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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강 창세기 31:43~32:20 마하나임 53.01
26.10.28(수)
객지 생활 20년 만에 야곱이 드디어 밧단 아람을 떠나서 아버지 집으로 출발을 합니다.
20년 전에 형 에서의 그 미움으로부터 동생을 살인하려까지 하는 형의 미움으로부터 동생 야곱 자기 둘째 아들 야곱을 자기 친정집으로 리브가가 피신시키면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 피신하여 내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여기에서 몇 날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단 며칠 그런 의미는 아니겠죠. 왜냐하면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 가는데 800km니까 빨리 가도 20일 걸리잖아요.
갔다 오는 시간만 40일 걸리거든요.
그러니까 며칠이라기 보다는 잠간 동안만 내 친정집에 가 있어라 그러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자기 둘째 아들을 잠간 친정으로 보낸 겁니다. 집을 떠나던 야곱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잠간 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잠간이 20년이 되었습니다.
그 아들을 보낼 리브가는 자기가 야곱을 보낸 뒤에 살아 생전에 다시는 야곱을 보지 못하고 죽으리라는 것은 상상치도 못했습니다.
야곱 역시 마찬가지죠. 어머니는 형 에서 보다도 자기를 편애했거든요. 자기를 일방적으로 사랑하던 어머니 그 어머니를 다시는 보지 못하고 20년 동안 이방에서 객지 생활을 할 것이다. 상상치도 못했죠.
여러분 이것이 인생입니다.
리브가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 잠시 동안 했는데 20년이 흘렀단 말입니다.
어느 인간이 자기 미래를 알겠습니까?
내가 내 미래를 위해서 아무리 계획한다 한들 내가 나의 미래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계획이 절대적일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 사도가
야고보서 4장 13절을 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들으라 성경에 들으라 이런 표현이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들으라 하나님의 말씀 치고 중요하지 않은 말씀이 없지만 특별히 듣고 마음속에 세기라는 거예요.
무슨 내용이길래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1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여러분 내일 옆 동네에 가서 장사하고 오겠다 이것이 아닙니다.
다른 도시에 가서 1년 동안 거하면서 거기에서 장사하고 그냥 장사 한번 재미로 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득을 취해보자 하는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남의 도시에 가서 1년 동안 머물면서 장사를 하려고 하면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워야 하겠습니까?
1년 동안 어디에서 머물 것인가
1년 동안 어떤 상품을 취급할 것인가
어디로부터 물건을 구입할 것인가
점포는 어디 세울 것인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겠죠.
야고보서 4장 14절입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네가 1년 동안 객지에 가서 돈을 벌겠다고 철저하게 준비하는데 얘야 너 내일 일 너는 몰라 왜냐하면 너는 안개이기 때문이야.
여러분 안개가 아무리 짙어도 안개는 해만 나면 없어져 버립니다. 안개는 자기 의지대로 자기를 존재케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그와 같다는 것이어요 내가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내일 일을 내가 알 수 없고 내 의지대로 내 일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했지만 계획이 무산된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겠습니까? 오늘 아침에 집을 나왔다가 저녁에 못 들어가는 사람 집 밖에서 오늘 일생이 끝나버릴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오늘 밤에 집에 들어갔다가 자면서 일생이 끝나는 사람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단지 나만은 천년만년 살고 나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사는 것이죠.
그래서 다윗이 시편 37편 5절에서 6절을 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여기에서 길이 뭡니까? 인생길입니다. 미래입니다. 너의 내일입니다.
여러분 다윗은 자기 인생을 알 수 없었잖아요.
본래 베들레헴의 양치기 아닙니까?
그 양치기가 왕이 되리라고 상상했겠습니까?
왕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시고 그의 신앙의 절정기 때에 남의 여자와 불륜을 일으키고 그 남편을 살해하는 살인자가 되리라고 상상했겠습니까?
