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체제론이란 무엇인가
월러스틴이 유명해진 것은 1974년에 제1권이 나왔고 그후 1980년대까지 모두 세 권이 출간된『 근대 세계 – 체제(Modern World – System) 』라는 책 때문이다. 이 책은 16 ~ 18세기 사이 세계 경제의 발전을 다루고 있는데, 나오자마자 근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했다는 높은 평가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원래 아프리카를 연구한 사회학자로 종속이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종속이론이란 1950 ~ 1960년대에 맑시즘(맑스주의. 공산주의의 한 갈래이자 원조 - 옮긴이 아사달. 아래 ‘옮긴이’)의 영향을 받아 라틴아메리카(중남미 – 옮긴이)에서 발전한 것으로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구조적인 지배 – 예속 관계를 밝히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려 한 이론이다.
그러므로 그가 아프리카를 연구한 것도 아프리카를 통해 20세기 후반 선진국과 제3세계 사이의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관계를 폭로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이 점에서 그는 성향이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연구를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누리 – 옮긴이)의 역사(갈마 – 옮긴이)로 확대했다. 오늘날 제3세계의 종속이 16세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450 ~ 1640년 시기(그는 이 시기를 ‘긴 16세기’라고 부른다)에 서유럽은 자본주의의 기초를 처음 확립했고, 그러면서 짧은 시간 내에 전 세계(온 누리 – 옮긴이)의 많은 지역들을 예속시켰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가 하나의 경제 틀로 묶인 것을 그는 ‘세계 – 체제’라고 부른다. 물론(말할 것도 없이, - 옮긴이) 그 중심부에 있는 것은 당연히 서유럽이다. 그 주위에 반(半)주변부, 또 그 바깥으로는 주변부가 둘러싸고 있으며 중심부와 반주변부/주변부 사이에는 착취와 예속 관계가 만들어진다. 오늘날 제3세계의 빈곤은 이 지역이 바로 수백 년 동안 중심부의 착취를 받아 온 주변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서유럽은 500년 전부터 지구상의 다른 어느 곳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상태에 있었고(상태였고, - 옮긴이) 지금도 그런 상태에 있다(상태다 – 옮긴이). 따라서 제3세계가 이런 강고한 예속 관계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접하는 제3세계 사람들이 신선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무엇인가 답답한 심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까닭 – 옮긴이)이다. 이는 그의 이론이 해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서양의 우월(뛰어남 – 옮긴이)을 역사적인 면에서 고정된 구조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월러스틴의 이론이 진보적 학자로서의 그의 명성과는 별개로 상당한 정도로 유럽중심주의적인 시각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세계 경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없다. 또 유럽 경제뿐만 아니라 아시아 경제에 대한 설명에도 문제가 많다(내가 볼 때는, 아프리카 경제를 설명하는 부분도 문제가 많다 – 옮긴이). 그래서 요즈음 특히 근대 초 아시아 경제의 새로운 연구와 관련해 비판을 받고 있다.
▶ 세계 – 체제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월러스틴이 사용하는 ‘세계 – 체제’라는 용어는 약간 설명이 필요하다. 그것에 ‘세계’라는 표현이 들어가기는 하나 전 세계를 모두 의미하는(뜻하는 – 옮긴이) 것은 아니다. (그것은 – 옮긴이) 한 국가(나라 – 옮긴이)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광역 경제를 의미한다. 즉, 상당히 넓은 일정 지역에서 독립적인 여러 국가들이 무역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그래서 이 경우 그는 꼭 중간(가운데 – 옮긴이)에 하이픈을 넣어 ‘세계 – 체제’라고 쓰고, 그렇지 않고 전 세계를 포괄하는 체제를 하이픈 없는 ‘세계체제’로 구분해서 쓴다. 16 ~ 18세기는 전 세계가 하나의 경제체제로 묶이기 이전이니 당연히 세계 – 체제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그는 ‘긴 16세기’에 유럽에서 최초로 자본주의적 세계 – 체제가 발전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15세기 말에 봉건 경제의 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유럽이 문제의 해결을 외부로의 팽창(예컨대, 아메리카/거북섬 정복 – 옮긴이)과 상업에서 찾았고 거기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즉, 아메리카로의 진출, 아시아 무역, 유럽 내부 무역의 증대가 그 결과이다.
그리하여 지역적인 노동 분업과 국가 사이의 힘의 차이에 의해 부등가교환(부등가교환이란 여러 조건에 의해 다른 노동량이 투입되는 상품이 같은 가격으로 교환됨에 따라 나타나는 불평등한 교환을 말한다. 기술이나 자본의 차이, 국가 힘의 차이가 그것을 가져온다. 바나나 한 트럭분과 대형 디지털 TV 한 대가 같은 가격에 팔릴 때, 바나나 생산에 훨씬 많은 인간의 노동력이 들어갈 것은 뻔하다. 이 경우 기술과 자본의 차이에 따라 노동력의 부등가교환이 나타나고 그에 따라 부가 가치가 낮은 상품을 생산하는 지역이 착취를 당하게 된다. 또 힘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에 대해 보호관세를 물리지 못하게 할 때에도 마찬가지 일이 나타난다)이 이루어지는 체제가 한 세기라는 짧은 동안에 만들어졌다. 그 결과 중심부, 주변부, 반주변부의 삼중적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북프랑스에는 강력한 국가와 가장 이익이 남는 경제활동, 가장 효과적인 노동 방식이 자리 잡았다. 그리하여 다른 지역에서 계속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거두어들임으로써 우월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라틴아메리카, 동유럽, 지중해 주변의 많은 지역으로 구성되는 주변부에서는 노예제나 농노제에 의해 비효율적이지만 싸게 생산되는 곡물/귀금속/원자재를 공급함으로써 중심부가 이익이 나는 활동에 특화하고 주변부를 가차 없이 수탈하도록 허용한다.
반주변부는 서/남유럽의 남은 지역과 중유럽, 영국령 북아메리카로 정치 구조나 경제활동, 노동 지배 양식에서 그 중간적인 형태이다. 스페인(에스파냐 – 옮긴이)은 중심부였다가 18세기에는 반주변부로 전락한다.
따라서 세 지역에서는 경제활동이나 노동 형태가 다 다르게 나타난다. 중심부에서는 공업과 특화된(특화한 – 옮긴이) 농업이 이루어지나, 주변부에서는 특용작물의 단일 경작이 나타난다. 이것은 담배, 설탕, 커피(분나 – 옮긴이), 면화 등 중심부에 팔기 위한 작물들이다. 여러 광산물(광산에서 캐내는 물질. 예를 들면 금이나 은이나 구리나 주석이나 아연이나 철이나 석탄 – 옮긴이)도 이에 포함된다. 또 중심부에는 숙련공의 임금노동과 자본주의적 차지농(借地農. 남의 땅을 빌려 쓰는 농부 – 옮긴이)이 나타나나 주변부에서는 노예제도나 강제 노동이 나타난다.
이 세 지역이 세계 – 체제로부터 받은 혜택도 각각 다르다. 주변부나 반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익이 흘러들어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도와주는 것이 중심부 국가들의 강력한 힘이다. 군사력을 포함한(비롯한 – 옮긴이) 이 중심부 국가의 권력을 월러스틴을 ‘헤게모니’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서유럽을 중심부로 16 ~ 18세기에 확립된 자본주의적 세계 – 체제는 1750년 이후의 산업혁명과 19세기의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며 확대되어, 19세기 말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포괄하는 말 그대로의 ‘세계체제’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