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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해를 맞아 한반도의 평화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를 정리해보았다. 우선 글이 너무 길어 대폭 줄일까 생각해봤으나 전문가와 학자들, 청중 사이에 오간 이야기들을 거의 그대로 살려 싣는다. 이날 모인 청중은 200명 가량이었고 60대 이상의 나이 든 분들이 많았지만 젊은이들도 적지 않았다. 청중석에는 임동원, 강금실, 정현백, 백학순씨 같은 정치인과 학자들의 모습도 많이 띄었다.
2012년 새해 토론회 역대 통일부 장관 초청 한반도 평화포럼
때와 곳: 2012년 1월 17일(화) 오후 2시-5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관 공연장
주최: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주관: 한반도평화포럼, 시민평화포럼
‘햇볕정책’ 아래 남북관계를 맡았던 전임 통일부 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북한의 김정은 체제와 한반도의 앞날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전임 통일부 장관은 정세현(29대, 30대), 이종석(32대), 이재정(33대), 모두 3명이었다. 정동영(31대) 전 장관은 전주에 급한 일이 있어서 불참하였다. 인사말은 백낙청(한반도평화포럼 공동이사장, 시민평화포럼 고문)이, 전체 토론은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하였고 사회는 문정인(연세대 교수)이 맡았으며, 각 주제 별로 김근식(경남대 교수)과 김창수(전 NSC 선임행정관)가 대표 질의자로 나섰다.
사진: 경향신문에서
■ 백낙청은 인사말에서 “ ‘김정은 체제’라는 표현부터 보자. 이것은 김정일 위원장 급서에 따른 북측의 권력승계가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는 일반적 인식을 2012 신년대토론회의 기획자들도 공유한 결과다. 더 먼 장래에 어떤 성격과 내용의 체제가 될지는 지켜볼 일이라 하더라도 일단 체제로서 출범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로써 김정은 체제의 객관적인 안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김정일 이후의 불안정성에 대한 주관적 인식들이 상당히 제거된 건 긍정적 현상이다.”고 했다. 동시에 “남한의 87년 체제가 그러하듯이 김정은 체제도 한반도 분단체제의 일익이라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그 안정성 여부도 분단체제의 안정성이나 불안정성과 직결되어 있다. 남한의 87년 체제가 그 말기국면의 혼란 속에서 새 시대를 탄생시키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분단체제의 핵심장치인 1953년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여 한반도 평화체제로 이행하지 못하는 한 김정은 체제도 분단체제의 일부로 존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측에서 바라는 변화도 북측 스스로 원하는 안정된 발전도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2013년 체제가 1987년 6월 이후의 전환 못지않은 일대변화이면서 한반도 차원에서는 87년을 능가하는 획기성을 지녀야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분단체제의 존재와 위력을 무시하는 북조선 비판은 북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만큼이나 공허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김정은 체제의 출범을 지켜보면서 3대 세습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원칙에 얼마나 벗어난 것인지에 대한 비판이 요란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 북은 온전한 사회주의 강성국가가 되고, 남은 자본주의 선진국이 되어 천년만년 갈라져 살자는 것인가. 분단이 오래갈수록 분단체제를 허물지 않고서는 이도저도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것이 이명박 정부 4년이고 그동안 북녘에서 벌어져온 인민의 생활난과 인권상황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우리자신을 포함한 분단체제 전체의 변혁이고 이를 위해 각자 스스로 처한 위치에서 자기 몫을 하는 일이다.”
■ 1주제 ‘북한의 변화와 남북관계 전망’
김근식= 김정은 체제가 단기적으로는 안정성이 있다는 전망이 대부분이지만 향후 장기적으로는 어떠할 것인가. 역대 장관의 경험과 북한에 대한 식견을 토대로 해서 현 정부 또는 2013년에 출범할 새로운 정부가 펼쳐나갈 대북정책에 대해 그리고 김정은 체제가 개혁개방 쪽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가 지켜야할 것들은?
정세현= 김일성 사후에 김정일 체제가 불안정할 거라는 전망이 많았고 3년 설부터 30년 지탱설까지 있었다. 다 틀린 얘기가 됐다. 이번 김정은 체제도 밖에서 보는 것보다는 상당히 안정이 돼 있다. 장기적으로 불안정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10년 이내에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거나 후계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그걸 전제로 우리의 대북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98년부터 2008년 2월까지 추진해왔던 햇볕정책을 다시 되살리되, 시행착오와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백낙청 이사장의 표현대로 ‘햇볕정책 2.0’으로 정책 입안하고 다음 정권은 그런 방향으로 지금부터 준비해야하지 않나 싶다.
이종석 = 김정일과 김정은의 차이를 보자. 김정은은 혈통적 정통성으로 지도자가 됐고 김정일은 상당한 카리스마를 확립한 다음에 지도자에 올랐다. 북한은 왕조적 성격의 사회국가다. 긴 조선시대와 식민지 반봉건의 역사 직후에 북 사회주의가 나왔다. 하지만 공산당 자체의 특성 때문에 개인숭배가 나왔다. 북에서는 개인혈통, 백두혈통이라 표현하는데 김일성 김정일로 이어지는 혈통 이외 다른 지도자가 나오는 건 상당히 어렵다. 이미 김정은의 기본적인 권력기반은 갖춰져 있다. 여러 가지 해왔던 절차와 유훈이 있을 텐데,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일 거라 본다. 동양적 가족국가에서는 장자 상속이 상식이다. 그런데 삼남이 상속한 것은 제일 낫다는 의미다. 김정은을 그리 만만하게 보면 안될 것 같다. 그러나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정은이 유훈을 탄력적으로 해석하면서 밖으로 개방하고 대남관계도 자신 있게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도력이 취약하다면 김정일의 유훈을 좁게 교조적으로 해석하면서 대남관계 등에서 강경하게 나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 김정은 체제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 싫고 좋고에서가 아니라, 인정을 해야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은가. 화해와 협력의 일관적 메시지를 보내야한다.
문정인=김정은 체제가 혈통적 정통성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권력기반은 어떤가?
이재정= 혈통적 관점에서만 보는 건 너무 좁은 거 아닌가. 김정일 생전인 2009년에 헌법을 개정했다. 그때 국방위원장을 강화해놓고 2010년에 들어서서 당의 중앙군사위를 두어서 국방위와 어떻든 상호 협력과 견제 또는 보완할 수 있도록 권력구조를 개편했다. 이렇게 볼 때 김정일이 김정은의 권력승계를 위해서 상당 기간을 준비하고 제도화한 것 아니냐. 이번 장례식에서 정치국의 핵심 인물들이 김정은과 함께 운구를 했다. 이 자체가 안정적인 권력층의 모습을 북한 인민들에게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정인 = 그런데 햇볕정책 2.0은 무엇인가. 나는 햇볕정책이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는데(웃음).
김근식 = 백낙청 이사장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총체적 실패로 평가한다. 2013년에는 대북 화해 정책으로 복귀해야 하는데 과거로 기계적으로 복귀할 게 아니라 발전적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2.0으로 상승시킨 것으로 이해한다. 내가 생각하는 햇볕정책의 내용은 두 가지로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의 4년을 겪으면서 너무 쉽게 남북관계가 역진했다. 10년 동안 피땀 흘려서 진전시켰던 남북관계가 정권 바뀌고 하루아침에 무력화됐다. 다음의 햇볕 포용정책은 비가역적인,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제도화 안정화를 꼭 해내야 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구조적으로 안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북을 변화시키고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말하자면 햇볕정책 1.0은 가시적 효과가 미흡했다. 따라서 대북 정책 2.0은 변화된 질서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북한이 변화하도록 진화해야 한다.
