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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의 비행기 추락과 데스노트.
2014년 발생한 3건의 말레이 항공사 소속 여객기 격추사건은
관제탑과 문제 발생을 무선 보고할 겨를이 없이 추락, 실종됐다.
화물기도 아닌 여객기 3대, 한 국가의 비행기 3대가 1년 안에
추락한 것은 정상적인 확률에서 벗어난 셈이다.
2015.1.2
에어아시아 사고 항공기가 실종되기 13일 전 이를 예언한 글이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것으로 확인 돼 테러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홍콩 유력 매체 펑황 위성 TV는 중국 온라인 커뮤니티 ‘텐야’에 사고 13일 전인 같은 달
15일 오후 8시 15분 쯤 ‘에어 아시아를 해치운다’는 글이 올라와있다고 보도했다.
길지 않은 이 글에 따르면 “국제적인 ‘검은손’이 말레이시아항공 MH370편과 MH17편을
납치해 격추한 뒤, 이번에는 에어아시아를 타깃으로 정한다. 이 검은손은 말레이시아
항공과 마찬가지로 에어아시아도 해치운다. 왜냐하면 둘 다 말레이시아에 속하기
때문이다”라고 씌여있다.
또, 파룬공뉴스사이트(실제로는 심리전 언론)에 보면,
2014.12.30
[SOH] 올해는 말레이시아 항공과 에어아시아 항공기가 실종되는 등 민간 항공기 사고가
잇따랐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예언이 중국 인터넷에 게재됐던 것이 알려지면서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3월 8일 말레이시아 항공 MH370편이 비행 도중 갑자기 실종돼 현재까지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이번에는 말레이시아 에어 아시아 8501편이 또 실종됐습니다.
그런데 에어 아시아 항공기가 실종되기 13일 전,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미 이 사고와
관련된 예언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지난 15일에 게시된 글에는 "국제적인 대흑막이
말레이시아 항공 MH370편과 MH17편을 납치해 격추한 뒤, 이번에는 에어 아시아를
타겟으로 정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흑막은 말레이시아 항공과 마찬가지로 에어
아시아도 해치운다. 왜냐하면 둘 다 말레이시아에 속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돼 있습니다.
이 내용은 게시 직후 비난과 야유를 받았지만, 현재는 예언의 적중성에 대해 많은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올해 3월 29일자 ‘네덜란드 중문망’에는 이런 경고도 나와 있었습니다. "MH17편에는
탑승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타게 된다면 유서를 남기도록!" 그후 7월 17일, 말레이시아
항공 MH17편은 우크라이나 상공에서 격추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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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지아의 과거력.
보통 말레이지아라면 '98년 동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마하티르 수상의
반미유대적 발언과 쇼때문에 중립내지 줏대있는 반미국가로 생각하지만
그건 허상의 일종이며 엄연한 영연방 수하에 존재하는 국가이다.
말레이지아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는 400년전부터 영국과 네덜란드
유대세력의 자본참여와 투자가 이루어져 생성되어 오늘의 말레이지아로
이어진 곳이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가 59년 네덜란드기업 500개를 국유화시키다가
결국 미유대와 영연방 유대의 반격 공작에 붕괴된 경우와 다르게
말레이지아 연방은 철저히 영국유대와 그 마름인 인도, 중국인들의
자본과 자산이 결합되어 지금까지 전해온 것이다. 단지 마하티르는
영국, 인도, 중국인 자본이 지배하는 말레이에 현지민족 출신 수상이므로
유대자본을 공격하는 발언을 했지만 실상은 말레이경제는 영연방 유대와
그 마름 세력(인도, 중국)이 철저히 지배하는 국가이다.
미영 유대세력의 동남아의 분열, 학살 전략의 전초기지 역할을 맡아
동남아시아 민중의 진보적 평화를 가로막은 말레이시아 과거가
미유대(영연방)의 자체 역변 시나리오 에서 펼쳐지는 여객기 3기 연속 추락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말라카해협 주변 동인도제도의 패권은 포르투갈에서 17세기에 들어서
네덜란드로 넘어가고 그 이후 대영제국시대로 넘어가면서 영-네덜란드는 신사협정에 의해서
네덜란드의 기득권을 유지하기로 합의하여 제국주의 식민지배를
굳건히 하였다. 대부분의 영토(지금의 인도네시아, 파푸아)는 네덜란드가 계속
차지하고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만 영국의 직접통치에 속하게 되었다.
