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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산행
언 제 : 2015년 11월21일 ~ 22일(무박)
누구와 : 산악회 회원들
어디로 : 팔영산(608.6m)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 집은 형제가 많습니다. 무려 9남매…… 하지만 형제는 용감하다고 힘들 때는 단결이 잘됩니다. 대중에 가까운 분들은 우리집안 사정을 잘 알겠지만 제일 힘들 때는 막내 여동생의 병이었지요. 결국은 형제 모두 유전자 검사와 그 결과 미국에 계신 누이가 골수 이식까지 하여 완치되어 지금은 아들이 대학교에 다닌답니다. 내 나이 아홉 살,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그 빈자리를 어머님은 그 때부터 평생을 자식걱정하며 편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어느덧 내 나이 쉰아홉 오십 년 전 이맘때(음력:10월15일) 올해로 아흔셋 해를 뒤로 어머님은 아버님 계신 먼 곳으로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자식이 돌이켜 볼 때는 연세가 많아도 오래 오래 우리 곁에 계시리라 믿었건만 『회자정리』라고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불가의 말처럼 조용히 우리 곁은 떠났습니다. 추석명절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에는 지난번보다 더 건강해 보였는데…… 하지만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힘들지 않도록 아침밥 잘 드시고 목욕 후 TV를 보신다고 방에 들어가셔서 주무시듯 그렇게…… 어느덧 일주일……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더 느낌이 와 닫는지 모르겠네요. 주변에 또는 TV에서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이 보이고 또는 나오면 왜 그렇게 어머니와 연관 지어지고 마음 한구석이 아린지 모르겠네요. 세월이 약이라고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 애 닳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라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부부이별한지 오래니 영혼이라도 아버님 만나 이승에서 못다한 사랑 저승에서 많은 사랑 받으시라 매일 빌고 있습니다. 무거운 마음을 뒤로 무박산행이라는 긴 여정을 떠납니다.
11년전 이맘때 이번과 똑 같은 시기에 다녀 온 팔영산, 전남 고흥반도 동쪽에 위치한 암산으로 해발 608m지만 해안가의 산이 늘 그럴 듯이 육지 산보다는 이삼백 높아 보인다. 고흥군의 진산이며 옛 문헌에 보면 이름이 여러 가지로 내려오고 있다. 팔전산, 팔령산, 팔점산 등 봉우리가 여덟 개로 이루어져있으니 팔(八)자는 기본으로, 기록에 남아있는 자료는『신증동국여지승람』에 팔전산으로 되어 있는데 영(影)자를 넣어서 부르게 된 연유는 이산의 여덟 그림자가 멀리 한양에 까지 드리워져서 팔영산이라고 불렀다고 하고 일설에는 금 닭이 울고 날이 밝아오면서 붉은 햇빛이 바다 위로 떠오르면 여덟 개 봉우리가 마치 창파에 떨어진 그림과 같다 하여 그림자 영(影)자를 붙였다고 하며 또한 옛날 중국 위나라 태화연간에는 여덟 봉우리의 그림자가 멀리 주왕의 세수대야에 비추어 왕이 몸소 찾아보고 팔영산으로 바꿔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 산은 8개의 봉우리가 남쪽을 향하여 일직선으로 되어 있으며 각각의 이름을 확인하자면 1봉은 유영(儒影), 2봉을 성주(聖主)로 3봉은 생황(笙簧) 그리고 4봉을 사자(獅子)로 5봉을 오로(五老) 6봉과 7봉을 두류(頭流), 칠성(七星)으로 부르며 마지막 8봉이 적취(積翠)봉이다. 