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25(수)
르호보암은 그 성들을 요새로 만든 다음, 그 곳에 지휘관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음식과 기름과 포도주를 쌓아 두었습니다. (대하11:11)/레위 사람들은 목초지와 밭까지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으로 일하는 것을 여로보암과 그의 아들들이 막았기 때문입니다. (대하11:14)/이스라엘 모든 지파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섬기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레위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곤 했습니다. (대하11:16)/이 사람들은 유다 나라를 강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삼 년 동안, 도와 주었습니다. 그 삼 년 동안, 그들은 다윗과 솔로몬의 본을 받아서 살았습니다. (대하11:17)/
→ 음식과 기름과 포도주는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수요소인 듯합니다. 먹을 것이 있어야 살고, 기름(명예, 영광)도 있어야 보람이 있고, 포도주(기쁨)가 있어야 사는게 지루하지 않겠지요. 이런 것들을 갖추었기 때문에 유다가 안정이 되었나 봅니다. 거기에 더해 가장 중요한 것인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통해,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유다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유다를 강하게 해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생존은 음식과 명예와 기쁨에서, 강성한 삶은 하나님 중심에서 나오는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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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여, 약한 백성이 강한 백성과 맞서 싸울 때는, 오직 주께서 도와 주셔야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이 큰 군대와 맞서 싸웁니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도 주와 싸워서 이기지 못하도록 해 주십시오.” (대하14:11)/아사랴가 아사를 만나서 말했습니다. “아사 왕과 온 유다와 베냐민 백성은 내 말을 들으시오. 여러분이 여호와와 함께 있는 한, 여호와도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이오. 여러분이 주를 찾으면 찾을 수 있겠지만, 주를 버리면 주께서도 여러분을 버리실 것이오. (대하15:2)
→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법을 배웁니다. 내가 그들과 싸우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싸우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내가 완전히 하나님 편이 되어서 나를 공격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공격하는 사람이 되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밀착될수록 내가 하나님의 것이겠지요? 하나님께 따로 살지 않고 밀착되어 하나님과 뜻을 같이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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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의 아사 왕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왕은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아람 왕의 군대는 왕의 손에서 벗어났습니다. (대하16:7)/에티오피아 사람과 리비아 사람들에게는 크고 강한 군대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전차와 기마병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도우셔서 그들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대하16:8)/아사가 왕으로 있은 지 삼십구 년째 되던 해에 그의 발에 병이 났습니다. 그의 병은 아주 심한 병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사는 그렇게 아프면서도 여호와를 찾지 않고, 의사들만 찾았습니다. (대하16:12)/그래서 아사는 왕으로 있은 지 사십일 년째 되던 해에 죽었습니다. (대하16:13)/
→ 아사는 참 경건한 왕이었는데~, 어쩌다 말년에는 경건하지 못한 왕이 되었을까요? 아무래도 한 20년 동안 형통하다보니 그것이 자기의 지혜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0년 동안은 전쟁도 없이 평안히 지냈습니다. 일들이 잘 풀렸습니다. 어찌보면 기도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신뢰하게 만든 듯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또는 내 방법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아사를 봅니다. 경건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큰 승리를 경험한 사람이었는데요! 두렵습니다. 과거의 경험이 나를 지켜주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난이 없는 삶이 꼭 좋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차라리 조금씩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이 있어서 자꾸만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려움에 대해 내 방법으로 이리저리 조치하는 것을 조심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주님, 저를 깨우쳐 주셔서 자만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마련한 사람일 뿐입니다. 나는 무능한 사람일 뿐입니다. 나의 어려움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2024.9.26(목)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물리친 뒤에 자기 나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돌아오면서 에돔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가져와서 그것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 우상들에게 절을 하면서 제물도 바쳤습니다. (대하25:14)/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크게 노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한 예언자를 보내셨습니다. 그 예언자가 말했습니다. “왕은 어찌하여 그들의 신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까? 그 신들은 자기들의 백성조차 왕의 손에서 구해내지 못한 신들이 아닙니까?” (대하25:15)/유다 왕 아마샤가 신하들과 더불어 의논을 한 뒤에 예후의 손자요, 여호아하스의 아들인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말했습니다. “자, 한번 만나서 겨루어 보자.” (대하25:17)
→ '성공의 함정'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마샤는 하나님의 사람의 권면을 받아서 이스라엘 군대를 돌려보내고 독자적으로 에돔과 싸워서 승리했습니다. 그 승리가 그의 마음을 교만하게 하고 해이하게 만든 듯합니다. 돌려보낸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 백성이 노략 당하고 3천 명이나 죽었는데 그들을 위로하는 장면은 없고 에돔의 우상을 섬기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이스라엘과 싸움을 거는 아마샤입니다. 성공은 우리를 자만하게 만들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공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 영광을 자기가 취할 때에 교만해집니다. 그리고 그 교만은 자기를 망하게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을 봅니다. 슬픕니다. 그러면 성공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는지요? 성공을 추구하는 세상인데 성공이 또한 실패와 연결되다니~,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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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웃시야는 강해지면서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을 피우는 제단 위에서 직접 향을 피웠습니다. (대하26:16)/웃시야는 여호와의 성전 안에 있는 향을 피우는 제단 곁에 서 있었습니다. 손에는 향을 피우는 향로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사장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제사장들 앞에 서서 화를 낼 때에 그의 이마에 문둥병 이 생겨났습니다. (대하26:19)/그리하여 웃시야 왕은 죽을 때까지 그 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는 따로 떨어진 집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성전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왕의 아들 요담이 왕궁을 관리하며 그 땅의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대하26:21)/
→ 여기 '성공의 함정'에 빠진 사람을 하나 더 발견합니다. 또 슬픕니다! 사람들이 성공한 뒤에도 계속 겸손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윗처럼 늘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바울처럼 끝까지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 나는 작고 작은 자라'는 것을 인식하며 산다면 큰 성공의 사람일 텐데요~,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