의 따뜻한 영접(2019.10.15. 14:00)
▲ 시상식장에 입장하자 육군훈련소 군악대의 우렁찬 <환영 연주>도 있었다.
▲ 육군훈련소장과 함께 기념 촬영(육군훈련소에서 대상 수상작품 사진을 확대해 전시하고 수장자에게 액자에 넣어 주었다)
▲ 수상작 발표 공지문(육군훈련소 홈페이지)
▲ 추억의 사진(훈련병 윤승원, 1975년)
<사진설명>
흙먼지 풀풀 날리는 28연대 연병장에서 M1소총을 들고 총검술 훈련을 받던 중 달콤했던 ‘5분간 휴식시간’의 모습이다.
M1소총을 ‘삼각 형태’로 세워놓고 휴식을 취했다. 훈련병은 휴식시간도 ‘훈련의 연장’이었다. 자세나 행동이 흐트러지면 안됐다. 훈련병뿐만 아니라 생명과 같은 총기를 다룰 때에도 땅바닥에 아무렇게 총을 놓지 못했다. 반듯하게 세워 놓아야 한다. 훈련병들이 휴식을 취할 때, M1소총도 반듯하게 ‘군기 잡힌’ 모습이다.
머리에 쓴 육중한 철모도 무거웠고, M1소총의 무게도 감당하기 힘들만큼 무거웠으나 총검술 지도 교관의 ‘호랑이 같은 얼굴’이 무서워 훈련병들은 집중도 높은 자세로 맹훈련에 임했다.
온몸에 땀이 범벅이 된 이런 와중에 훈련소 사진병이 사진을 찍어줬다. <고향의 부모님께 보내드려야 할 사진>이라고 했다.
첫 휴가 때 집에 와서 노모를 뵈었더니, 어머니는 군사우편으로 부쳐온 이 사진을 보시고 펑펑 우셨다고 한다. 자식이 힘들게 훈련 받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고단해 보여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힘들고 고단했던 훈련병 시절에 찍은 단 한 장의 ‘잊지 못할 추억의 사진’이다. 이 소중한 사진은 한 개인의 역사(歷史)이자, 국방의 초석이 됐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청년의 ‘생생한 <병역의 의무 증표>’라는 생각이 든다. 자긍심을 느낀다.
▲ 군대 간 자식을 위해 365일 기도하신 어머니 - 그러기에 이 상은 <어머니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 상장과 상금, 기념품 - 분에 넘치는 정성이 느껴졌다.
▲ 육군훈련소 현관에서 수상자들과 함께
▲ 육군훈련소에서 마련한 <방문 기념 사진> - 즉석에서 찍은 사진을 신속하게 액자로 제작해 주었다.
▲ 육군훈련소에서 제작한 추억의 사진 화보집 - 인쇄소에서 금방 나온 따끈따끈한 화보집을 수상자에게 나눠 주었다.
▲ 부모님 산소 앞에 상장을 바치다
▲ 평상 시 성묘할 때는 약식으로 주(酒), 과(果), 포(脯)를 올린다. 오늘은 특별히 보고 드릴 일이 생겼기에 상장과 상품도 올렸다. 부모님 음덕으로 이런 의미 있는 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 부모님 산소에 약주를 따라 올리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 아들이 축하 꽃다발을 들고 시상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 직장에 다니는 둘째 아들이 연차 휴가를 내고 아비의 시상식장에 참석했다. 시상식장에서 받아 온 꽃다발을 화병에 꽂았더니, 그윽한 꽃향기가 온 집안에 감돈다.
■ 수상소감(수상소감은 차를 마시면서 좌담회 형식으로 편안하게 이뤄졌다)
먼저 이런 의미 있는 행사를 기획하시고 주최하신 구재서 육군훈련소 소장님과 육군훈련소 공보정훈부 관계관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사실 저는 이번 수상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훈련병(?) 수상자’인 것 같습니다. 30대 두 아들도 자랑스러운 병역의 의무를 마쳤습니다.
큰 아들은 ROTC장교로 강원도 전방에서 복무했고, 둘째아들은 이곳 육군훈련소에서 저와 똑 같은 훈련을 마치고, 전국에서 치안 수요가 가장 많다는 서울 종로에서 의무경찰로 복무했습니다.