문정인 = ‘2013년 체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종석 장관이 설명해 달라.
이종석= 나도 분단문제를 공부하고 있지만 앞에 계신 백낙청 선생한테 빚진 바가 크다. 분단체제를 넘어서지 않고 미래로 갈 수 없다고 제기한 지가 벌써 오래됐다. 포용정책 2.0을 김교수가 얘기했다. 2013년 체제란 백낙청 선생이 던진 화두이다. 2012년에 총대선 두 번의 선거가 있다. 과거 87년을 분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눠 보면,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경제적으로는 복지를 노력해왔지만 아직 부족하다. 한 번 더 제대로 된 민주주의와 경제민주주의 복지를 해나가야 한다. 또 하나, 1953년의 정전협정 다음에 한반도에서 냉전구도는 이미 깨졌다고 했지만 남북의 대결이 우리를 옭아매고 있다. 남북통일 문제가 끊임없이 국내 민주화와 제반 개혁의 발목을 잡았다. 수구세력이 북풍몰이를 한다든가 87년에 성립된 민주주의와 경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원인이었다. 이제는 52년 정전체제를 넘어서는 새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김근식= 다음 질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해 달라.
이재정 = 2007년 정상회담에서 10·4 선언을 만들어냈다. 이는 6·15 선언이라는 대원칙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이행해갈 것이냐에 대한 합의였다. 남북의 정상 두 분이 지금은 다 이 세상에 있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법이 정한 것들을 근본적으로 무시한 거다. 참여정부는 마지막에 남북관계 발전 기본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국무회의 절차 밟고 국회에도 보고했다. 법이 정한 테두리에서 남북관계를 추진하는 동시에 국민들은 예측 가능한 그런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뜻에서였다. 10·4 선언을 바탕으로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간다면 돌이킬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 김근식 교수는 제도적 장치가 한층 더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 이상 더 필요한 게 뭐가 있겠는가. 이명박 정권 같은 정부 다시 선출하지 않으면 된다.
4년 남짓 기간 동안 이명박 정부의 중대한 실책 가운데 하나는 서해의 평화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깨뜨리고 무력충돌 현장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정상회담에서 거둔 가장 중요한 성과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라고 한다. 53년 7월 휴전협정을 맺을 때 육상은 매듭짓고 해상은 결정 못했다. 다만 큰 섬은 유엔 관할, 작은 섬은 북이 관할하기로 하고 끝났다. 해상에 대해서는 특별한 권한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된 이후에 사실상 휴전협정이 매듭짓지 못한 것을 남북이 주도적으로 서해평화를 위해 새로운 협정을 맺은 것이다. 이렇게 가장 중요한 평화협정을 맺었음에도 이걸 깨뜨리고 전운이 감도는 상황이 전개됐다.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으스스하게 조명해놓고 거기 나와서 협박을 가하는 상황이 됐다.
정세현 = 이명박 정부의 기조가 잘못됐다. 비핵. 개방. 3000이 무엇인지 잘 알 거다. 이것이 남북관계를 핵문제에 종속시켜버렸다. 핵문제는 김영삼 정부 때부터 발생했다. 그때도 핵문제에 남북관계를 종속시켜서 정권 내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핵문제와 남북관계 개선을 병행하는 정책을 취했었기 때문에 그나마 핵문제의 해결에 토대가 조금씩 마련됐다. 대표적인 것이 2005년의 9·19 공동성명이다. 그로 인해 해결의 기미가 보였는데 그러다가 정권이 교체됐다. 핵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남북협력은 없다, 교류도 있을 수 없다 하는 식으로 남북관계와 핵문제를 선후 또는 종속관계로 설정하면서, 통일부는 일이 없어졌다. 전임 통일부 장관 입장에서 보면, 후임 장관들이 소위 비핵개방 삼천 논리를 뛰어넘는 새로운 대체 이론을 개발해서 대통령에게 건의해서 해결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걸 못한 것이 안타깝다. 다행히 류우익 현임 장관이 유연성을 발휘해서 뭔가를 해보려는데 정부 내에서 저항이 있는 것 같다. 관성이 있으니까. 마침 북한도 도와주질 않는다. 상종도 안 하겠다는데 북도 그러면 안 된다. 유연성을 발휘하려는 장관이 있으면 일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한다. 다음 정권이 일 할 수 있는 기반을 남은 일 년 동안 닦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부 내의 강경노선도 자기 입장을 좀 완화시켜줬으면 좋겠다.
문정인=이종석 전 장관에게 질문한다. 지금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을 기획관으로 승진시키면서 혼선이 있는 것 같다. 김태효 기획관은 강경노선의 핵심인데 대통령은 한편으로는 류우익 장관에게도 힘 실어주고 김태효에게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어떻게 읽어야 하나. 이종석 전 장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운영해봤다. 어떻게 평가하나?
이종석=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대외전략기획관으로 한 단계 승진했다. 외교안보 수석과 비서관 사이에 뭐가 있을까. 글쎄 그게 무슨 필요에서 그렇게 됐는지 알지 못하겠다. 정세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말년이 돼서 자리 하나 높여 비서관보다 높았다 이렇게 듣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뿐이다.(청중 웃음) 나는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너무나 합리적이지 못하다. 즉 비합리성과 또 하나는 역사의식의 부재다. 비핵개방 3000은 핵 포기하고 개방하면 소득이 3000달러가 되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대북정책 목표가 북핵 포기와 개방인지도 모르겠다. 그보다는 남북이 평화롭게 살고 통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는데 핵포기 개방이 중간목표일 수는 있겠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핵을 포기시킬 것인가가 전략적 과제다. 그런데 너희들이 핵을 포기하면 얼마를 주겠다고 한다. 그게 무슨 정책인가, 비합리적이다. 천안함 사건이 터진 뒤 사과하지 않으면 육자회담도 필요 없다고 한다. 북핵문제가 그렇게 사활이 걸린 문제라면, 천안함에 대한 사과 없이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이게 얼마나 비합리적인가. 이걸 지속적으로 주입해서 국민들도 그런가 보다 하게 만드는데 이거야 말로 문제다. 6·15 선언과 10·4선언은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박수 받은 것이다. 김대중의 국민정부나 노무현의 참여정부에서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약속한 건데 이 약속을 나중에 가서 버릴 수 있는 건가? 단지 자신들 정권 때 안했다고 버리는가. 정권은 유한하지만 정부는 영속적인 것이 아닌가.
이재정 = 한마디만 더 추가하고 싶다. 이명박 정부가 처음 내놓은 747 경제정책, 비핵개방 3000이란 대북정책, 이 두 가지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 아무 근거가 없는 정책이었다. 인수위 구성하면서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통일부를 없애자는 것이었다. 그럼 다른 대안이 있었냐 하면 그런 것도 없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 마음속을 지배했던 것은 북한 붕괴론이었다. 김정일이 아프고 붕괴될 나라에는 어떤 지원도 할 필요가 없을 테고 제제와 압박만 가하면 되지 않겠느냐 했다. 처음 비핵개방 3000 들고 나왔을 때 이걸 목숨 걸고라도 막았어야 했는데 아쉽다.
문정인=김창수 국장에게도 질문한다. 시민사회에선 어떻게 보나.