이만한 믿음이면 나는 완전한 자라고 착각하면서 살았지 않겠습니까? 자기가 품에 안고 그렇게 얼르우고 뽀뽀하고 그 사랑하던 압살롬이 아버지 죽이겠다고 아버지 목에 칼날을 겨누고 죽이겠다고 할줄 다윗이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경외했지만 자기 앞길을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네 길을 네 인생길을 네 인생의 네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만 아름답게 이루어진다. 그분이 내 미래를 가꾸시도록 그분이 내 미래에 이루시기 원하시는 일만 이루어지도록 그분의 손에 우리를 맡기자 그분이 반드시 이루신다.
내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내 공의를 정오에 빛같이 하시리로다.
내가 내 자신을 믿고 나의 내 일을 경영하려고 하면 아들에게 쿠데타를 당하고 모독도 당하고 내가 남의 집 가정을 깨뜨리는 어리석음도 범하지만 하나님께 나의 길을 맡기고 하나님께 내 인생의 미래를 맡기면 그래서 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는 내 의를 빛같이 내 공의를 햇빛처럼 빛나게 하신다.
왜 나의 미래 자체가 그분의 수중 안에 들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이죠.
야곱이 밧단아람을 떠나면서 한 가지 잘못한 것이 있습니다.
자기 삼촌이자 장인인 라반한테 간다고 말하지 않고 자기 처 자식과 식솔들을 데리고 도주한 것입니다.
왜 야곱이 정정당당하게 장인 어른 나갑니다. 빠이빠이 왜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가 간다는 사실을 속이고 도주했겠습니까?
이유는 한 가지였습니다.
야곱이 자기 장인에게 대해서 잔꾀 이를테면 술수를 부렸기 때문입니다.
장인이 참 여러 번 속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계약을 맺을 때에 장인의 양과 염소 중에서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은 다 자기 몫으로 한다고 계약하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잔꾀를 부리죠. 그리고는 점 있고 아롱진것 이런게 더 많아졌단 말입니다.
그것은 그의 잔꾀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나안 땅에 가서 정착하기에 필요한 물질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허락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야곱이 그렇게 장인 어른을 속이는 술수를 쓰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책임져 주셨을 것이다 말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거든요. 네가 반드시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약속하셨거든요.
그런데 야곱은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자기 술수를 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많은 가축을 얻었지만 그것이 술수의 결과라는 생각으로 라반에게 당당하게 간다고 통보하지 못하고 혹 어떻게 될까봐 두려워서 도주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매사에 정도를 걸어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0:01
내가 정도를 걸으면요. 세상 사람들이 나를 벌거벗겨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정도를 걷지 아니하면 내가 세상의 것으로 나를 두르고 두르고 둘러도 두려운 것입니다.
내가 못된 짓을 한 그 상대방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 사람의 눈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왜 죄의 특성이 두려움이거든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 때 옷을 입지 않고 살았습니다. 벌거벗고 살았습니다.
부끄러울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범죄를 하고 났더니 어떻게 돼요.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그것도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해입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물으시니까 내가 두려워함으로 숨었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두렵습니다.
사람에게 못할 짓을 하면 그 사람이 두려워요.
어디에 길에서 만날까봐 두렵습니다.
여러분 우리가이 세상을 천년만년 사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제한된 지극히 짧은 시간을 사는데 그때에 내가 누군가에게 못할 짓을 해서 그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 사람이 만날까 두렵고 그 사람이 혹시 나한테 해코지 할까 두렵고 그렇게 산다고 하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삶이겠습니까?
누구 앞에서든지 사람에게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는 매사에 우리는 정도를 걸어가야 될 필요가 있는 것이죠.
그것이 결국 자기 인생을 아끼는 길인 것입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지 않고 도주한지 열흘 만에 라반에게 결국 이제 잡히게 되는 찰나가 옵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도주했다는 그 소식을 사흘 후에 들은 라반이 체포조를 구성해서 추격을 시작했단 말이죠.
그래서 열흘 만에 지금 야곱을 덮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야곱을 잡아서 주리를 틀게 되는 마지막 날 밤입니다.
야곱으로서는 인생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삼가 선악간에 야곱에게 말하지 마라 삼가 참아라 너 조심해라 이 말이라 그랬습니다.