각각의 이름에는 특징과 명칭 유래가 있으니 오르면서 확인하는 재미도 솔솔 하다. 암산이라 산세도 험준하고 기암괴석이 많으며 또한 식생은 활엽수인 단풍나무, 참나무 등이 주종을 이루나 약간의 철쭉과 동백나무도 자생하고 있으며 30년전 심어 놓은 편백나무 군락도 이곳의 식생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능선에는 팔영산자연휴양림도 조성되어 있어 일년 내내 찾는 사람도 많다. 산의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의 절경과 함께 고흥군 전체가 한눈에 볼 수 있다. 옛날에는 순천의 송광사, 구례의 화엄사, 해남의 대흥사와 함께 호남의 4대 사찰로 꼽히던 점암면 성기리의 능가사에는 능가사대웅전(국가 보물 제 1307호), 능가사범종(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69호)·능가사사적비(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70호) 등이 있으며, 그리고 경관이 아름다운 신선대와 강산폭포, 용바위, 남열해수욕장 등과 유청신(고려 문신)의 피난 굴 등도 있다. 또한, 봉수대가 있어서 옛날에는 북동쪽으로 여수의 백야곶(백야곶이라하면 여자만과 장수만이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알고 있음)봉수대와 남쪽으로는 마북산봉수대에 각각 응했다고 한다. 뛰어난 경관과 멋진 산세, 천년 고찰 등을 고려해서 팔영산과 그 일대가 1998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에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편입되어 이제는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팔영산의 여덟 봉우리는 아쉽게도 주봉이 아니고 적취봉에서 약 0.5Km 동북방향에 위치한 깃대봉이 차지하고 있는데 어느 지도에는 깃대봉을 팔영산의 여덟째 봉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산행코스로는 대부분 능가사 사천왕문 앞에서 좌측으로 진행하여 흔들바위를 지나 1봉을 오른 후 2 ~ 8봉을 지나 깃대봉까지 오른 후 백하여 8봉 앞에서 능가사로 또는 팔영산자연휴양림 방향으로 하산이 이루어진다. 산행시간은 길게 4시간에서 6시간정도면 족하다. 수도권에서 큰맘 먹어야 갈 수 있는 산이지만 육지 내에 어느 산에 뒤지지 않는 산세와 사계절마다 특색 있는 산으로 등산메니아들에게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토요일 부산에서 손님이 온다며 아내는 바쁘다. 그들 친구들이 용산 역에서 만나니 이번에 어머니 상중 문상을 왔던 동창들이라며 당신도 참석하여 인사를 해야 한다고, 그래서 바로 탑승장소로 가기 위해 배낭에 준비물을 챙긴다. 전날 포항에 사는 지인이 보내준 과메기(올 처음 생산한 것이라고 맛보라 1Kg정도 보내왔음)가 싱싱해 보여 한잔 했던 생각에 화장에 전념하고 있는 아내에게 점심때 먹게 조금만 준비하라고 하니 눈꼬리가 야릇하게 올라간다. 싫으면 관두고…… 그러지 않아도 분명 산 친구들 먹일 량으로 달라고 할 것 같아서 미나리와 김 그리고 초고추장을 따로 준비해 놨단다.ㅋ 고마운 아내. 이것저것 준비하니 배낭이 적다 38리터짜리로 다시 짐을 옮기니 오전이 다 지나가며 헤드랜턴 여유분 있으면 가지고 오라는 장용숙 사무국장의 메시지에 하나를 더 챙기고 홍어꾸러미까지 한 보따리 챙기고 용산 역으로 가는 중 저녁에 홍제로 온다는 세덕이 전화다. 