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12.日. 진격의 봄날 또 미세먼지
03월12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2.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거의 오후5시가 되도록 연등 만들기 작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저녁공양시간이 가까워오자 우리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번에는 팔봉거사님도 합세를 하여 다섯 대의 차가 움직여야했다. 주차장에서 차에 오르기 전에 김화백님이 가까이 다가왔다. “여기에서 멀지 않으니 잠깐 들렸다 가시지요.” “네.” 하고 나는 대답을 했다. 지난 달엔가 저녁식사를 하면서 식탁 옆자리에 앉아있던 김화백님께 내가 부탁 한 가지를 했었다. 그러니까 서산지역에 있는 고가古家나 고택古宅을 아시는 곳이 있으면 좀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김화백님은 흔쾌히 수락을 했고 마침 고가가 있는 곳이 운산 보원사지에서 얼마 떨어진 곳이 아니라서 지금 들렸다가 가는 것이 좋겠다는 뜻이었다. 다른 분들은 저녁식사를 하러 음식점으로 먼저 가시고 나는 김화백님 차를 뒤쫓아 고가로 향할 예정이었는데 미처 연락을 못 받은 분들이 나를 뒤쫓아 왔다. 따스한 봄날 오후 고가古家를 찾아보는 일은 누구라도 좋아할 듯해서 뒤따르는 차들을 그대로 놓아두었다. 역시 함께 왔던 분들은 모두 좋아들 하셨다.
누군가는 하루 중 풍광風光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오전10시라고 했다. 그리고 하루 중 풍경風景이 가장 농익은 시간은 오후6시라고 했다. 새집을 구경하는 데는 오전10시의 산뜻하고 푸르게 날선 빛이 중요하다. 장엄한 고성古城을 구경하는 데는 빛과 그림자가 세상의 양지陽地와 음지陰地를 양분해 내고 있는 오후2시경의 성성한 햇살 아래가 맞춤이다. 하지만 오래된 한옥, 움스레한 고가古家를 슬금슬금 둘러보는 데는 세상을 이불처럼 덮어주는 붉고 누른 햇살이 농염한 오후6시경이 이상적이다. 구경을 마치고 고가 대문간을 나설 적에는 석양빛 아득한 일몰의 하늘이 게슴츠레한 눈을 까묵거릴 즈음이 가장 좋다. 옥호가 나무로 된 문패에 한글로 ‘갈산재’ 라고 쓰여 있었다. 대문 오른쪽으로 담장 구실을 하는 사랑채와 담 안 왼편으로 행랑채가 달려있고, 대문으로 들어서면 마당 오른편으로 장독대와 우물과 사랑채 안쪽 모습이 보였다. 사랑방의 여닫이문을 열어보았더니 훈김이 훅 끼치는 것이 이불 깔려있는 아랫목에 사람이 누워있다 방금 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본채는 부엌, 안방, 대청마루, 건넌방이 횡으로 가지런히 늘어서있는데 든든한 주춧돌위의 네모난 기둥 사이 디딤돌위로 기다란 마루가 보였다. 이 마루의 이름이 뭡니까? 하고 물었더니 주인양반의 우리는 ‘절간마루’ 라고 부르지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 디자인을 전공하시고 주택 리모델링 업체 피-제이 플랜의 대표를 역임하신 주인양반이라 전문가들끼리는 그런 용어로도 통하는가보다고 생각을 했다. 또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창고가 달려있어서 행랑채라고 알고 있는 방도 ‘모치방’ 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주인양반께서 절간마루라고 불러주신 곳은 대청 한복판의 내부기둥인 고주高柱와 외곽기둥인 평주平柱 사이 툇간에 놓인 마루라는 뜻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툇마루라고 부른다. 한옥은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나기 때문에 내 외부 공간사이에 완충공간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완충공간이 바로 퇴이고, 퇴에 깔리는 마루가 툇마루이다. 툇마루는 외부에 개방되어 있으면서 안방과 대청마루, 건넌방, 부엌 등의 동선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 때 잠시 걸터앉아 옷도 털고 신발도 정리할 수 있는 생활의 완충공간이다. 툇마루 중에서 아래 아궁이를 설치하기 위해 마루를 높여 설치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고상마루高床抹樓라고 한다. 이곳 갈산재의 대청마루 옆 건넌방 마루도 아궁이가 있는 고상마루가 설치되어있어서 부엌으로 통하는 문에서부터 시작한 긴 툇마루에 이어진 채 한 단 높은 고상마루가 솟아있어 마치 누마루의 난간처럼 운치 있게 보였다.