김창수 = 비핵개방 3000 엎어버렸어야 했다는 말 듣고 보니 프레시안에 그런 글을 쓴 기억이 난다. 비핵개방3000으로 가지 말고 거꾸로 3000개방비핵으로 가자. 비핵으로 가는 과정에서 소득수준을 삼천불로 올리는 걸 수단으로 삼아라 그런 글을 썼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94년 김일성 사망과 작년 김정일의 사망을 비교해볼 때 우리사회가 안정됐다고 한다. 당시 신문기사를 살펴봤지만 사실 84년도에도 국민들은 차분했다. 정치세력들 간에 갈등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번엔 그런 갈등이 없었고 국민은 더 성숙해졌다. 그 차이가 뭐였겠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남북 교류가 있었다. 2005년 8만 명, 2010년 10만 명, 이 숫자는 건국 이후부터 통틀어 셈한 방문객보다도 더 많다. 이제는 북한을 봤기 때문에 동요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남북교류를 단절시킨 이명박 정부는 무엇보다 뼈아픈 실수를 했다.
김근식 / 문정인 = 지난 정부에서 장관을 하셨을 때 아쉬운 것과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종석 = 아쉬운 게 많다. 할 만큼 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쉽고 죄송한 것도 많다. 한 가지는 북한 핵문제와 남북관계 사이에서 정말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한다는 게 너무 어렵다. 그게 잘 안될 때가 제일 아쉬웠다. 미국의 요구에 따라서 남북관계와 북 미사일 문제가 연계됐을 때 정권 잡은 사람들이 해결 못했다. 그건 우리 잘못이지만, 남북관계 제대로 풀지 못한 게 가슴에 남았다. 북핵과 별도로 남북문제를 해결하려는 또 다른 노력을 같이 해야 했는데 국민들로부터 동의 받는 기반이 취약했다.
문정인 = 잘한 건?
이종석 = NSC때 유엔사무총장을 우리 힘으로 당선시켰다. 워싱턴과 베이징에서도 다 박수 받았는데 균형외교를 하지 않았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문제다. 비디오 테이프라도 수십만 개 만들어서 화상 만남을 했어야 했다. 또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도 명단까지 만들어 제안도 했었지만 풀지 못했다. 이제 흘러간 물이지만 앞으로는 잘 하고 싶다.
정세현 = 나이가 있는데 벌써 무슨 흘러간 물인가. 게다가 요새는 자기 나이에 0.8을 곱한다더라. 앞으로 기회가 있을 거다. 아쉬운 점은 역시 저도 대내적인 정책설명이라고 할까 이것을 많이 못해 아쉽다. 남북관계란 게 대상이 북이기 때문에 북이 싫어하면 절대 안 된다. 비핵개방은 북이 싫어하니까 진전 못 보는 것 아닌가. 또한 북이 좋아한다고 해도 우리 쪽에서 절대 반대하면 안 되고. 북이 어느 정도 동의하고 우리도 국민 6-70프로의 동의를 얻어내고 그런 연후에 국제사회 지지를 끌어내면서 3면으로 설득을 해가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요즘 들리는 얘기다. 남북관계 정상회담했던 북쪽 사람들의 말이다. ‘그때 남쪽이 하자는 대로 순순히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몸값 높여보겠다고 벼랑끝 전술이라든지 앙탈을 부렸달까 후회된다’고 한다. 대북 정책 차원에서 큰 문제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2002년 1월부터 2004년 6월까지 정부에 있었다. 대미관계는 어땠는가. 김대중 대통령이 대미관계를 ‘나이스하게’ 관리해줘서 큰 문제가 없었다. 노무현 정부 초기에도 문제는 있었지만 미국이 한국의 대북관계를 견제한다든지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이른바 퍼주기 논쟁을 잠재우기 위해 중대 사안이 있을 때마다 직접 국민 상대로 설득을 시작했다. 전국을 돌고 분야별로 회합도 25회에 걸쳐 가졌었다. 29개월 근무했으니 1달에 한 번씩 <열린통일포럼>이란 걸 열었고 한번에 5~600명씩 모였다. 대북정책에 대한 이해를 상당히 높였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더 자주 할 걸 그랬다. 왜 우리가 먼저 북을 지원해야만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북한이 협조할 것인지, 북한이 개방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인지를 적극 설명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 그걸 제대로 못한 것이 아쉽다.
그 다음에, 내가 잘 한 거라기 보다... 이런 일도 했다. 2000년 9월 18일 남북간 철도연결 착공식을 했다가 초겨울이 되면서 북측 공사가 중단됐다. 당시 차관에서 물러나 학교에 있었다. 언론이 그랬고 정부 일각이라든지 특히 보수층에서는 ‘그거 봐라 북이 약속 지킬 걸로 예상하고 합의한 게 이상하지 않느냐’고 했다. 나는 혹시 자재와 장비가 부족해서 중단한 게 아닌가 하는 데에 착안했다. 그렇다면 자재 장비를 주고 공사를 지속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건의를 드렸는데 전달이 잘 안됐던 것 같다. 그러다가 2002년 1월 말에 통일부 장관에 임명됐다. 대통령께 건의했다. 그런데 특별히 다른 말씀이 없길래 해도 좋다는 뜻으로 유리하게 해석하고 3월인가 경제인 조찬간담회에서 그런 생각을 말했다. 얼마 드느냐 해서 비료 한 10만톤 정도의 가격이면 될 것 같다 했더니 경제인들이 됐다고 해서 제가 자신 있게 홍보를 했다. 그래서 장관급 회담을 그해 8월에 했다. 2002년 9월 18일 철도 재착공식을 갖고 자재를 줘 가면서 철도공사를 했다. 2005년 10월 25일이었다. 퇴임을 앞둔 콜린파월 미 국무장관이 서울에 왔다가 이튿날 떠난다. 그가 기자 간담회에서 의미 있는 표현을 했다. 인공위성을 통해서 본 한반도의 디엠지를 가로지르는 피스 익스프레스 트레인 레일이 감동적이었다고. 제가 그 단초를 재임 중에 마련할 수 있었는데 대통령께서 허락하신 걸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박수)
이재정 = 선임 장관들이 앞서서 깔아놓은 걸 거둬들이며 즐겁게 장관직을 수행했던 셈이다. 막 장관이 됐을 때 북에서 핵실험했다.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됐다. 이종석 장관에게서 바통을 받았는데 당시 제일 중요한 과제는 남북대화의 복원이었다. 남북 사이 협상만으로 풀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당시 6자회담의 진행상황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년 12월에 취임하고 2007년에 장관급 회담을 열었다. 재임 중 남북 당국간 공식회담이 66회였다. 통일부 역사 중 최다를 기록했다. 그 과정을 통해서 남북이 서로 변화해나가는 모습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고 마침내 큰 결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정상회담에서 이끌어낸 가장 중요한 합의사안이 있었다. 정상회담을 필두로 총리회담, 국방회담, 경제회담, 서해 평화협력을 위한 장관급 회담을 네 개 만들었고 차관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의 각 분과위를 스무 개 이상 조직했다. 남북연합의 단계에서 통일 시대를 열어가는 기본 초석을 놓았다고 자부한다.
