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샤워실에 들어갔다. 샤워 꼭지를 틀었더니 찬 물이 나왔다. 바보는 조금 기다리면 될 텐데 가장 뜨거운 물이 나오도록 샤워 꼭지를 급히 돌렸다. 바보는 뜨거운 물이 나오자 또 깜짝 놀라 찬 물이 나오도록 꼭지를 반대로 틀었다. 찬 물, 뜨거운 물… 바보는 어리석은 ‘꼭지 틀기’를 끝없이 반복한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 전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정부의 무능을 꼬집기 위해 만들어 낸 ‘샤워실의 바보(a fool in the shower room)’란 우화다. 바보는 자신의 샤워 꼭지 조작과 그 조작의 결과 사이의 시차를 무시한 채 순간순간의 온도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한다.
샤워 물 꼭지는 온수, 냉수 어느 방향으로 돌려도 조금 기다려야만 원하는 온도의 물이 나온다. 즉, 더운물 쪽으로 꼭지를 틀었다고 금방 더운물이 나오지 않는다. 조금은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짜증이 날만큼 기다려야 할 경우도 있다. 샤워실의 바보란, 그런 인내심이 부족하여 물 꼭지를 번갈아 돌려대다가 결국 원하는 물을 얻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결국 이런 바보는 원하는 온도의 물을 얻지 못하여 제대로 된 샤워도 하지 못한 채, 샤워를 끝내게 된다.
우리의 옛말 중에도 샤워실의 바보와 같은 뜻의 말이 있다. 조령모개(朝令暮改)또는 조령석개(朝令夕改), 조삼모사(朝三暮四) 등이 그것이다. 아침에 좋다고 시작한 일을 저녁에는 싫다고 집어 내던진다. 똑같은 일을 두고 아침에는 3이라고 했다가 저녁에는 4라고 바꾸어 말한다. 다만 문화적인 생활 습관에 따라 표현만 다를 뿐이 아닌가?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되면서 샤워에 습관들인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조령모개, 조삼모사보다 샤워실의 바보가 더 실감나는 표현으로 와 닿는 게 사실이다.
이런 샤워실의 바보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흔하게 발견된다. 특히 정치·경제·사회·교육 등 공공정책 분야에서 그렇다. 어떤 정책이든 집행과 더불어 그 효과가 즉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작은 씨앗을 뿌려도 발아가 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의 기다림이 요구된다. 어떤 대나무 씨앗은 파종해서 5년이 지나서야 싹이 돋는다고 한다. 사과나무를 비롯한 대다수의 과수나무도 제대로 된 열매가 맺기까지는 최초의 열매가 맺고 나서도 최소한 5년 이상이 지나야 된다고 한다.
하물며 국가 공공정책의 경우는 도입 후 적어도 최소한 몇 년 이상의 숙성과 발효기간이 요구된다. 거치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밥을 지을 때에도 끓기만 해서는 안 된다. 뜸 들이는 과정을 거쳐야 밥맛이 제대로 난다.
프리드먼이 샤워실의 바보란 말을 써서 정책입안과 집행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을 통렬히 비판한 것을 보면, 미국의 공공정책 분야에서도 조령모개, 조삼모사의 폐해가 크게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샤워실의 바보가 가장 많은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경기가 바닥에서 벗어나 되살아나기 시작하더라도 이를 지표로 확인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린다. 시차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경기가 살아나는 시점에 이를 파악하지 못한 채 경기부양책을 써 경기 과열을 불러오곤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전문가들은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두고 종종 '샤워실의 바보'를 인용한다. 정부가 부동산시장 동향에 대해 시차를 무시하고 즉각 반응하면서 적절하지 않은 대책을 쏟아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백년지대계라는 말로 교육정책의 특성을 규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샤워실의 바보 현상이 교육 분야에서도 흔히 보인다. 물론 교육 분야에만 유난히 많은 것은 아닐 것이다. 여러 교육정책 중에서도 대학입시관련 정책엔 샤워실의 바보 현상이 크게 두드러진다.
못 배우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바보라면 순박한 맛이라도 있다. 그러나 배웠지만 교만하고 균형 감각이 없으면서도 자기 욕심과 신념이 강한 권력자들이 설치는 세상에서는 백성들은 너무 고달프다. 그들이 샤워실의 수도꼭지를 이리저리 돌리는 순간 나라는 마치 이상이 생긴 환자처럼 균형을 읽고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공직자는 정책의 원래 목표가 살아나도록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교육정책은 특히 더 그렇다. 교육정책을 집행하고 이를 그 성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뒤집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인내를 가지고 좋은 효과와 성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부모가 부자였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학생이 많다. 부모가 부자면 더 편하게 공부할 수 있고, 그리고 설사 공부를 못한다 할지라도 부모 재산을 물려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외적이고 물질적인 조건을 잘 갖추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 그리고 땀과 정성을 쏟은 결과를 중시하는 태도가 더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노력이 깃들지 않은 물질적 축복은 결국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노력을 통해 얻어진 것만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
석유가 발견되고 난 뒤 가난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빈부 격차가 더욱 벌어진 나라들이 있다. 나이지리아와 차드, 카자흐스탄 같은 나라에서 일어났던 이런 현상을 ‘석유의 저주(oil curse)'라고 한다. 네덜란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세기 중반 이후 네덜란드 경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네덜란드 인근 북해에서 막대한 천연가스가 발견됐던 1960년대였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더치 디지즈(Dutch Disease)’ 라고 이름 붙였다. 요즘 들어서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오히려 천연자원이 부족한 나라보다 못사는 현상을 통칭할 때 ‘석유의 저주’란 말을 쓴다. (한경비즈니스 2007년 05월 21일 제 598호 14쪽)
왜 그럴까. 고기를 주는 것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와 같다. 먹고 살 것이 풍부하면 굳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된다. 치열한 노력을 경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지 않고 치열한 노력을 경주하지 않고 큰일을 해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자는 언제 사냥할까. 배고플 때 한다. 배가 고파야 움직인다. 꾸준히 사냥을 하여 비축해서 사냥 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하는 일은 없다. 사람도 그럴 때가 많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 사람의 특징이라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조금 부족하면 채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가 조금 채워지면 금방 나태해지고, 성적이 조금 떨어지면 안달복달하다가 조금 오르면 금방 방심하고, 낮은 자리에서 비굴하다가 조금 올라가면 교만해지고. 부모가 부자였으면 하는 학생들은 명심해야 한다. 나의 노력 없이 거저 얻어지는 억만금 재산보다 우선은 가난하게 보일지라도 치열하게 살고, 열심히 살아간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더 중요한다는 것을. 금방 조금 얻었다고 방심하거나, 나태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임을. 결국은 외적 조건보다 삶에 대한 태도가 내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첫댓글 기다리는 여유의 지혜를 일 깨우는 선생님의 귀한 말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