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를 겨우 넘겼을 뿐인데 하늘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일몰 시간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좋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특수를 노려 재미를 보고 있는 곳도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그래왔듯 모두가 유리하거나 모두가 불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레즈비언 바인 '클럽 오나크'가 그랬다.
점심을 겨우 마쳤을 사람들이 어느새 하나 둘 만취를 위해 그 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루!! 왜 이제야 오는 거야? S-cell이 다 떨어져 온통 칠흙이잖아!!
스테이지를 좀 보라구. 보긴 뭘 봐? 너무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을텐데.
멀뚱히 서 있지만 말고, 자, 빨리 빨리 옮겨!!!
제 다리에 걸려 죽은 시체를 치우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화려한 정복 차림(난 그녀가 다른 옷을 입을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의
'클럽 오나크'의 지배인 벨라는 오늘도 여전히 건방진 모습이었다.
그녀는 항상 내게 명령조로 말한다.
난 S-cell의 배달부지 그녀의 머슴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어느새 열 네 번 째 행성은 '클럽 오나크'의 지배 하에 들어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곳에서 '클럽 오나크' 만이 유일한 경제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하루 열 다섯 시간 씩 광산에서 일한 대가로 받은 돈을,
단 몇 시간만에 '클럽 오나크'에서 날려버린다.
매춘을 하는 사람도 있고, 코카인의 일종인 '팜'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한 병에 16테라나 하는 루드베키아 술을 마신다.
(그들의 하루 일당이 평균 20테라임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고가의 술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돈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
마치 루드베키아 술을 마시기 위해서만 일하는 것 같았다.)
"어머? 우리 귀염둥이 루가 왔네. 오늘은 몇 개나 충전시키는 거야?"
"충전이 아니라 교체하는 중이에요."
세 개째 S-cell을 본체에 연결하고 있을 때, 수가 다가왔다.
수는 '클럽 오나크'의 댄서이다.
하지만 그녀는 춤보다는 매춘을 더 많이 한다며 항상 투덜거렸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도톰한 입술은 휘파람를 부는 것처럼 동그래지곤 했다.
"행성 사람들은 S-cell의 조각 건전지도 구하지 못해 안달인데,
여긴 세 개씩이나 교체하는 거야? 하여간, 이 곳만 살 판 났다니까.
마마 타라가 가진 정도의 돈이라면 행성 사람 절반을 태울 수 있는
우주 항공권을 사고도 남을 거야. 안 그래?"
껌을 질겅이는 그녀의 입술이 또 동그랗게 모아졌다.
"참, 루!! 그 얘기 들었어?
그로우 항공사에서 곧 사람들을 모집할 거래."
마지막 전선을 연결하던 난 그녀의 말에 깜짝 놀라 그만 스위치를 건드려버렸다.
'클럽 오나크'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멈추고, 조명이 깜빡깜빡 거리더니,
갑작스러운 정전에 당황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곧 어딘가에서 벨라의 거친 된소리가 터져 나왔다.
"루!!! 이 멍청한 놈 같으니라구!!!"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그딴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난 얼른 스위치를 다시 올리고는 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녀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내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떠날 우주 비행선이 이륙 명령만 기다리고 있댔어.
단테 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얘기니까 확실한 정보야."
내 귀에서 떨어진 그녀의 붉은 입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어, 언제 떠난대요?"
"아마 곧. 알만한 사람들은 벌써부터 항공사를 들락거린대나봐.
요즘 마마 타라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는걸?
다들 티켓을 사기 위한 돈을 빌리려는 거겠지.
하지만 턱도 없는 소리야. 마마 타라가 어떤 사람인데 그 돈을 빌려주겠어?
......... 루도...... 티켓을 살 거지?"
그녀의 물음에 난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물론이죠. 항공권을 사야해요.
나 역시 꼭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가야하는 걸요.
따뜻한 햇빛이 살아있고, 밝은 냄새가 가득한 그 곳으로 가야해요.
하지만...... 하지만.......
.... 아직 티켓을 살만큼 돈을 모으진 못했답니다.....
