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영을 창조하시고 돌보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
유난히 길고 추운 겨울날씨를 체감하며, 한겨울을 나고 있는 이 땅의 생명들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날씨만 추운게 아니라 우리들 마음까지 춥게 만드는 일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강대국의 에너지 전쟁이 일파만파가 되어, 전지구적으로
에너지 품귀와 비용상승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 여파가 우리들에게도 비껴가지 않기에, 한겨울에 난방비 폭탄으로 난방 안 하고 겨울나기 라느니 더 줄이고 안 쓰기 라느니 하면서 애꿎은
불똥을 피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게 되어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면서도, 숨가쁘게 뛰는
물가에 허덕이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쯤 경기가 좋아질 거라 앞다투어 말하지만, 당장 지금을 살아내야 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한숨과 괴로움으로,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르는 이 경기침체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비용은 빈부차이 없이 평준화 되었는데 소득은 갈수록 양극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노인들은 점점 많아지고 고령화 되어도, 계속 일하지 않으면 삶을 유지할 수 없기에 노년노동의 고단함을 끝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세대간의 부담이 부채가 되어, 국가유지를 위해 더 많은 세금과 더 많은 연금을 내게 되었으며, 도시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살기위해
더 많은 이자를 은행에 저당 잡히는 작금의 상황에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의 삶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 속에서도 희망을 갖게 하시옵소서.
주님, 우리들이 한 때 품었던 희망의 남북화해 무드의 시절을 회상해 봅니다.
장벽 너머의 공간이 그렇게 가깝게 여겨지고,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정답게 느껴진 것은 우리들의 착각이었는지요. 먼 시간도 아니었는데
마치 아득히 꿈같던 그 시절이 비현실적이기만 합니다. 장벽이 무너지고 화합의 노래를 부를 것만 같던 한 시절의 벅찬 감동이, 냉담하고 무자비한
새 권력 앞에서 그저 낭만이요 추억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강대국의 전략은 이 작은 반도를 언제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기에, 정권은 수시로 바뀌기에, 또 바이러스의 자연재앙은 예견할 수 없이
닥쳐오기에, 정녕 우리 힘으로 우리 민족의 소망을 이룰 수는 없는 것인지요.
당신의 뜻은 어느 지점에 있는 건지, 어리석고 나약한 우리들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세상은 바뀌어도 이 땅에 살고 있는 민중들은 2천년 전, 저 갈릴리 시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험난하고 초라한 현실 앞에서 고통 받는
영혼들입니다.
그렇기에 더욱이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역사 속에서 살다가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지, 그 수난과 부활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성찰하게 하시옵소서.
기독교인이라 말하지만 우리의 안위와 구복에만 열심이었던 각자의 모습을 보며 부끄러움에 또 다시 회개합니다.
정말 예수님은 누구인지, 예수님의 삶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하시고, 그 뜻대로 살게 하시옵소서.
이시간,
특별히 교회 안에서 새로이 탄생하고 자라는, 어린 생명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귀한 생명으로 태어난 이 아이들이 세상 속에서 잘 자라기를 소망합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어린이라서 보호받고, 또 어린이로서 대접 받게
하시옵소서.
스스로에게 품위있고, 남에게 너그럽고, 자연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시옵소서.
아이들만이 희망이기 때문이지요.
이제, 긴 겨울도 다가오는 봄 앞에서는 자리를 내줄 때가 오겠지요.
봄을 기다리는 이 세상 모든 생명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지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