북에도 미안하고 우리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게 있다.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 직후였다. 개성공단 2단계 들어가려고 북한을 설득했다. 엄동설한이었지만 12월에 측량, 지질조사를 다했다. 뿐만 아니라 금강산에도 개성협의사무소와 마찬가지로 상설 대표부를 두고, 국장을 소장으로 하는 상설사무소 두자 해서 남북 이산가족 면회소 옆에 건물 새로 짓고 각각 사무소를 여는 걸로 합의까지 했다. 그런데 지난 4년 동안 한 발짝도 진전이 안 돼 정말 유감스럽다.
김근식 = 네 번째 질문이다. 금년에 대선이 있다. 정권교체에 대한 판단이 분분하겠지만 교체 가능성이 높다고 가정하고, 여기 계신 장관들이 다시 취임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과 새로운 관계를 위해서 통일부 장관으로서 뭘 하고 싶은지 포부를 밝혀 달라.
이재정 = 가장 중요한 건 6·15와 10·4 정신의 복원이다. 북의 경우, 김정일이 서명한 이 문서는 북 의회를 통과했고 헌법 이상의 권위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복원시킬지가 과제다.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일과 함께 내년이면 1953년 7월에 정전 협정된 지, 만 60년이다. 전 세계 인류 역사에서 전쟁을 중단 시켜놓고 60년 동안 살아간 나라가 없다. 정전이라는 이름만 붙어있지 180만 군대가 남북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면서 끊임없이 위협하는 이런 지역 전 세계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평화체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할 것이냐가 과제이다. 내가 장관을 그만두면서 마지막에 발표한 것이 이미 얘기한 남북관계발전 기본 5개년 계획( 2008년부터 2012년)이었다. 관보에 게재하고 다 했지만 전혀 진척이 안 된 상태다. 모든 절차를 다시 복원시켜야 한다.
문정인= 이제 청중이 제기하신 서면 질문을 드리겠다. 남북교류 필요성에 대해 대국민 설득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재정 = 여러 오해가 있을 수 있겠다. 대체적으로 북의 경수로를 개발하기 위한 94년 제네바 기본합의가 있었다. 그때 북한의 전력 공급을 위해 조직한 케도(KEDO)에서 한국정부가 돈을 다 댄 것과 그 외에 쌀 꿔준 것이 있다. 그런데 우리 기업인들이 평양 임가공 업체에 주문하면서 800개 업체가 벌어 들어와 세금 낸 돈이 우리가 쌀 지원한 돈보다 더 많았다. 평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라도 남북교류협력은 앞으로 더 강화해야 한다.
-북한이 핵실험 등 신의를 계속 저버리는데 어떻게 신뢰구축이 가능한가?
이재정 = 서해에서의 도발 문제를 잘 생각해야한다. 1999년 남북 함정의 충돌, 2002년의 충돌을 보자. 모두 우발적으로 일어났을 뿐 아니라 꽃게잡이 같은 사소한 것이 충돌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때에는 남북이 잘 관리해서 더 이상 분쟁으로 번지지 않았다. 연평도 포격사건만 하더라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천안함 사태가 없었더라면 연평사건도 없었을 거다. 잘 생각해봐야 한다. 오히려 한미군사훈련을 통한 과도한 군사훈련이 북을 자극한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정세현 = 대북지원이 왜 필요한가. 두 가지에서다. 첫째는 상호의존성을 키워 지원받아야겠다는 필요로 도발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대북지원과 교류협력의 과정에서 북 사회 스스로 체제의 불합리성이나 한계에 대해 지도부에서부터 시작해서 일반 주민에 이르기까지 각성하고 개방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 방법으로서는 역시 교류협력 지원밖에 없다. 남북협력기금으로 1년에 배정받은 금액을 다 못썼다. 지난 10년 동안 쌀 비료 준 게 우리 돈으로 4500억원 정도이고 달러로 하면 4억불 정도다. 기간으로는 2000년 정상회담부터 2007년 말까지인데 북이 그동안 많이 변했다는 걸 언론을 통해서 접했을 거다. 서독의 동독 지원은 어땠는가. 동방정책 시작 이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8년 동안 576억불이었는데 1년에 32억불 꼴이다. 그만큼 현금과 물자가 흘러갔기 때문에 민심이 서독으로 기운 것이다. 물론 동독의 갑작스런 붕괴로 인해 서독이 책임질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가 그러자는 건 아니다. 북한의 퇴로를 열어주고 그때까지 안정적 관리하는 데 인도적 지원이든 차관이 됐든 그것만큼 효과적인 건 없다는 것을 체험으로 확신한다.
-북한에도 아랍의 봄 같은 것이 올까.
정세현 = 식량난 같은 것 때문에 붕괴한다면 모택동 시절에 중국은 이미 붕괴했었어야한다. 문화대혁명 10년 동안 중국에서는 농사는 안 짓고 데모만 했다. 그 관계로 평균 사망률 외에 6600만 명이 굶어죽었다. 10억 인구에서 별거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굶어 죽어도 사회주의 체제, 특히 폐쇄체제는 그로 인해 무너진다는 선례가 없다. 모두가 배고플 때는 오히려 사회가 안정된다. 배 아픈 사람이 나와야한다. 북한이 백두혈통의 김일성 왕조라고 평가하는 동안 내부에서 붕괴할 것이다 고 하는데 나는 경제적 이유로 붕괴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개방개혁 과정에서 외부 문화가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어야만 붕괴든 격변이든 가능하다.
-MB정부가 취할 시급한 과제는?
정세현 = 국민과의 소통보다 더 시급한 건 관계개선의 틈새를 벌려나가는 것이다. 그래놓고 나서 왜 필요한가를 설득해야 한다. 임기말년에라도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류우익 장관이 말하는 유연성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믿고 인도적 지원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식량지원부터 하고, 그러다보면 이산상봉, 금강산 관광 재개가 나올 것이다. 그때 협의를 시작하고 임기 끝나기 전에 23차 장관급 회담 열고 끝나는 것이 5년 동안 나라를 책임진 정권으로서의 역사적 책임 아닌가.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의 해라고 선포해놨는데 우리의 ‘2013년 체제’가 어떻게 가능한가? 오는 2월이면 키 리졸브 한미군사훈련을 할 텐데 이런 거 하면서 2013년 체제 가능할까. 민주진보정권이 정권 잡아도 할 훈련이잖은가.
이종석 = 지금은 강성대국 대신 강성국가라고 말을 조금 바꿨다. 인민들한테 핑계를 대는 거다. 군사적으로 미국에 대항해서 강한 군대 만들었고 정치도 사상도 강한데 군사에 치우치다보니까 경제가 어려워졌다 해서 경제까지 다 완료하자는 메시지이다. 지금 다 아시는 것처럼 한나라당에서도 남북관계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하고 있다. 어쨌든 북에서도 정치변동이 있는 상황이니까 모든 면에서 조심해야한다.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한다. 그러나 과거에도 남북관계가 교류협력이나 인도적 지원이 잘 이뤄지고 남쪽의 진정성을 북이 확인하면 그런 훈련 있을 때도 남북관계는 안정적이었다. 새로운 일을 벌이기는 힘들겠지만, 새 정부의 진정성이 확인되면 어렵지 않다고 본다.
이재정= 남북 사이에 신뢰가 있을 때는 훈련이 있어도 안정적이지만 단절됐을 때는 북도 똑같이 훈련을 했다.
밤에 본 경복궁 경회루
■ 제2주제 ‘동북아 질서 변화와 북핵 해결 전망’
김창수 = 북이 중국에 넘어 갈 가능성이 있는가.