<위키피디아 사진>
2차대전 이후 말레이시아 지역은 영국식민통치에 하급관리 등으로 부역했던
인도인과 중국인들이 정치경제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인도는 오랜 영국식민통치에 동화되어 천만 명의
인도인이 아시아, 아프리카 영연방 식민지 통치에 부역하거나 상공업에 종사하였다.
즉, 영국의 완전한 해외식민지 유산 청산은 인도에게도 큰 타격이었던 셈이다. 네루의 비동맹 운동은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말레이 반도에서 반중 폭동으로 65년 중국인 주도의 싱가포르가 독립한다.
이는 다시 한번 전략해협인 말라카의 통행권을 싱가포르라는 영국유대 푸락치
국가를 독립시켜 이중 보장한 것이다.
친미,친영 군부세력인 인도네시아 수하르토가 98'년 물러나자
대규모 반중국인 폭동이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것은 동남아 중국인들이 인도인처럼 제국주의자들의 신식민지의 마름으로
이익을 취하며 부역하는 특성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폭발한 것이다.
수카르노의 인도네시아가 상대한 영연방의 신식민지 기도 세력이 벌인 당시 전쟁 참여국들의
국기를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모두 유니온잭을 달고 있는 연연방 국가이다.
65~66년 인도네시아 공산당 대규모 학살은 수하르토 친미 군부와 근본주의 수니파
이스람세력이 주도했고, 말레이는 이를 지원하는 친영세력의 본거지였고, 중국인들은
영국과 네덜란드에 부역하여 경제마름의 역할을 만끽해왔다.
반제반패권운동의 수카르노.
수카르노는 미-소 냉전 대결을 반대하고 독자 노선을 추구하는
55년 비동맹운동의 발원점이 되는 반둥회의를 인도네시아에서
개최하여 국제적인 평화협력운동 결성을 추동한 인물이다.
비동맹운동의 5개원칙은 국경을 맞댄 인도와 중국 사이에 합의된 원칙이
비동맹운동의 기본 원칙으로 수용되었다.
Mutual respect for each other's territorial integrity and sovereignty
Mutual non-aggression
Mutual non-interference in domestic affairs
Equality and mutual benefit
Peaceful co-existence
주권존중, 불가침, 내정불간섭, 상호동등과 호혜, 평화공존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
2011년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에서 공동성명으로 천명한 반패권주의 소멸 선언의 맥락은
비동맹운동 정신과 같이 한다. 북은 76년에 비동맹운동 정식회원국이 된다. 한국전쟁 이후에
소련과 중국과 군사우호조약을 체결한 동맹상태이어서 미-소 블록 불가담이라는
초기 비동맹운동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할 수 없었지만 북은
이들 비동맹 국가와 외교를 실질적으로 중시한다.
초기에 인도와 중국은 비동맹 운동에
큰 역할을 담당하지만 62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 이후 그 존재감이 축소된다.
친영 뿌리가 깊은 인도군이 국경의 전초포스트를 전진배치하면서 도발이 시작된다.
인도는 일방적인 군사적 열세에 빠지는데 인도의 네루는 케네디에게
편지를 보내 대규모 군사지원을 요청한다. 그래서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는 비밀리에
군수지원을 시작한다.
중국은 소련과 반목, 극좌적인 경제정책을 펼친
58~61년 대약진운동 속에서 실행한 집단농장화와 농업방법 전환이
준비부족과 비과학적인 판단으로 대규모 기아(2000만~8천만명으로 추정)가
초래됐고 그 아사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에 인도-중국 전쟁이 발생한다.
네루와 모택동가 비동맹정신의 모토가 됐던 5개항의 비패권 평화조항을
합의천명했던 국가라는 점에서 상당히 의외의 전쟁이었다.
전쟁의 발생 원인이 인도군이
먼저 전초 포스트를 전진시키며 도발된다는 점에서
중국 공산화 이후 대중국 전략의 기본인 중국 포위 및 괴롭히기 전략이
한국전쟁유도, 대만장개석군대 대륙재침공위협, 일본재무장, 베트남전확대,
티벳후방에 우익빨치산과 정찰대 낙하산 침투하는 전반적인 전략의 연장선이
적용됐다고 볼 수 있고 이는 미유대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친영 인도군 인맥에 의해 도발된 전쟁으로 판단된다.