아이쿠~ 용산에서 출발한다니까 고맙게도 저녁에 태우러 온단다. 난 행복한 놈이다.ㅋ 서울역을 지나며 부산친구부부는 충무로에 있고 다른 친구 두 부부는 용산으로 집결하는 중이라며 도저히 충무로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니 난감, 서서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면서 아내만 친구들 만나러 충무로로 그리고 이 몸은 다시 백하여 집으로, 세덕이와 통화 다시 9시30분 홍제에서 만나 강변 역으로 출발한다. 무박산행이라 약간은 알코올 기가 있어야 달리는 차에서 잠을 잘 수 있다며 차량 주차 후 인근 순대국집에서 한잔 후 버스에 오른다. 참석한다고 했던 회원 몇이 빠지고 11시가 되면서 출발 장용숙 사무국장이 준비한 떡과 귤을 나누어주고 버스는 강동으로 해서 경기도 광주를 거치며 인원을 채우고 이천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후 고흥 능가사 앞 주차장까지 달리기로 약속 어둠을 뒤로 쉼 없이 달리고 잠결에 회장님과 정종백 자문위원님이 번갈아 가며 운전하시는 장영택 선배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다른 때 같으면 이 몸도 끼었을 그 자리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니 긴긴 장거리 운행을 쉼 없이 할 수 있지 않는가???. 비몽사몽간에 능가사 앞 주차장에 도착한 듯 차가 멈추고 시동이 껴짐과 동시에 추위가 엄습한다. 잠을 더 청하기도 그렇고 버스에서 내려 하늘을 보니 이맘때 하늘엔 별이 많이 보여야 하는데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주변에는 그런 것은 아랑곳 안하고 아침 준비한다고 바쁘고 또 한 그룹은 5시에 출발하자 또는 6시에 출발하자 의견들을 나누다 결국 6시 출발로 결정 조용하던 외부가 좀 시끄러워지며 버스한대가 들어와 그들도 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아침은 시래기 된장국으로 갓김치와 곁들여 뱃속을 채운다. 이곳에서 합세하기로 한 이정태 회원부부도 새벽을 마다 않고 산장에서 내려와 같이 식사 후 6시가 채 안되어 동행 출발이다. 오늘 우리 산악회에서 진행 할 코스는 2004년과 동일한 흔들바위를 지나 1봉에서 8봉까지 진행 깃대봉을 오른 후 백하여 8봉 아래에서 탑재로 하산 능가사로 원점회귀산행이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관계로 이동간에 회원들이 뭉친다. 『여기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팔영산지구)입니다』 라는 안내문을 지나 능가사 사천왕문에서 좌측으로 임도 따라 진행 여덟 개의 봉우리에 대한 안내가 어둠 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야영장의 불빛들이 새벽을 연다. 팔영소망탑 앞에 국립공원에서 설치한 등산객 출입 센서를 통과 후미에서 출발한 타 산악회와 엉키면서 진행이 이루어진다. 의정부에서 왔다는 등산객들과 후미가 조금씩 앞서거니 뒤서거니 헤드랜턴 불빛만이 흐느적거리며 가쁘게 움직이는 산속은 우리들의 발자국소리 외에 적막감이 감돈다. 약 30분 정도 진행 땀이 나기 시작하며 상의를 벗는 회원들이 늘며 후미가 조금 지체 징검다리를 건너며 회원들이 모여 있다. 휴식하며 흐르는 땀을 식히며 두껍게 입었던 옷들을 벗어 배낭에 넣는다. 그리고 출발, 선두는 벌써 흔들바위에 도착했다는 무전연락이 날라온다. 처음엔 “흔들바위가 이쯤에 있었던 것 같은데 왜 안 나타나지??” 