정세현 = 중국이 유사시에 북을 점령하리라는 생각은 피해망상에서 온다. 우선 북한이 그리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다. 과거 중소라는 두 대국 사이에서도 자주성을 견지해온 나라다.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이 될 가능성은 없다. 또한 중국이 북한을 함부로 점령할 수 없는 게 한반도의 특성이다. 미국이 있지 않나. 주한미군이 있는 이유가 뭔가. 한반도가 중국이라든지 소련에 넘어가지 않도록 미국의 국가이익을 보유할 수 있는 교두보로서 남아있는 거다. 북한이 완전히 중국에 병탄이 돼버린다면 전초기지가 그만큼 허약해지므로 미국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측면도 있지만 미국과 중국에 우리 민족의 운명이 종속된다는 점에서 서글픈 현실이기도 하다. 오는 총선도 승리하겠지만 중국의 시진핑이 집권하면 북을 먹을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도 된다. 중국 주변에서 자기의 언어와 문화를 유지하는 나라는 한반도와 베트남 두 나라밖에 없다. 한국민족은 방어할 건 하고 협조할 건 하는 식으로 협조해왔고 앞으로 그러리라고 본다. 걱정해야 할 것은 남북경협의 단절이 너무 길게 이어진다는 점이다. 북중관계가 깊어지면 남북통일은 그만큼 멀어진다.
이종석 = 중국의 국경선은 2만 킬로이고 그 안에 54개의 소수민족이 산다. 중국의 통치방식은 주변의 안정이다. 중국이 북한을 자기 나라로 만들어서 뭐 하겠나. 조선인민공화국이 그냥 자기 우방으로서 잘 있길 바랄 뿐이지 중국의 전략적 이해와 안 맞는다. 다만 그렇게 보이는 이유가 있다. 김정일은 그야말로 내부 자원이 고갈돼 외부 세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했을 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그래서 북한식 버전으로 중국, 남한, 일본을 향한 '의존의 분산' 정책을 썼다. 미국의 경우 북한이 볼 때 대통령이 클린턴에서 부시로 바뀌면서 갑자기 ‘악의 축’으로 몰리면서 180도로 바뀌었다. 우리는 북한이 변덕스럽다고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이나 미국이 정신없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렇게 휘둘릴 바에야 중국에 가서 붙자 이렇게 생각했을 법하다. 또 하나는 김정일의 건강 때문에 후계 체제를 공고화시키는 방법으로 확실한 후원국가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북중 간에 2010년과 2011년에 다양한 협의를 했다. 황금평과 나선 두 군데에 공동 경제협력 특구를 만들었다. 정세현 전 장관의 지적처럼 걱정해야 할 건 남북경협의 단절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이 붕괴한다면 110만의 군대가 있는데 우리한테 왜 오겠나. 우리는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다. 북 지도부가 ‘그래도 남쪽에다가 부탁하는 게 낫겠다’ 하는 의존심리가 있어야 그나마 온다.
이재정 = 과학적 분석이 필요하다. 5.24 조치 이후에 남북 간의 경협으로 오고가던 무역량이 17-18억불이다. 2007년 말 마지막 단계에서 남북관계가 깨지면서 이 물량은 다 중국으로 갔다. 평양에서 임가공 하던 것도 다 중국으로 넘어갔다. 중국이 북을 지배하기 위해서 공격적으로 북에 투자하거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게 아니다. 북이 요구하는 한계 내에서 꼭 모자란 부분만 수동적으로 협력하거나 운용하는 것이지 무작정 하지 않는다. 작년 무역 총량이 50억불인데 내용을 보더라도 오히려 북중관계는 상당히 건전한 관계로 보인다. 중국의 동북아 정책과 미중관계도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절제된 대북정책을 볼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중국은 동북3성에 엄청난 규모로 투자할 계획이다. 2020년까지 중국 돈으로 2800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457조의 막대한 자금을 쏟는다고 하는데 여기에 북한은 빠져 있다. 앞으로 중국이 북한에 얼마나 투자를 할지 역시 남북관계에 달려있다.
김창수 = 북한의 통미봉남, 남한의 통미봉북 얘기가 나온다. 지금 남북 모두 대화가 잘 되지 않고 미국하고의 대화만 의존하겠다 이런 식이다. 어느 것이 현실성이 있고 제 3의 다른 가능성이 있는가.
문정인 = 통미봉남이라면 정세현 장관이 처음 말했던 거 아닌가?
정세현 = 그렇지 않다. 김영삼 정부 때 노재봉 전 총리가 칼럼에서 처음 쓴 용어다.
문정인 = 북한의 전략으로 볼 수도 있고 현상으로 볼 수도 있는데 무엇이라고 보나?
정세현 = 현상에 불과하다. 현 정부의 북에 대한 불신이라든가, 비핵개방 3000 논의를 구상한 국제정치관이랄까, 통일철학과 관련해 현 정부는 북한은 지금 상태에서는 상대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초기에는 아마 6개월이면 버릇을 고칠 수 있다 하는 얘기도 나왔던 것으로 안다. 6개월 지나니까 1년이면 된다면서 자꾸 늦춰졌지만. ‘통미봉남’은 북의 의도된 전략이라기보다는 대북정책의 결과로서 나타난 현상으로 해석해야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통미봉남 깨고 나갈 수 있다.
이종석 = 통미봉남이라는 말 자체가 마술적인 언어다. 북한과 미국 관계에서 북한이 무슨 재주로 통미봉남을 하나. 다만 남한 너희들은 싫고 미국하고 좀 대화를 하겠다 정도다. 통미봉북 역시 억지로 만든 말이다. 우리가 북을 봉쇄하자 이런 말은 할 수 있다. 가능성이 더 크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국익은 그야말로 망가지고 다 소진된다. 5·24 조치로 남북경협을 끊었는데 고통을 겪은 쪽은 북한이 아니라 우리 중소기업체들이었다. 상대방한테 10 정도의 아픔을 주기 위해서 우리가 100의 아픔을 받는 건 자해 행위일 뿐이다.
문정인 =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재정 = 전작권을 미국이 갖고 있다. (정확한 용어는 전시 통제권) 우리에게는 대단히 무서운 나라다. 미국은 한국전쟁 때인 1950년 7월에 이승만으로부터 작전권을 가져갔다. 우리가 전작권, 평작권 하지만 중요한 건 전시작전권이 아닌가. 이게 아킬레스건처럼 우리를 옭아 맨다. 미국은 북한하고 얘기하고 싶으면 얘기한다. 김정일 사망 직후에도 미국은 북한과 직접 대화하였는데 우리가 봉북을 할 수가 없다. 미국은 국익에 이로운 일들을 다 한다.오늘 아침에도 이란 석유를 사지 말라고 한다. 대체 주권국가로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란은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몇 천 년 관계를 지속해온 나라다. 미국보다 훨씬 이전인 신라 때부터 지속해온 관계가 미국 때문에 물러서야 한다. 한미관계를 근본적으로 생각해볼 계제가 아닌가 한다.
문정인 = 한미동맹하고 남북관계가 이론적으로 같이 가기 힘들지 않은가?