라반아 너 조심해 야곱에게 해코지 하지 마라
야곱이 도덕적이었기 때문에 윤리적이었기 때문에 야곱은 불완전한 인간이고 부도덕한 인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당신의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불완전한 인간이고 부족한 인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신 당신의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네가 반드시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돌아오기까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너를 책임져 주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야곱의 요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이튿날 라반의 입을 통해서 야곱이 그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이렇게 역사해 주셨구나
41절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20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14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6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라반은 수 차레나 자기 말을 어겨가면서 자기 조카 야곱을 착취했습니다. 지금 그 말을 하는 것이죠.
42절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마는 그렇죠.
하나님께서 그 전날 밤에 너 조심해 라반에게 경고하시지 않았으면 라반은 절대로 야곱을 되돌려 보내줄 사람이 아닌 것이죠.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젯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여러분 이 모습을 머릿속에 한번 그림으로 그려 보십시오
야곱은 자기가 삼촌에게 술수를 썼다는 생각 때문에 삼촌이 두려워서 말하지도 못하고 도주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열흘 만에 지금 잡히게 됐단 말이에요.
이제 꼼짝없이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라반에게 나타나셔서 너 조심해 경고하시고 라반의 마음을 바꾸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습니다라고 이야기할 때 야곱은 분명히 울면서 얘기하였을 것입니다.
내가 20년 동안 삼촌 밑에서 착취를 당하고 온갖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뭐 하시는가 고독할 때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괴로울 때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고난과 손의 수고를 다 보셨다는 거예요. 지금 확인한 것입니다. 그때 야곱의 감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바로 이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이심을 믿는다면 우리가 어떤 고난 어떤 수고의 상황도 뚫고 나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비록 내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방법으로 치밀하게 나를 위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고 계시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이 세상 아무도 몰라 줄 것 같았던 내 수고와 헌신의 결실을 내 눈으로 보게끔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그 말 앞에서 라반이 더 이상 할 말이 없죠. 하나님의 경고도 받았겠다.
43절입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떼는 내 양떼요. 내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이게 사실입니까? 아니에요.
자기 딸들은 이미 야곱의 아내입니다.
출가 외인이잖아요. 그 자식들은 야곱의 자식이지 자기 자식아 아닙니다.
지금 야곱이 가지고 있는 그 짐승 떼는 가축떼는 계약에 의해서 다 야곱의 것이 된 겁니다.
그런데도 라반은 아직까지도 전부 내 거야 자기 중심적인 사람입니다.
근데 라반이 그렇게 말하면서 결국 하고자 하는 말하고자 의도가 뭔가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이제 라반이 야곱을 치려 하던 자기 뜻을 거두는 겁니다. 자 봐라 이 딸들도 내 딸이고 자식도 내 것이고 이 짐승도 다 내 건데 내가 내 끝을 어떻게 해고지 하겠느냐
44절
이제 오라 나와 내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이제 야곱을 보내는 줘야 되겠는데 그냥 보내 주지 않고 이제 야곱 너하고 나하고 사이에 일종의 평화조약 동맹 조약을 맺자
나중에 뒤에 가면 다시 라반의 속내가 나옵니다마는 지금 야곱을 되돌려 보내주면서 라반은 라반대로 두렵겠죠.
왜냐하면 야곱에게 그동안 못할 짓을 많이 했거든요. 야곱에게 지금 아들이 몇 명입니까? 무려 11명입니다. 지금은 다 어리고 고만고만 하지만 가나안에 가서 이 아들이 커 가지고 아 예전에 그 라반 우리 저 아버지 골통 먹였다며 이 보복하러 온다 문제 생기지 않아요.
그래서 야곱을 보내는 주지만 자기를 해코지하지 못하도록 우리 조약을 맺자
45절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서고 먹고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 라반의 말에 오늘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여갈사하두다 앞에 1자가 있죠. 그래서 제일 밑에 주란을 보니까?