"루... 돈이 부족한가 보구나? 행성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수도 티켓을 살 거죠?"
"나? 물론이지. 이 날을 위해서 '클럽 오나크'에 취직했는걸?
이제 300테라만 더 있으면 티켓을 살수가 있어.
쉿!! 이건 비밀이야.
내가 그런 돈을 가진 걸 알면 행성의 도둑 떼들이 날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항공사에서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행성은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티켓을 사기 위해 필요한 돈을 훔치려는 도둑 떼가 들썩일 테고,
자살 률도 부쩍 늘어날 것이다.
돈 없고, 힘없는 행성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 아마도 죽음을 선택할 테니까...
"마마 타라가 왔어!!"
비대한 몸집의 마마 타라가 날씬한 미녀들을 앞세워 '클럽 오나크'로 들어왔다.
'클럽 오나크'가 레즈비언 바가 된 것은 이 곳의 주인인 마마 타라의 영향이 컸다.
우락부락한 외모에 남자들 못지 않은 파워,
게다가 극도의 비열함과 잔인함까지 갖춘 그녀는, 예쁜 여자를 밝혔다.
행성의 미녀들은 이 곳 최고의 여자 마마 타라에게 기꺼이 옷을 벗어 주었다.
그녀에게 몸을 바치는 것이 광산에서 죽어라 일하는 것 보다 더 돈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돈이 제일 좋다던 수는 마마 타라에게 몸을 주지 않았다.
수는 레즈비언이나 게이들 때문에 세상이 이 꼴이 됐다고 늘 말했다.
사실 내가 보기엔 마마 타라 역시 수에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수!! 또 일은 안하고, 배달부 녀석이랑 이빨을 까고 있는 거냐?"
마마 타라의 목소리는 그 어떤 천둥소리 보다 끔찍했다.
어느새 내 곁에서 몸을 파르르 떨던 수는 곧 찍소리도 못하고
스테이지를 향해 히비적 달려가 버렸다.
"넌, 루라는 녀석이지?"
마마 타라는 내 얼굴 만한 손바닥으로 목을 잡아
내 머리를 이쪽으로 재 꼈다, 저쪽으로 재 꼈다 했다.
"볼수록 아까운 놈이야. 예쁜 계집같이 생긴 놈이 사내 녀석이라니.
아까워. 정말 아까워.
어떠냐? 너 정도의 미모라면 사내새끼라도 내가 한번 안아줄 수도 있는데."
난 그만 소름에 몸서리를 쳤다. 정말 오싹한 여자였다.
코너에 몰린 쥐를 바라보는 섬뜩한 암코양이의 눈빛,
마마 타라는 덜덜 떨고 있는 날 보며 크게 웃었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겨우 풀려난 목에 통증이 느껴졌다.
"하하하. 그렇다고 미리부터 겁먹을 건 없어. 잡아먹진 않을 테니까.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찾아와.
너라면, 꽤 비싼 화대를 지불 할 의사도 있으니까 말이야.
하하하.... 하하하하!!!"
그녀가 사라지고 나자 난 그제 서야 마법에 풀린 사람처럼
곧 장비를 챙겨 들고 '클럽 오나크'를 빠져나왔다.
예정대로라면 지금 당장,
주머니에 들어있는 루드베키아 빵을 꺼내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난 배고픔도 잊은 채 곧장 따이페이 정비소로 달렸다.
2. 따이페이 정비소
"칭!! 칭!!"
멀리서 희미한 빛의 따이페이 정비소 간판이 보이자
루는 그렇게 소리치며 달리기에 속력을 높였다.
"루~ 이 시간에 웬일이야?"
인두질을 하던 칭은 친구의 등장에 이마의 땀을 닦으며 환하게 웃었다.
"헉.. 헉... 단테.. 단테 할아버지는?"
"주인 영감탱이? 정비소 안에 있을걸?
마마 타라가 어제 밤에 맡겨 놓은 간판을 수리하... 루!! 이봐, 루!!"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비소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루를 보며,
칭은 들고 있던 주걱처럼 생긴 것을 내려놓으며 곧장 그의 뒤를 따랐다.
