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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주요일 저녁 운동도 좀 해야 되겠네요. 그렇죠 새벽에는 요즘 서로 깨워주고 일으켜주고 하시면서 지금 이제 불이 붙기 시작했는데 수요일 저녁도 이 저녁 기도회에 올 수 있는 분들을 좀 우리 독려하는 그런 우리가 돼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 봉사 여러분들 다양한 봉사로 지금 교회 안에서 섬기고 계시죠? 교회 안에 봉사가 없다면 어떨까요?
이 봉사라고 하는 것은요. 마치 페달을 밟는 것과 같습니다. 페달을 밟는데 그 페달이 행인 걷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페달을 밟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페달을 밟지 않는다면 자전거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사전적으로 보면 봉사라는 의미가 국가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하는 것이라고 봉사라는 말을 정의하고 있는데요. 철저하게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위한 행동 이걸 보통 우리가 봉사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봉사는 이 사전적 의미의 봉사를 넘어섭니다. 한 발짝 더 나아가죠. 주의 말씀을 좇아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돌아가시기까지 우리를 섬겨주신 주님의 생명과 그 사랑 그리고 말씀의 능력을 그 봉사를 통해서 우리가 나의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봉사는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세히 쳐다보면 그것이 이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처럼 그 봉사를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더 유익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교회 안에 신앙이 깊어지는 사람들을 이렇게 보시면요. 공적인 예배에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 또 봉사의 자리에 적극적으로 그 봉사의 자리에 임하는 사람들, 그런 분들이 신앙이 더 깊어지는 더 성숙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마치 페달을 계속 밟으면 자전거가 서서히 움직이고 가속력이 붙어서 가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봉사를 통해서 그 봉사하는 과정 속에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기도 하고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7년 우리가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지금 함께 오고 있는데요.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 하나하나의 이 모습도요. 누군가의 봉사 헌신이 없다면 지금 우리는 이렇게 이 모양으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처음에 이 모양을 만들 때 또 이것들을 잘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들 하나하나 여러분들 주일날 예배드리는 그 시간에 하나하나 생각해 보십시오. 안내부터 해서 주방 또 다양한 모습으로 섬기는 그 모습들, 그런 섬김들이 없다면 주일은 우리의 예배는 지금 이 모양이 되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봉사하는 분들을 보면요. 물론 의무감을 가지고 하지만 그 매주일 그 행하는 그 봉사를 그 반복함이 나에게 유익하기 때문이고 이 나의 봉사를 통해서 누군가가 세워질 수 있다라고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봉사를 우리는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우리의 봉사가 이 교회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봉사의 종착역은 교회 안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국한되면 안 됩니다. 교회의 봉사도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출발점이 교회 안에서의 봉사여야 합니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페달을 밟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세 발 자전거 페달을 밟듯이 빙글빙글 그 자리만 돌고 있는 듯한 그런 자전거를 탄다면 얼마나 아쉽습니까?
목적지를 가지고 우리가 그 목적지를 향해서 페달을 밟아 우리가 열심히 나아가듯이 봉사 역시도 그냥 교회 안에서 맴맴 돌면서 우리가 이 안에서 서로 그냥 우리끼리 봉사하고 우리끼리 헌신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의 봉사를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가정에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 위한 체력을 키우고 또 내 안에 그러한 신앙의 힘을 키우는 겁니다.
어쩌면 한국교회가 이 부분에 좀 많이 연약한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고 우리도 이 부분을 더 강화시켜야 합니다. 교회를 벗어난 봉사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작은 교회를 돕기 위한 그러한 협력 교회들과의 함께 협력하는 것들, 또 우리가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당하는 이들을 돕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교회 밖에 또 어떠한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면 그 일들을 위해서 나아갈 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건강하고 새로워질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갑자기 왜 봉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냐면 오늘 지금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장면을 바라봤던 그 제자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올라가신 그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도 계속 그 눈을 거두지 못할 때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말했죠. 하늘로 가신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에 알맞은 길이라 여러분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이 이제 어느 곳인지 알겠죠 감람산이라는 곳에서 승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 오실 것이라고 하는 분명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그들은 감람산에서 떠나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발을 딛고 생활해야 할 삶의 현장으로 돌아온 것이죠.
근데 여러분 그들이 삶의 현장으로 돌아와서 이제 그들이 제일 먼저 무엇을 했는지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13절과 14절에 보니까 그들이 다락방에 올라가서 함께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것 이게 그들이 첫 번째 행한 겁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이후에 제자들이 첫 번째 행한 행동 마음을 같이 하여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여기서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하는 말을 원어적으로 보니까 자신을 붙들어맨다고 하는 의미를 가진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한마디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제자들은 그의 그곳에 모여 있는 형제들과 무엇보다 먼저 기도에 열심을 했다는 거예요. 무엇보다 기도에 자신들을 메웠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질문을 던질 게 있습니다. 이 제자들은 무엇을 위해 기도했을까요?
우리가 보통 막 저희 교회는 지금 부흥회를 안 하지만 부흥회 때나 막 특별기도회 때나 막 이럴 때 보면 기도의 제목들이 대부분 자녀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영육 강건하게 해 주십시오. 또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잘 되게 해 주십시오. 형통하게 해 주십시오.
어쩌면 이런 내용들이 줄을 이룰 때가 참 많습니다. 기도 제목 가운데 근데 갈릴리에서 돌아온 이 제자들이 자신을 붙들어 매고 기도하는 그 기도의 제목이 이런 기도 제목이었을까라고 생각을 해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만약에 그런 기도 제목이었다면 그들은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내걸고 순교하지 못했을 겁니다. 제자들은 그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 그리스도인답게 이 땅에서 살아갈 힘과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을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목숨을 내걸고 순교를 당하는 과정까지도 갈 수 있었다는 것이죠.
