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은 인간학이다.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학문적으로 축적된 지식을 잘 쓰면 좋은 일이고, 나쁘게 쓰면 나쁜 일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미 500년 전에 대중은 보이는 것만 믿는 다고 말했다. 대중이 가까이서 군주를 ‘만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 군주의 말과 행동 즉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군주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군주의 몸을 만지면 죽는다. 그래서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덕목 즉 신실, 성실, 검약, 책임, 신뢰 등등 이런 가치를 다 갖출 수는 없으니, 언제나 그런 ‘척’할 것을 군주에게 주문한다.
후대에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정당성에 대해 논하면서 정당성‘믿음’Legitimitaetsglauben을 정당성의 조건으로 말하고 있다. 실제 정당한 가가 아니라, 대중들이 그것이 정당하다고 ‘믿는’ 가의 문제말이다.
프로파간다 즉 거짓말의 기술은 현대에 이르러 더욱 발전했다. 모든 정치인의 첫번 째 덕목은 거짓말이다. 대중매체가 발전하는 것에 정비례해서 프로파간다 기술도 발전한다.
그래서 대중을 속이기는 너무 쉽다. 속으니까 대중이다. 속지않는 대중이란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형용모순이다. 그런데 문제는 레닌이 갈파했듯 대중을 ‘영원히’ 속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장 오래 속이는 것이 관건이 되었다.
민중이 선이라는 역사철학을 정치학은 받아 들이지 않는다. 왜냐 하면 정치학은 대중을 속이는 기술을 찾아내고, 체계화하고 이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만의 기술이 ‘정당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경우는 기만의 목적이 공동선에 기여할 때 뿐이다. 마키아벨리가 이 경우(이태리해방!)에 해당된다.
1945년 프랑스 대중의 57%가 2차대전 승리에 가장 기여한 나라가 어딘 지 묻는 설문에 소련, 그 다음 20%가 미국이라고 답했다. 세월이 흘러 2015년 같은 질문에 23%가 소련, 54%가 미국이라고 답했다.
2024년 6월 5-6일 영국인을 상대로 같은 질문을 했을 때, 42%가 영국, 12%가 미국, 6%가 소련이라고 답했다.
진실은 무엇일까? 낙타가 가면 길이 된다고 했다. 프로파간다가 지나가면 역사가 만들어 진다. 문제의 비극성은 바로 저 소위 ‘여론’에 기반해서 정치인이 정책결정을 한다는 데에 있다. 1945년 2,600만의 자국민 희생을 댓가로 소련은 유럽을 해방시키는 데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믿는 대중은 10%남짓밖에 없다. 이제 고마움 따위는 개나주고 소련의 후예? 침략자 러시아와 전쟁을 해도 조금도 문제가 없다.
유럽이 점점 전쟁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유럽은 이미 1, 2차대전 즉 양차의 대전을 인류에게 선물한 곳이다. 이제 또 한번의 대전쟁을 준비하나 보다.
헝가리 총리 오르반이 바로 얼마 전 재미난 말을 했다. 브뤼셀 즉 나토에 모인 정치인의 분위기에 대한 것이다. 이들은 더 이상 ‘자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가치 즉 ‘자유’를 위해서 어떤 결정을 해도 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 ‘자유’가 실제 무엇을 의미하는 지, 우크라이나 협상을 파탄낸 전 영국총리 존슨이 말했다. 우크라의 패배는 “서구의 패권hegemony”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결코 패배해선 안된다고 말이다. 그렇다. 저들이 신주모시듯 하는 신기루 ‘자유’는 실제 알고보니 ‘패권’의 다른 이름이다.
똑 같은 이유로, 이스라엘이 패배해선 안된다. 설사 팔레스타인인이 다 죽어도 상관없다. 왜냐 하면 그것은 서구 패권의 종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만도 마찬가지다. 남중국해의 소위 ‘항해의 자유’도 그렇다. ‘항행의 자유’의 본디말은 서구의 ‘패권’이다. 같은 말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