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 - 조슈아 포어 : 홀가분한 출발, 의외의 결실

[정병철]

*1년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 남자

-조슈아 포어 지음/류현 옮김(웅진씽크빅 2017년판)

홀가분한 출발, 의외의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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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서 출발해 이윽고 한 권의 훌륭한 교양서를 만들어내는 미국의 기자출신의 작가를 보며 자신의 생각과 개성을 충분히 활용하여 자아실현을 극대화시키는 면모에 주목한다. 몇 년 전에 일본인 작가 ‘다케쿠니 도모야스’의 <진해의 벚꽃>을 읽으며 개인의 관심사에서 출발하여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내는 긴 과정과 인내심, 충실함 등의 덕목을 주목한 이후로 오랜만에 느껴본다. 이들은 발간을 통해 얻게 될 명예와 상업적 이익보다는 평소 그들의 독서 습관과 지적인 호기심이 근간이 되어 시작한 지적 활동이 결실을 맺으며 여러 독자들을 위한 유익한 한 권의 교양서가 탄생되지 않았나 싶다. 지적인 관심과 지속적인 활동 그 자체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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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금은 잊혀져가는 ‘기억술’에 관한 책이다. 우리 뇌가 기억해 낼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해 더 이상 뇌리 속에 담을 수 없는 사실들에 대해서는 현대는 이미 여러 가지 과학적 도구들을 발명, 생활 곳곳에서 이용함으로서 그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사진, 책, 녹음기, 컴퓨터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기억술’은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바, 약 2,500년 전 그리스에서 처음 고안되었다고 전해진다. 고대만 해도 문자는 있었지만 그것을 기록할 종이나 대량 인쇄할 기술이 발명되기 전이라 대부분 구두로 전승되다 보니 전적으로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어느 대연회장 한 곳이 붕괴하는 참사가 일어났는데 참사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들이 시신을 찾고자 하는 과정에서 그 날 참석했다가 유일하게 화를 면한 키오스의 시인 시모니데스가 붕괴 사고 직전의 연회가 진행되던 기억을 더듬으며 시신을 찾아내게 된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바로 이때 기억술이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시모니데스가 사용한 기억술을 일컬어 ‘기억의 궁전’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전 세계 기억술사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는 경전으로 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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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지 않다. 이 책도 일종의 자기계발서인데 읽다보면 천편일률적인 면이 나타나기 마련이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로부터 듣는 일종의 잔소리처럼 들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마련인데 전혀 그렇지 않다. 논픽션이면서도 픽션의 구성 방식을 활용해 내용 전개를 여러 방면으로 진행시킨다는 점이 아마도 이 책을 많은 독자들이 찾게 만든 것 같다.

예를 들면 한편에서 기억술의 심리학적 측면과 역사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기억’이라는 행위의 의미를 진지하게 사유해 본다. 그러는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저자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이 책을 쓴 계기가 된 기억술사들의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 취재에서 한층 더 나아가 다음 연도 이 대회에 선수로 출전해 우승까지 거머쥐는 과정의 흥미진진한 줄거리까지 가미해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일상에서 가벼움과 홀가분함이 무겁고 진지함을 이겨 새로운 결실을 맺는 과정 또한 보여준다. 지나친 진중함은 그 무게로 말미암아 출항도 전에 가라앉을 수도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모든 출발에서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 가’라는 교과서가 된다. 저자의 출발 단계에서의 가볍고도 단순한 호기심이 이룩한 쾌거-훌륭한 교양서 발간-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기억술에 있어서 2005년 ‘전미 메모리 챔피언십’의 대회 챔피언의 자리에도 올랐다.

4 : 읽던 중 잠시 생각을 하게 한 글귀 모음

#1. 잘 생각해 보니, 기억이 원활하게 작동한 적이 별로 없었다. 어떤 분야에서는 더없이 잘 작동하는 기억이 다른 분야에서는 꽝이었다. 그리고 통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면도 많았다. 한번은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데, 좋아하지 않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가 떠오르더니 머릿속에서 좀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노래를 떨쳐 버리려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내내 유대교 축제일인 봉헌절 음악을 중얼거렸다. 도대체 이건 뭐였을까?

#2. ‘커피’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검은색, 아침, 쓴맛 등이 함께 연상되는 것은 뇌에 있는 물리적 경로를 따라 엄청난 전기 자극이 뉴런에서 뉴런으로 순식간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커피라는 단어를 부호화하는 뉴런들이 검음, 아침, 씀이라는 개념을 포함한 다른 뉴런들과 결합한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엄연한 사실이다.

(과학적으로 밝혀지면 모든 사실을 믿도록 이 세상은 가치가 정립되어 있다. 어느새 세상은 과학이 확고부동한 ‘만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역으로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으면 아무도,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글쓴이)

#3. “그이는 기억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 합니다. 이것도 축복이라면 축복이겠죠. 그래도 저는 그이가 자신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럴 조짐이 전혀 안 보입니다. 대화를 나눠도 그렇고, 일상생활도 그렇고, 좀 알아야 하는데…….” 나중에 EP의 부인 비벌 리가 속상했는지 나와 따로 있을 때 한 말이다.

그녀의 말을 들은 나는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그냥 기억만이 아니라 어떤 소중한 것을 잃는 것임을 깨달았다.

#4. 15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하나로 이어 주는 것, 시간이 흘러도 내가 나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은 내 안에서 서서히 진화하고 있는 어떤 것 때문이다. 그것을 영혼이나 자아나 신경망의 부산물이라고 하자. 어떻게 부르든 이런 연속성은 전적으로 기억에 달렸다.

#5. “우리는 기억의 기능을 잘못 이해한 상태에서 그것이 철저히 기계적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뇌가 온갖 사실로 꽉 찰 때까지 기억을 주입한 것이죠. 기억이 기본적으로 상상에 바탕을 둔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겁니다. 사실, 학습, 기억, 창조성은 초점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 같은 과정입니다. 기억술과 기억의 과학은 아무 연관이 없는 아이디어를 이어 줄 수 있는 이미지를 신속하게 창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겁니다. 즉 창조성이란, 공통점이 전혀 없는 이미지를 서로 연결하고 새롭게 창조해 미래에 투사하는 능력이죠. 시, 건축물, 춤, 소설이 그런 겁니다. 창조성은 어떤 의미에서 미래의 기억입니다.”(-토미 부잔)

#6. 솔직히 우리는 서번트들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대니얼이 과학자와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이유도 같다. 또 보통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을 아주 쉽게 해내는 그들의 놀라운 능력도 관심의 대상이다. 사실상 그들은 우주의 질서에서 자유로운, 우리 안의 이방인이다.

#7. 전문가는 판에 박힌 일에도 초지일관 높은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일반인과 구분된다. 에릭손은 전문가들의 이런 태도를 ‘주도면밀한 습관’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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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도 독서

(2022.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