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이 어긋날 때 어느 것을 믿어야 하나
― 윤석중의 「산바람 강바람」
-윤동재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대요
강가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도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사공이 노를 젓다 잠이 들어도
저 혼자 나룻배를 저어 간대요
초등학교 때 배운 노래다. 시도 때도 없이 많이 부른 노래다. 나중에 커서 윤석중 선생의 동시임을 알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이 노래를 처음 배울 때부터 나는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라는 구절이 이상했다.
내가 어려서 소달구지를 몰고 나무하러 간 건 겨울이었다. 겨울에 산에 올라 솔가지를 자르고, 소나무 갈비도 까꾸리로 긁어 모았다. 그리고 나무 동을 만들어 소달구지에 싣고 와서 마당에 쌓았다. 담뱃잎을 따고 난 담뱃대나 콩대로 소죽을 끓이고 볏짚은 소 먹이로 썼다. 여름에는 산에 오르는 일도 드물었지만 산에 오른다 해도 산딸기나 땄지, 나무는 하지 않았다.
윤석중 선생은 1911년 서울 수표동에서 태어나 교동보통학교와 양정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나는 1958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랐다. 시대도 다르고 살아온 지역과 환경도 다르다.
그렇다면 윤석중 선생이 이 동시에서 그린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하는 모습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윤석중 선생이 살던 시대나 다른 지역에서는 여름에도 나무를 했을까. 내가 살던 곳에서는 여름 산에 올라도 나뭇잎이 무성하고 풀덤불도 우거져서 소꼴을 하지 않는 이상 나무는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나만 이 구절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훗날 이오덕 선생과 이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다.
1989년 이오덕 선생을 중심으로 어린이문학협의회가 만들어졌다. 과천에 있는 이오덕 선생의 아파트에서 이오덕 선생, 권오삼 선생, 노경실 선생 등과 함께 나도 어린이문학협의회 창립을 준비했다. 그 자리에 몇 분이 더 계셨지만 지금은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그 이듬해인지 그다음 해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공병우 선생의 한글문화원 지하 강당에서 어린이문학협의회 연수가 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연도와 말씀까지 또렷하지는 않다. 다만 내 기억으로는 그때 이오덕 선생이 나에게 우리 동시에서 삶의 진실과 어긋나는 표현을 찾아 발표해 보라고 하셨다.
나는 그때 윤석중 선생의 「산바람 강바람」에 나오는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를 그 보기로 들었다. 이오덕 선생도 여름에는 나무를 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오덕 선생은 1925년생이고 나와 같은 경북 청송 출신이다. 나보다 한 세대 이상 앞서 같은 지역에서 농촌생활을 경험한 이오덕 선생의 말이어서 내게는 더욱 오래 남았다.
분당 율동공원 안에는 동요 작곡가 박태현 선생의 노래비가 있다. 거기에 「산바람 강바람」이 악보와 함께 새겨져 있다. 나는 율동공원에 갈 때마다 노래비 앞에서 이 구절을 들여다본다. 지금 보아도 이상한데, 하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오늘도 율동공원 안 텃밭에 무를 솎으러 가다가 이 노래비 앞에 서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가만히 시를 들여다보면 이 동시의 1연과 2연은 대구가 철저하다. 숨이 막힐 만큼 척척 들어맞는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과 강가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과 시원한 바람
좋은 바람과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과 고마운 바람
나무꾼과 사공
땀을 씻어 줌과 배를 저어 줌
‘서늘한 바람’과 ‘시원한 바람’은 겨울보다는 여름이라야 제격이다. 겨울에 나무꾼이 나무를 해도 땀이 나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겨울에 바람이 불면 이내 춥다. 반면 여름에는 바람이 불면 서늘함을 느낀다. 그래서 좋은 바람이고 고마운 바람이다.
여름이어야 나무꾼이 흘린 땀을 산바람이 씻어 주고, 그래야 그 바람이 ‘서늘한 바람’,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이 된다. 이 흐름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래서인지 적어도 이오덕 선생과 내가 경험한 청송의 농촌생활에서는 여름에 나무를 하지 않았다는 삶의 실제가 이 자연스러운 시의 흐름 속에 그만 묻히고 만다. 이상한 일이다.
내 삶의 경험에서는 이상한 ‘여름’이 이 동시 안에서는 오히려 가장 자연스럽고 필요한 말이 된다. 삶의 진실에서는 어긋나는데 시적 진실은 어긋나지 않는 걸까.
한 편의 동시에서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이 서로 어긋날 때 우리는 어느 쪽을 믿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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