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불행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달려 있다.
“ 남들은 다 잘사는데 나만 이렇게 사는 그것 같아요. 하는 일마다 힘들고 잘 되지도 않고 남들은 놀러 가는데 나만 일을 해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만사가 귀찮아요. 해도 잘 안되고 직장에서는 좋은 소리도 못 듣고 매일 시키는 일만 하다가 오는데 집에서는 돈을 안 벌면 뭘 해서 먹고살 것이냐고 해요.”
살면서 우리 앞에는 준비라도 된 것처럼 해결해야 할 일들이 찾아온다. 기분 좋고 기대되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은 또 해야 하는 일이 무게로 느껴진다. 일이 잘 풀리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이러한 일들은 더 활기차게 만들어 일에 즐거움을 느끼게 하지만 잘 알고 있듯이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 빼고는 나머지 들은 압박하는 일들로 느껴진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처리해야 한다는 감정이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우리는 인생을 살며 만나게 되는 여러 일들은 기억하는 시간대에 따라 다르다. 기억하는 현재의 자신이 편하면 기억하는 것들 역시 좋은 기억을 더 많이 회상하고 현재 자신의 처지나 입장이 어려울 때는 더 비관적이고 불행한 시간의 일들로 연결하여 회상한다. 이러한 경향이 매일 반복하게 되면 이는 한 개인의 생활 습관으로 자리 잡으며 그 사람의 성격, 경향 도식화가 된다. 예를 들어 매일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기 삶에 대해 비관적인 사람은 무슨 좋은 일이 생겨도 감흥이 적고 유난히 부정적이고 힘들었던 일에만 생각이 편향적으로 쏠리게 된다. 이러한 경향을 가진 사람은 실생활에서 좋은 일은 축소해서 생각하고 나쁜 일에는 과대 해석을 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 사람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 남들보다 더 많은 불행한 일을 겪는지 비교해보면 이는 유의미한 차이를 갖지 못한다. 다시 말해 누구나 인생 안에서 좋은 일 과 나쁜 일들이 늘 형제, 자매처럼 떨어지지 못하고 같이 움직인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우리가 할 일은 자신에게 찾아온 일들에 대해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개인적 삶의 선택이다. 위의 사례처럼 자신을 남과 비교하며 남들은 좋은 차에 좋은 사람들과 잘 사는 듯 보이지만 실제 그런지는 잘 모르는 상황에서 과도한 이상적 대상을 만들어 버리는 행동이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실제 완전하게 행복해 보일 것 같은 사람도 염려와 걱정,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 갈망하고 아쉬워하는 등 부족함에 대한 갈망이 있다. 상대의 실제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상화된 상대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은 가상 세계를 보는 것과 같다. 혹시 누군가가 당신의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며 이상화시켜 놨을 수도 있다. 당신은 말이 안 된다고 생 할지 모르지만, 실체를 모르는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 분이 나에게 선생님은 행복하시지요? 라고 묻는다. 그런 질문을 하는
그것은 무엇을 보고 그러는지를 묻자. 선생님은 결혼도 하셨고 아이도 있고 직장도 있으시고 돈도 벌잖아요라고 말했다. 이는 나의 행복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삶의 요소이다. 그 분은 결혼을 하고 싶고 돈도 벌고 아이도 낳고 싶은 당신의 바램이 그것을 이룬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행복할 것이라 단정하는 사고방식이다. 나는 행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데 말이다. 나의 상황은 한결같지 않아 행복 한 사람이다. 불행 한 사람이다. 정의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이유는 항상 상황은 변하고 나는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하는지에 따라 나의 마음이 편하고 안정되었는지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복한 순간보다 불행이 나에게 다가오고 위기가 왔을 때 내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갈 수 있는지에 대해 집중한다. 불행이 오지 않게 하려면 위기가 왔을 때 이를 잘 해결하거나 적응하는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 분석부터 해결책 마련까지가 문제가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해결해야만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남의 등에 숨겨나 남이 대신 한다면 다음에 어려움이 찾아와도 다시 도움을 청해야 하는 반복임으로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숙고하고 해결해감으로 불행의 크기를 조절하는 주체가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