(※ 둘째 아들은 오늘 마침 저를 축하해 주기 위해 직장에 연차 휴가를 내고 이 자리에 함께 참석했습니다.)
육군훈련소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용광로’입니다. 무쇠를 녹여 쓸모 있는 연장을 만드는 용광로입니다. 용광로를 거쳐 나와야 기초 체력이 단련되고, 애국심이 배양되며, 정신 자세도 반듯해집니다.
저는 지난 5월, 조간신문을 읽다가 눈에 확 띄는 기사를 읽었습니다.『육군훈련소의 추억을 기다립니다』제하의 기사였습니다. 제 눈에 이 기사가 유독 크게 들어 온 것은 다름 아니었습니다.
전 국민과 국군장병을 대상으로 공모하는 육군훈련소 추억의 사진과 사연이 채택되면 ‘기념 사진첩’을 증정하고 ‘훈련소 투어’에도 초청한다는 기사 한 줄이 응모 의욕을 자극했습니다.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될 줄은 정말 몰랐고, 제가 응모한 사진과 글이 채택되어 ‘훈련소 투어’라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그 옛날 고생스러웠던 ‘황산벌 연병장’을 다시금 돌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하나로 공모전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제가 훈련병이었던 1975년 당시 논산 제2훈련소는 모든 환경이 열악했습니다. 연병장엔 돌멩이도 많았고, 각종 교육장을 오가는 길은 온통 황토 진흙 밭이었습니다.
각개전투장에서 비를 맞으며 땅바닥에 엎드려 ‘철조망 통과’훈련을 할 때는 훈련복이 온통 진흙투성이가 됐습니다.
훈련도 힘들었지만 개인적인 애로사항도 있었습니다. 지급 용품 중에 하필이면 저에게 ‘깨진 식판’이 주어졌습니다. 참으로 운수가 나빴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식사시간이 되면 배식해 주는 사병 앞에서 꼭 당부하는 저만의 ‘딱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국 담는 쪽이 깨졌으니, 밥 담은 쪽에 국까지 담아 주세요.”
훈련소 생활하면서 ‘깨진 플라스틱 식판’은 끝내 교체해 주지 않았습니다. 개인 지급 물품에 주기 번호가 새겨져 있어 교체해 줄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수료식 때까지 깨진 식판으로 이른바 ‘국말이밥’을 먹어야 하는 설움을 겪었습니다.
사병이 군대생활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세 가지입니다. ▲ 식사 시간에 맛있게 ‘먹는 즐거움’, ▲ 취침 시간에 편안히 ‘잠자는 즐거움’, ▲정기휴가 때 ‘고향의 부모님 앞으로 달려가는 즐거움’ 등입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이 같은 병사의 ‘세 가지 즐거움’을 확실하게 누리면서 행복한 군대 생활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당시 여건과 환경이 그랬습니다.
먹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배고픔을 느낀 적도 많았습니다. 잠자는 즐거움도 누리기 어려웠습니다. 심야에 불침번이 아니면 ‘탄약고 보초’를 서야했기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갑작스러운 비상사태로 인해 제때 휴가도 장담하기 어려웠습니다. 당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으로 외출, 외박, 휴가가 보류된 적도 있습니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 경비 구역 안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에게 도끼로 살해당한 사건)
하지만 누굴 원망하거나 신세자탄을 하진 않았습니다. “내가 편안하려고 군대에 왔나? 고생스러운 곳이 군대인줄 잘 알고 입대하지 않았던가. 힘들지만 참고 견디는 ‘인생 교육장’이 군대 아닌가!”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강한 의지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그런 덕분일까요? 육군훈련소에서 흘렸던 진한 땀방울과 인내력이 밑거름이 되어 평생 살아갈 기초 체력이 단련됐고, 정신력 또한 강인해졌습니다.