"저 녀석, 무슨 일이 길래 숨이 넘어가는 거야?"
단테는 뜯어 놓은 간판의 뚜껑을 조립하고 있었다.
몇 날 동안 일거리가 없었던 차에 들어온 주문이라
(그나마 '클럽 오나크'가 있기 때문에 가끔 이렇게 돈벌이를 할 수도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끝내버리고 싶었다.
루드베키아 빵도 거의 떨어져 갔고,
S-cell 조각 건전지도 필요했다.
"단테 할아버지!! 할아버지!!"
"오, 루로구나. 보다시피 난 조금 바쁘단다."
"할아버지, 그 말이 사실인가요?
그로우 항공사에서 곧 사람을 모집할 거라면서요?"
단테는 오늘 처음으로 루의 얼굴을 쳐다봐 주었다.
그리고 곧 안경을 벗어 내려놓으며 말했다.
"수한테 들었느냐?"
루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흠... 하는 낮은 소리를 내던 단테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죽 에이프런 앞에 떨어진 먼지 조각들을 털어 내곤
루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할아버지, 루의 말이 사실이야?"
어느새 따라 들어온 칭 역시 놀란 눈을 하며 그렇게 물었다.
"호들갑들 떨지 말거라."
루는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만물 박사 단테 할아버지의 말이라면 그것은 사실일 테다.
"맞아. 곧 우주 비행선이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떠날 거란다."
그의 말에 루는 자리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얼마 안 있어 탑승권을 팔기 시작할 거야."
"젠장, 왜 그걸 이제야 말해?"
칭의 주근깨 가득한 콧잔등이 쪼글쪼글 일그러졌다.
"하긴 젠장, 미리 알았더라도 무슨 수가 있어?
한 장에 삼만 테라가 넘는 그 티켓을 무슨 돈으로 사겠냐구.
씨... 그딴 걸 왜 판다고 난리야?"
단테는 칭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비단 돈의 문제만은 아니지.
돈이 있다고 해도 티켓의 수는 정해져 있어.
비행선에 탈 수 있는 건 행성 사람의 십분의 일도 안 될 거야."
"씨!! 그러게 그딴 걸 왜 하냐구!!!
그냥 여기서 살다 죽으면 돼지. 뭐 한다고 행성을 옮기느냔 말이야."
단테는 한숨을 쉰다.
저 어린 두 녀석들에게는 너무나 참혹한 현실이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이제 열 네 번째 행성은 수명이 얼마 안 남았어.
저번 달까지만 해도 이 시간이면 제법 밝은 빛이 있었지.
하지만 이제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이 하루 중 네 시간도 채 안 돼.
얼마가지 않아 이 행성에는 태양이 사라질 거야.
곧,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죽은 땅이 되어 버릴 테지..."
"그런 끔찍한 소린 왜 하고 그래!!"
그렇게 소리치고는 있었지만 칭의 눈가가 어느새 젖어들었다.
현실은 칭에게도, 또 루에게도, 죽음이라는 것을
몸소 실감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딴 태양 따위 없으면 어때?
이제 어두운 데는 이력이 났다고.
그리고, S-cell도 있는데 뭐가 문제야?"
"태양 전지가 태양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 걸로는 그나마 먹을거리가 되어 주는 루드베키아를 키울 수가 없어.
운이 좋아 그것을 배양할 방법을 찾는다 하더라도
문제는, S-cell을 만드는 공장이 사라지고 없을 거라는 거지.
모두다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떠나고 없을 테니까."
"...... 그게 뭐야....... 씨......."
이제 칭도 루의 곁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는 팔을 들어 눈가를 연신 닦아냈다.
그리고 그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루는
미세하게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비행선은... 언제 뜰까요?"
"글쎄다... 그걸 누가 알 수가 있을까?
하지만 분명한 건, 그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빠를 거라는 거야."
"단테 할아버진... 가실 건가요?"
"나?"