정세현 = 이론적으로 그런지 다시 봐야 한다. 김대중 정부 때에는 미국과 우호적이면서 남북 관계도 잘 갈 수 있다고 봤다. 당시 미국에게 ‘냉전 끝난 뒤 우리의 대미 정책이 바뀌었다’고 얘기했다. 올브라이트의 영문 회고록 416 쪽일 게다. 거기 보면 냉전 이후에 미국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 바뀌었다. ‘노멀리제이션’ 즉 북한 미국 사이의 관계 정상화된다면 미군 있는 거 문제 안 된다. 미군이 주둔한 가운데에서도 남북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니까 한미동맹은 초기에는 대공방어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앞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미북 관계가 호전된 조건에서 주한민군의 역할은 바뀔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미 미군은 동아시아에서의 균형자 역할(밸런싱 롤)을 하고 있다. 동서독 통일할 때도 나토의 4만 미군은 유럽지역의 균형자로서 주둔했다. 그래서 미국이 독일통일을 오케이한 것이다. 제로섬 관계로 파악하면 안 된다. 한미 간에 우호관계가 유지되는 조건에서 미군은 균형자 역할을 하고 그 속에서 미북, 남북관계 좋아질 수 있다. 으레 제로섬으로 보니까 한계에 부딪힌다.
문정인= 동맹이 유지되려면 공동의 적과 위협이 있어야 하는데 남북관계, 한미관계가 다 좋아지면 그것도 다 없어진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철수하고 갈 데가 없으니까 아시아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미국이 국방비를 1조억 달러를 줄이면서 지금의 군사력을 유지하려면 한국이 방위비를 상당히 많이 분담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되고 한중관계 좋아지면 동맹을 유지할 필요 없는데도 동맹체제는 유지한다?
이종석 = 결국 국민의 선택인데 어려운 문제다. 동맹은 공동의 위협 대상에 대응하게 돼있다. 역사의 어느 국면에서나 동맹은 있어왔는데 한미동맹은 냉전의 산물이다. 그런데 세종연구소는 애초 전두환이 상왕정치 하려고 만들었지만 자신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새로운 역할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처럼 한미 동맹은 이미 상실되는 운명이지만 꼭 그렇게 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분명한 건 냉전 해체는 동맹이 이완되는 상황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한국 생존의 출구는 그동안 미국이었지만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 대미 수출은 전체의 30%였지만 2011년에는 중국 수출이 25%를 넘고 있다. 한미동맹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 2013년 체제는 결국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의 조화로운 균형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새로운 국면에서 동북아 다자협력 구도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가 중요하다.
김근식 = 탈냉전의 변화된 정세 때문이라고 본다. 냉전시대에는 남북 적대관계가 지배적이었고 북의 호전의욕을 억제하려고 한미동맹이 이루어졌다. 남북사회의 적대관계를 상수로 놓았을 때 억지력으로서의 한미동맹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상회담, 평양, 금강산 가고 돕고 그러니까 과거와 다르게 변했다. 거기서 한미동맹은 제 갈길 가기가 힘들어졌다. 남북관계 변화에 맞춰서 재조정하고 변화해야 한다. 그런 진통을 겪고 있으므로 남북관계 개선되면 한미동맹 어긋나고 동맹에 올인하면 남북관계가 삐그덕거린다. 즉 상호교환관계, 트레이드오프 관계가 됐다. 한미관계를 평화적 차원에서 정립하고 그러면서 남북관계도 역동적으로 해 나가야한다고 본다.
김창수 = 김정은 체제의 출범 이후 아직까지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는 말이 안 나오고 있다. 김정일 시대엔 비핵화는 김일성의 유훈이다 라고 했다. 오히려 핵 보유와 핵 억제력은 김정일의 혁명유산이다 라고 말한다. 비핵화가 더 어려워지는 건 아닌지. 해마다 2-3월에 한미 군사훈련 하는데 북이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외신을 봤다. 이와 관련하여 6자회담은 어떻게 될지.
이종석=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예년의 경우를 보자면 남이 군사 훈련을 한다고 핵실험으로 대응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핵 문제 해결이 굉장히 어려운 건 사실이다. 불편한 진실 하나가 있다. 2008년 5월에 북이 핵실험한 다음에 서방이 북 핵실험에 대한 응징의 조치로서 유엔안보리 1874호를 발동했다. 앞서 말했지만 북중 경제관계가 확장되면서 1874호의 효력은 거의 없었다. 그런 한편으로 지난 2년 7개월 동안 6자회담은 재개 안 됐다. 북이 나오겠다고 하는데도 안 되고 있다. 2년 7개월 동안 6자회담이 재개됐다면 북한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놓고 우리는 북한이 핵보유 국가가 됐다고 하는데 우리 할 일은 하고 있었는지. 하다못해 나처럼 장관 그만둔 사람이라도 있었나. 그리고 영향력도 없으면서 전제조건을 내건다. 북한 보고 핵개발 하라고 방임한 거나 마찬가지다. 북한은 내부 단결을 위해서라도 핵보유국이긴 하다. 그러나 비핵화 의지가 약화됐다고 장담할 수 없다. 북한 핵 포기 않을 거다? 좋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에 맞춰 정책을 써야 한다. 핵 포기 않을 거란 전망이 선다면 거기에 맞춰서 정책을 써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한미 어느 쪽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상은 협상해야 하는 거다. 군사제제는 안 된다.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다 반대한다. 경제제재는 중국이 동의 안한다. 그렇다면 하나밖에 없다. 북한체제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 이니셔티브 즉 인센티브를 핵을 포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가야 한다. 다른 길은 없다. 6자회담은 식량을 주고 우라늄 중단하고 합의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무조건 재개해야 한다. 2010년에도 이명박과 오바마는 조건 없이 복귀해라 해놓고 천안함 사건이 나자, 이게 해결 안 되면 6자회담 나올 필요 없다고 했다. 이런 정신분열적 행동을 통해서 여기까지 온 거다. 그사이 북한은 얼씨구나 좋다 하고 핵 능력 개발했다. 그래놓고 정부는 나중에 핵을 가졌으니 큰일 났다고 한다.
정세현 =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는 말이 북 정치의 기본 출발점이고, 핵 보유국의 자존심이란 것도 북한 핵 정책의 출발점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이건 몸값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허세(블러핑)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핵 보유국이라고 할 때 핵이 핵폭탄(누클리어 밤)이냐 핵폭발 장치(누클리어 디바이스)냐도 분명치 않다. 뉴클리어 디바이스까지는 인정하고 있지만 폭탄을 만들었지는 분명치 않다. 정확히 따지면 폭파장치까지는 실현했지만 미사일에 탑재할 수준의 폭탄은 아직 없다. 그렇다면 현대전에서 레이더를 피해서 싣고 가서 떨어뜨릴 수 있는 폭탄은 의미가 없다고 볼 때 핵 보유국 인정은 성급한 거 아닌가. 그럼 어떡하자는 거냐. 북한은 94년 제네바 협정 당시에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만 가지고도 46억불 짜리 경수로를 따낸 사람들이다. 미국의 군산 복합체는 자꾸 북한의 핵보유 사실을 인정하는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동북아 지역에 무기를 좀 더 많이 수출해보려고 하는 것 같다. 거기에 휘말리게 되면 앞으로 북한과의 핵협상 과정에서 북한에 치르는 대가가 엄청나게 높아진다. 몇 개냐 하는 데 대해서도 미국이 실체적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 그런데 잘 얘기 안 해주는 것 같다. 북의 핵 능력에 대해서 미국이 NCND(확인도 부정도 안 하는)로 가는 것 아닌가. 이게 무기수출 대상국가들을 관리하는 중요한 기제이긴 하다. 미국의 NCND와 북의 블러핑 속에서 잘 판단해서 싼 값에 해결하는 전략을 개발해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경제적 지원 방식으로 북한의 누클리어 디바이스, 원시적 수준의 폭탄 정도는 해체 가능하다고 본다. 경제적 지원을 통해서 무기를 해체시킨 사례가 있다. 우크라이나 방식이다. 체제인정과 경제지원을 통해서 누클리어 디바이스와 초보적 수준의 폭탄을 해체시킬 수 있다. 북한이 이렇게 나오는 마당이므로 남북 간에 빨리 대화를 열어서 시간이 갈수록 올라가는 몸값을 잡아야 한다.
