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거니 뒤서거니 / 조영안
여항산이 품고 있는 작은 골짜기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여항산은 6·25전쟁 때 낙동강 전선의 마지막 고지였다. 무너지면 부산이 함락되는 건 초읽기나 마찬가지였다. 그 줄기의 기를 받아서인지 땅이 기름지고 넓어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4학년이 되자, 스승의 날 기념으로 백일장이 열렸다. ‘선생님’ 글감으로 글을 써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태어나서 우등상 이외는 처음으로 받은 상이었다. 여기저기서 칭찬을 받으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전 읽기’ 행사가 있었는데 전국 대회였다. 지정 도서를 읽고, 그 책의 내용으로 시험을 쳐서 시상했다. 군, 시, 도 순서로 이어지는데 그곳에서 대표로 뽑히면 전국 대회에 출전했다.
지금도 책의 목록이 기억난다. 『논어』, 『맹자』, 『구약 성서』, 『신약 성서』, 『파브르 곤충기』,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이었다. 불교 관련 두 권이 더 있었는데, 떠오르지 않는다. 그중 몇 권은 지금도 우리 집에 누렇게 바랜 채 꽂혀있다. 학교에서는 성적이 우수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학생을 대표로 뽑아 정규 수업이 끝나면 함께 모여 읽었다. 그 시절 나는 좀 명랑했는지 운동장에 있는 나무 위에 올라가 책을 즐겨 읽었다고 친구들은 기억했다. 고전 읽기는 중학교 2학년까지 했는데 책 내용도 수준이 더 높았다.
도시로 고등학교에 가게 되면서 글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어버이날 기념 교내 백일장이 열렸다. 입학하고 처음 치르는 행사였다. 장원, 차상, 참방 순이었는데 나는 참방에 입상했다. 역시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대세였다. 산골에서 온 여고생은 그야말로 촌뜨기였다. 내가 느꼈던 경쟁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국어 선생님은 시조 시인이어서 자연스럽게 문학회가 만들어져 있었다. 학교 뒤에 있는 나지막한 반월산의 이름을 따서 명칭도 ‘반월 문학회’였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백일장 입상자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했다. 선배들은 대회에 나갈 때마다 “우린 선의의 경쟁을 하는 거다.”고 독려하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데 매번 선배, 후배도 아닌 동급생 셋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입상했다. 은희랑 미애, 그리고 나였다. 본래 셋이면 그 안에서도 또 편이 나뉜다고 하는데, 우리 셋은 전혀 그러지 않아서 신기했다.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문학회 회원들도 인정하는 삼총사였다. 가끔 뒷산에 올라 지지배배 속삭이듯 이야기를 나누다가 수업 시간을 놓칠 때도 있었다. 사계절이 주는 풍경은 감수성 풍부한 여고생에게는 사색의 장이었다.
70년대 후반에는 백일장이 자주 있었다. 지금처럼 공모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했다. 그리고 학교 대표들도 수준이 꽤 높았다. 학교의 명예를 걸고 나가기에 모두 열심히 했다. 결과가 좋으면 주최 측에서 먼저 시상하고,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다시 상을 전달했다. 우리 삼총사는 매번 시상대에 오르면서 순위도 오고 갔다. 상장과 트로피, 혹은 상품이 있기도 했다.
여고를 졸업하면서 각기 헤어졌지만 글쓰기의 열정만은 식지 않았다. 그 지역에서 졸업한 선·후배들이 모여 문학회를 다시 만들었다. 일반인과 대학생 신분이었다. 거의 학교 다닐 때 각종 대회에서 만났던 얼굴들이어서 낯설지가 않았다. 매년 동인지를 발간하고, 문학의 밤 행사도 열었다. 꿈과 열정, 그리고 도전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혼하면서 글을 쓰는 건 잠시 멈추었다. 멀리 떨어져 있기에 소식만 주고 받았다. 그동안 썼던 글과 습작 노트는 상자에 담겨 높은 장롱 위에 있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내 글쓰기는 다시 눈을 떴다.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눴다. 각종 행사와 교육에 참여하면서 다시 글쓰기 욕심을 부릴 즈음 뜻밖의 소식이 왔다. 삼총사 중 울산에 사는 미애가 동화책을 발간했다며 보내 준단다. 은희도 책도 펴내고 창원, 마산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며 소식을 전해 왔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은희한테서 연락이 왔다. 얼굴 좀 보고 살자며 내가 움직이기 힘들면 두 작가님이 온다고 했다. 그러자고 약속은 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많았다. 코로나 핑계를 대며 후일로 미루었던 게 지금까지 왔다. 왕성하게 활동 중인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올해 겨울을 넘긴 이른 초봄 어느 날, 백운산 계곡으로 초대할 예정이다. 방 하나 잡아 놓고 밤새도록 고로쇠 잔치도 벌여야겠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