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오직 《무량수경》에 근거한 수행만을 한결같이 고수함으로써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까?" 말법 시대라 할지라도, 하나의 경전이나 논서에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한다면 참으로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 출입구가 있는 이 강당을 생각해 보십시오. 일단 특정한 문으로 들어서고 나면, 모든 문이 사실상 똑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것"은 공덕을 쌓는 일이자 진정한 수행입니다. 옛 성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라의 스승이요, 알고서 실천까지 하는 사람은 나라의 보배이다." 그러므로 경전과 논서에 통달했으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하지 못하는 이들도 우리는 찬탄해야 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타인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들 자신은 부족할지라도, 그들의 제자가 부단한 노력과 가르침에 대한 정진을 통해 스승이 이루지 못한 성취를 이룰 수도 있습니다. 이는 "푸른색은 쪽풀에서 나왔으나 쪽풀보다 더 푸르다(청출어람)"는 말로 잘 설명됩니다.
◎ 수행자는 마음의 청정함을 지키고, 복잡한 인간관계로 얽힌 환경을 멀리해야 합니다.
◎ 불교를 공부할 때는 복덕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합니다. 복덕이 부족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진정한 수행에는 자연스럽게 그 두 가지가 모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 경전을 능숙하고 막힘없이 강의하려면 적어도 십 년 이상의 헌신적인 수행이 필요합니다. 진지한 수행과 실질적인 깨달음 없이는 불교 용어를 명확히 설명할 수는 있어도, 가르침의 심오한 의미와 영적 본질을 진정으로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배움에 있어 인내심을 갖고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서두르면 실패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 "원칙을 바꾸지 않으면서 상황에 적응하기", "상황에 적응하면서 원칙을 유지하기", "상황에 적응하여 그에 따라 변화하기", 그리고 "상황에 적응하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기." 이 네 가지 구절은 어떻게 해석되고 실천되어야 할까요? 이해하시겠습니까? 이들은 각각 보살, 여래, 범부, 그리고 이승(성문과 연각) 수행자에 해당합니다.
◎ 정토 왕생을 확신하고자 하는 수행자에게는 홀로 집중하여 정진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정토성현록(淨土聖賢錄)』이나 『왕생전(往生傳)』, 그리고 임종 시기를 미리 알고 평온하게 세상을 떠난 현대 인물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대부분 홀로 수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홀로 수행하면 높은 경각심을 유지할 수 있고, 생사윤회를 벗어나 왕생하여 부처님을 뵙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다지게 됩니다. 반면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의견 차이나 잡담이 생기기 쉬워, 수행이 끊어짐 없이 이어지는 상태인 '불간단(不間斷)의 염불'을 성취하기 어렵습니다.
◎ 진정한 수행자는 망상에서 벗어난 청정한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기에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부지런히 정진합니다.
◎ 옛 성현들은 "안으로는 다섯 가지 덕을 닦고, 밖으로는 화합을 이루는 여섯 가지 원칙을 실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삼학(三學), 육바라밀(六波羅蜜), 보현보살의 십대원(十大願)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덕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 수행하는 과정에서 세속의 자질구레한 일에 일일이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불법을 널리 펴는 일에 지장이 없다면, 그저 모든 일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르도록 두어야 합니다.
◎ 세속의 가르침이든 출세간의 가르침이든, 배움에는 스스로 하려는 의지와 주도성이 필요합니다. 타인에게 떠밀려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먼저 배움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키우고 도(道)를 닦는 일에 진심 어린 흥미와 기쁨을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그것을 온전히 통달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 깊어질수록 고결한 인품과 덕행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그래야만 속됨에 빠지지 않고 법열(法悅)로 충만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