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사역을 하는가? - 홍성호
무엇이 그렇게 싫었을까? 끝내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미련은 없지만 마음 깊이 파고든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 같다. 한주가 지났다. 그때서야 학생들에게 연락이 왔다. 마지막 인사를 못했다며 이번 주 교회에 오면 안 되겠냐고 묻는다. 당연히 안 된다. 난 사임했다. 12월 중순쯤 보자는 말과 함께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모래성 같은 약속만 남기고.
다시 시작이다. 어쩌면 마지막 일지도 모를 청소년 사역을 다시 시작한다. 정말 피하고 싶은 중등부지만 지금은 설렘 반 두려움반이다. 잘하고 싶다. 실패의 경험을 밑거름으로 열매 맺고 싶다. 피토하며 열정을 쏟겠다는 격한 각오는 없다. 마음의 다짐에서 오는 감정의 단단함도 곧 수그러들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저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설렘 반
지금의 설렘임이 좋다. 어떤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떤 선생님들과 만나게 될까. 우리는 어떤 추억을 만들어갈까. 사람이 변한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한 정신분석학자에 의하면 2~3년에 걸친 집중적인 상담을 통해서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최대치는 5프로라고 한다. 마흔 이후로는 그것도 힘들다. 그만큼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청소년을 봐라. 그들은 변한다. 변하는 그들이 날 설레게 한다.
두려움 반
설렘은 곧잘 두려움으로 변한다. 중등부다. 예상하지도 못했고, 하고 싶지도 않던 부서다. 사춘기의 절정에 있는 그들과 어떻게 하나 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 그뿐이 아니다. 사실 새롭게 가게 된 교회는 지금까지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한다. 내가 중등부로 부임하면 그때부터 부서가 나뉘게 되는 것이다. 가자마자 바로 비교 대상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현재 있는 사역자가 잘한다는 소문도 들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사역자들의 면모를 살펴보니 잘한다. 뛰어났다. 두려움이 설렘을 삼켰다.
설렘과 두려운 마음 밑에 회피하고 싶은 욕구도 있다. 타임머신이 있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던 컴퓨터 공부를 계속 할 것이다. 사역자로써 전망이 어둡기 때문이다. 앞으로 개신교 성도 수는 500만 명에서 250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마흔이 넘어서면 연령제한에 걸려서 이력서도 쓰기 힘들어 진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는 현실인데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막막하다. 그야말로 생존이다.
사역을 그만 두고 2주간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대부분의 시간을 알바와 낮잠으로 보냈지만 그냥 허투루만 지낸 건 아니다. 김남준 목사님의 신간 “부교역자 리바이벌”을 읽고 뭔가 아쉽다는 느낌이 들어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 “교사 리바이벌”이라는 책도 읽었다.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자의 열심”도 다시 봤다. 마음이 두려움에 잠식당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했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역의 변화는 결국 사역자의 변화로부터 온다는 말에 적극 동의한다. 에둘러 말할 필요 없다. 사역하는 내가 문제다.
일주일전 이름도 생소한 목회자 2.0 모임에 참석했다. 강사로 김기현 목사님이 오신다는 것을 알고 간 것이다. 독서에 대한 자극이 필요했다. 그곳에서 목사님께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았고, 기쁨 마음으로 다시 로고서 서원의 서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쓰게 됐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가보자. 나는 왜 사역을 하는가?
최근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 보면 주인공의 딸 이름이 머피다. 머피는 머피의 법칙을 연상시킨다며 아빠에게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부린다. 그때 아빠는 딸에게 너의 이름은 나쁜 뜻이 아니라며 이렇게 말한다. “머피의 법칙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거야!”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이 말은 운명론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표현의 말들을 사역자들에게도 곧잘 듣는다. 사역자는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길로 가게 되면 주기마다 하나님이 매를 드시고, 하는 일마다 꼬이며, 심하면 병까지 걸려 단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가야만 하는 걸까? 많은 의문이 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이 말을 조금만 바꿔보자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로 말이다. 사역자의 길로 들어섰고, 사역이 맡겨졌다면 해야 한다. 더구나 그것이 나에게 맡겨진 일이라면 해야만 하는 것이다.
맡겨졌다는 책임이 부담을 넘어 기쁨과 감사가 되기를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첫댓글 홍성호 전도사의 귀환을 렬렬히 환영해요
홍전도사님~반가와요^^
맞아요. 전도사님은 여기에 오셔야만 했어요.ㅋ~~
해야 할 일에서 하고 싶은 일로 되기를 바랍니다~~^^
홍전도사님 화이팅^^
감사합니다~ 조희경집사님 오랜만이예요~ 반갑습니다^^
화이팅 할게요~!!
축하드립니다 ~로고스서원 재입성ᆞ 복학생 이시군요~^^중등부를 맡으셨다니 ..잘부탁드립니다 ᆞ잘 하실거 같습니다 뵌적은 없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