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맛보다 / 조미숙
아들이 현대에 인턴사원 응모를 한다며 자기소개서를 봐 달라고 했다. 몇 차례 전화와 이메일이 오가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그 외도 인턴 채용 공고가 많이 나붙는데 준비하는 데 시간 내기가 벅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너무 힘들다는 말도 덧붙였다. 동아리 졸업작품 준비와 아르바이트, 영어와 학교 공부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단다. 힘들겠지만 준비 잘해서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고 가능하면 여기저기 지원해 보라는 내 말에 애초에 자기는 다른 사람하고는 출발선이 다르다고 했다. 뭔가 툭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큰딸은 3년간 일했으니 4학년에는 알바를 쉬고 싶다고 했고, 둘째는 대학원에 진학한다고 1년 휴학했는데 아들은 줄기차게 일했다. 1학년 마치자마자 다음 해 1월에 입대했고 8월에 전역하고 바로 알바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복학해서 한 번도 쉬지 않았다. 내가 너무 무신경했구나. 며칠 고민하다가 아들에게 6월부터는 알바를 그만두라고 했다.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5월부터는 일하게 될 것 같으니 그때는 적은 돈이나마 보내주겠다고, 그때까지만 고생하라고 했다. 월세 지원금과 내가 보내는 얼마간의 돈으로 버티는 방법이 최선일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5월을 앞둔 어느 날, 드디어 위탁업체 모집 공고가 떴다. 경쟁업체가 없길 바랐는데 기어코 경합이 붙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상대방이 신생 업체라 여러모로 우리 회사가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이번에는 내가 시연하지 않아도 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일이 있어 제안서와 시연 발표를 끝내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고생했다는 말만 남기고 먼저 돌아왔다. 저녁 무렵 도서관 행사로 재즈 음악회가 있어 같이 가자고 전화했더니 시연했던 선생님이 우리가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믿기지 않았지만 우선 큰딸도 함께 가기로 한 거라 김밥집에서 대충 때우고 간다고 나오라고 했다. 김밥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문제가 뭐냐고 했더니 발표하는데 분위기가 말도 못 하게 썰렁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장흥에서 경쟁했던 업체 사람이 심사위원으로 있었다고, 잘못된 게 확실하다고 했다. 우리와 경쟁해서 떨어졌다고 복수라도 할 요량으로 왔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한 사람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대표와 시연자가 그렇게 확실시하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불쑥 올라왔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게 맞는 건지 박수를 치다가도 환호성을 지르다가도 움찔했다. 일은 벌어졌으니 수습책을 강구하는 게 맞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 한 해 쉬어간다고 생각하자.’며 위로해도 무너지는 마음은 바로 세울 수가 없었다. 비록 최저임금이긴 하지만 내 수입의 3분의 2가 날아가 버린 것은 감당해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자질구레한 일로 메꾸기엔 너무나 큰 구멍이었다. 당장 두 아이 각각의 월세와 우리 집의 이런저런 세금을 감당하기엔 택도 없다. 가난을 온몸에 이고 사는 이들에겐 들어올 돈이 없다는 게 지옥이다. 이렇게 늦은 시기에 대체 어디서 일자리를 찾는단 말인가? 일찌감치 공고가 났다면 잘못될 시 다른 곳이라도 알아볼 기회가 생기는데, 그것 하나만 바라보는 근로자는 안중에 없다.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재앙이었다. 그나마 한숨 돌리던 생활을 다시 할 수 없다는 상실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이튿날, 예전처럼 하루를 보내면서도 어두워진 마음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도저히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그래도 만에 하나 모르는 일이니까 발표 나기를 기다려 보라고 했지만 가능성은 희박했다. 대표는 이의제기하려고 별별 수단을 다 강구하고 있었다. 이의 신청을 한다 한들 결과는 뒤집힐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긁어 부스럼 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 내년도 기약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관을 상대한다는 것은 달걀로 바위치기다.
저녁에 도서관 독서 모임이 있었는데 가고 싶지 않아서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았다. 대신에 운동하러 갔다. 잠시라고 잊고 싶었다. 하지만 몸을 흔들다가도 문득문득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에 한숨만 나왔다. 남편에게 이젠 정말 허리띠 졸라맬 생각을 하라고 진지하게 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운동이 끝나고 핸드폰을 보니 대표의 카톡이 와 있었다. 심사위원 점수표다. 이게 도대체 뭐야?
이틀 동안 지옥을 맛보았다.
첫댓글 지옥이 끝나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사는 게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일인가 봅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다행이예요! 지옥에서 벗어나니 천국의 맛이 더 달콤하네요.
천국의 맛은 아직....
고맙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마냥 좋아보이던 숲해설사 일이 사업 채택과정에서 이런 어려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아이들 뒷바라지 힘드실 때도 있지만, 셋이나 있어서 든든하실 때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되신건가요? 어제 저녁부터 고민하다, 이제야 댓글 남겨 봅니다.
하하! 고민거리를 안겨 드려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천국의 맛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사는 부모님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라 다들 야무지고 열심히 사네요.
고맙습니다.
애구. 힘내세요.
하하! 웃어도 됩니다.
글감이 '천국'이라 조마조마해 하며 읽으면서도 마지막에 천국의 맛을 보셨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가봐요? 힘내세요.
하하! 기대를 저버린 건가요?
오지도 않을 지옥을 괜히 미리 맛보고 있었던 거죠?
축하드려요.
올해도 아이들에게 자연에서 생명 감수성을 키워가도록 잘 가르쳐 주세요.
하하! 다양한 맛 경험은 삶의 묘미가 되겠죠!
잘 끝나서 다행입니다. 제목 읽으면서 걱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