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지인 얘기다.
오래전에 이혼을 한 그녀는 간호사로 일하며 열심히 아들 딸을 키웠다.
장성한 아들은 취업도 하고 결혼도 했고 돈도 웬만큼 모았다고 한다.
딸도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고.
자식들 결혼 때는 일부 경제적 지원도 해줬다고 했다.
부모의 도리로 모든 것을 끝냈다고 생각한 그녀는
자신만을 위한 보상과 위로를 위한 여행을 떠났다.
직장을 휴직하고 1년 동안 이곳저곳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문제는 여행이 끝난 후 생겼다.
그동안 사용한 카드대금이 2천만이나 되었고 당장 갚아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다급해진 그녀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퇴직금 받으면 바로 줄 테니 2천만 원만 빌려달라고.."
아들은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무슨 카드대금이 2천만 원이나 되냐고? 뭐 한다고 그렇게 돈을 많이 썼냐고.
엄마는 생각이 있는 거냐고?"
그녀는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고 퇴직금 받으면 바로 돌려준다는 데도
아들이 화를 내는 것에 자존심도 상하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서운하고 괘씸한 마음도 크고..
어찌어찌해서 아들이 2천만 원을 보냈고 급한 불을 껐지만
아들은 연락을 끊었고
그녀도 아들에 대한 서운함을 삭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모자사이는 멀어졌고
그 후 1년 넘게 아들은 전화 한 통 없고 간간히 며느리가 연락을 해왔는데
지금은 그 마저 끊겼다고 한다.
그녀에게 남은 건, 평소에도 자신을 챙기고 살갑게 대하는 딸뿐.
그녀는 퇴직금 등 남은 재산을 정리해서 (자신의 노후자금을 뺀)
딸에게 몽땅 주었다고 한다.
아들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친구 지인의 얘기를 들으면서 엄마와 아들의 마음이 모두 이해되었다.
엄마는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너한테 해 준 것이 얼마인데..
겨우 돈 2천만 원에 내게 이럴 수가 있어?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고 잠시 빌려주면 나중에 돌려줄 건데.. 이렇게 자존심을 짓밟고..
괘씸한 놈."
아들은 엄마의 경제관념이 불만이고 화가 났을지 모른다.
"그렇게 앞뒤 생각 없이 돈을 쓰면 어떡하냐고? 경제관념이 없냐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보면..
엄마는 고생한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여행을 다닌 것인데.. 지나쳤던 면이 있었던 것 같고
아들은 엄마의 그런 처지와 마음을 조금 헤아려 줄 만하고
빌려준 돈은 나중에 돌려받으면 될 일이고.
아마도 순간적으로 엄마가 경제관념이 없나 싶어 화가 나서 서운한 말을 했을 것 같다.
비슷한 경험이 있다.
연세가 드신 부모님이 자식들 곁으로 이사를 하고 싶어 하셨다.
재산이라고는 살고 계신 빌라 한 채이고
생활비는 오 남매가 매달 보내드리는 돈과 노령연금뿐이다.
빌라를 팔아서 아파트를 샀다.
그전부터 아파트사면 주택연금 가입해서 그 돈으로 생활비에 보태 조금 넉넉하게 사시라고
얘기를 드렸다.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도 하셨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신지 주택연금 가입을 하지 않고 계신다.
그렇게라도 하셨으면 자식들도 생활비 보태는 부담이 좀 줄어들 텐데.. (마음적으로라도)
아무튼.
(난생처음) 아파트로 이사를 한 엄마는 인테리어와 가구. 가전제품을 바꾸고 싶어 하셨다.
그 돈이 만만치 않았는데 갖고 있는 돈도 많지 않은 상황임에도.
전자제품을 사고 싶어 한 다시길래 오 남매가 이백만 원씩 부담을 했다.
그런데 가구도 사고 싶어 하셨다.
당시, 나도 돈 쓸 곳이 있어서 고민이 있던 터라. 더 이상은 신경을 쓸 수도 쓰고 싶지도 않았다.
(맞벌이일 때는 친정에 드리는 돈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지만 외벌이가 된 후에는
번번이 생기는 친정일에 남편 눈치도 보이고.. 괜스레)
그때는 나도 엄마에게 서운했고 조금은 화가 났던 것 같다. (친구 지인의 아들처럼)
'형편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형편도 안되는데.. 자식들한테 부담 주면서 까지 가구를
새로 사고 싶어 하시나? 자식들 형편이나 입장은 생각하지 않으시고 엄마 욕심만 채우려고 하시나?'
후에 전해 들으니 (나를 제외한) 다른 형제들이 추가로 이백만 원씩 더 부담을 했다고 한다.
엄마도 섭섭하셨을지 모른다. 당신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켜드리지 못하는 자식들에게.
그런데
자식인 나의 입장은 이렇다.
어느 집 자식은 부모 집을 사줬니.. 뭐를 사줬니 하는 엄마의 얘기가 듣기 좋지만은 않다.
우리도 부모에게 할 만큼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버지 퇴직 후 20년 넘게 생활비를 드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큰돈 드는 병원비도 부담해야 하고. 그뿐인가?
생일. 명절. 어버이날 등 기념일 챙기고 하다 보면 그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우리도 자식 뒷바라지가 남아있고 은퇴가 코 앞인 나이에 노후 준비도 바쁜데...
낀 세대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자식의 입장을 조금만 이해해 주시면 안 되나?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주변에도 부모자식 간 돈 문제로 갈등하고 남남처럼 살아가는 사연이 많다.
'돈'이 뭐라고. 그놈의 돈 때문에
천륜까지 끊고 사는 걸까? 안타깝다.
부모자식뿐 아니라 형제지간에도 돈으로 엮이는 것은 좋지 않다.
좋게(호의로) 시작한 돈 문제가 좋지 않은 감정을 남기는 경우를 많이 보았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돈은 앉아서 빌려주고 서서 받는다.
가장 좋은 것은
돈으로는 가족 간에도 얽히지 않는 것이다.
부모 자식의 독립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렇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부모가 돈으로 부담을 주는 일도 없어야 하고
사랑하는 부모에게 자식이 돈으로 부담을 주는 일도 없는 것이 최상이다.
사랑한다면?
각자의 독립이 서로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나는 자식을 사랑한다.
고로, 나는 완전한 독립을 꿈꾸고 있다.
지금 행복하자.
happy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