혼자 중얼거리며 우측으로 계속 랜턴을 비추며 진행하다 보니 안내에 0.3Km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역시 십 년이란 세월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아마도 어둠이 지나 세상이 환해지면 이곳도 많이 변해 있으리라 생각하며 조금씩 경사도를 높이며 들머리에서 50분 진행 흔들바위에 도착 휴식이다. 어둠 속에서도 변화된 바위주변을 보며 흔들리지도 않는 바위에 손을 대어 본다. 어쩌면 바위 위쪽이 마당처럼 널찍한 모양새가 마당바위라 부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사각정자와 휴식 할 수 있는 의자 등이 세워져 있는 모습에 십일 년 전 이곳에 도착 바위잡고 오른다고 낑낑거리던 은기 생각이 떠오른다. 누군가가 후미에서 우리를 추격하던 산악회와 좀 간격을 주자는 말을 하니 마침 그랬으면 좋겠다 싶어 조금 더 휴식 후 얼마 남지 않은 1봉을 향하여 출발이다. 여명이 조금씩 열리며 정면에 우뚝 솟은 암봉이 들어오며 우측으로 길게 돌아 오름이 시작되고 약 1시간15분 진행하여 팔영산의 제 1봉에 올라 선다. 이 봉우리의 이름은 유영봉(491m)으로 선비의 그림자를 닮아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맞은편 2봉인 성주봉 오름이 만만치 않게 웅장한 모습으로 조망되며 조금씩 열리는 하늘은 안개가 자욱하여 마음이 혼란스럽다. 이산에서 내려다 보는 아래세상이 볼만한데…… 날씨가 받쳐주질 않으니 안타까울 뿐 그나마 멋진 바위 군이 눈을 현혹시키니 다행 정상 표시석도 사각의 대리석이었던 것이 두리뭉실한 돌로 변해 있다. 그 뒤에 사각이었던 흔적이 명확하게 보이니 바뀐 지가 얼마 안된 것으로 첫 봉우리에서 모두 모여 단체로 인증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2봉으로 향한다. 국립공원에서는 이정표에 휴양림이 중요한가 보다 2봉 방향으로 휴양림으로 안내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ㅋ 1봉에서 내려와 2봉으로 이동하는 길은 바위 사면을 끼고 쇠사슬과 바위에 박혀있는 철판을 이용하여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된다. 힘에 부치면 계단에서 쉬면서 주변의 산세를 휘 돌아볼 수 있어 좋다. 더 더욱 등산객들에게 세심한 배려인지는 모르되 계단 난간 파이프에 나이론 줄이 감겨져 있으니 차가운 겨울에도 부담 없이 잡을 수 있어 좋아 보인다. 그 전에 사용하던 쇠사슬이 계단아래 아직도 생생하게 제 모습을 갖추고 있어 옛추억을 더듬게 만든다. 그 때는 참 아슬아슬한 스릴도 있어 좋았는데…… 이 산 모든 위험구간을 계단으로 장식 해 놓지는 안 했겠지 생각하며 7시35분 이 산을 지킨다는 성인바위가 위치해 있는 성주봉(538m)에 도착, 인증을 한다. 한 봉우리 한 봉우리 지나칠 때마다 봉우리 석 앞에서 인증하는 재미도 솔솔 하며 이제 날이 완전히 밝은 뒤라 먼 곳도 바라 볼 수 있으니 산행이 더 즐거워진다. 일출을 볼 수만 있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해안가의 특징인 자욱한 아침안개의 방해가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기 사 오늘 비가 온다는 기상청 예보도 있었으니 미리 알고 있는 날씨라 굳이 날씨 탓을 할 필요는 없다. 다른 생각으로 괜히 이 멋진 산세를 즐기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손해이질 않는가.?? 2봉과 3봉은 가까이에 있다. 그래도 바위와 바위를 오르고 내림이 있으니 아기자기한 맛을 즐긴다. 2봉에서 예전에 느껴 던 쇠사슬과 철봉이 변함없이 버티고 있는(그만큼 다른 곳보다는 위험도가 낮다고 생각함) 바위구간을 지나 좌측으로 3봉인 생황봉(564m) 표시 석이 기다린다. 이 봉은 열아홉 대나무 통 관악기 모양새로 소리는 없지만 바위모양이 생황(아악(雅樂)에 쓰는 관악기)이라 바람 곁 들어보세 아름다운 생황소리…… 라는 듯을 내포하고 있다. 