여러분 제자들이요. 교회 안에만 머물러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길 원합니다. 그들의 봉사의 삶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삶의 자리, 그들이 3년 동안 예수님과 따라다니면서 훈련받았던 그 이유도, 또 그리고 예수님의 그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 승천을 본 그 이유도, 그리고 초대교회를 이루고 서로 섬김의 삶을 실천하는 그 이유도 그들 모두가 세상 가운데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은요 초대교회의 교회 생활을 보여주는 게 아닙니다. 교회 생활, 교회의 봉사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고요. 교회에서 시작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세상으로 이어졌을 때 그들을 도구로 하나님은 세상을 새롭게 하셨다 라고 하는 걸 우리에게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영향력을 끼쳤을 때 세상은 변화됐다는 것이죠.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모여서 열심히 예배하고 열심히 교제하고 하나 되는 것, 서로를 위해 봉사하는 것 너무 중요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우리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나아갈 세상은 이 교회 이 성전과 달리 온갖 유혹과 욕망과 또 많은 어려움들이 난무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가 않다는 거예요. 끊임없는 결단과 용기가 그리고 기도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만이 세상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 그리고 지혜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8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내가 젊어서는 스스로 뛰뛰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내 팔을 벌리리니, 남이 내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 가리라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요.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나는 살아가려고 하지만 우리가 뒤를 돌아보면 내가 계획한 대로 행한 일들이 거의 없습니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일들이 진행되고 있을 때가 참 많아요. 물론 믿는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말하죠? 주님의 인도하심이야 주님의 은혜야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래서 이 사실 깨달은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있을 때 손을 하나님께 벌리는 거예요 하나님 하나님이 해주세요. 하나님이 이끌어주세요. 그게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죠.
근데 여기서 질문거리가 생깁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이끌어주시는데, 그러면 우리가 기도할 이유가 어디 있냐? 기도 안 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계획하실 텐데, 주님이 다 알아서 이끌어주실 텐데 구태여 우리가 시간 내어가며 이렇게 기도할 이유가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죠? 한 가지의 모습만 딱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지기 전에 기도했던 그 장면을 한번 떠올려보십시오. 예수님이 밤새가며 밤을 새도록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의 목전에 있는 죽음을 앞두고 이 잔을 내게서 거둬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기도를 했는지 흐르는 땀이 피가 배어날 정도의 그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결과가 응답이 그 잔을 거둬가셨나요? 죽음을 모면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심히 고민하고 슬퍼하고 살기 위해 땀이 피가 베도록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셨지만,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마치 내가 얼마 전까지 그렇게 막 애타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한 모습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언제 내가 슬퍼하고 언제 두려운 마음으로 그렇게 기도했냐는 듯이 결연하게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절교했던 그 예수님의 모습이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것을 온전히 감당할 힘과 용기가 그 가운데 얻어진 것이죠.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예수님도 그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그렇게 애타는 심정으로 기도하셨는데, 지금 우리의 삶에 어떠한 상황들이 놓여 있다면 그 상황을 위하여 우리도 당연히 기도해야 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인간은 본능과 욕망을 쫓아 살아가는 것이 어렵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본성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내버려두면 우리는 그 죄의 본능대로 본능과 욕망에 따라 살아갈 것입니다.
주님이 이끄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냥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할 때 가능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그 뜻 안에 인도함을 받을 때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수 있다라고 하는 사실이에요. 주님께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바르게 분별하기까지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던 그곳이 겟세마네 동산인데, 이 개세마네라고 하는 이 동산이 바로 감람산에 위치한 동산의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이 개세만해가 감람산의 동산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는 것이 습관처럼 기도하셨더라라는 말씀을 하는 거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이 기도할 때마다 따라다녔다는 거죠.
예수님이 그렇게 처절히 기도했던 그 장면도 감람산에서의 사건이었습니다. 근데 예수님이 승천하신 장소가 어디라고요? 이 감람산이라고요?
그러니까 제자들이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예수님께 보았던 그 기도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모여서 기도하기에 힘쓰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또 나의 한계에 부딪칠 때, 또 심히 내 안에 슬픔과 고민이 있을 때, 극한 상황에 직면해 있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근데 여러분 이것은 기도의 동기예요. 기도의 동기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피조물에 불과한 나를 자기 기도의 내용을 고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그 뜻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모여주신 모습처럼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으로 내 기도의 제목이 바뀌기도 하고, 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을 바라볼 수 있는 그게 바로 진정한 기도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일에 더욱 힘쓰는 우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기도하는 시간에 내 뜻, 내 생각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뜻과 내 생각을 내려놓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스스로 띠를 띠고 내가 원하는 곳을 가기 위해 강구하는 것이 아니라 두 팔을 벌리고 하나님,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고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녔던 이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을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그들은 모여서 함께 기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성령의 이끄심을 받았고, 예배당 안에서의 봉사가 이제 삶의 자리로 그들의 가정과 그들의 지역과 세계 열방에 이르기까지 그 봉사의 물결이 확장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우리 하늘소망교회가 이곳에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세워진 이유와 목적을 기억하며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세워지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 가운데 우리를 왜 분리개척하셨는지, 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또 우리 스스로 각자 우리에게 주신 비전, 우리에게 주신 그 사명, 우리에게 주신 봉사의 일, 그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하며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그리스도인으로 건강하게 세워질 때 우리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로 또 선한 영향을 끼치는 우리가 되게 될 줄 믿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