이재정 = 지난 4년간 한반도 비핵화와 핵문제는 단 한치도 발전 못했다. 못했을 뿐 아니라 부시 시절 8년 동안 펼친 억제정책에 의해서 북핵 능력은 과거보다 5배쯤 늘려놓은 거나 마찬가지다. 헤커 박사가 원심분리기 시설을 보고 왔는데 우리가 걱정했던 대로 우라늄 농축시설이었다. 역시 북한은 김정일이 지속해온 선군정치 아래 가장 핵심이었던 핵능력을 개발했다. 정세현의 말처럼 남북과 북미 사이 대화가 빠른 시간 내 효과적으로 이뤄져 문제를 해결 못하면 북한은 세계 아홉 번째의 핵무기 보유 국가가 된다.
정세현= 정확히 따져야 한다. 헤커가 봤다는 건 연료봉을 생산하기 위한 저농축 시설이라고 본다. 북한에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2300-400만톤의 우라늄 매장량이 있고 400만톤은 쉽게 채굴하는 상황인데 연료봉을 만들려면 저농축을 해야만 한다. 이걸 마치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고농축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고농축인지 저농축인지 선을 안 긋는다. 헤커 박사까지도 미국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문정인 = 왜 미국 같은 나라가 북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 안하나. 먼저 법적 근거가 있다. NPT에 따라서 5개국만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므로 인도 파키스탄은 안 된다. 두 번째로는 북한의 핵무기를 인정하면 협상 가격이 달라진다. 그래서 끝까지 북한의 핵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하려고 하는데 현실은 다르다. 핵을 가졌느냐를 보려면 핵탄두를 가졌느냐를 봐야한다. 북한이 플루토늄에서 추출한 핵탄두는 가졌을 거라고 본다. 추출액이 5킬로에서 6킬로 필요한데 28-30킬로 뽑았다고 하니까 5-6개 가졌다고 가정하고 대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세현이 지적했듯이 플루토늄에서 핵폭탄을 뽑을 수도 있지만 우라늄에서도 가능하다. 한국 정부는 지금 확실하게 고농축 프로그램이 있는 게 아니고 그 일부를 가진 걸로 추정한다. 헤커 박사가 봤다는 건 저농축 우라늄에 관한 시설이다. 2002년에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프로그램을 갖고 있고 2005년이 되면 매년 한 개씩 생산한다고 했었다. 탄두는 갖고 있다고 추정하지만 미사일이 있어야 운반한다. 미사일은 단거리, 중거리(노동), 장거리(대포동). 스커트 B형 C형같이 한국이나 일본을 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핵실험인데 첫 번째는 실패했고 2008년 5 25일의 2차 핵실험은 성공 정도가 높은 걸로 본다. 네 번째는 탄두를 소형화하여 탑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소형화 기술은 안 갖고 있다고 본다. 그러기 때문에 아직도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거다. 문제는 시간이 꼭 우리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6자회담을 빨리 가동하여 협상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김창수 = 반관반민 트랙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을 대하는 것은 어떤가.
이종석 = 1.5 트랙을 찬성한다. 미국의 대북정책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선을 벗어나는데 그 이유라면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 다녀오신 많은 분들도 그렇게 보는데, 미 워싱턴 의 정책 전문가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북 혐오증과 불신이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다. 그러다 보니까 어느 누가 나서서 긍정적인 대북 조치를 취하거나 협상에 나서려면 ‘되지도 않는 걸 한다’ ‘친북주의자다, 왕따 시켜라’ 이런 분위기이다. 빅터 차 같은 사람들이 오바마 정부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발언권을 갖고 있다. 또 하나는, 여기 국제위기그룹의 핑크스턴 박사도 와있으신데 미 학자 중 핑크스턴 박사처럼 깊이 있게 한반도 문제를 연구하는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건방지게 말하면 한반도 전문가들 대다수가 북한이나 서울을 몇 번 다녀왔거나 한국말 조금 하면 전문가가 돼버린다.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역지사지의 기초가 안되는 상황이다. 그렇게 부시를 욕했던 오바마가 당선됐는데 오바마나 부시나 하는 건 똑같다. 미국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자기들이 뭘 잘못했느냐고 되묻는다. 2013년 체제에 대비해서 한국의 전문가들이 미국의 학자들이나 정부하고 깊이 있게 대화를 해야 한다. 나는 오바마 정부가 북한이나 한국 정부를 찍어 누르는 정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바마는 부시의 일방주의를 봤기 때문에 특히 북한 핵문제에선 한국 정부의 입장이 중요하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가 오바마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북한의 핵 정책을 바꿀 수 있는 동력은 한국 정부가 북한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지금 이런 국면인데 미국에 ‘(북과 대화)해봤자 소용없어’ 라고 거꾸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세현 = 솔직히 미국 대북정책 관련자들의 지식은 깊지가 않다. 대북정책의 우선순위가 낮다보니까 건성으로 하는 경향이 있고 한국의 몇 사람한테서 들은 얘기를 가지고 반영하는 식으로 한다.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전문가처럼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포럼의 전문가 집단이 트랙 방식에서 긴밀하게 교류를 해야 한다. 미국 사람들이 사실(팩트)는 잘 안다. 그런데 어떤 맥락(컨텍스트)에서 나오는지 얕고 어둡다. 내 경험으로는 알기는 아는데 맥을 잘못 짚는 판단들을 많이 한다. 작년에 일본하고 1.5트랙을 했다. 올해에는 미국 대선도 있으니까 한반도 평화포럼이라든지 민간 전문가들이 1.5트랙으로 미국과 긴밀하게 협의해가야 한다.
문정인=지금부터 청중들이 제기한 질문을 하겠다. 나는 북에서 7년 살았다. 현 정부는 임기 말인데 끝까지 강경할까?
이재정 = 큰 변화 없을 거다.
-통일과 정치의 상관관계
이재정 = 통일문제는 정치적 상황으로 가면 안 된다. 법률에도 민족적 사안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푸는 건 결국 정치권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총/대선에서 철저하게 따져보고 평가해야만 한다.
-4 12총선하고 이번 대선에서 야권이 승리했다고 가정하자. 남북관계가 잘 풀리고 2013년 체제가 왔다. 미국은 어떻게 나올까?
이재정 = 의문의 여지없이 야권이 승리할 것이다. 한국정부가 남북문제에 대하여 단호하고 긍정적이며 합리적인 정책을 가지고 나오면 미국도 같이 갈 것으로 본다. 미국과 협력해서 피스프로세스를 만들었다. 이런 경험에 비춰 우리의 정책이 곧 미국의 정책이 될 수 있다. 통일 되면 북한에 바로 가고 북한 땅을 구입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지난 몇 년 간 그런 경험이 있었다. 북한 땅에 교회와 신학교를 만들었고 나는 신부이므로 그곳에서 설교한 적도 있다. 올해 우리 정부만 잘 세워지면 2013년부터는 급격히 좋은 상황이 펼쳐지리라 전망한다. 일례로 2013년 부산에서 전 세계의 교회 대표들이 모인다. 7년에 한 번씩 전 세계의 교회협의회가 모이는데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10차 총회가 될 것이다.
