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색으로 가을을 물들이고 향기롭게 숙성시키려고 밤새도록 그토록 비가 내렸나 보다. 오늘은 서울 둘레길 12번째 가는 날이다. 앞으로 3번을 더 가야 서울 둘레길 완주를 한다. 신비로운 자연을 마음껏 보고 가슴을 시원하게 해줄 교육적인 자료가 방긋 웃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 오늘 가는 둘레길은 과연 내 가슴에 얼마나 황홀한 풍광을 안겨줄까? 어리석게도 꿈같은 생각에 잠기고 보니 마치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가을이 좋아 찾아온 가랑비가 아직도 보슬보슬 내리고 있다. 왜 하필이면 둘레길 가는 날 비가 내릴까? 하며 속으로 중얼거리며 등산에 필요한 물품을 배낭에 챙겨 담았다. 온종일 비가 내릴 것을 생각하고 우의와 우산도 챙겨 넣었다.
비가 내리면 아마도 자연과 더 친해지고 운치 있는 산행이 될 것만 같다. 그리고 회원 간에 재미난 대화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의 꽃을 피울 것이다. 함께 갈 회원들을 홍제역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우산을 받쳐 들고 방랑 김삿갓처럼 배낭 하나 메고 잠실역으로 향했다. 혹시 아는 사람이 내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청승맞게 비를 맞으며 산을 가네 하면서 곱지 않은 눈초리로 보는 분도 있을 것이고 위험하게 하필이면 비 내리는 날 산을 갈까? 하며 걱정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다. 또 참 꼴불견이군,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역시 멋있는 사나이는 다르구먼, 하고 아름답게 치켜세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 내리는 날 산행은 왠지 풍성하고도 향기로운 낭만이 어디서 날아올 것만 같다.
잠실역에서 이상갑 회장과 정해봉 부장을 만났다.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전철을 탔다. 인연이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악회가 아니면 서민적이고 구수한 내음이 풍기며 법이 필요 없을 만큼 인격과 인품을 갖춘 이상갑 회장을 어찌 만날 수 있겠는가? 또 사교적이며 패기 넘치는 사나이 정해봉 부장을 어떻게 만나겠는가? 하늘이 맺어준 인연 영원히 간직하리라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우리는 홍제역에서 내려 해피 회원들을 찾았다. 정기산행 후 보름 만에 만나는 회원들이라 얼마나 반갑겠는가? 반가운 얼굴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 인원은 연휴 기간이라서 인지 총 8명이 참석했다. 산행 때마다 구수하게 사회를 보는 김용연 대장이 모처럼 참석해 매우 반가웠다. 그중 여자 회원은 김형옥 회원 한 분이다. 늘 넉넉한 마음씨의 소유자인 김형옥 회원이 오늘의 예쁜 꽃이 될 것이다. 추석 명절이 막 지났기 때문에 모두 인사가 명절 잘 보냈느냐는 것과 우리나라에 서만 만들어 먹는 송편 많이 드셨느냐는 것이 하나의 인사였다.
잠시 송편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자. 송편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백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백제와 신라가 대립하던 시기인 백제 의자왕 때 궁궐 땅에서 거북이 등이 발견되었다 한다. 거기에는 백제는 만월이고 신라는 반월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즉 만월인 백제는 이제 곧 기울어져 갈 것이고 반달인 신라는 달이 차오르듯 점점 더 번성할 의미였다. 그 뒤 신라의 국력이 점점 강해져 백제를 멸망시키게 되었다. 그래서 반달 모양으로 빚은 송편이 앞으로 점점 더 길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게 되었다고 한다.
둘째는 달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던 우리 선조들이 자연스럽게 달의 모양을 본뜬 떡을 만들어 먹었는데, 송편에 소를 넣기 전에 동그란 모양 속에다 소를 넣어 반달의 모양이 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달의 발전 과정을 떡이 그대로 담으면서 보름달로 차오르듯 점점 더 풍요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송편을 빚었다고 한다. 시집온 새댁이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유례도 있다.