전역 후, 힘들고 거친 일선 경찰관 생활이 시작됐지만 군대생활을 통해 몸에 밴 인내력 덕분에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슬기롭게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이번 수상작 ‘훈련병 시절 추억의 사진’을 인터넷에 소개했더니, 수많은 분들이 과분한 ‘축하 댓글’을 올려 주셨습니다. 제가 잘 아는 존경하는 문인 몇 분의 축하 댓글을 소개합니다.
□ 대전수필문학회 카페
“모범 훈련병 모습이 상상됩니다. 그 반듯함이 오늘을 있게 한 듯합니다. 잘 보존한 사진과 응모 글 또한 출중하여 대상 수상의 영예를 얻으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이 또한 우리 대전수필문학회의 자랑입니다. (가기천 / 전 서산시 부시장, 수필가)
□ 페이스북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귀중한 자료를 오래 간직하시고 좋은 글로 표현하셨군요. 특히 어머님에 대한 효심이 남다르신 것을 항상 느끼게 됩니다. 감동입니다.” (박영진 / 전 대신고등학교 교장, 수필가)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이었습니다. 막내아들 군에 보내고 시골집을 혼자 지키시던 어머니는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365일 아들의 무사함을 기원하셨습니다.
눈이 펄펄 내리는 날에도 어머니는 장독대에서 자식의 무사함을 기원하며 그 눈을 다 맞으셨다고 합니다. 이웃 아주머니들이 저의 어머니께 “추운데 그만 방으로 들어가시지요.”라고 하면 어머니는 “자식은 총대 메고 눈밭에 서 있을 텐데, 어미가 어찌 따뜻한 방에서 단잠을 자겠느냐?”고 하셨답니다.
그러기에 이 상은 자식인 저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저 세상 ‘어머니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어머니는 눈이 어두우셨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저의 어머니는 자식한테 군사우편이 오면 이웃 아주머니한테 들고 가셔서 읽어 달라고 사정하셨습니다. 한번만 읽지 말고, 두 번, 세 번 더 읽어 달라고 부탁하셨답니다.
그래서 저는 고향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쓸 때, 첫 머리에 <어머님 전 상서>라고 쓰지 않고, <이 편지를 저의 어머니께 읽어 드리는 고마운 분께>로 시작하곤 하였지요.
오늘 이 영광스러운 시상식 자리에서 큰 절로 감사드리고 싶은 ‘고마운 분’이 세 분입니다.
▲ 첫째는 저를 위해 365일 간절히 기원해 주신 어머니, ▲ 둘째는 제가 군대 생활하는 동안 제가 보낸 군사우편을 눈이 어두우신 어머니께 두 번, 세 번 반복하여 읽어드린 이웃 아주머니, ▲ 그리고 세 번째는 당시 육군훈련소 총검술 연병장, 그 짧은 휴식시간에 이 귀중한 사진을 찍어주신 ‘사진 병’ 선배님께도 큰 절로 감사의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의 영예스러운 수상이 저의 능력이나 행운이라기 보다 앞에 열거한 분들의 ‘사랑’과 ‘정성’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 국가 안보와 치안 문제 관련 많은 칼럼과 수필을 써 왔습니다. 특히 <훈장만큼 자랑스러운 두 아들의 예비군 모자>라는 제목의 일간지 칼럼(조선일보‘아침편지’ 2013.2.15일자)발표를 계기로 국방부에서 국군장병과 예비군의 자긍심 고취를 위한 <동영상 교재를 제작>하여 2016년도 전국 예비군 교육장에서 상영한 바도 있습니다.
또한 두 아들이 현역 복무 당시 겪었던 갖가지 에피소드와 가정의 부모가 겪는 삶의 애환을 바탕으로 한 수필집『아들아, 대한민국 아들아』를 펴내기도 하였습니다.
군대 이야기라면 제 개인적인 체험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남다른 삶의 애환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치르는 일은 <대한민국 남자의 자격증>을 취득하는 생애 가장 보람 있는 과정입니다. 평생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살아가는 <대한민국 남자의 자격증> 아닙니까.
저와 우리 가족들은 고위 공직자 국회 인사청문회를 볼 때마다 화가 납니다. 병역 면제자가 왜 그렇게 많습니까.
