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12 15:30:13
거제 경제를 떠받쳐 온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사업부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양대 조선소 대형 협력사들마저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어 지역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거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양대 조선소 협력사 중 대표적 우량기업으로 손꼽혔던 (주)건화를 비롯해 (주)장한 등이 최근 경영 위기에 내몰리며 자산 매각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자구책을 강구하거나 기업회생(법정관리)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얼마 전 유동성 위기를 겪어왔던 (주)한림정공은 이미 파산했다.
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양대 조선소 협력사협의회에 소속된 300여개의 중소기업들이 이번 조선경기 침체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청으로부터 단가 인하와 일거리가 줄면서 협력사들이 경영에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경기 회복을 기대하며 자구 노력에 나서고 있지만 어려움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주)장한, 기업회생절차 돌입···무리한 사업확장, 금융대출 등으로 위기 초래
- 대우에서 받은 석달치 기성금조차도 하도급업체에 지급 안 해
가장 ‘잘 나가는’ 기업 중 하나로 알려진 (주)장한이 지난달 27일 기업회생절차 개시에 들어가 지역경제에 상당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2011년 오비공단 공장 신축과 사업다각화를 통해 규모를 키워 왔던 장한은 수주물량 감소와 무리한 금융대출에 따른 자금압박으로 2013년부터 운영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3월부터 사내도급업체에 발행한 외상매출채권(장한이 하도급 업체에 현금 대신 전자채권으로 대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일종의 약속어음)을 만기일까지 갚지 못하자 지난 7월부터 금융기관의 지원이 사실상 중단됐다.
또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으로 부터 나온 6월~9월분 기성금 조차도 하도급업체에 지급하지 못하는 재정 파탄상태에 이르러 결국 지난 9월 25일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창원지방법원 제2파산부(부장판사 전대규)는 이를 받아들여 지난달 5일 ‘보전처분 및 포괄적 금지명령’을 발령하고 27일 기업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어 법원이 지난 9일 장이근 (주)장한 대표를 법정관리인으로 정식 선임함에 따라 장한기업 경영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법원은 (주)장한의 재무상태 및 자금상황을 점검하고 구조조정 등 회생절차를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장한은 기업회생절차 개시가 결정됨에 따라 일단 경영정상화를 위한 본격적인 회생 작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내년 3월까지 회생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법원의 실사 결과와 회생계획안 내용에 대한 채권자 동의를 거쳐 회생절차에 따라 정상화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이 장한의 계속영업가치가 청산가치에 비해 낮게 평가하거나 채권자의 동의를 받지 못하게 되면 이전 상태로 돌아가든지 임의 파산 절차가 진행된다. 따라서 향후 회생계획안 인가가 승인될 지 관심이 모이는 대목이다.
2차 협력업체들 줄도산 위기, “외상매출채권, 기성금 체불로 70여억원 손실”
(주)장한, “기업 정상화로 갚을 것”…채무총액 700억원 육박, 뚜렷한 대책은 없어
(주)장한의 기업회생절차 개시에 따라 일단 경영정상화를 위한 복격적인 회생작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지만 장한에 소속된 2차 협력업체들은 막대한 피해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적으로 (주)장한이 갚지 못한 채무 총액은 7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생절차 개시로 (주)장한이 은행으로부터 빌렸다 갚지 못한 600여억원은 은행권의 자체흡수가 가능하지만 협력업체는 70여억원 가량의 피해를 볼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물품대금 등 미지불 등에 따른 전체 채권자는 112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장한의 협력업체는 11개사로 업체당 채권액이 2억~10억 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력업체는 지난 3월부터 5월분까지의 노무비, 물품대금 등을 외상매출재권으로 지급받아 이를 담보로 경남은행으로부터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외담대)’을 받아 대부분 근로자 임금으로 지불했다. 이 과정에서 (주)장한이 발행한 30여억원의 채권이 만기일이 되는 발행후 60일까지 갚지 못해 협력업체가 고스란히 채권을 떠안게 됐다는 것이다.