우리 조상님 들은 음식을 만들어도 과학적이었다. 송편을 빚을 때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사랑도 빚고 정도 빚고 떡도 빚었다. 또 송편이란 솔잎을 따서 떡과 떡이 붙지 않게 한 켜 한 켜 솔잎으로 덮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솔잎에 서는 은은한 솔향이 나와 기분을 상쾌하게 했고 떡을 찔 때 솔향이 송편에 배어 우리의 건강에 도움이 되게 하였다. 솔잎은 항균 항암 효과가 있어 이것이 떡에 스며들어 떡을 귀하게 한 것이다. 이것뿐만 아니라 그 시절에는 냉장고가 없어 오래 보관하려는 수단도 되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조상님 들의 훌륭한 지혜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서오릉에 내렸다. 서오릉은 사적 제198호이며 5릉이 있다. 5릉은 경릉·창릉·익릉·명릉·홍릉을 일컫는다. 1457년 세조 세자였던 원자(元子) 장(璋:뒤에 덕종으로 추존됨)경릉에 안장한 이래 1470년 창릉에 예종과 안순왕후, 1681년 익릉에 인경왕후, 1721년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와 민씨(仁顯王后閔氏)의 쌍릉(雙陵)과 제2계비 인원왕후 김씨(仁元王后金氏)의 단릉(單陵)의 합칭인 명릉(明陵)과, 1757년 홍릉에 정성왕후를 안장함으로써 능의 무리를 이루었다. 경릉은 왕릉 일반 형식과 반대로 조성되었으며 호위에 해당하는 조각이 없지만 왕비릉은 구색을 갖추었다. 창릉은 상석을 받친 석족을 문고리 모양을 조각하여 북 모양이며 석주양식은 고려릉의 양식을 반영하였다. 명릉은 조선 능제의 분수령이 된다. 석물의 치수가 실물에 가까우며 부장품의 수도 줄었다. 익릉은(국조오례의) 제도를 따르며 임진왜란 이후의 양식을 따른 부분도 있다. 홍릉은 명릉보다 20일 늦게 조성했으므로 양식은 거의 비슷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왕과 세자 왕후가 고이 잠든 서오릉 뒤 앵봉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리던 비는 그때 어디로 숨어버리고 해님이 방긋 웃으며 반긴다. 고즈넉한 오솔길에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달개비가 보라색 꽃을 예쁘게 피워 우리가 와서 좋다고 방긋 웃는다. 비가 그치고 해님이 오시어 대자연을 어루만지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풀숲에서 잠자고 일어난 풀벌레들이 다투어 향기로운 노래를 부른다. 감미로운 음률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신비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감히 흉내를 내지 못할 정도로 은은하고 환상적인 풀벌레 소리를 들으니 몸에서 전율이 흐르기 시작한다. 풀벌레 소리에 장단 맞춰 걸으니 기분도 상쾌하고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부드러운 능선으로 형성된 앵봉산은 높이가 약 270m 정도의 산이다. 가냘프게 피어있는 야생화도 보았고 귀여운 다람쥐가 재롱을 부리며 도토리를 먹는 장면도 보았다. 또 아까시나무 군락지도 보았다. 밭배나무란 이름표를 붙인 희한한 이름의 나무도 보았다. 그런데 머리에선 왕실에서 임금님과 왕후들의 찬란하게 생활하는 모습도 잠시 그려진다. 회원들과 도란도란 재미난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앵봉산을 내려왔다. 그런데 반갑게도 해피의 미인들인 강영희 부회장과 김인숙 부장을 만났다. 어찌나 반가운지 깜짝 놀랐다. 반갑다는 것은 몇 년 동안 산행을 하면서 동료애가 깊어지고 정이 들었다는 이야기다. 내려오자마자 이곳에도 스탬프 대가 설치되어 있다. 스탬프를 찍고 걷기 시작했다.
우리 10명의 회원은 앵봉산에서 나오는 왕의 정기를 듬뿍 받고 내려왔다. 오늘 왕의 정기를 받고 내려온 회원들 가정에 왕손이 태어나기를 기대도 해본다. 이런 허구의 세계를 상상하며 걸으니 그것 또한 흥미롭다. 12시가 막 넘기 시작했다. 시장기가 들기 시작한다. 구파발역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콩나물국밥과 막걸리 한잔을 마시니 힘이 솟는다. 점심을 먹고 은평 생태 하천길을 걸었다. 생태 하천이라서 인지 주변이 깔끔하게 정돈되었다. 실개천에서 자라는 수초들이 무성하고 수염을 느려 틀인 갈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온스타일이란 식물도 자생하고 있다. 물이 맑아 고기가 뛰어노는 모습도 보인다. 귀엽게 생긴 잿빛 두루미가 귀한 손님으로 와 어슬렁대며 먹이를 찾고 있다.
