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한양이 서안 남부 양자강 상류 한수가 있는 한양이며... 조선의 평양은 현 서안성일 것이란게 제 예상입니다. 허나,점차 정체가 의심스러워 가는 구한말 고종의 대한제국 그 경성은... 이 조선개국지인 한양관 다른 곳이자...여직도 경성으로 불리우는 현 북경의 자금성이 맞지 않을지 싶습니다. 달단(깊챀크 여진)의 통치를 받던...동국조선의 순천부가 현 북경일지 싶고... 구한말의 고종세력은...이곳에서 청조를 통치하던 달단(타타르)를 몰아내는데 어느정도 협조한 공적으로... 자으반 타의반...황제에 즉위하여...잠시지만 북경 산동 만주와 그 인근 몽고까지도 명의상으론 통치하지 않았을지 싶습니다. 일제의 지시를 깔끔하게 수행치 못하는 고종과 특히,명성황후는...점차 일제에게서 버림받게 되고... 러시아를 더욱더 신뢰하게 되는 명성황후는...결국 왜노들에게 제거되는게 명성황후 시해의 배경인 건 정사고여... 민국통치기(1914년) 고지도를 보면... 명성황후 시해에 등장하는 건축물들이 거의 다 나옵니다. 금나라 유민들의 도성였다 동국조선으로 편입된 왕조의 궁으로 보이는... 현재 서울 경복궁에서 재 복원한단 건청궁도...엄연히 현 자금성에 존재하며...곤녕전도 있고... 특히,특히한 현상은...궁궐내에는 없지만...도성내에 유일하게 동북쪽으로 아관(我關=러시아 공사관)이 존재한단 겁니다. 청나라가 언제부터 그리도 러시아와 절친하여...도성내에 유일하게 러시아 공사관만 유치했나 모르겠으나... 이를 고종과 명성황후가 러시아에 절대 의존했던 당대의 상황을 대입하면...완전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명성황후 시해는... 경복궁(자금성?)의 내성 정문인 오문(광화문?)에선 친일계통의 조선 훈련대가 주위를 끌며 대궐로 진격하고... 이들은 대원군의 친위대 격이기도 한 자들였으며... 러시아보단 일제에 없혀 권력을 누리려 했던 대원군과...그 직할대격 훈련대의 성동격서식 정문돌파에 이은... 일제 양아치애들의 신무문(경복궁 후문=자금성 내성 후문) 침투에 이은...명성황후 강간 살해... 그 원셍이적 만행의 흔적을 지우려...녹산(鹿山)에서 화장...그 주변 연못에 뿌림... 이를 현 경복궁에서 다 자행했다 하기엔...현 서울의 경복궁은 너무도 좁습니다. 특히나...녹산(鹿山)... 현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 인근 조그만 흑무더기가 그 후보지라 하는데...경복궁이 뭔 미니어처 성도 아니고...한 마디로 억지같습니다. 제 예상엔...왜노들은...자금성의 내성(황성)북문인 신무문(현무문) 밖 경산(景山)에서 명성황후를 화장했다 보이며... 서울의 경회루 격인 그 일대의 거대한 인공호 중 맨 윗쪽 북해(北海)호수에 뿌렸단 말로 번역됍니다. 그 경산(景山)이 녹산인 이유는...그 경산엔 늘 사슴을 키웠단 산이요...그래 별칭이 녹산일 수 있기 때문이지여... 그 경산(녹산)자체는...북해호수를 팔 때 발생한 거대한 토사들로 만든 인공산이기도 하고여... 전통적으로여... 중화의 전통 궁궐배치는...북분엔 시장이 있는 형국이나...조선은 전통적으로 배산임수니...북문쪽엔 산이 있어냐 하나... 구한말의 경성(북경성)은...그 배산(뒷산)이 없어...명태종(이방원?)이 북문(신무문)뒤에 인공의 거대한 배산을 만들었단 얘기도 있으니... 명태종이 전통족 중화족의 궁궐배치를 역행해...동이 조선족의 궁궐형태를 취했음도 주목할 만 합니다. 그래 명태종은 이방원으로 의심이 가는 식이고여... 아주 근대의 마지막 황후인 명성황후의 시해사건... 이를 왜노들과 남방계 현 중화족들은 시치미를 뗀다손 치더라도... 정작 당사자들인 대한데국의 황손들과 그 유민들은 왜 한결같이 떠듬대며 증언하는진... 저의 전 부터의 주장대로...대한뎨국은 동남아 출신 이주정권이기 때문이다.란... 예상으로 대신합니다. 밑은...북경 자금성의 경산(녹산?)입니다. ................................................................................................................................................... 중국여행추천으로 단연 천안문광장입니다. 여행 3일째 되는 날 자금성(쯔진청), 경산공원, 천안문 광장을 둘러보았습니다. 날씨가 매우 좋았습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구경 인파가 엄청 많았습니다. 오전 일찍 경산공원을 둘러보고 자금성(쯔진청)은 점심식사를 하기 전까지 둘러보았습니다. 얼마나 넓던지 발이 아플 정도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천안문광장을 둘러보았습니다. 저녁 시간에는 북경에 있는 댄스 카페에 가서 멋진 댄스를 구경하였습니다. 북경에 하나 밖에 없는 댄스장소 라고 하는군요. 중국여행추천으로 꼭 가봐야 할 명소 경산공원, 쯔진청 앞에서 바라본 경산공원 꼭대기.
