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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대통령님 [회고록 제37편]
“뇌물죄, 이미 정해져 있었다” 판사도 놀란 朴 최후 입장문
재판은 심리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육체적으로도 굉장히 힘든 과정이었다. 매주 3회씩 열렸는데 매번 10시간이 넘는 강행군이었다. 심지어 2017년 6월부터는 매주 4회(월·화·목·금)로 진행됐다. 나는 당시 허리와 어깨 통증 등으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너무 지친 상태였다. 특히 허리 통증으로 10시간 가까이 재판정에 나와 앉아 있는 것이 마치 독침에 쏘인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검찰이 나를 기소하면서 냈던 증거만 12만 쪽이 넘었는데, 그중 대부분은 내가 보지도 듣지도 못한 문서들이었다. 변호인들과의 충분한 상의는 차치하더라도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파악하도록 해줘야 최소한의 방어권이 보장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구속 상태였고, 변호인들 역시 주 4일 아침부터 밤늦은 시각까지 재판하고 돌아가 밤새 증거 기록을 보면서 재판을 준비하고, 다시 아침이면 재판정에 출석했다. 그것을 몇 달 동안 반복해야 했다.
변호를 맡았던 이상철 변호사는 “66세의 고령인 연약한 여성이 주 4일 법정에 출석해 재판을 받는 것은 체력적인 면에서 감당하기 어렵다”고 호소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주 3일 재판을 하면 심야까지 진행될 수도 있으니, 주 4일 재판을 하며 업무시간 내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피고인들의 건강에 유리하다고 판단한다”고 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재판부는 내 건강을 신경 쓰기보다 어떻게든 구속영장 만료 기간인 10월 16일 이전에 판결을 내리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듯했다. 변호인단도 나와 생각이 같았다.
■주4일 재판 강행군…심신 모두 무너졌다
그러다가 6월 30일 오후 6시30분경 나는 갑작스럽게 현기증이 온 데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 때문에 너무나 힘들어서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책상으로 몸이 기울어졌는데 그것을 보고서야 재판부는 남은 일정은 다음에 진행하겠다며 재판을 중단했다. 육체도 육체지만 재판을 하면서 기가 차고 답답한 상황들이 많아 나는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나의 몸에서는 이상 경고음이 심각하게 울리고 있었다. 변호인단은 “주 4일 재판 일정은 부당하다”며 “주 4일 재판을 진행하면 피고인의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는지 의문이고, 재판부도 실체적 진실이 발견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게 숙지하실 수 있는지 감히 의문이 남는다”고 재차 항의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구치소에서 발가락을 심하게 다치면서 몸에 또 문제가 생겼다. 몸의 기능이 저하돼서인지 나는 구치소 독방에서 왼발 발가락을 문턱에 자주 부딪히곤 했다. 원래 대통령 재임 중에도 발가락이 좋지 않았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부딪히는 것이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신발을 신으면 통증 때문에 걷기 힘들 정도가 됐다.
7월 10일에는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발가락 문제 때문에 걷기 힘든 지경이어서 재판에 나갈 수 없었다. 당시 내가 이 부회장과의 대면을 피하기 위해 불출석한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는데,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 후, 8월 25일 이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형이 선고됐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는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그날 재판 도중, 유영하 변호사가 연필로 ‘이재용 부회장 5년 나왔습니다’라고 메모지에 적어서 보여줬다. 사실 이 부회장은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 때문에 착잡한 심경이었다. 안타까움에 나도 모르게 손으로 조용히 가슴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발가락 통증이 나아진 나는 7월 14일부터 다시 재판에 출석했다. 허리 통증은 여전했고 무릎과 어깨 등 몸 곳곳이 망가졌지만, 재판 출석을 종용했다. 하지만 내가 좋지 않은 컨디션임에도 악착같이 재판에 나갔던 것은 이를 통해 적어도 사익을 추구했다는 뇌물죄 혐의만큼은 떳떳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2016년 가을부터 국정조사와 특검, 그리고 검찰에 이르기까지 국가기관이 가능한 모든 수사 역량을 동원했지만, 내가 최서원 원장이나 그 어디로부터도 단 1원도 취한 사실이 없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또한 내가 최 원장과 공모했거나 경제공동체라는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구속영장 만료일 다가오자, 이해되지 않는 재청구
