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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영> |
결국 우리는 거인의 어깨를 탄 난쟁이일 뿐이다. 어린이 책과 문화 운동에서 큰 영향을 끼쳐온 이주영의 삶도 그러했다. 그에게는 먼저 이오덕 선생님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의 영향으로 공고를 갔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책만 열심히 읽었다. 그러다 김구의 『백범일지』를 보았고, 초등 교사가 되어 그 꿈을 이어가고자 했다. 현장에서 평화와 통일의 싹을 심겠노라 마음먹었던 것. 아버지도 교육자이신지라 그 길을 걸을 때 힘들 거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정작 학교 현장에 나오니 환멸에 빠졌다. 당시 서울 지역은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할 정도로 과밀학급이었고 그만큼 교육 환경이 열악했다. 그러다 보니 창의적인 수업은 꿈도 꾸지 못했다. 베끼기와 암기 위주의 수업이었다. 있던 책도 학교 지하 창고에 처박아 놓은 형편이었다. 촌지와 상납이 횡행했다. 획일적인 교단 문화와 체벌이 일상화된 현장에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70년대 후반의 일이다.
학교를 때려치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다 교대 후배를 만났는데 이오덕의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를 건네주었다. 책을 읽으며 내내 충격과 감동에 빠졌다. 나만 고민하는 게 아니구나, 시골 벽지에서 참교육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하는 선배 교사가 있구나 싶었다. 선생에게 편지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교사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라는 내용이었다. 대구로 한번 오라는 말도 덧붙여 있었다. 내려갔더니 마침 글쓰기 연수가 있었다. 아이들이 쓴 글을 읽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눈에 덮인 비늘이 벗기는 경험을 했다. 비로소 가야할 길을 보았다. 이오덕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첫걸음이었다.
선생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이들한테 배우는 사람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법이며, 아이들을 하늘처럼 섬겨야 한다고. 선생 덕에 야누슈 코르착이라는 폴란드 교육자를 알게 되었다. 나치가 폴란드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압송하던 날, 자신과 함께하던 200여 명의 고아들과 수용소 차량까지 행진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에게서 교육을 넘어 어린이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배웠다. 이오덕 선생한테는 교육 현실을 고민하는 교사들의 편지가 자주 왔다. 선생의 허락을 받아 보낸 이의 주소록을 만들어 ‘교사소식’이라는 글을 매달 보냈다. 곁들여 읽어볼 만한 책을 소개했다. 벽지에 사는 교사들이 책 좀 구해달라고 했다. 짬을 내 책을 사서 보내주었다. 어쩌다 보니, 독서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주영에게 두 번째 거인은 방정환이었다. 한번은 이오덕 선생이 잡지 「어린이」의 영인본을 내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출간 비용을 마련하려고 뜻있는 이들에게 선수금을 받았다. 그 덕에 「어린이」 읽기 모임을 열었다. 읽으면서 내내 충격을 받았다. 이런 이야기를 방정환이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게 창피했다. 방정환은 말했다.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말 것이며, 아이들을 앞세우고 어른은 뒤에서 쫓아가야 한다고. 기실 이오덕의 어린이 사상은 방정환에서 비롯했다. 일찌감치 꽃피웠던 그 선진적인 사고가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분단이 고착되면서 잊혔던 셈이다. 다시 살리고 다시 퍼트리고 다시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품게 되었다.
그 유명한 양서협동조합을 서울에서 만들어 활동했다. 그러다 부마사태 이후 양서협동조합을 요주의 대상으로 삼자 어린이도서연구회를 만들었다. 어린이 분야의 양서운동을 하면서 서울 양서협동조합도 유지하려는 복안이었다. 참교육을 펼치려는 뜻있는 교사들이 모여 YMCA초등교육회를 세웠는데, 이 단체는 나중에 전교조로 확대된다. 이오덕과 방정환의 정신을 삶과 교육 현장에 어떻게 하면 뿌리내릴까 고심하고 실천했다. 어린이책 문화나 초등교육의 민주화가 오늘만큼 이루어지는 데 밑거름이 된 삶이었다.
어린이 문화 단체를 결성해야 한다는 말은 1980년대 말부터 꾸준히 나왔다. 다양한 분야에서 꽃피우기 시작한 어린이 문화를 한데 아우를 필요가 있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논의만 하다 사그러 들었는데, 다시 불을 지핀 것은 보리출판사의 윤구병 대표다. 방정환 선생이 1920년에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는데, 이를 이을 새로운 잡지가 있어야겠고 다양한 어린이 문화 단체의 연대가 있어야겠다는 문제 제기였다. 잡지는 「개똥이네 놀이터」로 결과가 나왔는데, 연대 사업은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교직에서 퇴임하는 2010년 이주영이 총대를 멨다. 이오덕이라는 저수지에서 나온 물줄기가 너무 각자의 길로만 흘러가고 있었다. 모아서 더 큰 물줄기가 되어야 풍요롭게 할 수 있을 성싶었다. 어린이 문학, 놀이, 노래, 연극,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서로 연대하고 교류하는 ‘어린이문화연대’를 결성했다.
어린이문화연대가 추구하는 정신은 또렷하다. 어린이의 평등성을 높이 내세워 그 어떤 어린이도 억압받지 않는 세상을 꾸려 나가려 한다. 그리고 어린이는 문화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고 향유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리려 한다. 이주영은 앞으로 어린이 권리 운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말한다. 어린이는 어른들에게 크게 보면 세가지 영역에서 억압받아 왔다. 문화, 윤리, 정치 영역에서 말이다. 문화는 이제 어느 정도 억압이 해소되었지만 학벌 중심의 관점으로만 아이들을 교육하는 현실에서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육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앞으로 노동시장에서 학벌 중심이 깨지고, 노동시간을 줄여 삶에서 다양한 가능성이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문제를 어린이 권리 운동 차원에서 풀어나가겠다는 말이다.
다음으로는 정치 영역에서 펼치는 권리 운동이다. 어찌 보면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법으로 보면 18세까지 아동으로 되어 있는데, 19세인 선거권을 16세로 낮추고, 세대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이 연령대에서도 국회의원이 나오게 하자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지 않으면 어린이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다.
이주영의 주장은 현실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사회가 더 많은 민주주의를 누리려면 함께 고민해볼 만한 문제다.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산적한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그래서 이주영이 이끄는 어린이문화연대는 문화보다 권리에 방점을 찍고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조직도 정비해 운영위원장 중심으로 이끌어나갈 계획이다. 다시, 방정환과 이오덕의 어린이 사상이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리고 열매 맺는 길을 열어갈 거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권우_도서평론가,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저자 / 2018-02-01 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