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그 아말렉 사람은 그렇게 말하면 다윗이 기뻐 춤이라도 출 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스스로 꾸며서 말한 것이다. 마치 자신이 다윗을 위해 큰일을 한 것처럼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고 허풍을 쳤다.
(삼하 1:5)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삼하 1:6) 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그의 이야기는 사울이 죽을 당시의 상황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보상을 기대하면서 상황을 꾸며서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 온 것은 보상대신 처벌이었다. 다윗은 두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이유 하나로 손을 들어서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이방인은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자신이 했다고 스스로를 정죄하고 말았다.
(삼하 1:13)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삼하 1:1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삼하 1:15) 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삼하 1:16)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탐욕이 화를 부른 것이다.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단지 욕심 때문에 거짓된 보고를 올렸고 그 결과로 죽임을 당하였다.
다윗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은 그의 마음이 하나님 마음 같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원수가 분명한데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빗나간 아들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를 쫒던 사울의 죽음은 어쩌면 다윗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결과였지만 다윗은 모든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서 보지 않았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본 것이다. 한때 그분이 인정해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사울과 그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여호와의 백성들이었다.
(삼하 1:12)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입장에서 보는 버릇이 있다. 자신과 원수면 하나님과도 원수가 된다고 오판한다. 자신에게 별로 좋은 기억이 없으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미워할 줄로 착각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에서 그렇게 비일비재하게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는 이유다, 하지만 다윗은 몇 번씩이나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과 그의 의형제 요나단과 백성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슬퍼하고 울며 금식하였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이익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잘 죽었다고 손뼉을 쳤을 것인데 오히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슬퍼하였다.
무엇보다도 요나단의 죽음은 다윗에게 창자가 끊어지는 애절한 슬픔을 가져왔다. 그는 사울과 요나단을 위한 애가를 지어서 불렀다. (삼하 1:26)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하나님의 교회가 혼돈스럽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떨어나가는데 나만 안전하고 편안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교회와 공동체의 분란을 즐긴다면 그것은 아말렉 족속의 정신이며 비록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힌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고 교회의 일원임을 알고 함께 아파한다면 우리는 다윗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다윗의 마음으로 공동체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교회의 일이겠는가?
하나님 아버지! 온 세상에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사람들과 공동체를 자기중심으로 판단을 하고 비난하고 미워하고 사는 어리석은 아멜렉 족속 같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정신을 붙잡아 주십시오. 원수의 죽음이 애절한 성도의 죽음으로 다가오도록 우리에게 더 크고 넓은 마음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