저는 두 아들을 비롯하여 온 가족이 자랑스럽게 병역의 의무를 마쳤기에 당당하게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남자의 자격증>! 평생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말 할 수 있는 <인생 경력>이 <병역 필(畢)> 아닙니까?
끝으로 신비로운 ‘꿈 얘기’ 한 토막 하고 싶습니다. 육군훈련소 담당 장교로부터 ‘수상 축하’ 문자 메시지를 받기 하루 전의 일입니다.
꿈에 큰 소가 두 마리 나타났습니다. 평소 소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제게 어째서 소가 현몽(現夢)했는지, 특이한 꿈인 듯해서 누님께 전화로 말씀 드렸더니, 언제나 어머니처럼 자애로우신 누님이 이런 답을 주시더군요.
“동생, <소 꿈>은 <조상 꿈>이라네. 소가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가 꿈에 나타났다면 부모님 두 분이 동시에 나타나셨구먼! 길몽이네 그려~”
꿈이 그야말로 현실로 이어지는 일은 난생 처음 경험해 보는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옛날 같으면 60대 후반인 저도 노년층에 속하는데, 정말 뜻하지 않은 상을 받게 되어 과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쁨을 숨기기 어렵습니다. 감사합니다.
- 지금 이 시간에도 육군훈련소 연병장에서 우렁찬 군가 소리와 함께 반듯하게 심신을 단련시키는 훈련병들과, 전후방 각처에서 국토방위에 불철주야 헌신하시는 국군 장병 여러분들의 노고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
2019년 10월 15일
수상자 윤승원
■ 필자 윤승원 : 전 경찰관, 『문학관에서 만난 나의 수필』저자
첫댓글 장천선생! 참으로 멋진 시상식이었습니다. 처믐부터 끝까지의 설명문과 사진이 참으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수상소감의 발표문은 너무나 감동적인 내용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짚어주신 점을 경하그립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장천성샌을 이세상에 태어나시게 하시고 불철주야 돌봐주신 부모님 묘전에 고유식 제세사를 올림은 효자는 끊어지지 않게 함은 당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서경의 글귀가 장천선생에게 드리는 찬사입니다. 거듭 축하드리며, 올사모카페의 주가가 이로인해 크게 높아졌음을 함께 파이팅을 높이 높이 외칩시다. 장천선생 그 글 길이길이 흘러 바다로 가서 전세계 6대주로 퍼질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존경하는 정 박사님의 과분한 찬사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실 정 박님이 운영하시는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이 시대 귀중한 카페 공간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 세상에 어찌 이런 졸고를 상세하게 기술하여 올리겠습니까. 정 박사님의 따뜻한 격려의 힘이 작용했으니 제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저의 응모작보다 훌륭한 작품도 많았을 터인데 제가 과분한 영광을 누리는 것만 같아 송구스러운 마음도 있습니다. 아무튼 저의 생애 기념할만한 의미 있는 시상식후기에 고향 선배님이자 인생선배님의 과분한 축하댓글이 큰 힘을 주십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너무 지나친 겸손이십니다. 후일 대전에 가면 축배를 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보고 싶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카페나 블로그를 운영해 보았고 단체 카페 회원으로 많은 글을 써 왔습니다만 올사모 카페는 또 다른 특징을 가진 유익한 인터넷 공간입니다. 정 박사님의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의식을 배울 수 있는 가치 있는 카페입니다. 저의 글은 청양 장평초등학교 동창생 단체 카톡방에도 연계가 돼 있어 조회수가 다른 글에 비해 많습니다. 더 많은 국민들이 이런 유익한 인터넷 공간을 통하여 지식과 정서를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정 박사님을 직접 뵙고 약주 대접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효도와 우애는 시대의 사명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가장 큰 덕목중의 하나입니다.
부모님 생시에 효를 다하지 못한 사람이라 용서를 비는 글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지난 날을 제 삶의 여정에 비추어 보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군요.
감동입니다.
너무 자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평소 올사모 카페를 통하여 이 시대 가르침이 될만한 훌륭한 인품의 옥고를 읽게 해주신 장원섭 교수님으로부터 뜻하지 않게 분에 넘치는 축하의 말씀 들으니 영광스럽고, 글을 소개한 보람을 더 크게 느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