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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시절 ‘정지용시집’에 매료/고서점 누비며 외국소설 섭렵
책을 읽고 읽은 책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이 직업이 되어 있다. 그래서 교실 밖에서 책얘기를 하게 되면 조금 멋쩍게 느껴진다. 음악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들라면 난처해질 것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빌려, "인간의 수수께끼" 가운데서 무엇을 빼고 무엇을 쳐든단 말인가.
어떤 심리학자에 따르면 사람은 열 살 이전에 친숙하던 풍경에 평생 끌린다고 한다. 유년기의 세계상봉 혹은 자연상봉은 이렇게 중요하다. 교양체험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형성기의 우연이란 필연의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무사 얘기 읽고 눈물 가난이란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고들 한다. 쓸 만한 생각이다. 그러나 자랑할 것도 못 된다. 우리 모두가 지금보다 말못하게 구차하고 어렵던 시절에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도무지 책이 없었다. 어린이를 위한 책이 특히 그러하였다. 따라서 천자문을 위시하여 내가 읽은 최초의 책은 교과서이다. 다달이 초사흘달을 향해 가시밭길을 걷게 해달라고 기원했고, 그 소원을 일찌감치 성취하여 젊어서 죽은 일본 무사의 얘기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 내 것 아닌 남의 불행을 위해 흘린 최초의 눈물이다(우리의 삶은 이렇게 속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데올로기에 속고 전쟁에 덧나고). 갑옷을 차려 입고 초사흘달을 향해 서 있는 어린 무사의 교과서 삽화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8.15 이후 한글을 깨치고나서 처음으로 읽은 것이 김동인의 <붉은 산>이었다. 요즘 부활한 김성칠의 <조선역사>도 그때 읽은 책 가운데 하나다. 수업시간에 김동인의 <아기네>와 오기영의 <사슬이 풀린 뒤>(오기만이란 무명 공산주의자에 관한 아우의 회상록)를 읽어 주던 담임교사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이원수의 <종달새>, 박영종의 <초록별>이란 동요집과 <울지 않는종>을 비롯한 방정환 동화집을 읽었다. 방정환의 창작동화보다 번안동화가 재미있었다. 그중에서도 <하멜린의 피리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중학 1학년 때 정지용 시집을 읽게 되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황홀한 느낌이 들었으며 완전히 매료되었다. 누런 종이에 인쇄된 허술하기 짝이 없는 해방 뒤의 복간본이었지만 그 속에는 미지세계로의 통로가 내장되어 있었다. 그 뒤 우리의 근대시에 경도하게 되었다. "시는 내삶의 첫 정열"이라고 곧잘 말하는데 그 계기가 되어 준 것이 정지용이다.
생전에도 또 요즘에도 정지용은 기교파라는 폄훼를 받아왔다. 그러나 시란 말의 기교가 아니고 무엇인가? 예나 이제나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부족한 심미의식의 훼손에 부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은 지적해 두어야 할 사항이다.
<>평생 스승 토마스만 그의 시가 있음으로써 윤동주도, 청록파도, 유치환도 있을 수 있었다. 요즘의 기준으로 보면 범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의 무게를 증거해 준다. 뒷사람들이 그의 글결과 어휘구사를 본떴기 때문에 그것이 주류가 되어 상대적으로 그의 특색이 바래진 것이다.
이 시기에 읽은 것이 김동석의 <예술과 생활> <부르조아의 인간상>이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말로 된 지적 산문이 매우 희귀했던 터라 그의 명쾌하고 활달한 산문에 빠져들었다. 지금 읽어보면 피상적이고 경박한 필치이나 그때에는 그가 박식한 사상가로 생각되어 나 자신도 박식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뒷날 영문과를 선택한 것은 그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다. 아도르노가 14살 연장인 크라카우어와 함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은 나이에 겨우 김동석을 읽었고 곧 전쟁에 휩쓸렸던 것을 생각할 때면 경제.문화결정론의 유혹을 물리치기가 어렵다.
대학에 들어간 해 겨울방학에 가네트 부인의 영역본으로 <카라마조프의 형제>를 읽고 서양 근대소설의 세계로 빨려들어갔다는 것은 이미 여러 계제에 밝혔다. 기본도서도 구하기 힘들던 시절, 지금은 복개가 된 청계천변의 위태위태한 판잣집 고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것이 토마스 만의 영역본이었고 서머싯 몸의 소설이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싸구려 호주머니판이었다.
그때 이후 토마스 만은 나의 평생교사가 되었다. 몸의 작품은 읽기 쉽고 재미있어 거의 모두 구해 읽었다. 영어학습용으로도 안성맞춤인데 요즘 대학가에서 완전히 묵살당하고 있는것이 안타깝다. 봉창(호주머니)도 주먹도 텅텅 비어 있던 그 시절,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이들 "정신의 꿀꿀이죽"마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의 가정은 금물이라니 생각지 않아도 되겠다.
<>직업이 된 읽는 일 졸업논문을 내야 했을 때 올더스 헉슬리를 택했다. 그의책10권이 펭귄문고에 수록되어 한꺼번에 나와 일차자료 입수가 손쉬웠기 때문이다. 수상한 어학력으로 제대로 이해했을 리 없다. 그러나 에세이의 요소가 많은 그의 작품을 통해서 이것저것 "문학의 상식"을 입수할 수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상식만 가지고는 절대 안 되지만 상식마저 없으면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청년의 편향된 독서체험에 대해서 회의와 자기반성을 갖게 된 것은 학교를 나와서 한참 만의 일이다. 4.19와 5.16은 정치현실과 역사 진행에 대한 숱한 질문을 던져주었고 나름대로 그 대답을 모색하게 했다. 그러던 중에 마주친 것이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이다. 지금은 대학가의 필독서로 굳어 있지만 아는 이가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서 영화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관점으로 체계 있게 서술한 이 책에 관해선 딴 자리에서도 언급한 바 있어 되풀이하지 않겠다. 새로운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그걸 따라 그 책이 속해 있던 지적 계보를 더듬어도 보았다. 그러나 플로베르나 톨스토이에 관한 그 책의 분석과 같은 빛나는 부분이 의외로 우리 쪽에선 홀대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이 자리를 빌려 소중한 책을 빌려주었던 선배 홍사중씨에게 죄송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정중한 사례와 함께 돌려드린다 하면서 지금껏 돌려드리지 못하고 있다.
문학청년기를 끝내고 나서는 직업적인 필요도 곁들여져 많은 책과 접하였다. 그러나 직업적 필요에서 나온 책읽기는 "사랑의 노동"이기보다 직무수행의 하나다. 시와 음악과 산이 내 삶의 지속적인 정열이란 것을 덧붙이고 직업적 세목은 이쯤에서 덮어두기로 한다. <문학평론가.이화여대 교수> <>약력 <> 1935년 충북 진천 출생<>1957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영문과 졸업 <>89~90년 캘리포니아대학(샌디에이고) 객원연구원 <>92년 도쿄대학 객원연구원 <>저서로 <현실주의 상상력>(91년) <문학이란 무엇인가>(89년) <사회역사적 상상력>(87년) <동시대의 시와 진실>(82년) <비순수의선언>(62년)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