-동북아 주변 4강이 모두 핵 보유 국가이다. 남북이 모두 핵을 보유했을 때 평화가 이뤄지지 않을까.
이재정 = 인류가 핵무기를 경험한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끼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핵은 사용할 수 없는 무기다. 보유한다고 해서 그게 평화를 보장할 수는 없다. 핵무기에서 자유로운 비핵화를 이룰 때 동북아의 공동안보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한반도의 종전과 평화체제의 정착을 모색하면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구체화해 나갈 때다.
-정세현에게 묻는다. 대선에서 야권이 이기면 남북연합을 위한 시나리오가 있는가?
정세현 = 남북연합을 시작한다. 그동안 교류협력이 5년쯤 중단됐었는데 이를 재개하고 임기 초에 정상회담을 한다. 10·4 정상회담에서는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만 합의했는데 다음에는 남북연합으로 가는 걸 못 박을 필요가 있다. 제도적으로 행할 게 많아서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긴 강의가 돼버려 이쯤에서 끝낸다. 정상회담에서 초보적인 국가연합 방식의 남북연합을 시작하고 점점 더 높은 단계로 가면 통일에 다가가는 상황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보다 분단을 선호하는가?
정세현 = 통일된 한반도가 완전히 중국 편이 된다는 보장이 있다면 통일을 바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반도에서 손 뗄 가능성이 없는 조건에서 그건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현재와 같은 상태의 유지가 현실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본다.
-공산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나?
정세현 = 공산주의는 이미 망했다. 소련은 볼셰비키 혁명 이후 70년 만에, 중국은 1949년 공산화 이후 30년 만에 현재의 체제를 뭐라고 부르든지 사실상 공산주의를 버렸다. 물론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공산주의 목표는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당헌을 고쳐서 소위 자본가 그룹이 공산당에 입당할 수 있도록 제도마저 바꿨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든지 사회주의 실현 등은 이미 물 건너 간 얘기다. 현재 세계는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장경제 체제로 가고 있다.
-김정일은 왜 서울 답방을 안했는가? 6. 15에 제시된 2항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왜 시행이 안 되는가?
정세현 = 6·15 공동선언 5개항이 같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동시에 이행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김대중 정부 임기 내에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확대 발전해가는 상황에서 남북연합으로 가야 했는데 정권교체로 말미암아 중단됐다. 그런 선행 화두가 있었기 때문에 6·15 선언과 10·4 선언을 존중한다. 그 토대 위에서 3차 정상회담에서 남북연합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의 답방 건은 공동선언에 따로 항목을 설정하지 못하고 후기처럼 들어갔다. 그때 김대중 대통령이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당신이 안 오면 말이 안 된다 해서 일단 넣읍시다' 해서 들어간 걸로 안다. 그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 김영남이 남한에 먼저 방문하는 걸로 돼 있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안전 문제 때문에 오는 걸 두려워했다고 생각하는데 실무자들도 그런 얘길 하더라. 장관급 회담 때 내가 그 얘길 왜 안했겠나. 그쪽 표현으로 그러더라. 장군님을 남쪽으로 가시라 해서 무슨 봉변당하면 우리가 그걸 어떻게 감당합니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진정성 있는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오마바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참여정부 인물들은 오바마와 채널 있나? 오바마의 엠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이종석 = 오바마 정부의 정책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북 핵문제 해결 못하고 질질 끌어서 실망이 크다. 오바마는 이명박 정부와 상당히 협력했는데 당연한 거라고 본다. 오바마는 2007년 대선에 나오기 전, 포린어페어스라는 잡지에 (부시가) 동맹을 다 망가뜨렸다고 욕했다. 아시아 대륙에서는 부시가 한국정부의 개선의지를 깔봤다고 했다. 다시 말해 자기는 한국정부를 깔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노무현과 부시 정부의 교훈이 있다. 다시 말해 그 과실을 따먹은 정부가 이명박 정부다. 그 덕분에 오바마가 한국정부뿐 아니라 동맹국을 우대한다. 나쁠 게 있겠나. 다만 좋은 관계 유지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켰으면 좋았겠다 싶은데 그걸 못했다.
문정인 = 오바마도 부시정부와 다를 거 없고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안 만나려고 한다. 권력 가진 쪽에 붙고 변하고 난 다음에야 개혁한다. 수사학하고 행동이 달라서 실망한다. 나는 뼈에 사무친 친미파인데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청중 웃음)
이종석 = 아이혼 장관이 방한했는데 노무현 정부라면 어떻게 했을까? 대한민국의 국가 이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해야 한다. 이란의 핵문제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경제문제 아닌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이 어떤 건지 상대방한테 얘기해야 한다. 상대방이 무얼 가지고 있는지 전전긍긍 눈치를 보면 안 될 것이다. 이란과 관련하여 동참수준은 여기까지다 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안돼요, 이거다 라고 말하면 불협화음이 날 수밖에 없다.
-북핵과 남북관계, 한미관계는 개별 해결이 어려운가?
이종석 = 냉전 해체가 동맹에 대한 위협임은 사실이며 남북관계에는 새로운 기회를 줬다. 결국 상충이 되기 때문에 조화가 중요하다. 우리의 국가이익은 다자협력 속에서 남북관계를 조화시키는 것이다. 북핵이나 북한의 내부문제를 제외하고 남북관계나 북핵문제를 어떡할 거냐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그 대답의 반은 우리한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관계는 상대적인 거다. 우리는 변수가 아니고 상수이며 다 옳다는 생각은 안 된다. 상대에 대한 정책이 일관되고 합리적인가를 끊임없이 물으면서 구사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한다. 그렇게 접근한다면 한미, 남북, 동북아의 다자협력이라는 삼자관계에서 어렵지만 선순환으로 풀 수 있을 것이다..
-서해에서 중국 어선들이 불법조업을 한다. 북한은 북한대로 NLL에 대해 교묘한 심리전을 펼친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이종석= 어려운 문제다. NSC의 상황실에는 NLL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 뜨게 돼 있다. 상황판을 보면 NLL을 따라 중국 어선들이 빨간 점으로 표시되는데 수백 척이 달라붙어 있다. 그거 보면 내 마음이 다 저려오는데 어민들은 오죽하겠는가. 그 지역을 평화협력 특별지대로 만들어서 남북이 다투지 않는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건 남북협력 뿐이고 대화하는 수밖에 없다. 안하면 그 사이를 중국 어선들이 그렇게 비집고 들어온다. 상대가 좋아서 대화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 국익을 어떻게 증진시키냐는 게 중요하다.
-금년도에도 천안함, 연평도 포격과 같은 군사적 긴장이 있을까?
이종석= 북한의 체제가 기본적으로 호전적인 건 다 알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먼저 도발하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 된다. 북중관계에서 중국은 절대적인 안정을 원하고 있는데 그래야만 경제발전에 유리하다. 중국 정부가 북한한테 보내는 메시지라면 이런 뜻일 거다. 기본적으로 다른 쪽에서 북한을 자극 안했는데도 북한이 먼저 도발할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을 거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한 상태에서 중국이 원하지 않는 걸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체제 이양기이므로 밖에서 조금만 건드리면 팍팍 튄다. 인화물질 튀듯이. 여기서 조심스럽게만 해주면 올 총/대선에서 큰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