그런 가운데 2017년 9월 26일 검찰은 구속영장 만료일(10월 16일)이 다가오자 기존 구속영장에는 기재하지 않았다가 기소할 때 공소장에 담았던 혐의에 대해 추가로 구속영장을 발부해 달라고 법원에 청구했다. K스포츠재단이 SK그룹에 89억원을 요구했다는 혐의와 K스포츠재단이 롯데그룹으로부터 70억원을 받았다가 돌려준 혐의였다. 그런데 SK 관련 혐의에 대해서는 이미 심리가 다 진행되었고, 롯데 관련 혐의는 기존 영장범죄사실에 기재돼 있었다. 구속이라는 것은 범죄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된 상태에서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 발부되는 것인데, 이미 SK나 롯데와 관련된 재판이 거의 다 진행되었는데, 무슨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검찰은 정말 내가 증인을 회유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것이라고 생각해 영장을 청구한 것인지 되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추가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유영하 변호사는 “검찰이 추가로 영장을 청구한 롯데 70억원의 제3자 뇌물수수죄는 기존 영장의 범죄사실과 사실관계가 동일하고, SK에 대한 뇌물요구죄는 관련자들의 증언과 관련 증거에 대한 조사를 마쳐 심리가 사실상 다 끝났는데, 피고인이 어떤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는 건지, 어떤 방법으로 이를 인멸할 수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검찰이 문제 삼는 SK나 롯데와의 문제 역시 앞서 다른 기업들과의 사례와 비슷하다. 검찰은 2016년 2월 내가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호텔 면세점 특허 재심사에서 탈락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나 면세점 특허 갱신과 동생 최재원 SK 부회장의 가석방 청탁을 받으면서 K스포츠재단의 가이드러너 지원 사업, 해외 전지훈련 지원 사업 명목으로 89억원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의 진상은 이렇다. 나는 2016년 2월 16일 청와대 안가에서 최 회장을 만나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SK는 대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돕고 있었는데, 스마트팜 등 좋은 아이디어로 센터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고 나중에는 세종 창조경제혁신센터까지 맡았다. 이날도 최 회장이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내놓아 나는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에게 연락해 면담 중간에 동석시킨 뒤 최 회장의 이야기를 참고하도록 했다. 그러던 와중에 안 수석에게 SK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111억원을 출연했다는 말을 듣고 감사를 전했을 뿐이다.
그리고 최 회장이 워낙 아이디어가 많고 추진력이 뛰어나니 시각장애인을 돕는 가이드러너 사업에 SK처럼 대기업이 도와주면 참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89억원에 대한 언급은 꺼낸 적이 없다. 가이드러너 사업은 K스포츠재단에서 진행하는 사업이었는데,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해 적극 추진하고 싶었다. 이 사업을 나에게 알려준 최서원 원장은 재단의 홍보 관계자를 통해 들었다고 이야기했는데, 좋은 취지의 사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SK 측에 제안한 것이지, 최서원 원장 측의 이권이 개입된 사안인 줄 알았다면 나는 절대로 거론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면담 당시 최 회장은 “동생(최재원 당시 SK 수석부회장)이 아직 못 나와서 조카들 볼 면목이 없다”며 수감 중이던 동생 얘기를 완곡하게 꺼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최 회장이 직접적으로 가석방을 언급한 적은 없고, 나 또한 최 회장의 얘기를 그냥 듣기만 했을 뿐 가석방에 대해 어떤 지시도 내린 적이 없다.
가이드러너 사업은 나중에 실무 진행 과정에서 SK그룹 담당자가 K스포츠재단 측이 요구한 금액이 너무 많아 난색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 K스포츠재단 측에서 처음 요구했던 89억원을 감액하고 절충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30억원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K스포츠재단에서 SK 관계자에게 자신들이 지원을 요구한 것은 없던 것으로 하자고 연락이 와서 없던 일로 된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검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그런 사실을 자세히 알게 되어 최 회장에게 가이드러너 이야기를 건넨 것을 뒤늦게 후회했지만, 내가 세심하게 살펴보지 못한 불찰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국민에게 거듭 죄송할 따름이다.
롯데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45억원을 출연하고 난 뒤 2016년 3월 14일 청와대 안가에서 신동빈 롯데 회장과의 독대 자리가 있었다. 여기서 내가 롯데의 면세점 신규 특허 취득을 대가로 K스포츠재단의 하남 체육시설 건립에 70억원을 추가 출연토록 강요했다는 검찰 주장도 나로서는 황당한 이야기다.