루도, 칭도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단테를 응시하고 있었다.
"글쎄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그 희망의 땅이 그립구나.
태양이 살아 있는 그 땅이 못 견딜 만큼 보고싶어.
낮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열심히 장비 질을 하고,
밤에는 내일의 태양을 기다리며 행복하게 잠들고 싶단다.
목이 메일만큼, 눈이 붉어질 만큼, 또 가슴이 시릴 만큼 그 곳이 그리워.
하지만 그건 죽음이 두려워서는 아니지.
내 나이 정도면 미안할 만큼 오래 산 셈이거든.
나는 단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게 있을 뿐이야.
살아 생전 딱 한번만, 딱 한번만 그걸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할 뿐이란다."
"그게 뭐예요? 뭐가 그렇게 보고싶으신 건가요?"
단테는 루의 맑은 눈을 보며 그리움의 미소를 지었다.
"쌀 나무."
"쌀 나무요?"
"그래, 전설의 나무. 쌀 나무..."
단테의 주름진 눈이 어느새 루처럼, 칭처럼 순수하게 반짝거렸다.
하지만 어느새 눈물을 거둔 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쌀 나무의 전설은 전부 다 거짓말이랬어!!
그런 건 없었다구!!"
"아니야. 있었어. 쌀 나무는 정말로 있었단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가 책에도 실렸었지."
"거짓말이야. 영감이 어릴 때 있었던 책이 왜 지금은 없어?"
"그건 말이다."
단테의 부드러운 음성이 동화처럼, 꿈결처럼 잔잔하게 흘러들었다.
"내가 어렸을 땐 그랬단다.
고약한 맛의 루드베키아 빵을 씹으면서
구수하고 쫄깃하다는 쌀 나무 열매를 꿈꿨단다.
이건 루드베키아 빵이 아니라 쌀 나무 열매다... 그렇게 말이야.
그리고 또 희망했어.
태양 빛이 살아나는 그 날, 전설의 쌀 나무가 다시 자라날 거라고.
행성 사령부는 그게 두려웠던 거야.
쌀 나무의 전설이 사람들에게 덧없는 희망을 줄까봐.
그래서 의도적으로 쌀 나무의 전설을 책에서 삭제시켜 버렸던 거지.
사람들의 무의식에서조차도 사라지게 만든 거야.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무슨 폭동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겁내면서 말이야.
희망이 있다면 못 할 일이 없을 테니까..."
"... 말도 안 돼..."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갈 거냐고 물었니?
그래, 난 가고 싶단다.
내 눈으로 태양 아래서 반짝이는 그 쌀 나무를 꼭 보고 싶어..."
이젠 루도 주저앉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맞아요. 열 다섯 번째 행성은 우리에겐 희망이야.
난 꼭 그 티켓을 사고야 말겠어!!"
단테는 그렇게 말하는 루의 어깨를 따듯하게 토닥여 주었다.
"넌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잖니?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가는 비행선을 말이다.
피아를 위해서, 피아를 살리기 위해서,
꼭 그 행성으로 가야 한다고 하지 않았니?"
이번에는 칭이 말했다.
"루, 너 말이야... 그런데 돈이 있어?"
루는 단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제부터 모자란 걸 채워야해.
피아라도, 피아만이라도 꼭 비행선에 태우고 말겠어!!!"
열 네 번째 행성의 어두운 하늘로
따이페이 정비소에서 뿜어져 나가는 새하얀 연기만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달도 파란 열 네 번째 행성은,
이제 정말 희망의 열 다섯 번째 행성만을 꿈꿀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삼일 뒤,
그로우 항공사에서는 티켓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행성 사람들은 희망을 향하려, 죽음을 피하려,
목숨 던져 티켓을 열망하고 있었다.
3. 피아(彼我) - 그와 나
루...
꿈속에서는 편안한 거지?
넌 항상 웃는 얼굴로 괜찮다고는 하지만,
피아는 항상 슬퍼.
몸이 아픈 건 참을 수 있는데,
이렇게 지쳐 잠든 니 얼굴을 지켜보는 건 너무 힘들어.
