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미쳤다. 요즘 들어 내내 내 머릿속을 괴롭히는 주제다. 원래 문자기록이 시작된 이래, 혹은 역사기록이 시작된 이래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당시 사람들은 항상 세상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공자시대는 주공을 떠올리며 인의 (仁義)가 사라짐을 한탄했고, 송(宋)대의 사람들은 공맹 (孔孟)의 시대를 안타까워 했으며, 그 후대의 사람들은 송대의 예절을 그리워했다. 서양에서도 중세 사람들은 윤리의 타락을, 근대에는 중세의 규율을 이야기했다.
이 점은 우리나라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문집에는 타락과 향략을 일삼는 시대를 개탄하고 분별없이 혈기만 넘치는 젊은이들의 언행을 경계하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심지어 시대마다 보수와 진보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해가 지지 않는 권력 다툼을 벌이다가 그 결과로 왕조가 부침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요즘 세상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나도 훗날 누군가에 의해 어느 개그 프로의 개그맨처럼 '어제 인터넷 검색을 하다 한 문서를 읽었는데, 옛날 사람들은 고작 이 정도로 세상이 미쳤다고 생각했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조롱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세상이 미쳤거나 내가 미쳤거나 둘 중의 하나는 온전한 정신이 아님이 분명하다. 정치, 경제, 사회와 같은 거창한 쪽이야 훌륭하신 전문가들이 있고 그분들이 알아서 평할 일이니 나까지 나서서 보탤 것까지도 없다. 내가 이렇게 분노하는 것은 나의 진료실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상에서도 세상이 미쳤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일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돈,돈,돈이 최고인 세상
요즘 사람들에게는 '돈'이 절대 화두다. 예전처럼 최영 장군의 노래 따위를 읊조리다간 얼치기 취급을 받기 일쑤고, 위건 아래건 간에 해먹을 수 있는 만큼 해먹지 못하면 팔불출 소리를 듣는다. 심지어 의료문제까지 경제논리로 접근해서 영리법인을 허용한 (주)○○병원이 탄생하고 있는 지경이다.(그 순간부터 환자는 최대한 이윤을 뽑아내야 할 부가가치 창출 대상이지, 더 이상 인술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 들어 내 진료실에서는 잦은 다툼이 벌어지는데 대부분이 보험문제다. 우리 병원은 치질 수술이 많다보니 환자가 평소에 가입한 보험에서 진료비와 수술비를 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막상 보험료를 타기 위해 절차를 밟다보면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약관내용들 때문에 가슴않이를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예를 들어 치루수술은 괄약근 절개를 동반할 경우에만 보험금 지급에 해당하고 기타 치열이나 농양 같은 흔한 질환들은 대개 제외된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환자는 일단 수술한 후에 보험사에 진단서를 첨부해서 청구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는 십중팔구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한다.
그다음 수순은 정해져 있다. 환자나 보호자는 병명,수술명을 큰 걸로 고치거나 입원기간을 길게 조정하여 진단서를 다시 끊어 달라는 요청을 하고, 내가 단호하게 거절하면 그때부터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환자: 아 보험금을 원장님이 주시는 것도 아닌데 글자 한자 고쳐주는 것도 안돼요?
나: 안됩니다! 그건 엄밀하게 말하면 보험사기에 해당합니다. 환자분이 그렇게 보험을 타면 그만큼 다른 사람이 보험금을 더 부담하게 되는 거에요.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의사가 진료한 내용 이상의 것을 기재한다는 것은 사문서위조에 해당합니다.
환자: 내 이럴 줄 알았으면 이 병원에서 수술 안했어!(은근히 반말이 시작된다.) 다른 병원에서는 다해주는데 왜 여기서만 난리야? 보험설계사도 글자 한 자만 고쳐 오면 된다는데.
나: 나는 치료를 하는 사람이고 그 외의 일들에 대해 관여할 수 없습니다. 환자분이 보험금을 더 타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불법을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한번 안한다고 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하는 사람입니다. 미안합니다.
환자: 정말 더러워서, 병원이 여기밖에 없나! 내 앞으로는 다시는 이 병원에 안온다!(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고 나가버린다.)
사실 요즘 일선 의사가 겪는 일 중에 이런 일은 거의 일상에 가깝다. 그러나 그래도 이런 일이야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잘난 사람들은 보통 해먹으면 수십,수백억이 왔다갔다하는 마당에 내가 낸 보험료를 챙기고 싶은 마음이야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놈의 세상, 진짜로 미쳤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건 그것이 돈보다 사람일 때다.
성에 너그러운(?) 아이들
오전에 중학교2학년 여학생이 찾아왔다. 아이는 진료실에 들어와서 고개를 까딱하고 인사를 하더니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선 채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선생님, 태화약국에 갔더니 약국 아줌마가 병원 가서 처방전 받아 오라고 해서 왔어요."
아직 소녀티가 폴폴 배어나는 나이에 외모나 인상은 참하고 성실해 보였다.
"처방전? 무슨 처방전? 왜 일반 약을 사 먹어야 할 일이라도 있니?"
"아뇨.노레보 처방전이요. 어젯밤에 무시마가 그만큼 안에다 하지 마라 했는데, 병신 같은 게 안에다 해버렸잖아요. 아, 진짜 짱나!"