아람 방언이니 증거의 무더기다
또 2번 갈르앗 2자가 있죠. 그것은 히브리 방언이니 증거의 무더기이다. 다 똑같은 뜻이에요.
그런데 야곱은 지금 히브리 말로 갈르앗이라고 불렀고 라반은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아람 말로 여갈사하두다로 불렀다.
옛날 중근동 사람들은 어떤 조약을 맺거나 계약을 맺거나 언약을 맺을 때에 그 증거물로 약조물로
돌 기둥이나 돌 무더기를 세웠습니다.
20:03
돌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처럼이 조약에 대해서 신실해야 한다. 그런 상징으로 돌무더기를 세웠는데 지금 그렇게 그 증거물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49절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
미스바라는 말은 망대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상호 지금부터 맺는 조약에 대해서 망대 위에서 파수꾼이 두루살피듯이 하나님께서 각자가 얼마나 신실한지 두루 감찰해 주시기를 원한다.
이런 의미에서 미스바라는 이름도 붙였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때로부터 900년 후에 사사시대가 되었을 때 이 미스바는 이스라엘 종교 신앙의 중심지가 되는 곳이 되죠.
그러면 조약 내용이 뭔가 야곱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라반이 지금 얘기합니다.
50절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첫째로 내 딸 박대하면 안 돼 너 바람 피면 안 돼 그러면 이 미스바 위에 계시는 하나님이 너 가만히 안 둘 거야 여러분 항상 조약이라는 것은 상호적이잖아요.
그러니까 야곱에게 너 내 딸들 박대하지 말고 잘해 줘라 그러면 딸들한테도 얘기해야죠. 니네들 남편한테 잘해라 그 얘기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라반은 항상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을 그렇게 괴롭히지 않았습니까? 야곱만 괴롭혔겠습니까?
이런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자기 가족 주위 모든 사람을 괴롭게 할 뿐인 것이죠.
51절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이 기둥을 보라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야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야지 아니할 것이라
이것이 바로 라반을 속내였죠. 그러니까 나도 이 선을 넘어가서 너를 해치지 않을테니까 이 다음에라도 네가 나를 보복한다든지 절대로 이쪽 넘어와서 나를 해롭게 하지 말라 이것이 조약의 내용입니다.
53절
라반이 계속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시죠.
나홀의 하나님 나홀은 라반 자기 할아버지여요
나홀의 하나님은 누구예요. 그냥 우상입니다.
또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그 아브라함과 나홀의 아버지 데라도 역시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죠.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 하옵소서 하매
그러니까 라반은 야곱이 믿는 하나님도 알고 믿긴 믿지만 이 사람은 다신관 신앙이어요 그 신이라는 이름 붙은 건 다 부르면 지금 좋은 겁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 우리 할아버지 하나님 우리 조상의신 다 그 이름으로 맹세하니까? 판단하고 굽어살펴 주십시오 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일을 가리켜 맹세하고
그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는 누구십니까?
여호와 하나님
그러니까 야곱은 유일신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유일신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라반이 아니라 야곱과 함께 하실 것이며 두 말을 나이 없겠죠.
54절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중근동 사람들은 조약이나 계약을 맺으면 반드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양 진영의 사람들이 그 제사드린 음식을 다 나누어 먹으면서 축제를 벌려요.
그래서 양 진영의 우위를 따지고 자기네들이 조약한 내용에 대해서 우리가 신실하자 하는 것을 재 다짐하는 것입니다.
55절
라반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그래서 평화롭게 라반은 돌아가고 야곱 역시도 이제 가나안 땅을 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 입장에서 본다면 가장 큰 현안이었던 라반과의 문제가 깨끗하게 매듭지어지게 된 것입니다.
야곱의 의지나 노력으로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개입으로 바르게 매듭지어질 수 있었습니다.
자 족보를 가만히 보십시다.
아브라함이 여기 있잖아요. 그 동생이 나홀이에요. 아브라함의 아들이 누굽니까? 이삭이죠.
나홀의 아들은 부드엘 일입니다. 부드엘
이삭의 아들은 누구예요. 야곱이죠.
