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14-18
저절로 내것이 되지는 않읍니다. / 한서노회
지난 시간에 이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주셨으나, 그러나 저절로 우리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차지해야만 우리 것이 되는 것들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시간 설교는 컴퓨터 고장으로 모두 날아가 버렸읍니다. 그 내용은 이미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 주셨으나, 우리가 차지하지 않아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들의 4 가지를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읍니다.
5. 기업입니다.(골3:23-24)
성경에는 기업이란 말과 유업이란 말을 같이 사용하고 있읍니다. 영어성경은 유업과 기업을 inheritace라는 말을 사용했읍니다. 이것은inherit라는 말인데, 이것은 상속하다 물려받는다 유전한다는 말입니다.
기업이란 이렇게 거저 물려 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애를 써서 번 것이 아니라, 나의 노력과는 전혀 관계 없이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모든 것을 거저 기업으로 우리에게 주셨읍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올때 우리는 가지고 온 것이 하나도 없읍니다. 다 하나님이 거저 우리의 유산으로 우리에게 주셨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광대한 땅, 아름다운 땅을 거저 기업으로 주셨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입니다.
애굽에서 430년간 종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들이 살 땅이 필요했읍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그들에게 그들이 살 수 있는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셨읍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업은 빈손으로 온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 기업만 있으면 우리는 아무 걱정도없이 이 세상을 살아 갑니다.
어린 아이들이 이 세상에 태어 날때 빈손으로, 아무 힘도 없이 연약한몸으로 태어 납니다. 그들에게는 세상 을 살아 갈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전혀 없읍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가 그들의 기업이 되어주기 때문에 아무 부족함이 없이 이 세상을 살아 갑니다.
그러나 이 기업도 저절로 우리의 것이 되지는 않읍니다.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지만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우리 것이 되지는 않읍니다.
몇년 전에 미국 뉴우 저지(New Jersey)에 있는 매우 가난한 사람이, 하루는 그의 집에 대대로 내려오는 낡은 가족 성경을 펴 보았읍니다. 그랬더니 그 성경책 갈피 갈피에 미국 달러로 5만 달러(우리 나라 돈으로 약 7천만원)가 끼워져 있었읍니다. 이 책은 그에게 남은 오직 한 혈육이였던 삼촌이 돌아가시면서 그에게 남겨준 유산이였읍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족 성경책이니, 사랑하고 잘 간직하라고 물려주고 가셨읍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35년전에 이미 그의 소유였읍니다. 그러므로 그 성경책속에 들어 있는 미화 5만달러도 이미 그의 것이였읍니다. 35년 전에 그 돈만 가지고 있었으면 그는 사업을 시작해서 풍요로운 삶, 인간다운 삶을 살 수가 있었읍니다.
그는 일찍 부모를 여위고, 삼촌 밑에서 자랐읍니다. 삼촌 마저 죽고나자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이 가족성경책 하나 뿐이였읍니다. 그래서 그는 모진 고생을 하며 불행하게 35년을 살아 왔읍니다. 왜냐하면 조상이 물려준 가족성경책속에 들어 있는 유산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삼촌은 이미 그에게 물러주어서 그의 것이 되었지만, 아직 그 기업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은 유언이 남겨져 있었읍니다. "사랑하는 나의 조카에게... 나는 이 가족 성경과 그 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과 나의 장례식 비용을 치루고 남은 나의 모든 재산을 상속한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기업들을 다 우리에게 이미 주셨읍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저절로 내것이 되지는 않읍니다. 오직 그것을 차지한 자들만 그 기업을 사
용할 수가 있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들어가서 가나안 땅을 제비 뽑아 나눠 가질 때, 므낫세 지파에 므낫세의 현손 슬로브핫의 딸들이 있었읍니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이 죽었읍니다. 그에게는 딸만 5명이 있었읍니다.(수
17:1-4) 당시에 땅은 남자들을 중심으로 상속되었읍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나눌 때 남자들을 중심으로 나눠 줬읍니다. 그러므로 이 슬로브핫의 딸들에게는 기업이 전혀 돌아오지 않았읍니다. 그러자 이 5명의 딸들은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방백들 앞에 나아가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 하셨다"(수17:4)고 하면서 자기들에게 돌아올 기업을 달라고 했읍니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녀들에게 기업을 주었읍니다. 이미 죽은 그 딸들의 아버지 슬르브핫에게 돌아갈 기업을 주었읍니다. 이 기업은 슬르브핫으로 인하여 이미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기업이였읍니다. 이미 그녀들의 것이였읍니다. 그러나 저절로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았읍니다. 그녀들이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방백들을 찾아가서 역사적 사실을 내어놓고 달라고 할 때 비로소 그녀들의 것이 되었읍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우리에게 기업으로 다 주셨읍니다. 이 기업만 있으면 모든 사람들은 다 행복하게 이 세상을 살아 갈 수가 있읍니다. 그러나 저절로 그것들이 우리 기업이 되지 않읍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이미 주신 기업들을 우리가 차지할 수 있을까요 ?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들이 되지 않고는 기업을 얻을 수가 없읍니다. 아무리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자라도, 그의 아들임이 증명되지 않으면 그에게는 기업을 받을 자격이 없읍니다. 샹송 [고엽]의 주인공이자 배우로서 프랑스인들의 가슴에 전설처럼 남아있는 이브 몽탕이 지난 1998년 3월 11일 밤(현지시각) 사후 6년반 만에 무덤에서 지상으로 다시 나와야했읍니다.
