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산 5-1
관람료 무료
주차비 무료
아침 일찍 포천으로 아내와 막내아들 민수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섰는데... 포천 일대에 안개가 짙게 깔렸다.
짙게 깔린 안개의 모습을 내려다 보기 위해서 반월성에 오르기로 했다.
예상했던 대로 반월성은 매우 화창했다.
짙은 안개에 휩싸여 포천시내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생경한 모습이었다.
먼저 동문(동치성)쪽으로 출발하여 남문(서치성)쪽으로 한바퀴를 돌기로 했다.
포천(抱川) 반월성(半月城)은 청성산에 있는 산성으로 1998년 2월 20일 사적 제403호로 포천 반월성지로 지정되었으나,
2011년 7월 28일 포천 반월성으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되었다.
둘레 1,080미터로 고구려때 쌓은 성이다.
산성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쌓았다고 전해지나, 조사결과 고구려 때 쌓은 성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여러 책에 고성(古城), 산성, 반월산성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대동지지>를 통하여 광해군 10년(1618)에 고쳐 쌓고, 인조 1년(1623)부터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연려실기술』, 『포천군읍지』, 『견성지』에서도
돌로 쌓았다는 기록과 함께 여러 가지 당시 성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성의 옛 자취를 엿볼 수 있는 시설물로는
남쪽과 북쪽의 문터, 성벽 바깥쪽에 사각형 모양으로 덧붙여 만든 치성 4개소, 건물터 6곳,
배수시설이었던 수구터, 장수의 지휘대였던 장대터,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세웠던 망대터 등이 있다. [출처: 문화재청]
북쪽은 돌출하고 남쪽은 오므라들어서 반월 형태를 이루고 있어서 반월성(반달 모양의 성)으로 불린다.
산책길로 좋고 포천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으나 오늘은 짙게 깔린 안개만 보이는 걸로...
퇴뫼식 산성이라고 해서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정상 주위에 머리띠를 두른 것처럼 성을 축조한 방식을 말한다.
안개가 짙게 깔려 포천시내가 보이지 않으니 마치 꽤나 높은 산 정상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해가 뜨고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안개가 걷치질 않는다. 신기한 광경이다.
이름난 관광지도 아니고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는 곳도 아니지만 그래서 더욱 찾아올 이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쉽지 않은 삼국시대 산성의 잘 복원된 모습을 볼 수 있고 역사적 가치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포천을 관통하는 경흥로와 수직으로 놓여 있어
대로를 따라 이동하는 적의 경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지리적 장점을 가지고 있는 요충지로,
백제가 한강 지역을 점령하고 북진했을 시기에 축조되기 시작하여
고구려와 신라가 한강지역을 점령했을 시기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신라는 629년에 고구려의 낭비성인 반월성을 차지하면서 한강 이북 지역의 영토를 확장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제사유적인 애기당지의 모습에서 신성시되었던 청성산에서 이루어진 무속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애기당지는 지역수호신인 "당금아기"를 모신 사당이었다. 6.25때 소실되었다.
가로 세로 4미터 정도 규모의 기단 위에 정방향의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2단의 기단이 복원되어 있다.
신라 북방진출의 서막이었던 낭비성 전투가 벌어졌던 고구려의 낭비성(娘臂城)이 포천 반월성인지 여부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 포천 반월성을 고구려 낭비성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다.
그런데 문외한인 내가 봐도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라는 말에는 적극 공감이 간다.
연구와 고증이 이어져 포천 반월성이 고구려 낭비성이 되면 아마 포천의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마 획기적인 역사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다.
물론 낭비성으로 밝혀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역사적 가치로 보존해야 할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북벽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서는 성곽을 수리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원래 산성의 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었던 듯하다.
장대지는 반월성 내에서 북측의 가장 높은 지역(해발 282미터)에 위치하고 있다.
반월성은 전체적으로 지형이 북고남저(北高南低), 서고동저(西高東低)의 형상을 하고 있고
북벽은 청성산 정상부 북쪽에 발달된 능성의 외부 급경사를 이용하여 축조되었기 때문에
장대지가 있는 이곳은 남쪽의 성 내부뿐만 아니라 서북동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장대지는 남북 13.4미터, 동서 30.1미터의 장방형 대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장대지의 남북방향으로 교통호가 개설되어 있다.
포천 반월성에서 이런한 경이로운 모습을 볼 거라는 건 상상도 못할 것이다.
장대지는 적심이나 초석의 흔적이 없고 하부의 단단한 암반이 정리된 흔적으로 보아
이곳의 건물은 암반층을 이용하여 건물을 지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장대지 서쪽의 교통호 단면을 정리하던 중
남단의 기와무더기에서 마홀수해공구단(馬忽受解空口單)이라고 쓴 기와가 수습되어
고구려의 마홀군(馬忽郡) 치소가 당시의 반월성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장대지 전체가 6.25직후 평탄화 작업에 의해 파괴되었고,
암반의 상면이 조사전에도 지표상에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모든 유구는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풍광을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시간이다.
연신 감탄을 쏟아내며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다.
포천 반월성을 사방으로 둘러싼 짙은 안개로 인해 전혀 새로운 느낌의 산책길이 되었다.
멀리 서치성(西稚城) 너머로 또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잘 보존되어 있는 북벽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북문은 동문에 비해 꽤 좁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북벽의 모습을 자세히 보고싶으면 북문을 통해 내려가서 서치성을 외곽으로 돌아 남문으로 다시 들어오면 된다.
서치성에서 포천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야 할 공간이 뽀얀 안개로 덮여 전혀 새로운 느낌을 준다.
마치 구름위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뒤쳐진 박여사를 기다리며 잠시 앉아서 쉬기로...
정말 포천에 안개가 짙게 낀 날에 포천 반월성에 오르면 너무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이젠 앞으로 포천에 안개만 끼면 생각날 듯...
포천 반원성 안내도를 보니 정말 반달 모양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남벽은 아직 미보수성곽으로 남아있다.
늦게 뒤따르던 박여사가 사진찍어 달라고 막내 민수를 불렀다.
멀리있는 아내와 민수를 줌으로 땡겨서 사진을 찍어봤는데... 진짜 구름위를 걷는 듯...
안개로 인해 여느 산성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아직 복원되지 않는 남벽을 따라 걷는다.
성곽은 복원되어 있지 않지만 길은 잘 정돈되어 있다.
무엇보다는 우거진 산림의 그늘길을 걸을 수 있어서 산책길로 손색이 없다.
자연과 역사와 함께하는 포천 반월성 둘레 산책길 1080미터
400년된 보호수 느티나무가 위용을 뽐내고 있는 출발지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도 포천은 군사적 요충지다. 그래서 군부대도 여러곳에 위치해 있다.
예전에는 더욱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성이 컸을 것이다.
포천 반월산성에 올라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위용을 보는 것도 좋고...
오늘처럼 안개로 둘러싸여 몽환적인 느낌의 산책을 하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포천 반월성에서 군내면 주민자치센터로 내려가 근처 포천 오일장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