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일 사순절 셋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151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 시간입니다.
성경은 요 17:1-5절(신 176쪽)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
지금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생각하는 사순절 기간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십자가 수난을 당하시기 전날, 십자가 수난을 당하실 예수님 자신과 스승이 떠난 후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 그리고 미래의 성도들과 신약 교회들을 위하여 성부 하나님께 올린 구약의 대제사장과 같은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의 의미와 오늘 우리 성도들과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과 비전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십자가 수난을 앞 둔 예수님의 기도는 기쁨과 소망의 기도입니다.
요 17장은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께 드린, 성경에서 가장 긴 기도문입니다. 이 기도는 구약의 모세가 느보 산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하며 하나님께 올린 축복의 노래 같습니다.(신 32,33장)
모세는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입성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옛날을 기억하라”(신 32:7) 당부합니다. 그들의 패역과 우상 숭배로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을 심판하신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너희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것을 교훈삼아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신 32:46)
요한복음 17장에 기록한 예수님의 기도도 육신으로 오신 성자 예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올린 마지막 고별 기도이지만, 모세의 기도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핍박한 자들에 대한 심판을 구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또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 라고 기도하신 것과 다른 기도입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죄인들의 모든 죄를 대속하실 예수님의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강조했지만(마 26:39, 막 14:34, 눅 22:44), 요한복음 17장에서는 십자가 사건이후의 구주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과 승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문에는 예수님이 십자가 대속을 통하여 성자 예수님 자신과 성부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과 완전한 승리가 담겨 있습니다. 또 성부와 성자의 연합을 본받아 장차 모든 성도가 하나가 되어 거룩한 공동체로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는 신약시대를 바라보는 장엄한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본문 1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라는 의미는 13장에서 16장까지 예수님이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고별 설교 말씀들을 가리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새 계명을 수여하신 말씀(13:34),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천국의 거처를 예비해 주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말씀(14:2,26),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과의 연합을 당부하시고(15:5),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신 마지막 유언과 같은 말씀들입니다.(16:33)
16:33절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제자들은 스승이신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를 아직 상상도 못하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다음날 있을 십자가 사건이 세상을 이기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생과 평안을 가져다 줄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성자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성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영광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
예수님이 마셔야할 십자가의 잔은 우리를 대신하여 당하신 저주와 조롱이 담긴 고뇌의 잔입니다. 그런 수치스런 십자가가 어떻게 성자 예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까? 유대인들이 수치스럽게 여기는 저주의 십자가가 어떻게 우리들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성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최종적인 목적인 십자가 구속사역을 성자 예수님이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세상이 구원을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보내 주신(요 3:16) 독생자 예수님이 온전히 그 사역을 완수하여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 자신이 다시 일으키심을 받아 창세 전에 성부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영광에 복귀하여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졌기 때문에 영화로운 것입니다.(2)
또, 예수님의 십자가가 성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를 입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기 때문입니다. 성자 예수님의 영광과 성부 하나님의 영광이 십자가 구속사역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수난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영생하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2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에게 주신 ‘영생’은 무엇입니까? 지난 수요일 기도회 때 부른 260장 찬송 4절 가사를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이 세상 떠날 때에 예수의 손목을 굳게 잡고 영원히 즐거운 천국에서 주 함께 살겠네.
우리는 찬송가 가사처럼 영생은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영생은 단순히 우리가 육신을 떠나서 하나님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장소적, 시간적 의미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영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내가 추구하던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나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가 하나님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속죄함을 받고 나를 구원하신 참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그 분이 모든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 삶을 주관하시는 주인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하나님을 만난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허물 많은 나를 항상 붙잡아 주시고, 마침내 거룩한 성화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믿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실패를 거듭하고, 넘어지면서도 하나님이 인도하신대로 순종하며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오늘 현재도 우리 삶 속에서 영생을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3절에서 ‘아는 것’이란 의미는 헬라어로 ‘기노스코신’ 인데, 원형 동사 ‘기노스코(알다)의 현재시제 가정법입니다. 즉, 계속해서 알아가야 하는 것, 단순한 지적인 인식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세상의 일반 사람들은 쉴 새 없이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살다가 죽어 사라지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특별한 때, ‘카이로스’를 동시에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을 모두 품고 살아가는 특별한 우리 ‘인생’을 헬라어로 ‘아이온’이라고 하고, 영생은 ‘아이오니오스 조에’라고 부릅니다.
김영인 교수는 그런 우리 인생을 가리켜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 모두는 순간의 크로노스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서 영생하는 존재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현재도 종말(텔로스)을 향하여 영생을 살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종말의 그 날까지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3. 예수님의 기도는 예수님 자신과, 제자들과, 미래의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하는 ‘대제사장적 기도(High priestly Prayer)’입니다.
요 7장은 1-5절에서 예수님 자신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고, 6-19절에서 자신이 아버지께로 간 후에도 제자들을 세상의 위협과 공격으로부터 지켜 주시고(preservation)과 그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 달라고(Sanctification) 기도합니다. 20-26절에서는 미래의 성도들과 교회공동체의 ‘하나됨’(Unification)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6절에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 9절에서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9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하나님께 속하여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소유들을 위함입니다.(14,16)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닙니다. 그의 십자가 구속은 ‘제한된 속죄’(limited atonement), 곧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선택된 속죄입니다.
1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악한 세상에서 그와 함께 데려가 달라고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핍박과 회유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하여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남아 있게 하신 까닭은 아직 하나님의 일을 계속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실패할 수 없는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다스리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감찰하고 계시고,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다할 때까지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환난과 실패와 좌절은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이루는 과정들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을 닮아가게 하는 은혜의 수단들입니다. 우리는 결국 성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치 않는 환난을 당해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롬 5:3,4)
1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가지신 기쁨이 제자들 안에 충만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여 기쁨이 충만한 것처럼, 제자들도 그의 사랑 안에 거하여 그들 안에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하였습니다.(요 15:10,11)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영생을 사는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인생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0절-2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20절에서 예수님은 미래의 성도들과 신약교회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내게 주신 영광” 곧 십자가의 복음을 그들에게 준 목적이 성자와 성부 하나님이 하나가 된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22) 십자가의 은혜는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승리 안에 있게 합니다.
예수님은 근심에 싸여 있는 제자들, 그가 십자가에 달리실 때 두려워서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갈 것을 다 아시면서도(마 26:31), 그들이 오순절 다락방에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받은 후 변화될 것을 미리 바라보신 것입니다. 또 그들이 전파한 복음을 듣고 세워질 신약교회와 성도들을 미리 바라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 8:6절의 말씀처럼 새 언약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이 짊어지실 십자가의 영광과 제자들과 미래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오늘도 영생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자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하나 되심 같이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되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영광과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찬송 150장(갈보리산 위에)을 부르신 후에 성찬식을 행한 후,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