유족들의 불명예스러운 상속 분쟁과 관련, 몽탕의 친딸임을 주장하는 오로르 드로사르(22), 그리고 이를 부인하는 몽탕의 부인과 자손들은 그동안 법정 싸움을 벌여왔읍니다. 그러던중 사법부가 작년 11월 유전자 감정을 위해 시신에서 세포를 척출하도록 명령한 것입니다. 이날 몽탕과 부인이었던 시몬 시뇨레 등이 나란히 누워있는 파리의 페르라셰즈 묘지에는 경찰이 보도진의 접근을 통제한 가운데 삼엄한 경비를 폈고, 몽탕의 유해는 비밀문을 통해 법의학연구소로 옮겨졌읍니다.
원래 몽탕의 상속인으로 인정되고 있던 사람은 마지막 부인이었던 카롤 아미엘 모자, 시몬 시뇨레의 딸인 카테린 알레그레 등이였읍니다. 그런데 70년대 몽탕과 동거한 적이 있는 안 드로사르 여인이 80년대 말 자신의 소생인 오로르가 몽탕의 친녀라고 주장, 분란이 일어났읍니다.
법원은 90년4월 몽탕에게 유전자 감정을 위해 채혈을 명령했으나, 몽탕은 이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오로르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부인하다가 이듬해 11월 눈을 감았읍니다. 유전자 감식 결과 그의 딸이라고 주장해온 오로르 드로사르 (22) 와 친자 (親子) 관계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11일 파리 법의학연구소가 발표했읍니다. 지난 3월 무덤에서 발굴한 몽탕의 유골을 토대로 드로사르와 몽탕의 유전자 구조를 비교. 분석해온 파리 법의학연구소는 이날 두사람의 DNA구조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읍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DNA검사를 위해 몽탕의 유해발굴을 명령했던 파리 항소법원은 드로사르가 제기한 친자확인청구소송을 기각했읍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아무리 그 재산을 갖고 싶어도, 친자식이 아니면 가질 수가 없읍니다.
이 우주만물이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가 그 모든 것을 다 값없이 거저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단 하나도 기업으로 물려 받을 수가 없읍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기업으로 물려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저절로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요1:12) 말씀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곡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되어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만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자식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의 피가 있어야 자식으로 인정되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대신 십자가 위에서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가 흐르기 위해서는 그 예수님을영접해야 합니다.
이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없이는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나님이 주신 이 모든 것을 다 기업으로 받을 수가 있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놀라운 기업을 받게 됩니다. 삶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동남아 출신의 어린이 4명이 세계적 택배업체인 DHL 창업자이자 지난95년 항공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래리 힐블럼(당시 52세)을 상대로낸 부자관계 확인 소송에서 각각 최소한 9천만달러(우리 나라 돈으로 1,260억원)라는 거액을 거머쥐게 됐다고 샌프란시스코 이그제미너가 11일 보도했읍니다. 이 아이들은 힐블럼이 생존시 필리핀, 베트남, 팔라우제도 등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즐긴 10대 처녀들과의 성관계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소송의 골자로 힐블럼이 사망한 후 동남아 여성 8명이 자식을 위해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DNA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중 4명의 주장이 정당한 것으로밝혀졌다.
