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1559. 교회신문 > 제 1194호 산 위의 동네. 마5:14
인생을 살다 보면 항상 따듯한 봄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지도 않은 북풍한설을 만나기도 한다. 그해 봄은 내게 그런 시간이었다. 하루아침에 맞이하게 된 남편의 죽음은 내게 연습 없는 시련을 가져왔다. 아이들과 살아야겠단 생각에, 허겁지겁 구직란에 이름을 올리고 여기저기 일할 곳을 찾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거반 오십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때 시작하게 된 일이 건물 청소였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아침을 시작해야 하고 남들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더러운 일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그리 나쁘진 않았다. 무엇보다 마음껏 예배드릴 수 있어서 가장 좋았다.
처음 해보는 청소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몸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힘들었다. 이제껏 남편 그늘에서 그래도 나름 편하게 살다 더럽고 궂은일을 하려니 아마도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은 귀천이 있어서 하는 소리라 생각했다. 그런 소리에 예민했던 것을 보면 스스로를 무척이나 초라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누군가 “무슨 일 하세요?” 하고 물으면 선뜻 대답도 못한 채 주눅이 들곤 했었다. 설상가상으로 일했던 곳의 직원들 태도 또한 처음에는 좋지 못했다. 반말 섞인 거친 말투에, 위아래 없는 무례한 태도는 나를 더욱 비관하게 만들었다. 이리될 줄 모르고, 젊은 시절 안일하고 나태하게 산 자신이 참 한심했고, 잘못 산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는 생각에 자신이 무척이나 미웠다. 매일 하나님 앞에 눈물을 쏟아내곤 했었고, 그런 내게 주님은 늘 말없이 ‘네 일에 충성하라.’고만 하셨다.
주님이 주신 생각대로 살려 애쓰고 있을 무렵 그 사건이 터졌다. 총무부 차장님의 금목걸이가 사라진 것이다. 새로이 입사한 직원은 나뿐이었고, 당연한 듯 내가 의심받는 눈치였다. 목걸이를 보았냐고 직접 추궁을 받게 되었을 땐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억울하기도 했고 너무 비참하기도 해서 그동안 억눌러왔던 비관된 생각들이 마구 터져 올라왔다.
모든 의지가 꺾이는 기분이었다. 자연 나를 대하는 직원들의 냉기도 더해졌다. 그때도 울며불며 매달리는 내게 주님은 말없이 ‘네 일에 충성하라.’고만 하셨다.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오기가 생겼다. ‘난 그런 사람 아니란 걸 꼭 보여줄 거야.’라고 다짐했다. 결국 목걸이는 찾지 못했고 다음 날로 건물 이곳저곳에 보란 듯이 많은 CCTV가 설치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느리고도 빠르게 흘러 일 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무척이나 더웠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한 남자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내게 음료와 빵을 건넸다. “여사님, 쉬엄쉬엄하세요. 커피도 한 잔씩 하시면서요.” 하면서. 다음 날은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예쁘게 담긴 간식접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다. 그들은 어느샌가 변해있었다. ‘어이, 아줌마!’라고 부르던 호칭은 어느새 ‘여사님’으로 바뀌어 있었고, 무례하기 짝이 없던 그들의 반말은 어느새 공경어로 바뀌어 있었다.
무거운 걸 들고 지날 때면 들어주기도 하고, 휴가 다녀온 직원은 나를 위해 선물을 사오기도 했다. 어느새 나는 그들의 ‘동료’가 되어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동료애는 더욱 깊어져 내가 우연한 사고로 갈비뼈를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빛을 발했다. 다친 몸으로는 일을 할 수 없어 퇴직하려는 나를 위해, 두 달간의 휴가를 주기 위해 직원들은 나를 대신해 청소를 해주었다. 회사는 내게 휴식기간에 월급까지 지급해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무척이나 신기한 일이다. 그런 그들과 나는 신학공부를 위해 퇴직할 때까지 3년이란 시간을 함께 했다.
나는 그곳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배운 듯하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말이 아닌 진실이라는 것을 배운 것이다. 그들은 나의 묵묵히 일하는 모습에서 나에 대한 신뢰를 쌓았다. 그리고 애써 설득하려 하지 않아도 그들은 조용히 내게 설득되었다. 주님께서 왜 내게 ‘말없이 네 일에 충성하라.’고 하셨는지 이제는 안다.
이처럼 진실을 알리는 일은 명쾌한 논리로도 아니요 화려한 화술로도 아니다. 그저 성실하고 변함없는 모습을 통해서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드러난 산 위의 동네이고, 세상을 깨우는 빛이다(마5:14). 진실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눈에 비치는 우리 삶의 자세가 바로 설득이고 전도다. 때론 억울하기도 하고 버겁기도 하겠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에 충성하며 기다리자. 그러면 우리 등 뒤에 서 계신 분께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하여주신다.
박영임 생도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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