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로마서 강해 38번째 시간으로서 지지난 주에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선물을 받은 자의 의무”
賜物を受けた者の義務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자, 이 시점에서 우리 한 번 복습을 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神は彼らを祝福された。神は彼らに仰せられた。「生めよ。増えよ。地に満ちよ。地を従えよ。海の魚、空の鳥、地の上を這うすべての生き物を支配せよ。」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서 이 세상 모든 것, 땅을 정복하고 바다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지배하라,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무엇으로 세운 것이라고 말씀 드렸지요?
그렇습니다. 이는 단순히 이 땅의 주민으로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바다의 지배자 즉 왕으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이 왕위를 얻기 위해서 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사람이 왕위를 차지하기에 걸맞는 그 무엇인가를 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이는 마치 옛날 봉건시대 때를 생각하시면 되겠지요. 왕의 아들, 특별히 정실의 첫째 아들은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왕의 후계자,
세자로 임명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 아들이 자기가 왕의 아들로 태어나기 위해서 노력을 했나요? 첫째 아들로 태어나기 위해서 노력을
했나요?
아니요. 그가 한 노력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기 위해서 노력한 것도 없습니다. 첫째 아들로 태어나기 위해서
무슨 공부를 한 것도 아니요, 시험을 본 것도 아니에요.
그저 그는 자신의 노력 없이 왕의 첫 아들로 태어난 것 뿐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만으로, 그러니까 자기의 노력 없이 왕의
후계자, 세자로 책봉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에게 지음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셔서
그들을 지으시고,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이 세상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이는 그들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그들이 왕으로 세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 왕이라고 하는 자리를 내가 물려받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아무
일도 안하고 방에 틀어박혀서 왕관을 쓰고 거울만 보면서 와, 멋지네……그러고만 있어도 됩니까.
아닙니다. 이러면 안되지요.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왕으로서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왕에게
주어진 권한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 책임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을 하지 않아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권한은 빼앗기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에덴에서 왕노릇을 한 적이 있었나요?
창세기에 기록을 보십시오. 맨 처음에 아담을 보시면 그가 했던 왕노릇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9절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神である主は、その土地の土で、あらゆる野の獣とあらゆる空の鳥を形造って、人のところに連れて来られた。人がそれを何と呼ぶかをご覧になるためであった。人がそれを呼ぶと、何であれ、それがその生き物の名となった。
참으로 놀라운 권한 아닙니까. 일반적으로 이름을 붙이는 권리, 즉 명명권이라고 하는 권리는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사람에 대한 명명권은 원칙적으로 부모에게 주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모든 생물을 만드시고는, 부모에게 주어진 특별한 권리인 명명권을 아담에게 행사하도록 하십니다. 이는
그야말로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셨던 권한마저도 아담에게 주셨다고 하는 놀라운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와는 어떻습니까.
창세기 2장 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それゆえ、男は父と母を離れ、その妻と結ばれ、ふたりは一体となるのである。
부부는 한 몸입니다. 아담에게 이와 같은 권한이 있었다면 이와 같은 권한은 하와도 가지고 있었다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와도
아담과 함께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면서 이 땅을 다스려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디 한 번 회사 이야기를 해볼까요?
어느 회사에 사장님과 부장님과 부하직원이 있습니다.
부장님은 편의상 홍씨라고 합시다. 회장님이 홍 부장한테 말씀하십니다.
“이봐 홍 부장, 내가 자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권한을 주겠네. 자, 여기 내가 가지고 있는 도장이야. 이것도 내가 줄게.
그러니까 이걸 가지고 부하직원들도 잘 관리하고 이 회사를 잘 운영해보게.”
그러면서 사장님은 말을 잇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무엇을 해도 다 좋지만, 다만 저기 저 땅, 저 자그마한 땅만은 절대로 팔지 말게. 만약에 저 자그마한 땅을
팔았다가는 내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사장님이 말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부하직원이 홍 부장한테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부장님, 저기
자그마한 땅, 팔면 어떠세요?” 그러니까 홍 부장이 하는 말이, “아니야. 저건 사장님이 팔지 말라고 했어.”
그러자 이 부하직원이 말합니다. 아이구 부장님도 참 순진하시지. 저건 지금 팔아야 돼요. 그래야 제값을 받는다니까요. 저걸
팔면요. 홍 부장님이 이제 사장님으로 승진하실 수가 있다고요. 사장님이 왜 저 땅을 부장님더러 팔지 말라는 줄 아세요? 부장님이
자기를 밀어내고 사장님이 되실까봐 그게 무서워서 그런 거라니까요?
