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때 겨우 중학교 3학년이었지만, 상근이를 만났기에 그 후 아무리 똑똑한 사람을 만나도 나는 그 사람을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천재라 하면 나는 콧웃음 쳤다. 그런 나를 보고 나를 천재라고 한해서 질투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당연히 천재가 아니고, 상근이를 만난 이후, 그냥 공부 잘 하거나 단순히 머리 좋은 사람을 천재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천재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뭔가 다른 그 괴팍함이랄까… 설명하기 힘든 그런 게 있었다.
상근이는 시력이 안좋아 엄청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녔는데,
그림도 잘 그렸고, 노래도 잘 불렀다. 그런데 그 글재주는 가히 천부적이었다.
백일장때 상근이가 쓴 시를 처음 접했을때 그 충격이란...
그런데 그 시는 장원이 아니었다. 상근이보다 높은 상을 받은 시가 두 편 있었는데, 그 두 시들은 간결하고 깔끔했지만 왠지 억지로 쥐어짜 만들어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반면 상근이의 길고 산만한 시에서 보이는 그 타고난 재능과 자연스러움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교지에 실린 그 시를 계속 보관하고 가끔씩 읽어봤는데, 몇 년 전 한국 갔을 때 미국으로 가져가려 찾아보니 찾을 수가 없었다. 계곡인지 골자기인지 하는 시였는데… 아깝다...
“교차로”라는 제목의 시는 두 장짜리 회지에 실렸는데 그것도 사라졌다.
하여간 이건 그 나이에 있을 수 없고 커서 훈련하더라도 생길 수 없는 타고나야 하는 능력이었다.
역시 환경이 중요하다. 그 자극에 재능없는 나도 시를 두어편 써보려 노력했고, 나중에 쓴 시는 심지어 그럴듯해 보였다. 글짓기를 하면 반에서 세 개정도 뽑아가곤 했었는데, 상근이의 글과는 수준차이가 꽤 났지만 내 글도 셋중 하나에는 뽑힐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했다.
상근이와는 처음부터 친해졌다. 상근이는 상당히 여성스러웠다. 보통 남자애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우리는 무리에 속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여자애들 단짝같은 구석도 좀 있었다.
공부도 넘사벽이었다. 서울로 위장전입후 등수가 찔끔찔끔 올라가다 중3때 처음으로 반에서 1등을 한번 하게 된다. 중3때는 나의 등수는 사실상 3등이었는데, 그 1등은 체육때문에 한 재미없는 1등이었다. 상근이는 달리기를 제외한 모든 체육에서 나보다도 엉망이었다.
그런데 특이했던건 언젠가부터인지 모르지만 시험만 보면 상근이가 나의 시험지를 획 가져다 채점하기 시작했다. 아마 둘이 일치하지 않는 답만 체크해보면 되기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뭔 이유에서였는지 잠깐씩 사이가 안좋았을 때도 있었지만, 그 희안한 의식은 경동고등학교에 가서 본 고입연합고사때까지 쭉 이어졌다.
고등학교때는 못보다가 대입시험후 한번 만났다가 뜸해졌다.
상근이가 학보도 보내곤 했지만 내가 답장을 소흘히 했기때문이다.
유학 와 아이러브스쿨에서 연락이 된 상근이는 카톨릭 신학대에 다니고 있었다. 상근이의 표현에 의하면 멀쩡히 서울대 신문학과에,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신학대에 들어갔단다.
그 후 가끔 이메일로 연락하다가, 요즘도 글 쓰는지 궁금해서, 글 쓴 거 있으면 하나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상근이가 언젠가 작가로 데뷰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글을 하나 보내왔는데, 아마 오래동안 안 쓰다가 나때문에 하나 썼는지, 좀 산만했다. 계속 썼더라면 그때쯤 상당했을텐데… 아깝다...
그러다 박사학위 막판에 정신이 없어졌고 내 UNC 메일에 매일 수백통의 정크메일을 지우다가 지쳐 포기하게 되고, 졸업하자 예고없이 계정이 만료되면서 연락하던 상근이의 카대 메일주소를 잃어버렸는데, 아마 상근이가 내 UNC 계정에 몇번 메일을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 교구에 있을 때 google로 찾은 번호에 몇번 전화해봤는데 아무도 안받았다.
찾아보니 이제 어느 교구 신부님이 되어 있고, facebook에 있어 친구신청 했더니 받아줬지만 삐졌는지 더 이상 대꾸도 없다.
신부님이니 날 좀 용서해주라…
그리고 중 3때 쓴 시 두 편 있으면 좀 보내주라...
첫댓글 http://www.yangjae.or.kr/bbs/board.php?bo_table=m12_1
여기 연락처도 있는데 ^_^;;; 전화라도 한번 해보시죠 ㅎㅎㅎ
오잉~ 난 찾으려고 노력해도 못찾았었는데^^ Thank you!!!
@안재형 사부님을 위한 선물이요 근디 많이 늙으신듯 하던데요 외모에 연륜이 좀 묻어있으시더라구요 ㅎㅎㅎ
@김병주 남신부가 facebook 안하다 오랜만에 들어와 정리하다가 이 글을 보고 연락했습니다^^
참으로 사람의 삶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어요.
신부님처럼 보이는 인상이신데요. ^^
저도 쌍문중학교 출신인데. ㅎㅎ. 반갑습니다.
몇기인가요? 저는 2기로 기억합니다.
@안재형 저는 1기입니다. ㅎㅎ. 반갑습니다. 학교 가보니 지금은 강북중학교로 이름이 변경되었더군요
@장성식 선배님이시군요^^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아... 이름이 바뀌었군요. 정체성 헛갈리게하는 이상한 이름으로 바뀌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