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ke 22:60 And Peter said, Man, I know not what thou sayest. And immediately, while he yet spake, the cock crew. 22:61 And the Lord turned, and looked upon Peter. And Peter remembered the word of the Lord, how he had said unto him, Before the cock crow, thou shalt deny me thrice. 22:62 And Peter went out, and wept bitterly. 남자의 눈물... 베드로의 눈물... 그것도 통곡하며 오열하는 눈물을 묵상해 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라는 인류를 대표하는 고백을 했던 자에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주님의 꾸지람을 듣고 나아가 세번이나 주님을 부인하다가 끌려가는 주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베드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바닥으로 떨어지고 지하 굴속으로 떨어져 더 떨어질 것이 없는 비참한 자신의 모습과 한치 앞도 내다 볼수 없이 전개되고 있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혼란함. 인간은 그렇게 불완전한 존재이다. 다 그렇게 끝나 버리는 것 같은 느낌... 물위를 걷던 경험...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주님과 웃고 울며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이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베드로의 통곡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인생은 주님을 떠나면 그렇게 비참하다. 살 의미가 없다. 죽음만이 앞에 기다리고 있고 그 이상은 없는 비참함 속에서 실존주의 철학자들 처럼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은 미치는 것과 자살하는 것 밖에 없는 듯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한 그 느낌 그대로였을 것이다.
이처럼 나약한 존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묵상한다. 세상은 이런 주님을 떠나 미쳐가고 있다. 나이키에서 사람의 피 한방울 넣어 신발을 만들어 판다고 한다. 동성애가 소돔과 고모라 때처럼 번성하고 있다. 낙태가 합법화 되고 있다. 돈이면 다된다는 맘몬주의가 판치고 있다. 책임없는 자유가 진리행세를 하고 있다. 악은 더 악해지고 교묘해지고 분별하기 어려워진다. 사랑은 식어가고 자살은 늘어가며 지하교회 성도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신공산주의가 뉴에지와 함께 사람들을 미혹한다. 역사를 왜곡하여 자신들의 거짓을 진실이라 위장한다.
이런 현실을 보고 슬퍼하며 영혼이 깊은 잠이 들어 있을 때 주님은 땀이 떨어지는 핏방울 되도록 애간장을 녹이며 기도하셨다. 그리고 오셔서 슬픔에 잠자는 자들에게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말게 기도하라 하셨다. 암담한 현실속에서 무관심과 포기로 잠자는 내영혼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주님 깨어 있게 하소서.
갑자기 주기철 목사님의 "일사각오"란 찬양이 생각난다. "깨어라 성도여 징조를 보라 신랑되신 예수께서 오시려한다 환란과 빕박이 날 기다리니 믿음으로 이길 준비 어서합시다. 깨어라 성도여 주재림 가깝다. 주를 위해 살다가 주위해 죽자. 우리의 힘으로는 옳게 못살고 내 신앙 가지고는 순교 못하니 성신권능 나에게 충만케하사 성경대로 살다가 죽게하소서 마귀는 내믿음을 빼앗으려고 사망권세 가지고 위협을 하나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말라 승리자 예수님이 우리편이다. 주님의 이름위해 옥에갖히고 갖은 고생다하다가 죽을지라도 십자가의 큰 은혜 생각할 때에 아직도 내고생이 부족하도다 성경과 기도로 무기삼으니 불타는 나의 소원 일사각오뿐 죽도록 싸우다가 쓰러진후에 천국의 영광집에 편히 쉬리라 깨어라 주재림 가깝다 주를 위해 살다가 주위해 죽자"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 노래했던 손양원목사님, 한민족을 내게 달라고 민족의 가슴마다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기도했던 김준곤목사님, 베드로의 통곡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