경산공원 정상에서 바라본 자금성(쯔진청). 황금빛 지붕이 눈부시게 하는구요.
//\ \ \ \ \ [중국여행추천 명소] 경산공원 내부 안내도
경산(중국어: 景山)은 중국 베이징 시청 구(중국어: 西城区)에 위치한 인공산이다. 베이징 중심 축 상 자금성 북쪽 바로 위에 위치한다. 남쪽으로는 자금성의 신무문(神武门)을 면하고, 서쪽으로는 북해(北海)에 임한다. 원래는 황실 정원으로 사용되었으나, 근래에 와서 일반인에게 공개된 공원이 되었다. 경산공원(중국어: 景山公园)의 면적은 약 23헥타아르인데, 경산이 주요 부분을 차지한다. 공원 내에는, 송백(松柏)이 울창하며, 모단이 많이 피어 있다. 경산은 진산(镇山)、만세산(万岁山), 매산(煤山)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산이다. 13세기 중엽에는 원나라 황궁의 일부분이었다. 경산은, 15세기 초, 명나라 영락제 재위 년간(영락제 18년(1420년)에 건축되었다. 원나라가 베이징에서 물러가고 수도 베이징을 건축할 때 지어졌다. 경산은 황궁을 둘러싸는 해자와 근처 인공 연못들을 만들면서 퍼낸 흙을 쌓아 만든 45.7m 높이의 인공산으로 조성되었다. 오직 당시 인력 혹은 동물을 이용한 운송수단만을 이용하여 이만한 산을 쌓은 것이 경이로운 점이다. 산상에는 송백을 편식하였으며, 원내에는 학과 사슴이 무리를 이루게 하였다. 북쪽 부근에는 수황전(寿皇殿) 등 황궁 누각이 지어졌으며, 다양한 종류의 과수를 심었다. 중양절마다 황제는 산을 올라 연음을 베풀어야 했다. 풍수의 설법에 따르면, 배후에 산을 두르고, 산 남쪽에 거처를 두는 것이 이롭다고 한다. (이것은 실제로도 북풍을 막고, 외적의 침입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베이징이 명나라의 수도가 아닐 당시, 다른 곳의 명나라의 황궁들은 모두 산 아래 자리잡고 있었다. 명나라는 베이징으로 천도하였으나, 적당한 산이 없었다. 그래서 산을 하나 만들게 된 것이었다. 이것이 경산이 풍수산(风水山)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까닭이다. 숭정(崇祯) 17년(1644년) 구력 3월 19일, 이자성의 군대가 베이징으로 쳐들어오자,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황제는 신무문으로 나와 경산 동쪽 비탈 홰나무(槐树) 밑에서 자살하였다. 당시 33세였다. 명, 청 대, 경산은 베이징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민국 17년(1928년), 경산은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955년에는 다시 대외적으로 개방되었으며, 1957년에는 베이징 시의 제일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출처 : 위키피디아 자금성(중국어: 紫禁城, 병음: zǐ jin cheng 쯔진청[*])은 베이징의 중심에 있는 명과 청 왕조의 궁궐이다. 자금성의 규모는 궁궐로는 세계 최대의 규모이다. 지금은 고궁 박물원(중국어: 故宮博物院, 병음: Gugōng Bowuyuan)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동서로 760m, 남북으로 960m, 72만 m²의 넓이에 높이 11m, 사방 4km의 담과 800채의 건물과 9999 개의 방이 배치되어 있다. 196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1987년 "명·청 시대의 궁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곳의 중문인 오문의 가운데 문은 황제만 사용하고 현재도 일반인의 출입을 엄금한다. 자금성의 주위에는 해자와 장벽들로 둘러싸여 있다. 해자의 너비는 52m이며 깊이는 6m에 이른다. 해자에는 동서남북으로 해자를 가로지르는 4개의 다리가 있다. 궁궐 주위의 장벽의 길이는 3km에 이르며 높이는 10m나 되며 4개의 큰 출입구가 뚫려 있다. 자금성의 지붕은 대부분 황색 기와로 쌓여 있다. 하지만, 황실 서가의 지붕만은 검은 기와로 되어 있는데, 검은색은 물을 상징한다고 하여 검은 기와가 화재로부터 서가를 지켜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금성은 1900년에 일어난 의화단 운동으로 유럽 열강 연합군의 주둔이 있었고 1908년 즉위한 선통제는 1924년 군벌 세력의 쿠데타로 영원히 자금성을 떠났다. 바로 그 직후 고궁박물원이 된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이 여차하면 파손시킬 위험에 처했으나 저우언라이가 전력을 다해 보존할 수 있었다. 지금도 자금성 보존 사업을 추진 중이다. 출처 : 위키피디아
.................................................................................................................................................. 밑이 구한말기 촬영된 서울의 향원정입니다...그 뒤 오두막집이 건청궁...?...우낍니다. 그냥 조그만 건물이면 무슨무슨 당(堂)...무슨 대(臺)...무슨 전(殿)으로 쓰기도 벅찰 정돈대... 독립됀 왕궁 전체를 칭하는 궁(宮)자를 쓰지 않는 법인걸로 압니다. 자금성에 있는 건청궁정돈 돼야...황제...아니 최소한 왕의 궁이라 일컷는 법이겠지여... ................................................................................................................................................... 향원정(香遠亭)과 건청궁(乾淸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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