부드엘의 아들이 누굽니까? 라반이고 딸은 리브가죠. 그러니까? 아브라함 나오는 형제니까 아브라함 쪽에서 보면 야곱도 손자이고 나홀 쪽에서 보면 라반 리브가 다 손자 손녀입니다.
그러면 본래 야곱하고 라반은 어떤 사이가 되는 거예요. 형제사이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의 아버지 이삭이 이 라반의 여동생
그러니까 이삭의 입장에서 보면 조카하고 결혼해서 리브가가 야곱의 어머니가 됐거든요.
그러니까 형제이어야 될 라반이 뭐가 된 거예요.
삼촌이 됐습니다. 그런데 라반의 딸과 야곱이 결혼하니까 또 라반이 뭐가 됐습니까 장인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형제 사이 삼촌 조카 사이 장인 사위 사이 그러니까 그걸 따지면 결국 인간 모든 관계잖아요. 여러분 한 집안에서 형제 사이도 부모 사이도 하나님의 개입 속에서만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만 바른 관계가 성립 됩니다.
하나님이 개입되지 아니하면 내 뱃속으로 낳은 자식이라고 해서 평생 내 자식으로 서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지 아니하면 형제가 형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만 모든 인간관계는 바른 매듭을 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야곱은 라반과의 인간관계를 깨끗하게 매듭지었습니다.
그걸로 야곱의 문제가 끝났습니까? 안 끝났습니다. 야곱에게는 이제 보다 더 큰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 큰 문제가 뭐예요. 자기를 죽이려는 에서와의 피할 수 없는 만남입니다.
가나안을 가려면 에서와 만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살아가면서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그 다음부터는 인생의 아무 문제도 없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인생을 살다가 어떤 문제를 하나 맞았다고 해서 그것이 해결되면 그 다음에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그것도 넘어서면 또 다른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왜 그래요. 인간 자체가 불완전하거든요.
그래서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 인간이 살아있음을 의미합니다.
문제없는 인간은 죽은 사람 밖에 없습니다.
저 사람은 문제가 없어졌다. 그 사람 죽은 거여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끊임없이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그 문제를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앙 안에서 대응하느냐 하나님 안에서 대응하느냐 아니면 말씀 밖에서 내 뜻대로 대응하느냐 그 차이밖에 없는 것이죠.
모든 인간 관계마저도 하나님의 개입 속에서만 바르게 매듭지어질 수 있다면 에서와의 관계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해결되지 않을 거 아니겠어요.
32장 1절을 보십시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우리 성경은 그냥 길을 가는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길이 그저 뭐 이 양화진에서 지하철역 가는 길처럼 자연적인 길 지리적인 길처럼 생각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문에는 길 앞에 3인칭 소유격 그의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지금 그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30:00
그의 길 그렇다고 해서 그의 길 그 길을 야곱이 임의로 결정했는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가라 하신 길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을 지금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주어가 뭡니까?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사자들이 주어입니다. 목적어가 그를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사자를 보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야곱은 청하지 아니하였음에도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영접합니다. 왜 야곱이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길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길 위에 있느냐 없느냐 늘 관건은 이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길 위에 있다면 어떤 문제를 당해도 상관없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하나님의 사자들이 먼저 야곱을 영접을 했는데 그 사자들의 수가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많았던지 야곱이 보고서 감탄을 하면서 이는 하나님의 군대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진영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마하나임이다 불렀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길을 쫓아갈 때 내 중심이 가나안을 지향할 때 내 눈에 안 보여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군대로 내 앞길을 인도하고 계심을 우리는 믿는 믿음이 있어야 되는 것이죠.
다윗이 사울이 죽이려고 할 때 10년 동안을 피해 다니거든요. 그럴 때 우리가 잘 알다시피 다윗이 가장 괴로웠을 때가 더 이상 숨을 데가 없어서 적국에 가서 숨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비멜렉 앞에 가서 투항을 했는데 거기에 있는 신하들이 저 다윗 살려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아비멜렉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친 사람 시늉하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아비멜렉 보고 어이 저 다윗처럼 미치광이 됐네 그냥 내버려 둬라 돌려보내 줘라 그래서 살아 나왔습니다.