만약에 이랬다면 홍 부장님은 어떻게 해야 했겠습니까. 이봐. 네가 뭔데 지금 사장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나더러 하라는 거야?
이런 건방진 놈을 봤나. 당장 나가! 모가지야! 뭐, 이래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홍 부장님, 그 땅을 보니까 어때요? 예, 정말 부하직원이 한 말처럼 그걸 팔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사장님이 팔지
말라고 한 건 알고 있는데, 저걸 팔면 정말 내가 사장님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예, 사장님이 물려주신 도장을 가지고 그 자그마한 땅을 낼름 팔아버렸습니다.
그러면 사장님이 그 사실을 모를 것 같으십니까. 아니요, 알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사장님은 분명히 홍 부장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권한을 넘겨주시는 대신에 저 자그마한 땅만은 팔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명령을 어겼어요.
사장님은 그 땅이 아까웠던 것이 아닙니다. 그 땅을 팔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명령을 했기 때문에 안 팔았다면, 그것만으로
내 명령을 순종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팔아버렸어요. 이는 용납할 수가 없지요. 당장 홍 부장은 그
모든 것들을 빼앗기고 빈털터리로 회사를 쫓겨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홍 부장, 잘못이 무엇이었습니까. 홍 부장이 해야할 일은 사장님의 말씀을 따라서 회사를 운영하고, 그리고 부하직원들을 지휘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부하직원의 말을 듣고 사장님을 배신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세상 짐승들을 다스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기들이 다스려야 하는 짐승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해버린 것입니다.
이는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크나큰 선물을 발길로 걷어차버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사랑으로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더라도 이처럼 주는 사람을 무시하게 된다면 어찌 그 선물이 자기 것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된다면 그 선물은 빼앗기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시면 가인과 아벨이 등장합니다.
창세기 4장 1절~5절까지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4장 1절~5절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人は、その妻エバを知った。彼女は身ごもってカインを産み、「私は、主によって一人の男子を得た」と言った。
彼女はまた、その弟アベルを産んだ。アベルは羊を飼う者となり、カインは大地を耕す者となった。
しばらく時が過ぎて、カインは大地の実りを主へのささげ物として持って来た。
アベルもまた、自分の羊の初子の中から、肥えたものを持って来た。主はアベルとそのささげ物に目を留められた。
しかし、カインとそのささげ物には目を留められなかった。それでカインは激しく怒り、顔を伏せた。
가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의 자녀였습니다. 가인은 형이었고 아벨은 동생이었지요.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은 아벨에게 시기를 느낍니다. 분노를 느낍니다. 증오를 느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보시고 가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4장 6절~7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主はカインに言われた。「なぜ、あなたは怒っているのか。なぜ顔を伏せているのか。
もしあなたが良いことをしているのなら、受け入れられる。しかし、もし良いことをしていないのであれば、戸口で罪が待ち伏せている。罪はあなたを恋い慕うが、あなたはそれを治めなければならない。」
하나님께서는 끔찍한 죄를 지으려는 가인에게 황급히 말씀하십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罪はあなたを恋い慕うが、あなたはそれを治めなければならない。」
그러나 가인은 결국 아벨을 죽이게 되고 맙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5장 17절
“17.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もし一人の違反により、一人によって死が支配するようになったのなら、なおさらのこと、恵みと義の賜物をあふれるばかり受けている人たちは、一人の人イエス・キリストにより、いのちにあって支配するようになるのです。
오늘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바로 ‘왕노릇’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왕노릇’이라고 하는 말은 다시 말해서 ‘다스리는 것’
‘통치하는 것’, ‘지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이 세상을 모두 주셨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왕노릇 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왕노릇을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라는 말에 넘어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처럼 철저하게 버림을 받게 되고 말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왕노릇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우리는 오해하면 안 되겠습니다. 왕노릇을 해야 하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아니면
우리 이웃들에게, 이봐. 이것 가져와, 저것 가져와. 이거 해, 저거 해. 왜냐고? 나 이제부터 왕노릇 하기로 했어…….