아이들의 국적은 2명의 필리핀 소녀와 베트남 소년 1명, 그리고 팔라우 제도 출신 10대 1명이다. 힐블럼은 80년대 초부터 사이판에서 생활하면서 필리핀, 베트남, 괌 등을 자주 여행하면서 바람을 피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기업으로 얻게 될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후진국 백성에서 세계 최고의 국가 미국의 백성이 됩니다. 왜냐하면 힐블럼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이 우주만물을 기업으로 물려 받을 뿐만 아니라, 이 고통 많고, 괴로운 이 세상 사람에서 저 영원한 하늘나라 천국백성이 됩니다. (골3:22-24) 말씀을 보면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고 하셨읍니다.
종들이 유업을 받는다고 하셨읍니다. 원래 종은 유업을 받을 수 없읍니다. 아무리 일을 많이 하고, 오래 섬겨도 유업을 받을 수가 없읍니다. 그런데 종이 유업을 받게 된다고 하셨읍니다. 이것은 그들의 신분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들이 되어 기업을 얻으면 우리의 신분이 바뀝니다. 우리는 세상을 섬기는 세상의 불쌍한 종이 아니라,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렇게 신분이 바뀌는 것이 곧 행복이요, 축복입니다.
이 엄청난 기업은 이미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셨읍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자들만이 그것을 소유할 수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이름을 믿어 이 기업들을 소유하시기
축원합니다.
찾아야 내 기업이 됩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복된 기업을 받아서 행복하게 살았던 자들은 다 자기들의 기업을 찾았던 자들입니다. 열심히 자기들의 기업을 찾았던 자들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도 오직 싸워서 차지하는 자들만이 소유했읍니다. 스로브핫의 딸도 제사장 에르아살과 여호수아에게 와서 자기들의 기업을 달라고 할때 비로소 기업을 얻게 되었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기업으로 우리에게 주셨읍니다. 이것들을 열심히 찾아서 여러분이 축복의 기업들로 만드시기 축원합니다.
6. 생명입니다.(요10:10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돌보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목자에 비유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이 목자는 자기 양떼들에게 풍성하게 주시는 목자이십니다. 구약에 나타난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게 주시는 목자이십니다.
(시23:5) 말씀을 보면 다윗 왕은 우리의 목자 되신 하나님을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잔이 넘치나이다"고 노래했읍니다. 다윗 왕은 그를 돌보시는 하나님은 "그에게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노래 했읍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다윗에게 모든 것에 넘치게 주셨읍니다.
신약에 나타난 우리의 선한 목자되시는 예수님도 우리에게 넘치게 주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요10:10) 말씀을 보면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읍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풍성히 얻게 하시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읍니다. 그래서 빈들에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 마리로 먹이실 때에도 다 배불리 먹게 하시고 12 광주리 남게 하셨읍니다. 12 박스의 떡을 더 주시는 좋으신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풍요롭게 살기를 원하셔서 우리에게 이렇게 풍성하게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시는 방법을 바로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실까요 ?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물질이나, 생활필수품을 우리에게 풍요롭게 주셔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시지 않읍니다.
하나님은 때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면서 그들 앞에 진수성찬을 베푸셔서 그들에게 풍요롭게 주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때마다 모든 새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입에 먹을 것을 주셔서 새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어리석게 일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모든 일을 지혜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셔서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요10:10)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읍니다. 예수님은 양들에게 생명을 주셔서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십니다.
생명이 있으면 우리들의 삶은 풍요로워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는 그들에게 생명을 주셨읍니다. 그리고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1:28)고 하셨읍니다. 흙으로 인간을 만드셨읍니다. 그리고 그 흙속에 생명을 불어 넣으셨읍니다. 그리고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읍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으로 부터 생명을 받은 인간은 땅에 충만하게 되었읍니다. 이 땅에 차고 넘치게 되었읍니다.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땅에다 생명력 있는 씨를 뿌려 놓으면 저절로 땅에 풍성해 집니다. 이와 똑같은 이치입니다. 생명력이 없으면 흙덩이가 절대로 풍요로워 질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저절로 풍요로워집니다. 생명만 있으면 풍성하게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절을 만나도 생명이 있으면 저절로 풍성하게 됩니다.