즉, 대규모 기아와 중소 갈등의 난국에 빠져 있는 중국을 국지 분쟁을 통해서
더욱 괴롭게 만들거나 확전으로 위협하는 전략이다. 그리고 적절한 시기에
막대한 식량을 중국에 지원한다. 채찍으로 괴롭힌 후에 매우 큰 당근을 내민 것이다.
중국은 막대한 식량과 차관을 미국에 구걸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지만,
비밀리에 영국과 접촉을 통해 영연방 버마와 캐나다, 호주 등을 통해
막대한 양의 식량을 차관과 원조로 지원받게 된다. 그 양이 8천만톤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다. 미영유대세력의 막대한 대중국 식량지원은 소련과 반목하던
중국의 처지에 꼭맞는 유대의 전략으로 중국의 선택방향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대국 인도와 중국은 6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체 모순과 한계에 의해 유대자본진영에 투항하기 시작하며
약화, 분열되기 시작한다.
인도의 열화와 중국의 극좌화 속에 수카르노의 분전
이에 반해서 수카르노는 비동맹운동의 발원이 되는 반둥회의를 주최하자
네덜란드는 원래 제안과 약속을 깨고 서파푸아를 독립시키겠다고 주장하며
군대를 파견 진주시킨다.
영국과 CIA는 수마트라, 자바, 보르네오의 반군세력인 PRRI,
퍼르메스타에 대규모 군수지원과 15대의 B-26과 CIA에서 채용한 조종사까지
지원하다가 생포된다. 인도네시아 수카르노는 점차 반제반미 노선을 더욱
뚜렷이 하면서 '59.7.5일 500개 네덜란드 기업 국유화조치를 단행하고,
국내적으로 서구식 의회민주주의를 폐지하고 정부가 의회 1/2을 임명하는
"guided democracy"와 종신대통령제로 맞서나간다. 박정희의 유신은 이를
모방한 것이다.
<CIA가 채용하여 인도네시아 반군에 지원한 폭격기 조종사가 격추,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수카르노는 북과 북베트남, 캄보디아, 중국과 5자 연대를 강화한다.
58~61년 대약진운동 실패후에 문화혁명이라는 친미유대로 가기 위한 극좌쇼로 전이하던
중국, 전쟁 중인 북베트남(호치민)과 실제적인 전쟁 상태인 캄보디아
(당시,시아누크 왕세자)를 감안하면 실제로 세계3위 공산당원이 존재하는 수카르노의
인도네시아와 북이 반제반미 반패권의 비동맹 운동의 핵심 추동체였다.
수카르노의 김일성花
65. 4월 김일성-김정일은 함께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는데 청년 김정일은 64년 대학졸업 후
노동당 중앙위에 배치받은 1년된 사회초년생 청년이었던 셈이다. 이 방문에서 수카르노는
김일성花를 세계진보운동에 대한 상징으로 선물한다.
<24세 청년 김정일과 수카르노의 딸들은 의남매 관계였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사이트 참조>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을 선도한 인물이고 건국의 아버지이고
현직 대통령이었다. 그 자신이 공산당원은 아니었지만 인도네시아 공산당과 좌파의
주요 후원자이었다.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민주적 절차에 의한 집권을 추구했다.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수카르노 시절 급성장하여 소련, 중국에 이어 3위인 300만명의
공산당원 숫자를 자랑했고 비동맹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추동세력이었다.
미유대(+영국)의 입장에서보면 3세계의 사회주의 진보 운동을 붕괴시키기 위해서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성장세를 좌시해서는 안되는 전략적
당면과제였던 셈이다.
이러한 와중에 세계3위의 공산당원 수로 성장하며,
3세계의 비동맹운동에서 점차 반미반제운동으로 규정해나가는 수카르노의
노선은 미유대와 영연방세력으로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장해물이었던 셈이다.
62년, 케네디의 동생, 로보트 케네디 미법무장관의 중재로 네덜란드의 서부 파푸아
분리독립정책을 포기하도록 중재하여 수카르노에게 선물을 안긴다.
