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사무실에 큰 박스가 배달됐습니다.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제주모임' 허중웅 대표님께서 보낸 서명용지 박스입니다.
허 대표님은 고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하신 분으로, 현재는 울산에 살고 계시는 김중곤(86)어르신을 통해 근로정신대 문제를 접하게 됐다고 합니다. 김중곤 어르신께서 제주도에 살고 계실때의 일입니다. 김중곤 어르신은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고 김순례. 1944년 12월 7일 도난카이 대지진에 희생)이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희생을 당한 피해자의 유족(고 김순례의 오빠)입니다. 고 김순례는 광주 수창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일본에 끌려갔다가 지진에 건물더미에 깔려 희생된 광주전남 출신 6명의 희생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다카하시 회장 등 '나고야 소송 지원회'와의 교류를 통해, 어려운 가운데서도 제주 모임을 만드시기로 작정하셨고, 아직 일본에서 소송이 끝나지 않던 시기에 몇 차례 할머니들과 동행해 재판 현장도 직접 찾아가시고, 몇 년전에는 제주도에서 2만명이 넘는 서명을 도민들로부터 받아 재판부와 미쓰비시중공업에 전달한 바도 있습니다. 말이 2만명이지, 제주도에서 2만여명의 서명을 받기 위해 들인 수고는 이루 말로 다 못합니다.
이 일은 모두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만들어지기 전의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광주전남지역에서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인데도, 이때까지 광주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고, 김중곤 어르신을 통해 제주도에서 나고야 소송 지원회에 힘을 싣어 오던 상황이었던 거죠. 김중곤 어르신이 몇 년전 아들 내외가 있는 울산으로 이사를 가면서 제주모임은 활동이 침체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고야 소송 지원회와의 교류와 우정은 지금도 아주 끈끈합니다.
허중웅 회장님께 서명운동을 말씀 드린 것은 지난 5월 중으로 기억됩니다. 늦어도 한 참 늦은 셈이죠.
그런데 이때는 한 참 선거기간이라 여간 어려움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부탁할 사람도 없고, 그럴 분위기도 아니고... 그래서 본인이 더 발로 뛰셨던 모양입니다.
10여일 전 쯤 5,000명을 넘었다고 할때,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더 시간이 없어 못했다며 1만3천명분을 보내실거라는 전화였습니다. 1만3,520명.
1천명 단위로 더 손댈 것도 없이 아주 세심히 철끈으로 묶어주시고, 중고등학생, 대학생, 일반인등 구분까지 대략 하셨습니다. 그것도 서명용지 칸에 단 한명 덜 채워진게 없습니다.
학생들이야 어떻게 주변분들의 도움을 청했다고 하더라도, 일반인과 대학생들은 어떻게 서명을 받았는지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감사 문자 한번 보내 주세요.(016-9838-7748)
이날 사무실에 전국에서 도착한 서명용지들입니다.
카페에 올리는 데만 3시간째입니다.
정말 시민들 무섭군요.
첫댓글 대단하시네요.. 이로써 10만 서명이 완료 된듯 하군요.. 초과달성!
회장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허중웅 선생님! 얼굴 한번 꼭 뵙고 싶습니다.
마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전대, 조대 후문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았을 때
얼마나 힘이 들고 기운이 빠지던지요.
그 일을 떠올려보면 '선생님이 발품을 얼마나 들었을까'
감히 상상을 못하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