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성 교수(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의 『한국 현대시와 비교문학』(푸른사상사의 학술총서 65). 192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한국 현대시와 서구문학, 한·중·일 동아시아 문학 텍스트를 비교하여 한국문학이 지닌 보편적 성격을 규명한 연구서이다. 2024년 8월 26일 간행.
■ 저자 소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동아시아지역학으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김기림 문학 연구:비교문학적 관점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부교수이다.
■ 책머리에 중에서
한국 현대문학 텍스트를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시대의 서구문학과 동아시아 문학 텍스트를 같이 놓고 견주어보아야 한다. 하나의 국민 문학사 내에서 수직적인 계보로 이루어진 문학의 전통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의 보편적 가치를 꿈꾸었던 한국 현대 시인들은 동시대의 세계문학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식민지 상황에서도, 해방 이후 상황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문학이 국민문학의 특수한 가치를 담보하면서도 동시대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략)
한국의 현대 시인들은 동시대 서구문학, 동아시아 문학과 접점을 맺거나 충돌하면서 상호텍스트성을 구현해왔다. 서구문학, 서구철학, 일본어에 대한 그들의 해박한 지식은 그들의 시 텍스트와 서구 언어의 시, 일본어 시 사이의 문화적 경계를 무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서구 중심주의 비교문학 연구에서 평가절하되어왔던 제국과 식민지 간 접촉과 충돌의 지점이 지닌 의미는 점점 확대되고 강조되어왔으며, 이 확대된 지점에 대한 평가는 국민국가의 경계와 언어의 차이를 지우고 텍스트의 교호작용을 강조하는 ‘상호텍스트성’에 기반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현대 시인이 구현하고자 하였던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의 교차점은 그들이 추구했던 보편과 특수의 상호 길항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 책 속으로
파스테르나크는 스탈린 이데올로기의 허위의식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간과된 자연으로 눈을 돌려 이데올로기에 앞서는 자연의 위대함을 시로 노래하였다. 그는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길은 하늘의 길, 즉 빈 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김수영이 이 작품을 텅 빈 길, 즉 공로(空路)로 번역한 이유는 이런 뉘앙스를 살린 번역이 아니었을까 한다. 김수영 역시 전통 만들기라는 선택과 배제의 이분법에서 눈을 돌려 거대한 뿌리 찾기는 주변의 보잘것없는 것부터 바라보기라는 역설을 보여주었다. 그는 파스테르나크의 작품 가운데 이러한 전통 찾기의 고뇌가 드러나는 작품을 선택하여 국내에 번역·소개하였는데, 이는 번역자로서 자의식을 상당 부분 노출한 것이다. 그에게 번역은 작품 선정부터 자신의 주체적 의사가 표출되는 작업이었던 것이었다. (301쪽)
최근 한국음악과 드라마 붐이 한국문화를 바라보는 전 세계적 시야에 다소 간의 균열을 내고 있음이 발견된다. 한국문학을 K-pop, K-drama로 이야기하는 한류 현상과 같이 K-문학과 같은 새로운 용어로 지칭하고자 하는 다소 과감한 시도도 이와 같은 목적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서구문학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문학의 헤게모니에서 다소 열세에 놓여 있었던 한국문학은 서구문학, 나아가 같은 시대의 동아시아 문학과 대등하게 겹쳐 읽기를 시도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이해되고 향유되어야 할 것이다. 다양한 한류 문화 현상이 세계무대에서 향유되고 소비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 획득을 위한 노력이 요청된다.
(3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