은평 뉴타운 지역은 시골처럼 한적한 느낌이 든다. "갯버들" "애기부들" "어리연꽃"과 일급수에서만 자생하는 "마름"이라는 수초도 보았다. 나도 이런 곳에서 한번 살아 보았으면 하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이곳 실개천은 북한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얼마나 맑은지 한눈에 청정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인공 호수도 예쁘게 만들어 놓았고 인공 폭포도 멋지게 만들어 놓았다. 호수 위에는 청둥오리 한 쌍이 물을 가르며 유유히 헤엄을 치며 살기 좋은 세상이 왔다고 읊어댄다. 이곳의 평화스러운 장면은 우리 마음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북한산 입구까지 왔다. 여기도 둘레길 스탬프 대가 설치되어 있다. 바로 옆에는 선림사(禪林寺)라는 절이 있다. 스탬프를 찍고 해피송파의 자랑이며 일류 사진작가인 장선덕 본부장과 함께 절 경내를 한 바퀴 돌고 나았다. 대통령 후보였던 문재인 씨가 이곳에서 고시 공부를 했다는 절이다. 산중에 있던 이 절은 은평 뉴타운이 개발됨으로 도심으로 들어온 셈이다. 선림(禪林)이란 이름은 "깨달음의 숲" 을 의미한다. 북한산의 웅장한 산세를 바라보며 고요한 숲 사이에 서 있다 보면 정말 마음의 평화를 얻은 기분이다. 계단을 오르다 보니 영국의 밴 존슨이라는 유명한 시인이 생각났다. 이분의 시 한 구절을 적어본다.
고귀한 자연 /밴 존슨
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나무가 크게만 자라는 것과 다르다 참나무가 삼백년 동안이나 오래 서 있다가 결국 잎도 피우지 못하고 통나무로 쓰러지느니 하루만 피었다 지는 오월의 백합이 훨씬 더 아름답다 비록 밤새 시들어 죽는다 해도 그것은 빛의 화초요 꽃이었으니 작으면 작은 대로의 아름다움을 보면 조금씩이라도 인생은 완벽해지지 않을까
이 시를 읊어 가며 계단을 오른다. 힘이 들면 먼 산을 바라보며 숨을 길게 들어 마셨다 토해내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힘이 솟아난다.
북한산 둘레길은 나무 계단으로 잘 만들어 놓았다. 또 곳곳에 지루하지 않게 명언을 예쁘게 써서 세워 놓았다. 이 글을 읽고 가면 피로가 풀리고 메말랐던 정서가 조금이나마 회복되라고 지자체에서 신경을 쓴 것 같다. 북한산 둘레길은 깔딱고개가 꽤 많다. 이마와 등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꽤 괴롭힌다. 그러나 10명의 회원은 즐겁고 행복한 표정의 꽃을 활짝 피웠다. 나는 글을 쓰려고 특이한 것을 보았을 땐 메모하느라 항상 뒤에 처진다. 그럴 때마다 김영식 대장은 혹여 내가 길을 잘못 들까 불안한가 보다. 연신 뒤를 돌아보며 불러댄다. 아마 이런 것이 사랑이 아닌가 싶다
오늘 우리는 하늘에서 맑은 햇살을 받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어마시도록 선물로 받았다. 산에서는 풀벌레의 아름다운 합창 소리도 듣고 곱게 핀 야생화도 눈에 가득 담아 가도록 선물을 준다. 자연은 우리에게 항상 베풀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다. 힘은 들었지만 이렇게 자연의 은혜를 받으며 "하늘 전망대"를 거쳐 "불광사"와 "북한산 생태공원"과 "장미공원"을 지나 불광역까지 한 사람도 낙오 없이 약 8.5km의 대장정을 뿌듯하게 트래킹 했다. 더구나 오늘은 해피 산악회에 헌신 적으로 봉사한 정상헌 대장의 65주년 생일이기도 하다. 오늘 둘레길 일정을 모두 마치고 불광역에서 전철을 타고 잠실까지 왔다.
생일잔치를 회원들이 해줘야 마땅한데 오히려 장본인이 한턱냈다. 회원들은 미안한 마음으로 축하했다. 정상헌 대장 오늘 수고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이 좋은 계절에 태어나심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상갑 회장의 인사말에서 모든 회원 수고 많이 했습니다. 오늘 둘레길 트래킹은 매우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오늘과 같은 우정이 변치 않고 꽃피우기를 바랍니다. 또 오늘 생일을 맞이한 정상헌 대장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하며 오늘 행사는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