이어 지난 6월부터 9월분까지 원청인 대우조선으로부터 나온 기성금 40여억원은 아예 지급되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주)장한 11개 협력업체는 대책위를 구성해 지난 9일부터 장한기업 정문 앞에서 체불된 대금 지급을 요구하며 집회와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협력업체 관계자는 “장한의 수주물량 거의 대부분의 생산을 협력업체에서 담당하고 있다."면서 "원청으로부터 받은 기성금만 해도 150여억원이다. 지난 7개월 동안 장한이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그동안 열심히 일한 협력업체에게 돌아가야 할 대금이 도대체 어디로 흘러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이어 그는 “장한이 현금 대신에 발행한 외담대 30여억원 조차 협력업체가 책임져야 한단다. 은행에서는 협력업체를 상대로 압류, 경매를 통고해 오고 있는 실정이라 정상적인 금융거래도 막혀 있는 처지”라며 “11개 협력업체 대부분이 6월부터 4개월 동안 소속 근로자들에게 임금도 지급하지 못해 줄도산 위기에 처해 있다”고 호소했다.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협력업체 대표들은 기업회생제도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했다. 기업회생절차가 진행되면 장한은 회사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영업을 계속할 수 있다. 장한기업은 정상화 기회를 엿볼 수 있으나 협력업체에게는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회생절차가 진행되는 시점부터는 협력업체가 정상적인 대금을 지급받을 수 있지만 그간 체불된 70여억원은 3년유예 10년거치 상환으로 받는데, 그나마도 10~30% 정도만 받게 된다는 것이다.
협력업체 A모 대표는 “장한이 당연히 지급해야 할 대금을 영세한 협력업체가 떠맡아 협력업체 대표들 대부분이 신용불량자 처지에 놓여 있다”며 “평균 5억원 정도의 빚을 갚으라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장한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에 대해 (주)장한 장이근 대표는 기본적으로 채권 변제에 대한 책임은 자신들에게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신속한 기업회생 절차를 추진하고 강력한 자구 노력을 통해 기업을 정상화시켜 무엇보다도 우선 협력업체의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협력업체 대표들과 협의자리에서 그동안 진행돼 왔던 기업운영 자금과 가족을 포함한 재산의 투명한 공개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또한 “법정관리가 시작되면서 자금운용은 은행권을 포함한 채권단과의 협의를 거쳐 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만큼 협력업체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장한이 독자적으로 내놓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협력업체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계속해서 찾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협력업체, 경영혁신, 전문품목 선정, 기술개발에 전념해야”···다양한 진단 나와
상공회의소 이정학 사무국장 “유동성 위기 해결 위해 자금 지원 필요”
이헌 교수. “외담대, 기업회생제도의 영세협력사 손실에 대한 제도 개선”지적
현재와 같은 위기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진단과 대안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주요 협력업체들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조선업종에 종사하는 한 협력업체 대표자는 “그동안 1차 협력사가 재하도급 업체에 생산 공정의 대부분을 맡겨 단가 후려치기 방식으로 쉽게 돈을 벌어왔다”고 지적하며 “기술개발과 투명하고 합리적인 기업 경영에 오로지 전념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자체 기술, 생산능력 이상의 영업 수주를 기대하며 금융대출 의존을 심화한 것이 ‘장한사태’를 불러온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번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몇 개의 기업들이 기업 경영에 전념하기 보다는 사업 외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리거나 무리하게 사업을 다각화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문제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또한 그는 “수주 물량의 감소와 함께 원청인 양대 조선소가 품질과 생산기한 등을 엄격히 적용하는 능률급 대금지급 방식을 요구하는 추세”라며 “기업차원에서 전문 품목을 선정하고 설계와 공정, 품질 등에 대한 기술개발에 집중하는 특화전략으로 경쟁력을 쌓아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공회의소 이정학 사무국장은 “대부분의 협력사들은 내년 하반기 이후 조선경기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원청에서 요구하는 단가가 계속 낮아지는 가운데 그야말로 내년까지 어렵게 버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이라며 ”무엇보다도 현재 유동성 한계에 봉착한 협력사들이 많다. 이들에 대해 정부와 거제시가 관심을 갖고 지원에 나서길 바란다“고 밝혔다.
거제경실련 정책위원장인 이헌 거제대 교수는 “대우 사내 협력사들의 경우 현금결재가 이뤄지고 있다."며 "사외 협력사들의 경우도 이 같은 원칙이 지켜졌다면 장한이 발행한 외상 채권에 대한 수수료도, 외담대 대출에 따른 손실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한 “외담대와 기업회생제도가 갖는 여러 공익적 장점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그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엉뚱하게도 협력업체가 돌이킬수 없는 피해를 보고 있다"며 "원청업체와 금융기관의 잘못된 결정과 도덕적 해이로 예담대와 기업회생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나아가 “국가산단 실수요자조합에 이들 일부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미래성장 동력이라고 불리는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에 대한 우려가 더욱 증대되고 현재와 같이 어려운 재무구조 아래에 있는 협력업체들이 실수요자로 참여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