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5:25,26 쓴물을 단물로 바꾼 치료 나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홍해를 건너 수르광야로 인도했다. 이스라엘은 3일 동안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해 속이 탔다. 드디어 마라에서 3일 만에 물을 찾았다. 그러나 그 물은 쓴 물이었다. 물에 대한 기대감이 실패로 바뀌자 온 이스라엘은 분노하며 모세에게 원망했다. 이스라엘 사회는 대혼란에 빠졌다. 리더 모세는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경험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기도한다고 쓴 물이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단물로 바뀔까? 가정이나 공장에서 쓰고 버린 하수나 폐수가 기도한다고 깨끗한 단물로 바뀔까? 바닷물을 떠 놓고 그 앞에서 계속 기도하면 소금기가 없는 담수(淡水)가 될까? 성경을 보면 가능해졌으니 아멘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거나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순간 드는 생각은 ‘바꿀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거나, ‘바꿀 수 없다’라는 불신일 것이다. 소량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지만, 200만 명이 마실 수 있는 대량의 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쓴 물을 단물로 만들 수 없다고 단정[하나님에 대한 불신] 지었기 때문에 곧바로 분노와 원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모세의 생각은 달랐다. 비록 그가 본인의 인생에서 쓴 물을 단물로 바꿔 본 적은 없지만,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하나님은 430년 동안 불가능한 출애굽을 성공시켰고, 구름 한 점 없는 사막에 구름과 불을 만들어 보호해 주셨고, 건널 수 없는 홍해를 건너게 해 주셨고, 물리칠 수 없는 바로와 그 군대를 물리쳐 주셨다. 모두 불가능한 일인데, 하나님은 가능으로 만드셨다. 쓴 물을 단물로 바꾸는 문제도 모세의 눈엔 같은 패턴[맥락]으로 보였다. 그리하여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었다.
모세와 같이 믿음의 사람들은 과학과 이성과 상식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능력이 있다. 아브라함도 그렇다. 롬 4:18-21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 바랄 수 없는 비과학적이고, 비상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그 믿음대로 역사하셨다. 막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 산에게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고 말하면 산이 알아서 들리어 바다에 빠질까? 단 1%의 가능성도 없다. 말도 안 되는 비상식이다. 공상영화나 만화나 인터넷 게임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현실 세계에선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기도가 나오겠는가? 하나님이 믿어지겠는가? 그래서 의심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은 상식적이고, 과학적이신 분이지 생뚱맞은 분이 아니야”라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시키기도 한다. 이스라엘은 부르짖는 모세를 보며 ‘기도만 하는 무능한 겁쟁이’라고 여기거나, ‘헛짓하고 있다’고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세를 포함한 믿음의 사람들은 과학, 철학, 상식을 뛰어넘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청중] 믿음의 사람들은 과학, 철학, 상식을 무시하는가? 무시하지 않는다. 믿음의 사람들도 직면한 현실 앞에서 한계를 알고 있다. 상식적으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신 분임을 믿는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한다. 우리도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고 믿음의 기도를 하자. 응답 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모세에게 즉각적으로 응답하기도 하지만, 그 답이 오래 걸릴 때도 있다. 계속 믿음으로 부르짖어 여러분의 믿음을 더 키우길 축복한다.
모세의 믿음대로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에 반응하셨다. 한참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계속 가리키셨다. 미완료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나무를 쓴 물에 던진다고 마실 수 있는 단물이 될까? 오히려 쓴 물이 더 더러워질 것이다. 답을 주더라도 이해할 수 있게 상식적인 답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답을 무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도하지 않고 원망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나무를 보여 주었다면, 그들은 더 분노했을지도 모른다. ‘말이 되는 소리야!’ 그러나 답이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이어도 하나님께 집중하여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인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원망하며 교만한 이스라엘에게 나무를 보여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답을 얻기 위해 겸손하게 부르짖어 기도하는 모세에게 나무를 보여 주셨다. 기도하는 모세였기 때문에 모세는 하나님이 가리킨 나무가 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기도하면 성령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다. 말씀이 생각나게 하신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기도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유리한 상황[사람]으로 이끌어 가신다.
기도하는 모세는 보여 준 나무가 쓴 물을 단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나무를 쓴 물에 던졌다. 물이 어떻게 되었을까?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행동에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무가 들어간 쓴 물을 떠서 먹었다. 쓴 물이면 어떡하지? 긴장된 순간이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마셔 본 결과 쓴맛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먹을 수 있는 물[마임]이 되었다. 그것도 단물로. 그렇게 원망하던 이스라엘은 즉시 기쁨으로 바뀌었다. 마라는 금세 물 축제가 벌어졌다. 하나님은 쓴 물을 단물로 치료하셨다. 원망을 기쁨으로 치료하셨다. 하나님이 하시면 과학과 상식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의 기적이 그렇고(요 2:1-11), 갈릴리 호수에서 베드로의 빈 그물이 물고기로 가득 차 찢어지는 기적도 그렇다(눅 5:1-11). 도끼 사건도 그렇다. 나무를 도끼로 베다가 그 도끼가 물에 빠졌다. 그때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졌다(열하 6:6). 쇠도끼는 요단강 가장 밑바닥에 있고, 혼탁한 강물 밑바닥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뭇가지를 던진다고 해서 쇠로 만든 도끼가 물 위로 올라올 수 있겠는가? 그런데 실제로 무거운 도끼기 떠올랐다(6:6). 나뭇가지가 능력이 있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사가 던진 나뭇가지를 통해 나간 것이다.
하나님은 쓴 물을 단물로 치료하면서,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26)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이 치료의 땅 마라에서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무엇인가?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계명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25). 무병장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음식을 골고루 먹고, 소식하고, 운동 열심히 하며 건강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 의학과 상식적으로 맞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시다. 말씀대로 살 때 건강하고, 혹시 병에 걸렸더라도 치료된다고 말씀하셨다. 병으로부터 건강하게 살고 싶은가? 말씀대로 살길 축복한다. 하나님은 질병, 죄, 죽음 등 인생의 모든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해 주시는 치료자이시다. “건강한 자[의인]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죄인]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 9:12) - 회개했더니 고혈압과 당뇨가 치료되었다.
왜 하나님은 나무를 가리켰을까? 나무는 물을 맑게 또는 달게 해 주는 성분이 있는 것일까? 다른 나무는 몰라도 마라에서 서식하는 나무에만 있는 특별한 정수 능력이 있는 것일까? 하나님이 가리킨 나무에는 어떤 능력도 효험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리킨 나무이었기 때문에 능력이 있었다. 하나님은 물을 전혀 깨끗하게 할 수 없는 나무를 통해 쓴 물을 단물로 만드셨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나무였기 때문에 쓴 물을 단물로 바꿀 수 있었다.
하나님이 기도하는 모세에게 가리킨 나무는 십자가를 상징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이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는 죄[쓴 물]로 물들었다. 하나님은 죄로 물든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비책을 사용하셨는데, 그게 바로 갈릴리 언덕에 세워진 나무 십자가였다. 죄로 물든 쓴 물에 나무 십자가를 던지셨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나무가 쓴 물에 던져짐] 율법의 저주[쓴 물]에서 우리를 속량[단물/치료]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그 나무 십자가에 그의 아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죄[쓴 물]로 물든 이 세상은 단물로 바뀌었다. 죄가 씻어진 단물은 무엇일까? 화평과 화목(골 1:20, 엡 2:13-19), 평화와 나음(사 53:5), 살아남[소생](벧전 2:24) 등
결론 - 쓴물을 단물로 바꾼 치료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