주변이 조용하여 그 바람소리가 정말로 생황의 음이 들려오는 듯 마침 강숙선씨가 곁에 있으니 흡사 지난번 선운산에서 들려주던 오카리나의 음이 들리는 듯하다. 3봉에서 내려서는 방법은 계단이다. 설치한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목재계단을 지나 또 다시 10분도 채 안되어 4봉에 도착한다. 사자처럼 생겼다 하여 그 이름이 사자봉(578m)으로 명했으니 동물의 왕처럼 기가 엄습해 온다. 열심히 오르고 열심히 정상 표시 석 잡고 사진 찍고 그러며 5봉으로 향한다. 이 봉우리도 근접해 있으니 5분도 채 안되어 오로봉(579m)에 도착이다. 별유천지를 보고 도원이 어딘지 무릉이 여기구나 하면서 다섯 신선이 이곳을 놀이터로 사용했다니 5봉은 또 하나의 명소로다. 필자가 봐도 전방에 우뚝 솟아있는 6봉의 압도적인 기세와 안개 속에 가려진 아기자기한 주변 봉우리들과 구름 속에 떠있은 듯 봉우리처럼 내려다 보일 다도해의 섬들까지 그러니 신선들의 놀이터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6봉 바위사면으로 등산객들의 실루엣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오며 후미도 어서 빨리 저곳으로 가고 싶다. 중간중간 멋진 모습에 중간중간 누가 먼저라 안 해도 카메라며 스마트폰으로 멋진 모습을 담는다. 6봉인 두류봉을 오르기 전 우회길이 있으니 힘에 부치면 과감히 우회를 선택해도 되겠지만 봉우리 꼭대기에 올라 바라보는 다도해 해상공원의 그림 같은 모습을 안 봐도 된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지만 조금의 힘든 것을 이기지 못한다면 그만한 손해를 감수해야 된다는 다수의 생각…… 바위에 박혀있는 파이프의 힘을 빌려 한발 두발 오름이 이루어지며 지나온 봉우리들을 바라다 보는 맛도 이 또한 어느 산에 비길 소냐. 순전히 바위로만 이루어진 지나온 봉우리들이 구름과 어우러져 친구가 되었다가 다시 헤어지며 또 다른 구름친구를 만나며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만드니 내가 신선이 된 듯 마음이 고요함에서 쿵쿵거리며 요동치듯 일렁인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눈으로 마음으로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서울에서 여기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녘에 산에 오른 보람이 여기에서 있구나. 조금은 험악한 바위도 안전시설이 잘되어 있으니 쉽게 오른다. 혹자는 이렇게 안전시설을 해놓으면 산을 버린다고 하는데 그것도 이해를 해야 함은 어쩔 수 없는 것. 그렇다고 무자비하게 바위를 깨고 그곳에 길을 낸 것은 아니므로 속상해 할 일도 아니고 오름이 좀 쉬워져서 모든 이들이 올라서 만족 할 수 있는 기쁨을 담고 갈 수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될 듯 어느덧 시야가 트이며 6봉 정상에 도착한다. 이 두류봉(596m)은 건곤(하늘과 땅을 상징적으로 이르는 말)이 맞닿아 있다 하여 하늘로 오르는 문이 있으니 두류봉에 오르면 당연히 신선이 된다고……ㅋ 과연 조망이 으뜸이다. 다도해의 조용한 아침이 열리고 먼 곳 여수가 보일 듯 말 듯 안개구름에 아쉬움이 앞선다. 이곳에서도 너도나도 인증 그리고 한쪽 자리에 터잡고 막걸리 잔이 오간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 절호의 찬스다 부지런히 메고 온 과메기 안주를 내어 놓는다. 한 점씩 먹으며 너도나도 맛있다고 좋아하니 무겁게 메고 온 보람이 있다. 다만 영준이가 후미에 있어 마지막에 올라와 맛을 못 본 것이 마음이 안 좋아 위로하니 “아래에는 홍어가 있잖아요.” 