이게 올바른 일입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왕으로 세워 주셨지만, 그렇다고
우리 이웃의 왕으로 세워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무엇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벨을 다스리라고 하셨나요? 아담과 하와를 다스리라고 하셨나요?
아닙니다.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대해서 왕노릇 하여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죄에 대해서
왕노릇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에 대해서 왕노릇 하여야 하겠습니까. 마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7장 21절~23절
“21.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内側から、すなわち人の心の中から、悪い考えが出て来ます。淫らな行い、盗み、殺人、
姦淫、貪欲、悪行、欺き、好色、ねたみ、ののしり、高慢、愚かさで、
これらの悪は、みな内側から出て来て、人を汚すのです。」
우리 속에서 탐욕이 끓어오릅니까. 증오나 교만 같은 것들이 우리 마음 속에서 나옵니까. 그것은 악한 것입니다.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우리를 더럽게 하는 모든 죄에 대하여 왕노릇 하여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와가 마귀에게 속아넘어가기 전의 모습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창세기 3장 1절~5절
1.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さて蛇は、神である主が造られた野の生き物のうちで、ほかのどれよりも賢かった。蛇は女に言った。「園の木のどれからも食べてはならないと、神は本当に言われたのですか。」
女は蛇に言った。「私たちは園の木の実を食べてもよいのです。
しかし、園の中央にある木の実については、『あなたがたは、それを食べてはならない。それに触れてもいけない。あなたがたが死ぬといけないからだ』と神は仰せられました。」
すると、蛇は女に言った。「あなたがたは決して死にません。
それを食べるそのとき、目が開かれて、あなたがたが神のようになって善悪を知る者となることを、神は知っているのです。」
뱀의 모습으로 둔갑해서 나타난 마귀의 이 말은 분명히 잘못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냐 하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 시점에서 하와가 왕노릇을 제대로 했다면 어떻게 말했어야 했습니까.
“야, 뱀! 너 입 닥쳐! 저리 꺼져!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어!”
이처럼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게 죄에 대한 진정한 왕노릇 아니겠습니까.
하와는 충분히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강하게 나와야 했는데, 하와는 어떻게 했습니까.
창세기 3장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そこで、女が見ると、その木は食べるのに良さそうで、目に慕わしく、またその木は賢くしてくれそうで好ましかった。それで、女はその実を取って食べ、ともにいた夫にも与えたので、夫も食べた。
그들은 이와 같은 말에 왕노릇 한 것이 아니라, 귀가 솔깃해서 결국 죄악에 빠져버리고는 왕으로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축복을
빼앗겨버리고 에덴 바깥으로 쫓겨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그 권한을 빼앗겨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죄인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에 대해서 왕노릇을 하지 못하게 되면, 내 눈이 죄에 의해 가려져서
내 죄악이 마치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느껴지고 마는 것입니다.
目に慕わしく、また賢くしてくれそうに見えてしまうのです。
우리는 죄에 대해서 왕노릇 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질병에 대해서도 왕노릇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 앞길을 가로막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왕노릇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이사야 53장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しかし、彼は私たちの背きのために刺され、私たちの咎のために砕かれたのだ。彼への懲らしめが私たちに平安をもたらし、その打ち傷のゆえに、私たちは癒やされた。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찔림(刺され)을 당하신 것은 예수님에게 허물(背き)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상함(砕かれた)을 당하신 것은 예수님에게 죄악(咎)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모두가 다 우리의 허물(背き), 우리의 죄악(咎)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징계(懲らしめ)를 받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채찍에 맞으셨던 것입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세상 문제들 때문에 고통 받지 않습니다. 더 이상 질병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징계를 받아 주시고 채찍에 맞아 주심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완전하게 회복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왕노릇 할 수 있고, 이제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질병들에 대해서도 왕노릇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탐욕이 너를 원하나 너는 탐욕을 다스릴지니라.”
“교만이 너를 원하나 너는 교만을 다스릴지니라.”
“질병이 너를 원하나 너는 질병을 다스릴지니라.”
“이 세상 문제들이 너를 원하나 너는 이 세상 문제들을 다스릴지니라.”
罪はあなたを恋い慕うが、あなたはそれを治めなければならない。」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자의 의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더럽히는 죄악들에게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죄악들을 향해 왕노릇을 하면서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질병과 모든 문제에 대해서도 왕노릇을 하면서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순종의 회복이라는 선물로 말미암아, 질병이 치료 받고 크나큰 평화를 누리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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