몸이 약한 피아는 집 밖으로 나갈 수는 없지만,
창가에 앉아 있으면 다 알게 돼.
열 다섯 번째 행성.
한정된 값비싼 우주 비행선 티켓.
그리고,
죽어 가는 열 네 번째 행성.
태양이 사라지는 우리의 행성.......
루가 매일 또 다른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것도 알아.
루는 항상 걱정하지 말라고, 돈을 많이 벌고 있다고 말하지만
피아는 알아.
지금은 아무도 돈을 벌 수 없다는 걸.
어느 누구도 일당을 주며 직원을 쓰지 않는 다는 걸 말이야.
피아는 그 날을 기억해.
병든 몸으로 '클럽 오나크'에서 쫓겨나던 날,
내던져진 비속에서 내게 뻗어주던 루의 그 하얀 손,
잡으면 안 되는 손이었는데,
그 비속에서 내밀어준 루의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피아를 바라보던 루의 눈빛이 너무도 다정해서,
그만 그 손을 잡고 싶어 졌던 거야. 잡고 말았던 거야.
다시 한번 살고 싶어서,
루가 있는 세상에 조금만 더 머무르고 싶어서...
무리해서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가려는 루의 마음을 알아.
다 피아 때문인걸...
태양이 있어야 살 수 있는 병에 걸려버린 못난 피아 때문인걸 말이야.
하지만, 루...
피아는 여기 열 네 번째 행성이 좋아.
이 곳에는 루가 있는걸.
태양이 사라지면 어때?
어둡고, 무섭고, 조금 아파도,
루가 있는 이 곳이 피아에겐 제일로 아름다워.
그러니까 그렇게 루를 혹사하며 살지마.
그게 피아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마.
루,
옆집의 파코가 죽었대.
루가 항상 다니는 그 길가에서 도둑 떼들의 습격을 받았나봐.
엘리 아줌마가 울었어.
너무도 서럽게, 너무도 가여이, 그렇게 울었어.
볼 수는 없었지만 파코는 피를 많이 흘렸대나봐.
그 가녀린 가슴에 커다란 칼이 꽂혀 있었대.
그때 파코는... 겨우 5테라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피아는 무서워.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나간 루가,
파코처럼 돌아 올까봐서...
그렇다면 피아는 아마 엘리 아줌마처럼 울지도 못할 거야.
너무너무 아파서 그냥 죽어버릴 거야.
루가 항상 말하던 푸른빛의 잔디와,
거울 같은 호수에 내리쬐는 가느다란 빛살과,
조심히 속눈썹을 건드리는 따뜻한 바람,
그리고 아름답게 지저귀는 노란 새의 노래 소리...
루가 그런 세상을 피아에게 보여주고 싶어한다는 거 알아.
그래서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가려한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루...
피아는 점점 앞이 깜깜해져...
이렇게 잠든 루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도 힘이 들어...
어쩌면 루,
피아는 그 곳에 가도 밝은 세상을 볼 수 없을 지도 몰라...
4. 칭(稱) - 칭찬하다
행성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진 건 벌써부터 였다.
조금 전에는 빵집의 델라도 아저씨가 체포되었다.
사령부 사람들은 델라도 아저씨를 개처럼 질질 끌고 가 버렸다.
아저씨는 5테라를 훔쳤다고 했다.
단지 5테라였다.
겨우 루드베키아 빵을 하나 살 수 있는 돈...
루드베키아 농사를 짓던 마음씨 좋은 앨버른 부부는 죽었다.
칭아, 칭아, 이번 추수 절에는 루드베키아 씨앗을 조금 줄 테니 키워 볼 테냐?
... 하며 인자한 미소를 짓던 입으로 독약을 삼켰단다.
동시에 주인의 손길을 잃은 루드베키아 밭도 함께 시들어버렸다.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우리의 행성은 태양이 사라지기도 전에 죽어버릴 것 같았다.
"젠장, 뭐가 희망의 행성이야?