아이는 태연자약하게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무시마가 안에다 해버렸다고 했다.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질 않았다. 아이를 쳐다보며 한참을 갈등하다가 결국 처방전을 끊어주었다. 만일의 경우 아이가 임신이라도 하면 큰일이 아닌가! 아이가 나가고 뒤에 서있는 간호사 보기가 괜히 민망해서 혼자 휴게실로 올라가 담배 한개비를 피워 물었다. 세상이 미쳤다.
오후 시간에 진료를 하고 있는데, 고등학생 둘이서 교복을 입은 채로 진료실에 들어왔다. 둘 다 가끔 이곳에 오면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주고받던 아이들이다. 한 놈은 격투기를 한다고 격투기 도장에 다니고 있고, 다른 한 놈은 그럭저럭 학교에 가방운반사업(?)만 열심히 하는 아이였는데 심성은 좋은 녀석들이다. 동생처럼 조카처럼 편하게 대하는 녀석들이라 오면 가끔 한대씩 쥐어박기도 하고 야단도 치고 때로는 자문을 구해서 내 컴퓨터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이 녀셕들은 그렇게 안면을 튼 사이라 진료실에 와서도 주눅이 드는 법이 없다.
"야, 이놈들 또 격투기 하다 삐었구나?"
내 가벼운 질문에 뜻밖에 한 녀석이 머리를 긁적긁적하면서 답하기를 꺼려했다.
"샘요, 거기가 벌써 열흘째 고름이 질질 나고 소변을 보면 아파 죽겠십니더! 쪽팔려서 약구에서 약을 좀 사 못는데요. 그래도 더 심해져서 왔십니더."
"샘요, 일마 빠이뿌 새는 거 맞지예?"
따라온 녀석은 무엇이 우스운지 능글맞은 웃음을 띠며 한술 거들었다.
사실 이정도는 남자 고등학생들에게 흔한 일이라 이젠 놀라지도 않는다. 그래도 형 같은 마음에, 삼촌 같은 마음에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주사를 놓고 난 뒤 잡아 앉혀서 잔소리를 시작했다.
"야, 이녀석아! 어린 놈이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니들 성관계 때 콘돔 사용해야 하는거 몰라? 성병이 얼마나 무서운데, 성병에 걸린 채로 나중에 장가 가서 아기를 낳으면 아이가 눈이 멀고 곱사가 되어서 나와. 일마, 글고 머리빡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역전에는 왜 가?"
"어. 쌤요. 우리는 역전에 안 갑니더. 그런 데를 와 갑니꺼? 가만 있어도 가시나들이 뎀비는데...
그날도 나이트 가서 춤추다가 대학생하고 부킹했는데, 아씨, 하루 자고 나서 이래 됐다 아입니꺼!
누가 알았십니꺼."
"그 누나 진짜 대학생 맞아예."
옆에 있던 녀석이 또 거들었다. 이미 내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고 있었지만 그러면 안 되지 싶어 참고 조용히 달랬다. 원래 애들은 윽박지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야들아, 그런거 나중에 신물나서도 못한다. 그리고 사람은 말이다. 사랑 없이 섹스를 해서는 안돼.개나 돼지는 발정나면 가리지 않지만 사람은 틀리잖아? 할 말은 아니다만 만약에 니네 엄마 마버지가 예전에 그랬다고 생각하면 니들 기분이 어떻겠어? 나중에 니들이 장가가서 부모가 되면 니 자식들은 더러운 몸에서 태어나게 되는 셈인데, 그래도 괜찮아?"
두 녀석이 내 말을 진심으로 들었는지 어쨌는지 몰라도, 그런 상황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나도 미친 게 아니겠는가! 두 녀석에서 음료수를 하나씩 쥐어주면서 훈계를 하자 아이들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세상이 미쳤다. 아니 세상이 미쳤거나 내가 미쳤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 옛날 주공의 덕을 노래하며 타락해버린 세상을 한탄하던 유가들처럼 저 아이들에게서 종말적 징후를 느끼는 나도 그저 이 시대의 흘러간 퇴물들 중의 일부일지 모른다. 그래도 내 눈에는 세상이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중 -세상이 미쳤다-
저는 예전 파출소장님께 들었던 이야기 있네요.
가출한 초등학교여자아이들 3명에게 파출소장님이 물었답니다.
"니들 남자애들이랑 성관계 했지?"
그러자 한 여자애가 다른 한 여자애를 쿡쿡 찌르며
"저는 4번밖에 안했어요. 예 예가 저보다 훨씬 많이 했어요."
...참 그이야기 듣고...요즘 세상이 이렇구나 느꼈습니다.
다른 이야기로는 가출한 아이들이 밤에 잘곳이 없으면 길가에 세워놓는
차들 문을 일일이 하나씩 열어 본답니다.
혹시나 깜빡하고 문을 안잠궈논 차가 있으면 거기서 밤을 새고 동전도 싹쓸이 하고
일석이조!라고요.
뭐 그런저런 이야기 들으면서 참..기분이 묘하다고 할까요?
아무튼 간만에 타자연습 많이 했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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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운보님!!
그날이 얼마 안남았다네요..
그때 제가 막걸리 거하게 한번 쏘겠습니다.
저는 헐 말이 없네요~~
내 사랑하는 동지가 오는 날을 기다리며........
아마도......나는 "딴나라"에 살고 있나 봐요. ㅠ
근데.....위 글은 펌글이 아니라
[시골의사]의 책을 보고 일일이 타이핑을 한 것인가요?
마지막 제 이야기 빼고 ...수작업 맞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