그리고서 하나님 앞에 다윗이 이렇게 고백 했습니다.
시편 34편 7절입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여호와의 천사들이 내 주위를 둘러서 진을 치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다윗이 삶이 달라진게 있습니까? 달라진 것 없습니다.
당장은 똑같이 어제처럼 그 고난의 터널을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의 천사들이 나를 진치고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보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그 폭풍우를 통해서
믿음의 장군으로 우뚝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이죠.
3절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에서 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이제 가나안 땅이 점점 가까워지자 형 에서와의 상봉의 때가 가까워졌단 말이죠.
그래서 야곱이 자기 대리인을 먼저 형한테 보내었습니다.
4절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니
에서는 야곱의 형이잖아요. 그러면 자기 대리인한테 내 형한테 가서 아우가 이렇게 얘기합디다라고 말하라 이렇게 이야기하면 될 터인데 네 주 에서에게 가서 주의 종 야곱이 삼촌 라반 집에서 있다가 왔다고 합니다라고 말을 해라
그러니까 야곱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던 형의 마음을 풀 수만 있다면 그 형을 주인으로 모셔도 상관없는 것입니다.
또 자기 대리인으로 하여금 자기가 에서를 주라고 부름으로 해서 자기 대리인이 더 에서를 극진하게 모시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있는 것이죠.
5절
내게 소와 나귀와 양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그 대리인을 에서에게 보내면서 하는 말이 은근히 자기 재산이 많은 걸 과시합니다.
나한테 이렇게 가축도 많고 노비도 많고 그래서 그 사실을 형한테 알리고 형의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왜 야곱이 이렇게 은근히 자기 재산을 과시하겠습니까? 여러 가지 복선이 깔려 있겠죠. 가령 예를 들면 20년 동안에 에서 형이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 있으면 거기에 대해서 내 권리 절대 주장 안 할게 나도 많다.
두 번째로 20년 만에 도망갔던 동생이 온다는데 혹시 내가 경제적으로 뭐 도와줘야 되는 것 아닌가 형한테 경제적으로 부담 일체 안 줄게
마지막으로 내가 형한테 나 재산이 많으니까 경제적으로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렇게 지금 과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6절 보니까?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400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에서의 정보수집 능력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가니까 에서는 벌써 야곱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400명을 끌고 온다는 거예요.
여러분 만약에 에서가 동생이 20년 만에 오는 것을 반기로 온다면 자기 혼자 혹은 주위 몇 사람만 오면
되잖아요.
400명 데리고 온다는 건 뭡니까?
이것 도륙되겠다는 겁니다. 에서는 본래 직업이 뭐죠. 사냥꾼입니다. 활쏘는 사람이잖아요.
그 주위에 400명 요즘 말로 다 칼잡이들입니다 칼잡이를 400명을 끌고 온다 이 보고를 받았습니다.
7절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당연하겠죠.
야곱에게 아무리 노비가 있다 한들 야곱은 뭐 하는 사람이죠. 목자입니다. 사냥꾼이 아닙니다. 활을 쓰고 칼을 쓸 줄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 400명이 덮친다면 백전백패할 수 밖에 없잖아요. 그 두렵고 답답해서 지금 뭘 하는가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대를 두 떼로 나누고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떼는 피하리라 하고
그 순간에 자기가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게
자기 재산과 사람을 두 떼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가 와서 한 떼를 도륙질하면 나머지 한떼는 그래도 도망가야 되겠다 이 반이라도 건져야 되겠다.
그런데 치다하는 동사 나카라고 하는 것은 공격한다 죽이다 뭐 이런 뜻도 있는데요. 갈기갈기 찢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게 야곱은 지금 칼잡이 400명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도륙질 당하는 갈기갈기 찢어지는 그와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두 떼를 나누어 놓고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9절입니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20년 전에 밧단아람으로 도망할 때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네가 반드시 이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또 얼마 전에 밧단아람을 떠날 때에도 하나님께서 이제 너 가거라 가나안 땅으로 가거라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셔서 제가 갑니다.