델라도 아저씨가 잡혀가고, 앨버른 부부가 죽으면서까지
꼭 가야만 하는 곳이었냐구!!!
..... 젠장.... 뭐가 희망이라는 거냐?"
따이페이 정비소도 문을 닫았다.
S-cell을 구할 수도 없었지만, 더 이상 어느 누구의 주문도 없었다.
그래서 난 의욕 없는 실업자가 되어 버렸다.
단테 할아버지와는 얼굴 마주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는 이제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떠날 거니까...
고아인 날 거둬 여지껏 입혀주고, 재워준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죽도록 감사한다.
그가 날 버리고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가버린대도,
내게는 그를 잡거나, 원망할 자격이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서운했다...
"칭!!! 칭!!!"
단테 할아버지의 그리운 목소리.
하지만 난 불퉁한 얼굴을 하며 그의 앞으로 다가선다.
"창고에 가서 남아 있는 루드베키아 빵을 세고 오너라."
"그딴 건 세서 뭐해?
영감이 떠날 때까지는 먹을 수 있을 테니까 걱정 마."
이게 아닌데...
"오늘부터는 하루에 반 토막씩만 먹어야겠다.
농사지을 사람도 없고, 빵 만들 사람도 없으니까 말이야."
"그럴 거 없어. 내가 굶을 테니까 영감이나 실컷 먹어."
아, 젠장... 왜 자꾸 말이 헛 나오는 걸까?
단테 할아버지는 한숨을 푹 내쉰다.
그리고 조용히 손짓해 날 가까이 오라고 한다.
아무리 어두운 곳이지만 난 내 눈물이 보일까 염려스러웠다.
다가간 내 앞으로 향나무 상자를 꺼내는 영감...
"이건 뭐야? 유산이라도 남기려는 거야?"
"그래, 유산이다."
"됐어!! 필요 없어!!
흥!! 두고 가려니 어지간히 미안했나 보지?"
"받거라. 그리고 지금 당장 그로우 항공사로 가서 티켓을 사도록 해."
난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 영감이 뭐라는 거야?
상자를 열어보니 노란 테이프에 감겨 있는 테라 뭉치가 보인다.
"내가 왜 이 돈으로 티켓을 사?"
목소리가 떨린다.
하지만 저 영감은 뭐가 좋은지 웃기만 한다.
"평생을 모은 돈인데 겨우 너 하나 보낼 돈 밖에 안 되는 구나."
"뭐 라는 거야?"
"루에게도 조금은 힘이 돼주고 싶었는데...
그래도 너 하나라도 보낼 수 있어 다행이구나."
"영감!!!"
"늦기 전에 어서 가거라. 티켓이 얼마 안 남았을 거야."
"싫어!! 왜, 내가 가!! 영감이나 가!!"
영감은 고개를 저었다.
내 뺨을 타고 더운 물기가 느껴진다.
목이 메인다...
"쌀... 쌀 나무는... 쌀 나무를 볼 거라면서?"
영감은 또 한번 고개를 저었다.
"대신 봐 주렴. 너의 눈으로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구나."
"뭐야? 뭐 하자는 거야?"
"난 이제 너무 늙었어.
아마 열 다섯 번째 행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비행선 안에서 죽을 거야."
웃는다... 내가 늘 쉴 수 있었던 미소로 그가 웃는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영감이 왜 죽어? 아직 나보다 더 팔팔한 주제에."
"칭아, 이 어둠의 행성에서 너는 나의 태양이었고, 희망이었다.
가거라.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남아서 난 행복하구나."
"...... 싫어.... 싫어..."
그렇게 손도 잡아주지 않은 채로 보내려 하지 말란 말이야.
따뜻하게 등을 토닥여 주며 보내려 해도 갈까 말까라구.
제발, 그렇게 그리운 미소로 날 가라하지마...
할아버지... 난 그렇게 못 해...
달렸다. 무작정 달렸다.
가슴에 향나무 상자를 꼭 품은 채 뛰고, 또 뛰었다.