조선 전기의 작품인 용비어천가에 보면 "새미 기픈 므른 가물에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라는 글이 있읍니다. 이 말은 "원천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끊어지지 아니하므로, 그것이 냇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
가느니라"는 뜻입니다. 고여 있는 저주지 물은 아무리 많아도 가물면 다 말라 버립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깊은 샘물은 비록 그것이 얼마 안되고 작아도,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나와 무릇 동물들의 갈증을 해갈시켜 줍니다. 생명이 있는 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비유할 때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셨읍니다.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지만 그곳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가장 작은 것이지만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물질을 풍성하게 주셔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명을 주셔서 우리 스스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나가게 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생명이 있어야 우리들의 삶이 풍요로워 집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생명이 있으니까 살아 있지, 생명이 없으면 사람이 죽지 살겠느냐 ?"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요10:10)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예수님이 오신 것이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셨읍니다. 이 말씀은 생명이 없는 양들도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자신을 가만히 살펴보면 생명력이 없는 삶을 살 때가 많이 있읍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력을 다 잃어 버리고 삽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삶이 점점 줄어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 생명을 주셨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의 목숨을 버리셨읍니다.(요10:11)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저절로 이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10:9)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예수님은 양의 문인데, 이 문으로 들어가야 구원을 얻고, 그렇게 생명을 얻고 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드나들면서 풍성한 꼴을 얻는다고 하셨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받아 예수님과 우리가 한몸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충만한 삶을 뜻합니다. 성령충만해야 생명을 얻읍니다. 성령충만 해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속에 역사합니다. 그리고 들어가며 나가는 것은 주님의 몸된 제단을 드나드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드나 들어야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드나들지 않고는 우리들의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읍니다. 생명력 있는 씨라고 저절로 자라서 풍성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 뿌려지고, 어두운 땅속에서 썩어져야 비로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자라서 풍성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다고 저절로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지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성전을 열심히 드나들고, 이 성전에서 내가 썩어 없어질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우리들의 삶이 풍요로워지기 위하여 주님 제단을 부지런히 드나드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풍요로워질 줄 믿읍니다.
7. 평안입니다.(요14:27)
세상의 사람이나, 가정, 사회, 나라, 그리고 세계는 모두 다 평화를 원합니다. 미국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의 한 의사가 그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비공식 여론조사를 했읍니다. 의사는 "만약 그들의 소원 하나를 들어 준다면 당신들은 무엇을 원하시겠읍니까 ?" 하는 설문 조사를 했읍니다. 그런데 결과는 참으로 흥미로웠읍니다. 87 %가 그들의 최고의 목표는 마음의 평안이라고 대답을 했읍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평화를 원합니다. 평안은 이렇게 좋읍니다.
그래서 인류는 이 평화를 얻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개인 뿐만 아니라, 가정, 사회, 국가, 세계가 다 이 평화를 얻으려고 모든 노력을 다 했읍니다. 그러나 이 평화를 얻으려는 그 어떤 인간의 노력도 성공을 거두지는 못
했읍니다. 평안을 얻으려고 몸부림쳐 보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읍니다. 이것은 이 세상은 우리에게 참 평안은 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참 평안을 줄 수 없읍니다. 그 무엇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참평안을 줄 수 있겠읍니가 ?
진정한 평안은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그 어떤 상황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우리로 평안하게 합니다. 캄캄한 밤에 풍랑이 일어나서 제자들이 다 두려워 떨었지만, 예수님은배 안에서 편히 주무시고 있었읍니다. 하나님이 주신 평안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평안을 주십니다.
1873년에 한 성공한 사업가가 시카고의 대화재로 그의 모든 재산을 다 잃었다. 그러나 이 시련이 그를 괴롭게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위에 있는 하늘의 것"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주 후에 그의 아내와 그의 4 아들이 "빌레 두 하브레"(Ville du Havre)라는 배를 타고 프랑스를 방문하기 위하여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배가 그만 영국의 배와 충돌을 하였다. 그 배는 2 시간만에 침몰하고 말았다. 그 사고는 226명의 생명이 앗아 갔다. 비록 그의 아내는 생존했지만 그의 아들 4 명은 모두 찬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 사람은 유럽으로 그의 아내와 만나기 위하여 가다가 그 배가 난파된 대서양의 한 복판을 지나가게 되었다. 비록 아들들을 모두 잃은 슬픔으로 마음은 아팠지만, 그가 능력의 주님을 바라볼 때, 그의 마음속에는 초자연적인 평안과 위로가 그의 마음속에 몰려 들어 왔다. 눈물이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 내릴때, 그는 그때 그 마음의 평안을 기록하기 위하여 펜을 들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주신 그 놀라운 평안이 마음속에서 다음과 같은 전율케하는 시가 흘러 나왔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예수님은 이렇게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이런 참된 평안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참평안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14:27)에서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같지 않다고 하셨읍니다. 예수님은 이 평안을 우리 모두에게 주십니다.
그러나 이 평안이 저절로 우리의 것이 되지는 않읍니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받으면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평안이 찾아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