<로보트 케네디, 수카르노, 체 게바라가 만나는 장면>
그러나 63.11월 케네디 암살을 전후로, 영연방은 보르네오 섬을 분할하여 북보르네오,
샤라워크를 말레야와 합쳐 말레이지아 연방(지금의 말레이지아)을 순차적으로
형성하고, 대규모 영국국, 호주군을 비밀리에
보르네오에 투입시켜 이러한 분리를 지원하는 군사작전( 클라렛 작전)을 펼친다.
"5열"로 암살당한 케네디 형제
케네디는 미유대에 반하는 진보적 정책을 추진하며 3년만에 암살당하고,
더 진보적인 그의 동생 로보트 케네디도 대통령후보에 나서다 68년 암살당한다.
북이 흐르시쵸프 소련의 62.10월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서 모험주의로 비판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취약한 케네디 진보정부를 위태롭게 만드는 조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당시 소련은 58년 아이젠하워 때 유럽에 배치된 중거리핵미사일에 대한 대응으로,
그리고 아이젠하워시절에 준비된 쫓겨난 쿠바와 마피아들로 구성된 CIA의 쿠바 피그만
침공에 대응하여 신생국 쿠바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강행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케네디의 진보정책이 꽃필 시간적 여유를 박탈한 셈이다.
61.10월 58메가톤( 100메가톤설계에서 줄여서 시험)의
짜르봄바 열핵탄 시험에 이은 쿠바 중거리 미사일 배치는 동서 평화 공존을 주장하는
케네디의 국내적 입지를 불안하게 만들어 미유대의 마피아 자본주의 세력의 발호로
이어진다. 흐르시쵸프가 케네디 암살 1년후에 몰락한 것은 나무만 보고
전략의 숲을 이해하지 못한 중대한 정책실패가 원인일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수카르노와 케네디가 비슷한 싯점에 연달아 꺽이는 사건은, 인류의 진보적 흐름을 왜곡시킨
공작에 의한 역사의 변곡점이고 악행의 시작점이었다.
2014년, 말레이지아 여객기 3기 연속 추락사건은
그러한 역사를 되돌리는 미유대와 영연방 내부가 써가는 희생제의 의미를 갖는다.
지금의 말레이지아라는 국가는 CIA의 적극 지원하에 영국이 펼친 교묘한 신식민지 체제를
구성하기 위한 기획된 국가이다. 64년 말레이지아 연방 선언에 대해
유엔이 승인하자 수카르노는 통일된 보르네오 안의 자치 정부 구성을 주장하고.
유엔과 이사국에서 탈퇴한다. 영국과 미국은 재빨리 말레이지아를 이사국에 임명한다.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 친미친영 군부와 이슬람세력의 반란을 지원하는
근거지가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64년 김일성대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노동당 중앙위에 배치된
청년 김정일은 65.4월 김일성 수상을 따라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것이다. 수카르노의
평양 겨울 방문에 대한 답방이었다. 수카르노와 김일성의 관계가 김일성화(꽃)가 상징하듯
밀접했고 수카르노 딸들과 김정일은 의남매로 지냈다고 한다(인도네시아 사이트).
<2002년 3월에 대통령이 된 메가와티가 남과 북을 연이어 방문한다. 북의 세계혁명의 여정에서
수카르노와 그의 딸 메가와티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김일성-김정일 인도네시아 방문한 해의 가을에 역사를 역류시키는 비극적 공작이 시작된다.
65.9.30일, 수카르노를 지지하는 공산당 소속 젊은 장교들이 영국과 말레이지아 세력과
밀접한 인도네시아 군수뇌부가 쿠데타를 기획하고 있다는 역정보에 녹아나
대통령 경호부대를 동원하여 친위쿠데타를 일으키고 몇몇 장성을 살해한다.
그리고 군사권을 수하르토에게 일임하자, 수하르토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오히려 공산당 젊은 장교들을 체포하고 CIA 가 작성한 7000명의 명단을 포함하여
대규모 공산당원 대량학살에 나선다.
이러한 학살에는 이슬람 종교세력이 동원되어 공산당원 100~300만명이 학살된다.
그 당시 인도네시아 학살에 관여한 CIA와 국무부 현지 책임자의
최근 증언으로 실체가 공개되고 있다. 이는 앞서 글에서 설명한 바 있다.