그 책임져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이죠.
10절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20년 전에 그가 요단을 건너서 밧단아람으로 갈 때 가진 재산이라고는 지팡이 하나밖에 없었단 말이죠. 혈혈단신으로 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20년 동안에 하나님께서 한 떼가 없어져도 나머지 한떼만으로도 충분한 재산이 될만큼 두 떼를
주셨다 이 모든 것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실은 우리 모두의 고백이기도 하지요.
40:01
세상에 태어날 때 다 벌거숭이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죠.
11절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지금 에서가 얼마나 무서우면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십시오 두 번을 반복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간략하게 기도의 핵심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마는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이 말을 풀어서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야곱이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 내 형이 지금 400명을 끌고 옵니다.
내 형 아시지 않습니까? 에서는 사냥꾼이지 않습니까?
그 거친 성품 아시지 않습니까?
그 에서로부터 저를 좀 건져 주십시오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여기에서 치다는 것도 나카 내 처자들을 도륙할까 봐 겁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주님께서 분명히 나로 하여금 바다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을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내 처자식을 도륙질 하도록 내버려 두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이런 의미의 기도입니다.
만약에 야곱이 하나님께서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대로 자신과 함께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앞길을 책임질이실 것을 확신한다면 이 기도로 야곱은 두려움이 없어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뒤에 보면
13절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아침에 일어나서는 또 형한테 물량 공세를 시작합니다
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야곱이 마하나임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수고와 헌신을 보신 것 다 압니다. 머리로는 이해해요. 그런데 형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오는 그 절체 절명의 순간에 그 하나님께서 나를 책임지신단 주신다는 것이 아직 마음으로는 안 믿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하나님 말씀 다 알지 않습니까? 이성적으로는 다 이해해요.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쫓지 못하는 것은 그 말씀이 내 마음속에서 서겨져서 내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인 거예요.
그래서 야곱이 자기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해서 예물을 택했는데 어떤 예물을 택했느냐 하면
32장 14절
암 염소가 200이요. 숫염소가 20이요. 암양이 200이요. 숫양이 20이요
15절 젓 나는 낙타 30과 그 새끼요
그냥 낙타가 아니라 젓이 나는 낙타 30이니까 뒤에 새끼도 새끼 30마리다. 그 말이죠.
암소가 40이요. 황소가 10이요. 암나귀가 20이요 그 새끼 나귀가 10이라
이걸 다 합치니까 총 580마리가 나옵니다.
여러분 1998년도에 당시 살아계시던 그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께서 소떼를 끌고 방북 하실 때 소 몇 마리 끌고 가신지 아십니까?
천마리 천마리 걸고 가셨습니다.
1차 500마리 2차 500마리
여러분 정주영 회장님은 당시에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입니다. 대한민국의 재벌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거부입니다.
그분이 한 나라 북한이라는 한 나라에 대한 선물로 가져간 게 소 때 천마리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옛날에 야곱이 자기 형 한 사람을 위해서 자기 가족 중에서 물론 다 소는 아니지만 그러나 소보다 비싼 낙타도 있거든요.
자기 가축 580마리를 드리기로 결정했다.
이것 대단한 것이죠. 그 당시로 보면
16절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그 580마리를 한꺼번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떼로 나누었는데 뒤에 보니까 세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각떼와 떼 사이를 상당한 거리를 두게 했습니다. 17절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18절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19절 그 둘째와 셋째와 각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그러니까 세떼로 나누어서 각 떼마다 상당한 거리를 두게 하고 이제 시차를 두고 보낸단 말입니다.
그러면 제일 첫 떼를 끌고 가는 사람이 에서를 만나서 넌 누구냐 그러면 주님의 종 동생 야곱이 보내는 예물입니다.
그리고 또 에서가 한참 가다 보면 두 번째 또 떼를 만나겠죠. 그러면 똑같은 대답도 해라
또 세 번째 떼를 끄는 대리인에게도 똑같은 대답하라 이렇게 시켰습니다.