당시 내가 신 회장에게 하남 체육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금액을 말한 사실도 없고, 더욱이 면담 중에 신 회장으로부터 면세점 관련 청탁을 받거나 다른 어떤 청탁을 받은 적이 없다. 신 회장도 내게 기업 관련 부탁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당시 신 회장과는 고용 창출 문제와 평창 동계올림픽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 롯데가 추가로 K스포츠재단에 건넨 돈이 70억원이고 기업에 너무 많은 부담을 주는 것 같다는 말을 전해 듣고, 이를 철회시키라고 안 수석에게 지시한 것으로 기억한다.
■“재판부에 대한 믿음,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결론”
어쨌든 이 문제는 기존 재판에서 다뤄지고 있었음에도 검찰이 구속영장에 빠져 있었다는 이유로 이 두 건을 추가해 구속영장을 다시 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변호인단은 검찰의 추가 구속영장 청구는 다른 공소사실 재판을 위한 “별건 구속”이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10월 13일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영장 내용 중 SK그룹에 뇌물을 요구했다는 점에 대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최장 6개월간 구속이 연장됐다.
이로써 재판을 통해 결백함을 가려보고자 했던 나의 기대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 재판은 애초에 뇌물죄를 확정 짓기 위한 하나의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래서 나는 향후 재판에 불참하기로 결정했고 변호인단에 모두 사임을 요구했다.
10월 16일 재판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입장문을 읽었다.
"구속돼 주 4회씩 재판을 받은 지난 6개월은 참담하고 비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배신으로 되돌아왔고, 이로 인해 저는 모든 명예와 삶을 잃었습니다.
무엇보다 절 믿고 국가를 위해 헌신하시던 공직자들과 국가 경제를 위해 노력한 기업인들이 피고인으로 전락한 채 재판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참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염려해 주신 분들게 송구한 마음으로, 그리고 공정한 재판을 통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마음으로 담담히 견뎌 왔습니다. 사사로운 인연을 위해서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한 사실이 없다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믿음과, 법이 정한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심신의 고통을 인내했습니다.
저는 롯데, SK뿐만 아니라 재임 기간 그 누구로부터도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들어준 사실이 없습니다. 재판 과정에서도 해당 의혹은 사실이 아님이 충분히 밝혀졌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저에 대한 구속 기한이 끝나는 날이었으나 재판부는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13일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6개월 동안 수사하고, 법원은 다시 6개월 동안 재판했는데 다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는 결정을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변호인들은 물론 저 역시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변호인단은 사임의 의사를 전해 왔습니다. 이제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습니다.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저를 믿고 지지해 주시는 분들이 있고, 언젠가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합니다. 이 사건의 역사적 멍에와 책임은 제가 지고 가겠습니다. 모든 책임을 저에게 묻고, 저로 인해 법정에 선 공직자들과 기업인들에게는 관용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다 읽고 나자 법정은 고요해졌다. 재판부는 다소 놀란 듯 “잠시 휴정을 하겠습니다”라고 휴정을 선언했다. 나는 바로 법정에서 퇴장해 구치소로 돌아갔다. 이후 재판은 내가 불참한 궐석재판으로 진행됐다. 변호인단이 전원 사임해 국선변호인이 접견을 요청했지만 나는 모두 거절했다. 국선변호인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재판에 대한 불신 때문에 더 이상의 법적 절차가 의미가 없다고 본 것이다.
해가 바뀌었다. 2018년 2월 13일 최서원 원장이 1심에서 징역 20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접견을 온 유 변호사를 통해 들었다. 나는 ‘나도 비슷한 판결을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4월 6일 1심에서 첫 판결이 나왔는데 검찰이 제시한 18개 혐의 중 16개가 유죄로 인정되어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원이 선고됐다. 이는 나중에 대법원(2021년 1월 14일)에서 징역 20년, 벌금 180억원, 추징금 35억원으로 확정됐다.
사실 판결을 전해 들었을 때 징역이 30년이든 100년이든 어차피 나는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도 없었다. 어차피 최 원장과 나를 공동정범 으로 묶어서 뇌물죄를 만들려 했던 재판이니 말이다. 이것은 이 재판에서 건드릴 수 없는 원칙이 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항소도 포기했다.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재판정에서 진실을 가릴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역사의 법정에서 이 모든 것에 대한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믿는다.
출처 :: 중앙일보plus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7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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