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매일
나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독일에서 유학할당시, 그리고 최근 1년간 교환교수로 독일에서 생활할 때 특히 그곳의 청소년들을 유심히 살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독일의 김나지움(우리나라의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합친 형태)은 13학년까지 있다. 보통수업은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이고, 학생들은 퇴교하여 수영이나 자전거를 즐기기도 하고, 부족한 과목을 혼자 보충하기도 하며, 학생에 따라서는 음악이나 미술 등 취미 생활에 몰두하기도 한다.
독일의 청소년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무엇보다도 대화를 중요시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대화라기보다 오히려 토론이라고 하느ㅓ 편이 나을 것이다.
유치원 아이들과 며칠을 같이 지낸 적이 있다. 물론 어른들이 계획표를 짜기는 하지만, 유치원 아이들이 철저히 자신의 계획에 맞추어 생활하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 7시에 기상하여 침구를 정리하고 30분간 숲 속을 뛰기. 8시부터 식사. 물론 아침 준비는 어른들이 하지만, 접시나 빵 그리고 우유 등을 나르는 것은 아이들이 하고 설거지도 아이들이 한다. 9시부터 10시까지 놀이와 노래. 10시부터 11시까지 토론. 토론의 주제는 "부모가 우리를 때렸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엿다. 어린 아이들이 어쩌면 저렇게 당당하게 온갖 근거를 끌어다 대며 지러있게 토론할까 하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 먼 독일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들의 청소년을 말하기 위해서 끌어냈을 뿐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불쌍하다. 그들은 쓸데없이 시달리기 때문에 불쌍하다. 그들은 소처럼 강요당하기 때문에 불쌍하다. 그들은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이 불안하기에 불쌍하다.
현대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매일을 살아가는 인간의 특징을 일컬어 일상성이라고 하였다. 일상성의 특징의 반복과 호기심 그리고 지껄임과 불안이다. 일상성은 곧 무의미함이다. 일상성은 다시 말해서 지루함이다.
현대의 실존철학자 야스퍼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무의미함과 지루함은 좌절과 절망에서 절정에 달한다.
부모로부터 그리고 학교의 선생님들로부터 반복해서 들려오는 소리 "공부해라!"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지루함과 무의미함을 넘어서 좌절을 맛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