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번'이라는 지명이 왜 이렇게 길고 어려울까 궁금했는데 오늘 풀렸네요. 영국에서는 스트랫포드라는 지명이 흔해서 '에이번 강 위쪽의 스트랫포드'라는 의미로 그렇게 사용한다고 해요.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이곳은 작은 농촌 마을이어서 인구가 2,000명 정도 였다고 합니다. 그는 7살이 되던 1571년 그래머 스쿨(문법학교)에 들어갔고 셰익스피어가 정규 교육을 받은 것은 문법학교가 전부라고 합니다.
그런 그가 세계적인 문호가 되었다는 것, 정말 대단한 일이죠.
셰익스피어 생가 모습.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는 가죽 장갑 제작을 하는 업에 종사했고, 셰익스피어가 4살 되던 해에 작은 마을이긴 하지만 그 지역 시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시장 자리에 도전했지만 모두 떨어져 가세가 기울었다고 합니다.
생가 안에는 당시 가죽장갑을 만드는 작업실이 있었고, 이 집에서 장갑을 만들어 팔았다고 합니다.
영국 사람들은 앞 정원 가꾸는 것보다도 집 뒤쪽 정원 가꾸는 일에 더 심혈을 기울인다고 하네요.
잘 꾸며진 뒷정원.
2층 생가를 모두 돌아보고 나오면 바로 옆 기념품점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기념품점 건물은 당시 셰익스피어의 이웃집인 대장장이 리처드 혼비가 살던 집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혼비의 자녀들과 셰익스피어는 어린 시절 사이좋게 지냈을 거라 추측을 해 봅니다.
셰익스피어라는 걸출한 문학가 한 명으로 이 동네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고 있으니...
생가에서 나와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니...
당시는 튜더 왕조였기 때문에 첫 번째 사진부터 네 번째 집까지의 양식을 '튜더 양식'이라고 합니다.
다섯에서 일곱 번째 사진의 집은 하바드 대학을 만든 하바드 하우스.
우스개 소리 하나!
하바드 하우스를 한 번 만지면 손자나 손녀가 하바드 대학을 가고
안 만지면 못 가고,
양손으로 만지면 친손주, 외손주 모두 하바드에 가게 된다고.ㅋㅋ
사람들 난리난리 났네요. 만지고 또 만지고.
첫 번째에서 세 번째 사진까지는 가난해서 학교도 그만 둔 셰익스피어가 자수성가하여 돈을 많이 벌게 되자 산 집...
방이 40개였던 이 저택의 이름은 'New Place'
네 번째에서 여섯 번째 사진 : 셰익스피어가 다니다 그만 둔 학교.
첫번째 사진부터 다섯 번째 사진 : 셰익스피어의 작품만을 공연하는 공연장, 셰익스피어에 관한 모든 행사를 주관하는 셰익스피어 재단.
온통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로 가득한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우리나라에도 그런 마을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나라에도 생가를 보존하고 가꿔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 있기는 한데 이렇게 대대적이지는 않아서 약간 아쉽습니다.
마지막 사진 - 공중전화가 사라지는 요즘 시대에 맞춰, 공중전화 박스 안에 조형물을 설치해 놓은 모습. 멋진 설치예술물이 되었네요.
시대를 잘 타고난 셰익스피어
당시 유명했던 셰익스피어의 경쟁자이자 위대한 극작가 벤 존슨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셰익스피어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문호가 되었을까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보면 조금 이해가 될 듯합니다.
영국은 당시 튜더 왕조 시대입니다. 튜더 왕조는 영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조입니다. 1485년 랭커스터 가문(붉은 장미 상징)과 요크 가문(흰 장미 상징)이 1455년부터 치른 30년 간의 전쟁을 끝내고 튜더 가문이 승리하며 헨리 7세가 국왕으로 즉위합니다. 장미전쟁이라는 이름은 당시에 불렸던 것이 아니라 훗날 1829년 스코틀랜드 영웅 시인 <아이반호>의 저자 윌커 스콧이 셰익스피어 희곡 <헨리 6세>에서 모티브를 따와 붙여준 것입니다. 헨리 7세 이후 헨리 8세, 에드워드 6세, 메리 1세를 거쳐 엘리자베스 1세까지 튜더 왕조는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영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의 원동력을 만들어낸 때가 바로 이 시대입니다.
셰익스피어가 한창 글쓰기와 연극에 몰입했을 때는 엘리자베스 1세 시대입니다. 당시 여왕은 연극을 좋아했습니다. 여왕은 극장을 자주 찾았고 청교도들에 의해 극장 문이 닫히면 불같은 호령으로 문을 다시 열게 할 정도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은 여러 분야에서 영국 르네상스 시대였죠.
셰익스피어는 1594년 왕궁 전속 극작가가 되면서 여왕과 친밀한 사이가 됩니다. 그는 여왕이 죽고 제임스 1세가 즉위하고서도 계속해서 왕성한 활동을 했지요.
사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은 지금도 분분하죠.
그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인물이라는 설, 그가 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모아 저자 이름을 셰익스피어로 붙였다는 학설까지.
아무튼 지금도 미스테리한 그에 대한 논문과 평가는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첫댓글 그러니까요.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여러 설에 휩싸이다니.
제가 들은 가장 납득이 가는 설은 중산층인 세익스피어가 썼다기에는 문장과 단어가 귀족의 것이었다고 하는.
그래서 어느 귀족이(그때는 귀족이 글을 쓴다는 게 천하게 느껴졌다나) 이름만 세익스피어로 빌리고 썼다는.
그래서 세익스피어 자체에 대한 영화도 그리 많은가봐요.
그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작품을 썼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세익스피어가 미스테리라니
그것 자체가 많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가죽장갑을 만드는 사람의 아들이 최고의 작가라는 설정 자체가
세익스피어 소설같은 느낌이 들긴합니다 ㅋㅋ
아무튼 난 사람은 난 사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