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밝고 둥근 해님처럼
당신은 그렇게 오시렵니까
기다림밖엔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당신은 조용히 사랑의 태양으로 뜨시렵니까
기다릴 줄 몰라 기쁨을 잃어버렸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며
이제 우리는 기다림의 은혜를 새롭게 고마워합니다
기다림은 곧 기도의 시작임을 다시 배웁니다
마음이 답답한 이들에겐 문이 되어 주시고
목마른 이들에겐 구원의 샘이 되시는 주님
절망하는 이들에겐 희망으로
슬퍼하는 이들에겐 기쁨으로 오십시오
앓는 이들에겐 치유자로
갇힌 이들에겐 해방자로 오십시오
이제 우리의 기다림은
잘 익은 포도주의 향기를 내고
목관악기의 소리를 냅니다
어서 오십시오, 주님
우리는 아직 온전히 마음을 비우지는 못했으나
겸허한 갈망의 기다림 끝에 꼭 당신을 뵙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첫 기다림이며
마지막 기다림이신 주님
어서 오십시오
촛불을 켜는 설레임으로
당신을 부르는 우리 마음엔
당신을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
환한 기쁨이 피어오릅니다
- 이해인, <다시 대림절에>
-----------------------------------------
어김없이 찾아온 기다림의 절기 대림절을 맞이합니다. 대림절을 맞이 할 때면 교회 강단에 말구유 장식을 하곤 합니다. 작년 김원열 선교사님이 전해준 뜨개질로 만든 우즈벡 전통의 말구유 인형 덕분에 이번에도 두 가지(점토, 뜨개) 말구유 장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올해엔 이인수 집사님이 빈 말구유까지 가져오셔서 그 의미가 더욱 깊습니다. 늦은 밤 말구유 장식 앞에 서서 물끄러미 인형들의 면면을 살펴보았습니다. 거기에 있는 이들은 모두 기다림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이를 만나기 위해 10달을 묵묵히 기다려왔던 엄마 마리아와 아빠 요셉. 이들은 마냥 기쁨과 설렘으로 예수님을 기다렸을까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마리아가 아이를 낳는다는 건 목숨을 건 결단이었습니다. 그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공동체는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아기 예수와 만나기까지 수많은 번민이 그녀의 마음을 짓눌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와 만나려 했던 엄마 마리아의 집요한 사랑이 지난한 시간과 불리한 상황들을 이겨내게 했지요. 아빠 요셉은 어떨까요? 천사가 점지해준 아기라지만, 자꾸만 불러오는 약혼녀 마리아의 배를 바라볼 때면 온갖 생각이 그의 머리를 가득 메웠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비웃음도 견뎌내야만 했겠지요. 그럼에도 그는 그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입니다. 성서는 그런 요셉을 의인이라 말합니다. 우리가 마냥 기뻐하는 아기 예수의 성탄에는 이렇듯 깊은 번민과 아픔이 스며있었던 것입니다. 우린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엄마 뱃속에 있던 아기 예수는 아마도 그 모든 것들을 세포 하나하나 속에 담아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예수는 자라 죽을 때까지 번민과 아픔이 서려 있는 곳만 찾아다니며, 그런 이들을 만나셨습니다. 아파했던 사람(아픔을 아는 자)만이 아픔을 보듬을 수 있듯이, 예수는 고통과 번민과 아픔 속에 숨조차 쉴 수 없는 이들을 끌어안으셨습니다. 그리고 끝내 그들에게 구원의 문을 친히 열어주셨습니다.
