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방유취 권1 / ○ 《세 가지 질병 원인론〔三因論〕》
무릇 사람은 천지(天地)의 음양(陰陽) 기운을 부여받아 태어난 존재이다. 하늘에는 육기(六氣)가 있으니, 사람은 삼음(三陰)과 삼양(三陽)으로써 위로 하늘을 받는다. 땅에는 오행(五行)이 있으니, 사람은 오장(五臟)과 오부(五腑)로써 아래로 땅에 호응한다. 이에 기대어 피육(皮肉)ㆍ근골(筋骨)ㆍ정수(精髓)ㆍ혈맥(血脈)ㆍ사지(四肢)ㆍ구규(九竅)ㆍ모발(毛髮)ㆍ치아(齒牙)ㆍ순설(唇舌)이 생겨나니, 이것이 총합되어 몸을 이룬다.
몸 바깥으로는 기혈(氣血)이 순환하면서 경락(經絡)을 순행하고, 육음(六淫)에 쉽게 상한다. 몸안으로는 정(精)ㆍ신(神)ㆍ혼(魂)ㆍ백(魄)ㆍ지(志)ㆍ의(意)ㆍ사(思)가 있으니, 칠정(七情)에 따라 쉽게 상한다. 육음이란 한(寒)ㆍ서(暑)ㆍ조(燥)ㆍ습(濕)ㆍ풍(風)ㆍ열(熱)이 이것이다. 칠정이란 희(喜)ㆍ노(怒)ㆍ우(憂)ㆍ사(思)ㆍ비(悲)ㆍ공(恐)ㆍ경(驚)이다. 만약 몸을 잘 보호하여 적절한 상태를 얻었다면 즐겁고 편안하겠지만, 사리에 어긋나게 몸을 함부로 부리면 온갖 질병〔百痾〕이 생긴다. 질병 진찰을 행한다면 모름지기 질병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교시(敎示)를 베푼 선대의 뛰어난 의학자들은 이것을 ‘병원(病源 질병 원인)’이라고 불렀다. 의경(醫經)에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하나로 귀결된다는 것〔極于 二者〕은 문진(問診)에 기반하여 획득하는 것이다. 방문을 닫아걸고 병자에게 집중하며 환자의 실정〔其經〕을 여러 차례 물어서 환자의 마음을 좇는다.” 이것은 질병을 일으킨 근본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육음(六淫)은 하늘의 항상적인 기〔常氣〕이지만, 여기에 접촉되면 질병이 먼저 경락(經絡)을 따라 유입되어 몸 안에서 장부(腑臟)와 결합하니, 질병의 종류가 외인(外因)이 된다. 칠정(七情)은 사람의 항상적인 감정〔常性〕이지만, 격동되면 질병이 먼저 장부(腑臟)에서 쌓여서 분출하면서 밖으로는 팔다리〔肢體〕에 그 모습을 드러내니, 질병의 종류가 내인(內因)이 된다. 그리고 굶주리거나 배불리 먹는 것, 소리 지르면서 기운을 손상시키는 것, 정신을 소모하면서 머리를 쓰는 것, 극도로 피곤하게 근력을 사용하는 것, 방사(房事)가 순리에 어긋난 것 내지는 짐승〔虎狼〕이나 독충(毒蟲)에게 물리는 것, 금창(金瘡)과 위절(踒折), 주오(疰忤)의 부착(附著), 눌리거나 물에 빠지는 일 등은 모두 항상적인 순리〔常理〕에서 어긋난 것이니, 질병의 종류가 불내외인(不內外因)이 된다.
《금궤요략(金匱要略)》〔金匱〕에서는 “다종다양한 질병이라도 3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라고 말한 바가 있다. 여기에 비추어 살펴보면 질병 원인이 모두 드러난다. 만약 치료하고자 한다면 그 유형을 잘 살피고 세 가지 원인에 따라 구별하는데, 간혹 내인과 외인이 동시에 합쳐지거나 육음(六淫)〔淫〕과 칠정(七情)〔情〕이 뒤섞인 경우도 있다. 질병 소재의 깊이를 자세히 살펴서 세 가지 원인설로 질병 원인을 단정한다. 그 연후에 여러 증상들을 함께 참조하면서, 그 질병 원인에 따라 치료하면 약물〔藥石〕ㆍ침(鍼)ㆍ쑥뜸〔艾〕 등이 모두 시술될 수 있다.
[주-C001] 삼인극일병증방론(三因極一病證方論) : 중국 송(宋)나라 진언(陳言)이 1174년에 지은 18권짜리 의서로서 원래 이름은 《삼인극일병원론수(三因極一病源論粹)》이다. 흔히 이 책은 《삼인극일병증방론(三因極一病證方論)》이라고 부르며, 《삼인방(三因方)》이라고 약칭한다. 총론을 비롯하여 내과, 외과, 부인과, 소아과 등의 임상 각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특징은 임상 분야를 삼인(三因)이라는 질병 원인과 연관시킨 데 있다. 즉 진언은 질병 원인[病因]을 외인(外因), 내인(內因), 불내외인(不內外因)으로 나누었다. 외인은 풍한서습조화(風寒暑濕燥火)라는 육음(六淫)이 정상적인 기운을 범하면서 경락을 통해 몸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고, 내인은 희노우사비공경(喜怒憂思悲恐驚)의 7가지 감정[七情]이 지나쳐서 장부에 질병을 야기하는 것이다. 불내외인은 내인이나 외인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써 굶주리거나 배부른 것, 고함을 질러 기를 상하는 것, 정신의 도량을 소진하는 것, 근력을 극히 피로하게 하는 것, 음양을 거스르는 것, 범ㆍ이리 같은 짐승 및 독충에 물린 것, 금창(金瘡)과 삔 것, 주오(疰忤)가 붙은 것, 죄를 지어 옥사하거나, 무거운 것에 눌리거나 물에 빠진 것 등등이다. 《삼인방》의 병인론은 후대 의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주-D001] 이(二) : 원문은 ‘이(二)’이지만 문맥상 ‘일(一)’의 오각(誤刻)으로 판단된다.
[주-D002] 질병을 …… 좇는다 : 이 문장과 관련하여 《황제내경소문(黃帝內經素問)》 〈이정변기론(移精變氣論)〉에서는 “기백이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하나로 귀결됩니다.’라고 하였다. 황제[帝]가 ‘하나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라고 물었다. 기백이 ‘하나란 문진(問診)에 기반하여 획득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황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오?’라고 물었다. 기백이 ‘방문을 닫아걸고 병자에게 집중하며 여러 차례 환자의 실정을 물어서 환자의 마음을 좇습니다. 그 정신을 얻은 사람은 번창하고 그 정신을 잃은 사람은 망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岐伯曰, 治之極於一. 帝曰, 何謂一. 岐伯曰, 一者, 因得之. 帝曰, 奈何. 岐伯曰, 閉戶塞牖, 繫之病者, 數問其情, 以從其意. 得神者昌, 失神者亡.]”라고 하였다.
[주-D003] 주오(疰忤) : 전염성이 있으며 오랫동안 앓게 되는 질병이다.
[주-D004] 다종다양한 …… 못한다 : 이 문장은 《금궤요략논주(金匱要略論註)》(사고전서본) 권11, 〈장부경락선후병맥증(臓腑經絡先後病脈證)〉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