고마운 후배…… 그렇게 즐거우니 하늘도 무심하지 않게 살짝살짝 햇살을 열어주어 주변 산세를 보여준다. 10여분의 긴 휴식 후 계단을 이용 한참을 내려서 사거리에 도착 휴양림, 능가사, 두류봉, 칠성봉의 이정표가 길 안내를 자청하고 좀 더 진행하여 낙엽이 깔려있는 평탄한 길을 지나며 날씨가 포근해서 그런지 파란 풀들이 자생하고 있는 모습이다. 두류봉에서 8분 진행 바위굴이 나타난다. 궁금하면 못 견디는 이들이 그곳까지 올라갔다 백하여 통천문이 위치한 곳을 통과 드디어 신선이 된다.ㅋ 그리고 8개 봉우리 중 가장 높은 7봉인 칠성봉(598m)에 도착한다. 칠성바위라 하여 북극성을 축을 삼아 일곱 개 별인 북두칠성이 돌고 도는 곳이란다. 새벽에 같이 출발했던 산악회 일행은 우리보다 앞에 있으니 복잡하지 않아 좋다. 산악회 깃발을 가지고 멋진 포즈로 너도나도 추억을 만들고 조망을 해본다. 아까보다는 안개가 많이 가라앉은 관계로 산 아래 전경이 조금씩 보인다. 성기리 근방의 저수지와 늦가을의 산세와 더불어 간간이 진 녹색의 편백나무 군락도 보고 느끼고 8봉으로 향한다. 양지바른 곳 나무들이 어느덧(?) 봄을 느끼는지 아님 계절을 잊었는지 봉우리가 맺어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오며 맞은편 암봉에서 어서 오라 손짓한다. 서로 마주보며 사진 찍기에 즐거움이 한층 더한다. 중간에 위치한 전망대에선 여수 앞바다에 위치한 여자만을 내려다 보며 누군가는 여자만이라고 해서 남자들은 끼지 못하는 것인가 생각했단다. 여자만이란 해협의 이름인 것을 알고 나서 웃었다는……
『물총새 파란색 병풍처럼 첩첩 하여 초록의 그림자 푸르름이 겹쳐 쌓여 꽃나무 가지 엮어 산봉우리 푸르구나』란 8봉의 명칭 유래 안내판을 지나 8봉 정상에 모여있는 등산객들이 실루엣 되어 다가오며 중간에 바위 한 덩이가 우뚝 솟아있는 모양새를 보고 연관이 올라타 본다. 사진을 몇 커트 찍었지만 사진사의 기술 부족인지 아님 카메라의 성능이 별로 여서인지 귀가 후 열어본 사진은 안타깝게도 작품성이 떨어져 글쓴이도 실망이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바닷바람이라 육지바람보다 센 것은 사실이지만 기분만은 으뜸이다. 들머리에서 오르고 내리고를 여덟 번, 3시간15분 정도 진행하여 팔영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적취봉(591m)에 도착한다. 마지막 후미까지 도착 인증 후 바위를 내려서서 우리가 하산해야 할 탑재와 능가사 방향 이정표가 길 안내를 한다. 우리는 이곳의 주봉인 깃대봉까지 다녀와야 하므로 0.4Km 좌측 방향으로 진행 편안한 등산로 따라 모처럼 바위와 씨름이 없으니 발걸음이 빨라진다. 해발 육백 정도 되는 곳에 묘지가 있으니 후손들이 건강하겠다 생각하며 헬기장을 지나 아름다움의 환상적인 다도해 섬들이 내려다 보이고 뒤를 돌아서면 우리가 지나온 8개 봉우리가 파노라마 되어 다가오는 조망 권이 으뜸인 곳에서 즐거움을 만끽하고 가건물이 위치한 깃대봉에 도착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니 부리나케 단체며 개인 사진을 찍은 후 이른 점심식사 해결을 위해 다시 헬기장으로 달려간다. 몇 순배의 건너 받은 술잔에 알딸딸해지고 배부른 이들의 특권인 량 무엇을 부러워하랴. 50여분의 긴 식사시간을 끝내고 이제는 모든 것 다 보았으니 하산할 뿐 왔던 길 다시 백하여 적취봉 갈림길에서 우리는 탑재와 능가사 방향으로 길을 잡고 내려선다. 너덜이 도사리고 있는 하산길이 이루어지다가 편백나무 숲에 당도한다. 이곳이 1981년에 전주제지에서 식재 한 수령 30년이 넘은 편백나무로 그 당시 460ha의 규모로 팔영산 이곳 저곳에 심어 놓은 것 중 일부로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듯 우후죽순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하늘바라기를 하는 편백나무 군락지를 지나며 피톤치드 향을 폐부 깊숙이 들어 마신다. 