기다림의 절기에 우리가 묵상해야 할 소중한 상징들이 있습니다. 비어 있는 지저분한 말구유, 번민의 사람들, 헤롯대왕의 끔찍한 유아학살 ... 거룩한 성탄이라고 말하기에는 유쾌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의미들을 배제하고서는 성탄의 참된 의미와 만날 수 없습니다. 그저 감상적이고 감각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지 않기를.. 다시 대림절에 성육신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묵상의 시간들을 가져보기를... 그분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깨닫게 되기를 빕니다 <2023. 12. 3.>
때가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밝고 둥근 해님처럼
당신은 그렇게 오시렵니까
기다림밖엔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당신은 조용히 사랑의 태양으로 뜨시렵니까
기다릴 줄 몰라 기쁨을 잃어버렸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며
이제 우리는 기다림의 은혜를 새롭게 고마워합니다
기다림은 곧 기도의 시작임을 다시 배웁니다
마음이 답답한 이들에겐 문이 되어 주시고
목마른 이들에겐 구원의 샘이 되시는 주님
절망하는 이들에겐 희망으로
슬퍼하는 이들에겐 기쁨으로 오십시오
앓는 이들에겐 치유자로
갇힌 이들에겐 해방자로 오십시오
이제 우리의 기다림은
잘 익은 포도주의 향기를 내고
목관악기의 소리를 냅니다
어서 오십시오, 주님
우리는 아직 온전히 마음을 비우지는 못했으나
겸허한 갈망의 기다림 끝에 꼭 당신을 뵙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첫 기다림이며
마지막 기다림이신 주님
어서 오십시오
촛불을 켜는 설레임으로
당신을 부르는 우리 마음엔
당신을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
환한 기쁨이 피어오릅니다
- 이해인, <다시 대림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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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찾아온 기다림의 절기 대림절을 맞이합니다. 대림절을 맞이 할 때면 교회 강단에 말구유 장식을 하곤 합니다. 작년 김원열 선교사님이 전해준 뜨개질로 만든 우즈벡 전통의 말구유 인형 덕분에 이번에도 두 가지(점토, 뜨개) 말구유 장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올해엔 이인수 집사님이 빈 말구유까지 가져오셔서 그 의미가 더욱 깊습니다. 늦은 밤 말구유 장식 앞에 서서 물끄러미 인형들의 면면을 살펴보았습니다. 거기에 있는 이들은 모두 기다림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이를 만나기 위해 10달을 묵묵히 기다려왔던 엄마 마리아와 아빠 요셉. 이들은 마냥 기쁨과 설렘으로 예수님을 기다렸을까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마리아가 아이를 낳는다는 건 목숨을 건 결단이었습니다. 그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공동체는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아기 예수와 만나기까지 수많은 번민이 그녀의 마음을 짓눌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와 만나려 했던 엄마 마리아의 집요한 사랑이 지난한 시간과 불리한 상황들을 이겨내게 했지요. 아빠 요셉은 어떨까요? 천사가 점지해준 아기라지만, 자꾸만 불러오는 약혼녀 마리아의 배를 바라볼 때면 온갖 생각이 그의 머리를 가득 메웠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비웃음도 견뎌내야만 했겠지요. 그럼에도 그는 그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입니다. 성서는 그런 요셉을 의인이라 말합니다. 우리가 마냥 기뻐하는 아기 예수의 성탄에는 이렇듯 깊은 번민과 아픔이 스며있었던 것입니다. 우린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엄마 뱃속에 있던 아기 예수는 아마도 그 모든 것들을 세포 하나하나 속에 담아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예수는 자라 죽을 때까지 번민과 아픔이 서려 있는 곳만 찾아다니며, 그런 이들을 만나셨습니다. 아파했던 사람(아픔을 아는 자)만이 아픔을 보듬을 수 있듯이, 예수는 고통과 번민과 아픔 속에 숨조차 쉴 수 없는 이들을 끌어안으셨습니다. 그리고 끝내 그들에게 구원의 문을 친히 열어주셨습니다.
기다림의 절기에 우리가 묵상해야 할 소중한 상징들이 있습니다. 비어 있는 지저분한 말구유, 번민의 사람들, 헤롯대왕의 끔찍한 유아학살 ... 거룩한 성탄이라고 말하기에는 유쾌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의미들을 배제하고서는 성탄의 참된 의미와 만날 수 없습니다. 그저 감상적이고 감각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지 않기를.. 다시 대림절에 성육신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묵상의 시간들을 가져보기를... 그분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깨닫게 되기를 빕니다 <2023.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