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인수가 ‘봄비’를 불렀었다. 봄비 오는 날이
면 촉촉하게 마음 자락을 적시며 속까지 파고드는 노래다. 70년대에 유행한 그 노래와 가수를 기억하는 어느 신문사 논설위원의 글을 단숨에 주욱 읽어 내렸다. 반가워서다. 마치 낯선 길에서 아는 사람과 조우한 기분이랄까.
잠깐 추억에 젖어 본다.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봄비 나를 울려 주는 봄비.’ 흑인 가수보다 더 솔(Soul music)을 잘 부른다는 찬사를 받았던 박인수는 한국 최초의 ‘솔’ 가수라고 한다. 데뷔곡이기도 한 ‘봄비’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그가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 창밖에 봄비가 내린다.
오랜만에 봄비가 내린다. 하염없이 젖어 보고픈 박인수의 그 잔잔한 봄비가 아니라, 첫사랑에 속살속살 주고받는 연애편지 같은 비가 아니라, 가물었던 대지를 흠뻑 적시고도 남을 빗줄기다. 봄비 치고 바람까지 동반한 세찬 빗소리를 가뿐한 음표로 집 안에 들여놓는 나는, 컴퓨터 앞에서 짝사랑 놀음에 한창이다. 비 오는 날엔 왜 술도 영화도 아니고 하필 접어 두었던 글 향이 당기는지, 그렇다고 대단한 문사이기나 한가. 제바람에 끌려서 하는 짓이며 시시때때로 애태우는 놀음이다,
우산 위로, 받는 빗소리가 좋아 무작정 길을 나서던 시절은 하마 간곳없다. 찰랑대는 감성은 잦아들었고 비만 오면 느닷없이 찾아올 나를 기다린다던 그때의 친구도 감감하다. 하지만 실내에서 듣는 빗소리가 더없이 청아하다. 외짝사랑이라 한들, 목 휘어지게 치어다보는 ‘글 바라기’ 가 좋은 이유도, 굳이 따져서 무엇 하랴. 현재를 정성스럽게 사는 것이 삶이라고 한다. 지금은 환한 벚꽃이 봄비에 다 질까봐 향긋한 꽃 봄이 훅 가버릴까 봐 마음 졸인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한 문우의 갑작스런 부고를 읽고 만다. 쿵, 가슴이 내려앉는다.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등단할 때부터 십수 년을 보아 온 선배 수필가 아닌가. 지난가을에 문학상을, 수상하시던 모습이 생생하고 연말 문학 행사에서도 보았지만, 내일이 발인이란다. 이런 땐 산다는 것이 공허하다. 여태 연연했던 그와 수필과의, 짧지 않은 시간도 이젠 세월 속에 묻히려나. 빗소리가 절정으로 치닫는다. 주룩주룩, 비는 직선으로 뛰어내리고 나는 머리라도 찧은 듯 멍하니 앉아 있다.
꽃들이 지나 보다. 속절없이 지나 보다. 꽃이 지면 꽃비가 될까. 숨차게 내리는 저 비, 오늘의 비를 ‘비우(悲雨)’라고 해야 하나. 그런 제목의 슬픈 영화가 있었지. 휙휙 바람을 타고 사선으로 날아온 빗줄기가 베란다 창에, 부딪쳐 영화의 엔딩 자막처럼 흐른다. 비, 비, 비, 봄비에 흩어지는 꽃잎의 평화를 빌며 나는 한참을 생각한다. 구차하게 살지 말자… 살아 있는 것들을 사랑하자… 시간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구순을 맞은 노인이 86세의 부인을 보내는 길 위에 서 있다. 얼마 전 방송에서 보여준 정치인 jp의 근황은 그렇게 조문객을 맞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데 조문을 간 정계 인사들이 휠체어에 앉은 노(老)정객의 조언을 듣는 상황으로 역전되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 짧고 굵게 사는 것이 1인자의 삶이라면 2인자로 살아남는 묘수를 제대로 길게 보여준, 한국 정치사의 주요 인물이다. 그의 말이 꽂혔다. “미운 놈보다 오래 사는 게 승자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90이 되니 미워할 사람이 없더라.” 그 말이 액면 그대로일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혹 있지만, 누구든 시간의 끝점에 선다면 그런 평심(平心)이지 않을까.
유명 정치인이면서 외모도 걸출한 그였다. 그의 러브 스토리는 무슨 영화 속 이야기 같았다. 옛날 결혼 당시 신부에게 ‘한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에게(Once, only once and for one only)“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구절을 인용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그렇고, 그 구절처럼 한 번도 아내를 배신한 적 없다는 남편으로서 묵직한 사랑이 그러하다. 사후에도 마누라와 같은 자리에 누워야겠기에 국립묘지엔 가지 않겠노라고 했다는 어느 매체의 보도도 있었다. 노련한 정치가인 줄만 알았는데 가슴속에 애틋한 사랑을 품은 사람이었다니, 근사하고 낭만적인 남자로 다가온다. 인터뷰 중 기자에게 하던 한마디는 그가 정치인이기 전에 멋진 한 남자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예쁜 사람과 64년을 살았어.“
봄은 아무래도 사랑의 계절이다. 숱한 것들을 주고 앗아 가기도 하는 시간과 시간 사이일지라도, 봄은 부푼다. 복사꽃 톡톡 터지고 샛노란 개나리가 눈을 뜨는 봄날엔 꽃띠가 아니어도 마음이 달뜬다. 천지가 꽃향기로 가득할 즈음이면 아롱다롱한 꽃그늘 아래서, 세월도 다 버리고 풋 봄 같은 사랑을 하고프다. 아니 꽃불처럼 타다가 사위어도 좋을 절절한 사랑에 빠져 보고 싶다. 이 짧은 세상에 죽을 만치 애절한 사랑이면 또 어떠리. 대책 없는 내가 계절 속으로 말려들었다. 더이상 아무 생각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비처럼 좍좍 울어 볼 수조차 없다.
봄비도 숨 고르기를 하는가 보다. 창밖의 빗줄기가 한풀 꺾인다. 조절 기능을 잃고 있는 여자를 다독여 보려는지 빗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진다. 생성과 소멸, 흥함과 쇠함은 마법의 시간과 더불어 연출해 놓은 신의 한 수이던가. 촉촉이 잦아드는 봄비, 어쩌면 추억과 슬픔의 사랑이 교차하고,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비일 수도 있겠다. 짝사랑에 애 마른 나도 빗소리 따라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가슴 밑으로 흘려 보낸 눈물이 /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예뻐라 /… 봄비 내리는 모습은 예뻐라.‘* (고정희의 시 ’봄비‘)
누구에게 어떤 봄비이건 이 비가 그치면 더욱 완연해질 봄이다. 슬픔마저 빛날 찬란한 봄, 그 봄을 예약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봄비라도 내려 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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