한반도에서 황해도, 평안도 서북지역의 기독교세력,
중동에서 근본주의 수니파, 유럽과 남미에서 반사회주의 억압과
민중 학살을 방조한 카톨릭, 80년대 이후 미국내 복음주의 기독교 우파들의 발호,등등은
미유대와 영연방 유대가 구체제를 지탱하는 동맹인 보수 종교를 이용하는
필연적인 전략과 밀접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수카르노의 인도네시아에 가해진 교묘한 공작적 학살과 왜곡은
71.12월 동파키스탄(방글라데쉬)에서 벌어진 지식인(좌경이 아니라 지식인과 학생을 대상으로한)
30~300만 학살도 파키스탄의 이슬람 친미친영 군부에 의해 이어지고
이어 75.8월 집권한 방글라데쉬(동파키스탄) 무지바 사회주의정권도 친미친영군부의 쿠데타전복과
무지바 가족의 학살로 이어진다. 77.7월 파키스탄(서파키스탄)의 사회주의자 수상
베리 부토정부도 친미친영 군부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고 교수형에 처해진다. 그의 딸, 베나지르 부토는
후에 대통령에 올라 98.5.30 핵시험 장소를 북에 빌려주고 액체추진 미사일 가우리와
고체추진로켓 샤힌을 받지만 99.10월 다시 친미 군부 쿠데타로 해외로 망명하고
2007년 다시 귀국하지만 그해 폭탄테러로 암살된다.
(냉전시기 아시아의 또하나의 학살 사건인 캄보디아 폴포트 정권의 만행은
중국의 문화혁명 식의 극좌광란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북은 캄보디아의 시아누크 공(왕세자)을
지원하는데 시아누크는 유고식 사회주의를 지향한다. 중국의 지원을 받은 크메르루쥬세력이
시아누크세력을 배척하고 친베트남세력을 숙청하고 공산화이후에 문화혁명의 모토를 내세우며
대규모 극좌 학살을 초래하게 된다, 수카르노도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고, 시아누크도
왕세자인데 북이 매우 소중히 했던 인물들이다. 66.8월 모택동이 문화혁명의 실천을 전인대회에서
요구하자 북은 연이어 강력한 비판에 나선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북이라는 혁명수뇌부가
역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지성적 균형감을 내적으로 유지하는 집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 부분은 중국의 현 시진핑 정부가 "반문화혁명"과거력의 인물로 채워지게 된 이유를 분석하는 글에서
다시 한번 다뤄보겠다.)
반제반패권의 비동맹운동사에 있어서 수카르노의 65년 인도네시아,
그리고 63.11월 케네디암살은 3세계와 1세계(미와 유럽) 내부에 대한
미유대와 영연방의 패권적 전횡과 역사 진보에 대한 반동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이다.
2013년 말레이시아 여객기 3대가 추락한 것은 미유대가 스스로 역사를 돌이키는
일종의 영화의 '플래쉬백'형식의 희생제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상공을 지나다 말레이 휴양지로 행하던 말레이지아 비행기에는
약속을 어기고 다시 영유대의 동맹으로써 신식민지 군사개입으로 악행을 저지른
네덜란드 국적 사람들이 대부분 타고 있었다.
3월, 12월 추락 비행기는 악핵의 마름들인 중국인, 말레이지아인, 인도네시아인들이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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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중국 시진핑 신정부 분석, '반-문화혁명정부' "에서
미국의 오바마에 이어서 중국에 들어선 친북 프락치 정부에 대해서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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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추운데.. 건강하십시요
오랜만에 긴 글을 올리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됩니다.. 현재 시진핑 중심의
중국이 어떤길을 갈것인지 궁금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좋은글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시글로나마 잘 계시다는 안부를 확인하게되어 반갑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 글도 가급적 빨리 올려보겠습니다.
으음~ 댓글내용이 흥미있는 내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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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들은 황제국이 아니죠.. 정신들 차려야지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알쏭달쏭해서...
그러니까 말레이소속 민항기 3대를 추락시킨 건 미유대가 스스로 반성의 의미로
반제자주국에 제물(?)로 바쳤다는 얘기로 이해하면 됩니끼?
반성의 의미라기 보다는,
이러한 북의 세계혁명에서 과거에 대한 응보를 한다면 물리적으로
또다른 인과응보의 학살이 발생해야 하지만
그게 답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 구축을 위해서
키신저의 초현실주의(메테르니치현실균형외교, 마키아밸리즘현실주의)가
역순으로 적용된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