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환씨에 의하면 "대한민국에서 박진광보다 노래 잘하는 사람있으면 나와봐라 " 할정도이다.
그는 한때 미사리에서 통기타 라이브카페도 했다.
그곳에서 차츰 사람들의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차츰 차츰 한두개씩 라이브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미사리 라이브 카페촌이 형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박진광은 미사리 라이브 카페의 산파 역활을 한것이다.
모래시계의 "백학" 그목소리의 주인공도 박진광이다.
경력 : MBC 드라마 영웅시대 OST '파도'
김범룡
출생 : 1960년 6월 3일
학력 : 충북대학교서양화과 학사
데뷔앨범 : 1985년 1집 앨범 [바람 바람 바람]
수상 : 1987년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 10대가수상
경력 : 1995년 그룹 녹색지대 매니저
김범룡 & 박진광 - 친구야
비바람 몰아치는 캄캄한 밤에 저 멀리 떠나버린 나의 친구야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하는지 너무도 그립구나 별들이 반짝이는 바다에 서면 밀려드는 파도같은 인생이구나 어디서 무얼하던 나의 친구야 너의 꿈 잊지마오
그늘진 니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우려마 저 하늘이 무너져도 우린 뭐든지 할 수가 있어
친구야 친구야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될게 친구야 친구야 사랑한다 나의 친구야
어릴 때 너는 내게 나의 형처럼 내 어깰 두드리며 날 지켜주었지 어디서 무얼하든 나의 친구야 너의 꿈 잊지마오
그늘진 니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우려마 저 하늘이 무너져도 우린 뭐든지 할 수가 있어
친구야 친구야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될게 친구야 친구야 영원한 나의 친구야
누구나 알고 있어 넌 쓰러지지 않는다는걸 너에겐 힘이 있어
친구야 친구야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될게 친구야 친구야 사랑한다 나의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영원한 나의 친구야
김범룡 & 박진광 - 친구야
▲ 김범룡과 박진광
ⓒ 이정근
우리는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을 가수라 부른다. 프로페셔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래를 못해도 가수로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율동과 얼굴이 받쳐주고 기획사의 작업이 있으면 뜨기 때문이다. 가요시장이 이러한 패턴으로 굳어진지 오래다. 진정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아쉬운 일이지만 현실이다.
이러한 추세를 거스르며 “가수는 가창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집하는 가수가 있다. 박진광이다. 왕년의 가요계 큰손 이종환이 사석에서 “진광이보다 더 노래 잘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 고 해” 라고 말할 만큼 그의 가창력 하나는 인정받은 실력파 가수다. 때문일까. 드라마 '영웅시대' OST '파도'가 그의 노래다. 그 박진광이 신곡을 들고 팬들 앞에 나타났다. 김범룡과 듀엣으로 부른 ‘친구야’다.
▲ 명동 ‘쉘부르’ 포스터
ⓒ 이정근
명동 ‘쉘부르’가 전성시대를 구가했던 70~80년대. 세상은 군부독재로 암울했다. 머리가 길면 ‘장발단속’ 이라는 이름으로 경찰서에 연행되고 치마 길이가 조금만 짧아도 경찰관 아저씨들이 숙녀의 허벅지에 잣대를 들이대던 시절이다. 주체할 수 없는 젊음을 간직한 젊은이들이 짓눌린 젊음을 청바지와 통기타에 발산하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에 ‘쉘부르’는 젊은이들의 아지트였다. 우리나라의 내 노라 하는 가수들은 ‘쉘부르’를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지금도 현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종환, 허참이 번갈아 DJ와 MC를 보고 양희은, 임성훈, 임창제, 장현, 전유성, 서수남과 하청일, 고영수, 김세환, 박상규, 박일남, 김훈과 트리퍼즈, 김패밀리 등이 활동했다.
지금은 ‘보아’를 키워 연예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이수만과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이름 모를 소녀’ ‘하얀 나비’의 김정호도 ‘쉘부르’에서 활동했다. ‘쉘부르’는 한국 청년음악의 산실이었다.
▲ 도시락을 뺏어먹으려고 싸우던 때가 그립다.
ⓒ 이정근
한국 통기타 음악의 메카로 자리매김 했던 ‘쉘부르’도 방송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외연 확대로 사양길을 걷는다. 그 마지막 열차에 탄 사람이 박진광이다. 음악이 좋아 무작정 상경했던 부산 머슴아가 ‘쉘부르 열차’에 승차하여 ‘이종환 사단’으로 출발했다. 그와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로서는 남궁옥분과 김재희 등이 있다.
레너드 코헨 (Leonard Norman Cohen)류의 그의 음악성은 방송의 주류 진입을 불허했고 그 또한 바보처럼 그의 창법을 고수했다. 기계적인 조작에 탄생한 음악은 진정한 음악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그가 홀연히 사라졌다. 그 시절 가수들이 다 그러했듯이 쪽방과 쓴 소주와 기타 하나로 신병하의 학림창악회에서 재즈에 몰입하고 있을 때 모두들 그가 가요계를 떠난 줄 알았다.
▲ 박진광
ⓒ 이정근
그가 미사리 ‘카페촌’에 나타났을 땐 하나의 사건이었다. 무명의 세월을 한숨과 너털웃음으로 보내던 그가 8년 동안 싸여있던 노래의 열정을 라이브기타의 현 떨림으로 토해낼 때 모두들 열광했다. 이 때 팬들이 붙여준 그의 별명이 ‘라이브의 황제’다. 하지만 진광의 전성시대도 잠간. IMF 파고가 밀려왔다.
박진광 그도 IMF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좌절과 절망의 시절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은 캄캄한 어둠의 세월이었다. 터널을 빠져나온 그가 동시대인들에게 노래한다. “넌 쓰러지지 않을 거야. 너에겐 힘이 있어”
▲ 목마를 태워주는 박진광과 김범룡
ⓒ 이정근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어느 순간 몰아닥친 IMF는 국가적인 재앙이었다. 97년 11월 16일 미셸 캉드쉬의 입국으로 국민들 모두가 ‘IMF 쓰나미’에 휩쓸렸다. 천직으로 생각했던 직장인들이 ‘사오정’과 ‘오륙도’가 되어 ‘명퇴’라는 이름으로 직장에서 내몰렸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신불자’와 ‘노숙자’로 전락했다. 모두에게 고통의 시작이었다. 고난의 행군을 강요했던 IMF도 10년차에 이르렀다. 어둡고 긴 IMF 터널을 빠져나온 사람도 있고 아직도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다.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살아가는 가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렇게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친구야 힘들지?”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 역시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힘 네, 희망이 있잖아” 라고 위로의 말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 있다. 가수 박진광이다.
▲ 친구야 희망이 있잖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희망을 얘기하는 김범룡과 박진광
ⓒ 이정근
비바람 몰아치는 캄캄한 밤에/저 멀리 떠나버린 나의 친구야/지금은 어디에서 뭘 하는지 너무도 그립구나./별들이 반짝이는 바다에 서면/밀려드는 파도 같은 인생이구나./어디서 무얼 하던 나의 친구야 너의 꿈 잃지 마오./그늘진 네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우려마/ 저 하늘이 무너져도 우린 뭐든지 할 수 있어.
김범룡이 지은 노랫말이 예사롭지 않다. 80년대 초. ‘바람 바람 바람’으로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김범룡도 IMF 직격탄을 맞아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듀엣 음반을 냈다. 일세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듀오 사이먼 엔 가펑클(Simon&Garfunkel)을 감히 넘보지는 못하지만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줄게” 라고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