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독재 부작위 편향왜 스포츠 심판들은 결정적 순간엔 휘슬을 적게 불까?
2012년 6월 19일 대전구장에서 LG가 0-1로 뒤진 5회 무사 2루, 전일수 1루심은 이병규(9번)의 절묘한 희생번트를 아웃으로 판정했다. 이병규는 심판에게 몸을 부딪치며 거칠게 항의했고, 김인호 1루 코치가 뒤이어 심판을 손으로 밀쳤다. 판정 번복은 없었다. 이병규 대신 김인호 코치가 퇴장을 당했다. 같은 날 잠실구장 넥센이 3-1로 앞선 5회 1사3루에서 박병호의 외야 뜬공 때 3루 주자 정수성에 대한 포수의 태그가 늦었지만 아웃 판정이 났다. 넥센이 1점을 더 도망갔다면 두산 벤치는 니퍼트를 교체할 예정이었다. 판정은 승부를 갈랐다.
이런 일련의 오심 논란으로 인해 6월 20일 새벽, 한국야구위원회(KBO) 홈페이지가 불통되었다. 한국프로야구 심판들은 대부분 프로야구 경험을 지닌 ‘엘리트’들로 미국과 일본보다 ‘정확한 판정’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데, 왜 그런 일이 자주 벌어지는 걸까? 이용균은 오히려 그런 뛰어난 자질이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심리학적으로 따지자면 일종의 ‘인지 편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중계기술이 발달하고 순위 싸움이 치열해질수록 심판이 받는 압박이 커진다. 압박에 따라 ‘인지 편향’ 가능성도 심해진다. 심판들은 일단 부작위 편향을 갖는다. 부작위 편향이란 ‘개입하지 않음을 최선으로 삼는 태도’다. 심판들은 ‘최고의 심판은 경기가 끝났을 때 누가 심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심판’이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관습적 상황에서 관습적 콜이 이루어진다. 야구의 흐름을 지나치게 잘 알기 때문이다. 보내기번트 상황에서 아웃 콜이 우선되는 경우가 그 이유다. 이병규의 아웃은 부작위 편향의 가능성이 높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부작위 편향(不作爲 偏向, omission bias)’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일어나는 손실보다 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손실에 덜 민감한 현상, 바꿔 말하면 움직이지 않았을 경우 돌아오는 손해보다 행동했을 때의 손해를 고려하는 현상이다. ‘행동하지 않은 책임’이라는 것도 있긴 하지만, 우리가 보통 말하는 책임은 행동을 했을 때에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부작위 편향을 부추긴다. 관습적 상황에서 관습적 콜은 관습적 상황에서 이례적 콜보다 안전하기 때문에, 부작위 편향이라고 하는 타성에 기울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NBA 농구 경기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접전인 경기의 결정적 순간엔 심판이 휘슬을 평소의 절반 이하로 부는 것으로 나타났다. 괜히 파울 선언을 해서 경기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즉 ‘경기가 끝났을 때 누가 심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심판’이 되고 싶다는 ‘부작위 편향’이 작동한 것이다.
부작위 편향은 “가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생각하는 ‘손실 회피 편향’과도 통한다. 민재형은 “제약회사가 신약 개발을 통해 사회에 기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신약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소송(개인적 피해)이 두려워 포기한다면, 이는 인류의 건강과 관련해서는 큰 손실(사회적 피해)이 아닐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신약의 부작용에 대한 처벌은 존재하지만, 신약을 개발하지 않아 많은 이들을 병마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데 대해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사회는 없다. 많은 조직에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방관자들이 많은 세상은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더 치른다. 이런 사회적 비용은 결국 개인의 비용으로 전가(轉嫁)된다.” [참고 ‘손실 회피 편향’]
2013년 10월, 한때 재계 순위 5위까지 올랐던 56년 역사의 동양그룹이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것과 관련, 이상배는 부작위 편향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동양그룹 내부에서는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사양산업에 접어든 시멘트 부문을 매각하는 방안이 논의되었지만, 동양그룹 임원들은 동양시멘트나 한일합섬, 동양매직, 동양파워 등을 섣불리 팔았다가 헐값에 팔았다는 비판으로 일자리를 잃을 것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매각을 주장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선호 현상도 따지고 보면 부작위 편향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이 장기 기증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꼭 인간애가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진데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에서 신체 일부를 떼어내는 것이 자연스러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작위 편향은 앞에서 살펴본 ‘행동 편향’에 반하는 성향인가? 꼭 그렇진 않다. 롤프 도벨리(Rolf Dobelli)는 “행동 편향은 어떤 상황이 불분명하고 모순적이고 불투명할 때 작용하는 반면, 부작위 편향은 대개 통찰 가능한 상황에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폐해는 행동을 통해서 예방하려고 노력하지만 예측할 수 있는 폐해를 예방하는 것은 우리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하지는 못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작위 편향은 행동 편향에 비해 인식하기가 어려운 편이다. 행동을 거부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보다 눈에 덜 띄기 때문이다. 그래서 1968년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된 대규모 학생운동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극하려는 의도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슬로건을 내세우며 싸웠다. ‘만약 당신이 해결의 일부가 아니면, 당신은 문제의 일부이다.’”
인터넷과 SNS 시대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목숨 걸고 하려는 사람들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의 정치적 담론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부작위 편향의 증대로 인한 정치적 양극화다. 인터넷과 SNS는 대중의 정치 참여를 보장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참여는 주로 과잉 정치화된 사람들이 양산해내는 ‘악플’의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악플에 시달리는 게 싫은 사람들은 속된 말로 “38선 나 혼자 막나” 하는 심리로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즉,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중간지대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부작위 편향을 자기방어 수단으로 삼은 이들은 그 성향이나 기질상 타협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반면 악플에 개의치 않거나 오히려 악플을 보면 더 힘을 내는 ‘양극화 장사꾼들(polarization entrepreneurs)’은 대부분의 정치 관련 사이트와 SNS에서 맹렬하게 활동함으로써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언론은 ‘양극화 장사꾼들’의 과격 발언이나 독설들을 보도의 형식을 빌려 또 한 번 팔아먹는 매파 노릇을 함으로써 한국 정치를 누가 더 강심장이거나 후안무치인지를 겨루는 이전투구의 대결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구경하는 재미는 뛰어나다고 하지만, 그건 정치의 죽음을 희생으로 삼은 잔혹한 ‘정치 예능’인 셈이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은 “행동하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라(Think like a man of action and act like a man of thought)”고 했다. 쉽지 않은 주문이긴 하지만, 이 명언이야말로 행동 편향과 부작위 편향 사이에서 취할 수 있는 슬기로운 중용의 해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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