하산은 역시 빠르다. 20분만에 편백나무가 끝나는 계단을 내려서서 탑재에 도착 잠시 휴식 중 주변을 살피니 임도 건너편에는 사각정자와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으니 멀지 않아 산행이 끝나지 않나 싶게 마음이 가벼워진다. 목재다리와 대나무 군락을 지나 묘 한기를 지나며 나무 사이로 지붕이 보이고 새벽에 지나간 팔영소망탑 앞에 도착 추계당 및 사영당의 부도탑(전남 유형문하화제 제264호)을 지나 능가사 경내로 들어선다. 바로 좌측에 사적비(전남 유형문화제 제70호)가 위치해 있으니 관람한다. 능가사는 천년 고찰로 신라 눌지왕 3년(419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였고 창건 당시에는 보현사라고 했다고 하며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버린 것을 인조 22년(1644년) 정현(호 벽천)대사가 다시 건물을 지어 능가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경내의 유물로는 대웅전 내에 석가모니 본존불이 16세기에 조성되어 보물적 가치가 인정되어 대웅전이 보물 제 1307호로 지정되었으며 사천왕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4호)은 규모가 전국에서 가장 큰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 외 범종(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9호) 또한 비천상과 8괘 문양이 특이하고 능가사의 내력이 기록되어 있는 사적비의 규모도 크다. 그리고 특이한 전설이 내려오는 것이 한가지 더 있으니 응진당의 삼존불로서 나라의 대소 길흉사가 있을 때 마다 부처상의 몸에서 법비가 흐른다고 한다. 사적비를 카메라에 담고 발길을 돌리니 그 옆 응진당 앞에는 화영이가 다소곳하게 무엇을 소원하는지 두 손 모아 빌고 있다. 궁금해도 참자.ㅋ 마당에는 건축물을 중축 하는지 예전에 사용했던 아름드리 기둥들이 천막에 덮여있고 고즈녘한 산사에는 기와 기둥 추녀 밑에 가을의 멋진 모습으로 감을 건조시키는 모양새가 카메라가 자석이 붙었는지 그곳으로들 몰리며 때아닌 동백이 피어있고 나뭇가지에 외롭게 달려있는 연등 하나가 팔영산 여덟 봉우리와 조화를 이룬다. 대웅전을 지나 사천왕문으로 나오니 인근 아낙들이 나란히 농작물을 내어놓고 장사에 열중이다. 가을걷이 끝난 감나무에도 농민들의 마음이 달려있는 까치 밥이라는 옛정서도 내 눈에는 아름답게 다가오며 입구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상징처럼 반달곰 형제들이 나란히 반긴다.
※주차장에 도착 버스가 안 보인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내에서는 화기 취급을 못하게 하니(?) 저 멀리 밖으로 나가 찌개를 준비 한단다. 돼지고기 넣고 김치찌개를 준비한다고 했기에 군침이 댕겼는데…… 얼마 후 준비가 다 되어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자리를 깔고 글쓴이가 준비해 온 홍어를 내놓고 김치찌개와 홍어로 모처럼 단란한 뒤풀이를 끝으로 팔영산의 산행이 끝이 나고 돌아오는 길엔 우리 산악회와 인연이 깊은 비가 내린다.
첫댓글 자세한 자료와 긴글 작성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젠 완전 전문가가 되셨습니다.
한번 다녀왔으니 조금은 글쓰기가 편했지요.^^
12월 종산에서 뵙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