20절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주리라 함이었더라
그러니까 에서 입장에서 지금 야곱을 죽이겠다고 400명 칼잡이를 데리고 오는데 첫 번째 선물공세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화가 누그러 떨어지지 않더라도 또 한참 갔는데 또 두 번째 선물공세를 받았습니다. 이것 봐라 조금 귀엽네 근데 또 한 참 갔는데 또 선물공세가 있단 말이죠.
그러면 형 마음이 풀려서 내가 만나는데 지장이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얼마나 야곱이 그 마음이 다급하면 이런 잔꾀를 또 부리겠습니까?
여기에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됩니다.
여러분 지금 야곱은 형 에서에게 빌붙어 살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처 자식이 많이 있는데 먹고 살 길이 없어서 형님 집에 가서 종으로 일하고 형 재산으로 먹고 살려고 하는게 아닙니다.
야곱은 이미 거부입니다. 굳이 가나안 안가도 돼 에서 형 안 만나고 딴데 가서 살면 되잖아요. 편하게 살면 됩니다.
근데 왜 죽음을 무릅쓰고 자기 재산을 떼어서 이렇게 선물 공세를 하면서까지 왜 굳이 이 길을 가려고 하는가
이유는 그 길이 언약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이 말씀을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야곱은 참 허물이 많습니다.
부도덕한 삶도 살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 목숨이 위태로워도 하나님께서 내게 가라고 하신 길이기 때문에 그 길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을 야곱은 철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철칙으로 삼았을 때에 32장 1절로 다시 되돌아가십시다.
야곱이 길을 가는데 바로 그의 길이죠.
가나안을 향하는 그의 길이죠.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야곱이 그 길을 갈 때 야곱이 비록 머리로만 이해하고 아직까지 마음속으로는 못 믿는다고 한들 하나님의 군대는 어김없이 야곱과 함께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 산다는 것은 매일 기쁨과 행복이 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나안을 지향한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산다는 것은 때로 피하고 싶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때로 정말 죽어도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가고 싶지 않은 길을 돌아서라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 길을 가려고 할 때 내 중심이 그 길을 지향할 때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대가 나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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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의 군대라고 표현했겠습니까?
여러분 군인들은 진군 하다가 길이 없으면 길을냅니다. 강이 있으면요. 보트를 연결하든지 나무를 연결해서 공병들이 다리를 만듭니다. 어떻게든 가게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길을 갈 때 하나님의 군대가 나와 함께 하시면서 길이 없을 때는 하나님이 뚫으십니다.
강이 막혀 있으면 하나님이 뚫어서 건너가게 하십니다.
산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넘어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길을 향해 갈 때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바로 그 하나님의 뜻에 의해 야곱은 위대한 신앙 조상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길을 쫓아가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혹 그 길이 피하고 싶은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길이면 그 길을 쫓아가십시오
결과를 주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야곱은 이미 거부가 되었습니다.
어느 곳에 가도 평생 먹고 살 재산을 가졌습니다.
굳이 가나안을 가지 않아도 됩니다.
굳이 형 에서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당하면서까지 그 길을 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결코 그 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아니했습니다.
그 길이 언약의 길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그때 비록 야곱이 머리로 이해는 하고 마음으로는 믿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군대가 그와 함께 하시고 그를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주시고 그로 하여금 위대한 믿음의 조상 반열에 오르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의 이 각자의 밤이 야곱이 그의 길을 걸었던 바로 그 길이 그 길 위에 서는 우리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그와 같이 말씀을 쫓는 삶이 시작되는 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내 육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길을 쫓는 나와 함께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대가 함께 하심을 믿음의 눈으로 보게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비록 당장 내 상황은 변치 않는다 할지라도
그 상황 속에서 나를 위한 하나님의 뜻은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하나님의 때가 될 때 그 모든 열매가 반드시 결실될 것임을 믿음으로 그 결실을 얻는 기쁨에 주님과 함께 동참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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