김화백님의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고가古家라 직접 주인양반의 안내로 방안까지 들어가서 돌아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갖게 되었다. 여름에는 여닫이문을 위로 들어 올려 대청으로, 겨울에는 문을 닫혀놓고 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청마루방은 둥근 기둥과 천장에 그대로 들어나 있는 서까래와 보와 들보가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지붕의 구조를 사람들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마치 소우주小宇宙의 얼개를 연상시키는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고가를 한 바퀴 돌아보고, 장독대와 우물 안도 들여다보고, 본채를 감싸고 있는 커다란 타원의 둥근 담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당과 대문이 바로 보이는 툇마루에 올라앉아 기둥과 마루 바닥의 나뭇결을 손바닥으로 쓸어 보았다. 내가 본래 보고 또한 느껴보기를 원했던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퇴락하고, 조금 더 쓸쓸하고, 조금 더 황량한 일몰에 가까워져서 가슴이 미어질 듯 저려오는 석양빛이었더라면 물론 좋았겠지만 이렇게 직접 보고, 만지고, 냄새 맡으면서 얼마든지 상상 가능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어둠이 사방을 서서히 뒤덮음으로 해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려오는 모든 것들이 아스라하게 신비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상상까지 가능하도록 해주었다. 내게 있어서 이렇게 고가를 찾아보는 일은 내 어린 날의 추억들을 향해 발길을 돌리는, 손놀림 둔하고 몸놀림 어눌한 아리랑 춤사위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다.
어젯밤 꿈에는 처음 보는 풍경의, 처음 보는 장소의, 처음 보는 절에 가보았다. 가운데는 황무지 같은 평원이 있고, 끝없는 평원이 다하는 저 너머에는 거대한 산줄기의 압도적인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뛰어난 광경이었다. 그야말로 경치는 절경인데, 이쪽 편 산 중턱에 있는 절까지 올라가는 수직 벽을 타는 일도 만만치가 않아서 몇 차례 구르기도 하고 온몸에 땀을 흘리면서 겨우 힘을 내어 절에 올라갔다. 구름 깔려있는 수직의 절벽위에 담장도 없고 일주문도 없이 기다랗게 걸려있는 절 이름이 항등사恒等寺라고 했다. 그런데 항등사라는 절 이름을 듣는 순간 공통수학의 항등식恒等式이 생각났다. 3x+2x=5x 처럼 식 중의 문자에 어떤 값을 대입해도 항상 성립하는 등식을 항등식이라고 한다. 등호(=)를 가운데 두고 좌변과 우변이 항상 같다는 뜻이다. 절 안에는 넓고 기다란 앞창이 있어서 끝없는 황무지너머 건너편의 병풍 같은 거대한 절벽의 풍경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절 안에는 몇 개의 방들이 있었는데 방안에는 책이나 공책들이 여기저기에 펼쳐져 있어서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모두 밖으로 몰려 나가버린 빈 교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부처님도 없고, 스님도 없고, 사천왕도 없는 이곳을 왜 항등사恒等寺라고 할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혹시 항등이란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진리眞理와 속세俗世의 가치를 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안과 피안의 값이, 진리와 속세의 값이 또는 햇살풍경과 그림자의 값이 항상 동일해지는 곳이라는 뜻에서 항등사라는 말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식의 표현법이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선 끝 간 데 없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오랜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그 친구와 어딘가를 헤치면서 찾아간 곳이 진각종 도서관이었다. 진각종 도서관은 현대식 3층 건물인데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선 채 붐비고 있었다. 그런데 도서관 2층이나 3층의 외곽 복도가 사이사이 끊겨있었고 그 빈 공간에는 징검돌이 허공중에 놓여있어서 조심조심 발을 딛어야 했다. 만약 징검돌을 헛디뎌 발이 허공을 밟게 되면 그 상태로 몸을 움직이지 않고 온 신경을 발바닥으로 집중을 시키면 허공에서 몇 걸음씩을 조심스레 움직일 수가 있었다. 진각종 도서관 마당에 있는 시장에서는 수많은 상인들이 많은 물건들을 팔고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물건의 개수나 가치의 단위를 다 ‘미타’ 라고 불렀다. 말끝에 ‘미타’를 붙이기만하면 모든 일이 술술 풀렸고, 쉽게 흥정이 되었고, 사람들과 즉시 친해졌고, 금방 상대의 말뜻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역시 신나게 ‘미타’를 말하고 써먹으면서도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인 3차원의 방식과는 무언가 다르다고 생각을 했다. 밝은 기운에 잠을 깨고 나니 긴 꿈이었지만 내가 스스로 원하기만 한다면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어 몸과 마음이 무척이나 후련했다.
아마도 그 온화한 병풍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덕거사님 댁에서 보았던 금강경 10폭 병풍과 도교 풍 산수화 10폭 병풍을 거실 한쪽에 펼쳐놓고 차담을 즐겼던 시간과 공간이 마음에 여운을 남겨놓아 항등사라는 세상 밖의 은거隱居를 찾아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