눈물이 자꾸 흘러내렸지만 입술을 앙 다문 채 참았다.
조금이라도 입을 열면 소리내 울어버릴 것 같아서
입술에 피가 고이도록 꽉 깨물었다.
그로우 항공사가 보인다.
그제 서야 달리기를 멈춘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렸다.
영감을 혼자 두고 갈 수는 없다.
나도 가지 않을 테다.
내게도, 내게도 영감은 희망이었고, 태양이었다.
루에게 가기로 했다.
이 테라 뭉치는 루에게 주는 게 좋겠다.
어차피 영감도 날 두고는 가지 않을 테니,
그리고 루에게 준 것을 안다면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줄 테니...
꼭 열 다섯 번째 행성에 가야만 하는 내 친구에게
영감과 내 마음을 담은 이 돈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루의 집 창문이 보인다.
오늘도 여전히 슬픈 얼굴의 피아가 창문 앞에 앉아 있었다.
피아... 이제 됐어.
루와 함께, 태양이 있는 곳으로 떠나...
그 곳에서 병도 고치고,
착한 내 친구 루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거야.
"피아!! 피......... 읍!!!!!!"
손을 크게 흔들며 피아를 부르고 있었는데...
내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피아는
여전히 텅 빈 시선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난... 등이 아프다...
고개를 내려보니 내 왼쪽 옆구리 쪽으로 칼이 삐죽 나와있었다.
따이페이 정비소에서 만든 삼각뿔의 재단 칼...
"... 커... 컥....."
너무 어둡다.
몇 시쯤이나 되었을까?
우리의 행성은... 정말 너무나 너무나 어두워...
"뭐야? 따이페이 정비소의 칭이잖아?"
"조용히 하고 얼른 저 상자나 챙겨.
어차피 행성에 남아도 뒈질 녀석이었어."
"제길... 이 녀석, 좋은 녀석인데..."
페인의 목소리...
언젠가, 이틀만에 먹게 된 루드베키아 빵의 절반을 나눠줬었는데...
페인... 니가 날 찔렀구나...
그렇게... 그렇게... 여길 떠나고 싶었던 거야?
사람들을 해치고 잡은 행복으로 넌 편안할 것 같니?
그래... 난 상관없어.
어차피 여기 남아 죽음을 기다렸을 테니까...
하지만 페인,
그 테라 뭉치는 루와 피아에게 주고 싶었어.
가여운 그 두 사람에게 주고 싶었던, 내 마음이었어...
영감,
칭은 이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이럴 줄 알았으면 따이페이 정비소를 떠나기 전,
영감을 꼭 안아주고 오는 건데 그랬어.
영감...
갑자기 영감이 두드리던 망치질 소리가 듣고 싶어.
영감의 망치질은 정말이지 최고로 멋졌었어.
단테 할아버지...
고마워,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5. 수(穗) - 이삭
'클럽 오나크'에는 이제 절망을 알게 된 사람들만 온다.
그들은 떠나지도, 죽지도 못하고 이 곳으로 온다.
태양도 없고, S-cell도 없는 '클럽 오나크'는
추운 어둠과 쓸쓸한 침묵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봐. 6테라만 내. 해달라는 거 다 해 줄게.
오늘 재수 좋은 줄 알어. 며칠 전만 해도 10테라는 줘야 했어."
난 또 그렇게 말했다.
이제는 어둠이 지배한 '클럽 오나크'였기에
어느 누구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다행이었을까?
"미친 년. 남은 우리에게 돈이 다 무슨 소용이야?
이젠 S-cell도, 루드베키아도, 아무 것도 없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우린 그걸 살수가 없단 말이지."
남자는 '팜'을 코로 들여 마시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 악마의 새하얀 가루가 반짝이는 것 같았다.
"티켓을 살 정도의 테라가 아니라면,
그 테라는, 우리에겐 이미 쓰레기야.
아무리 매춘 짓을 하는 년이라지만 그렇게 뭘 몰라서야."
남자는 한심스럽다는 듯 혀를 차 댄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난 티켓을 사려고 이래...
"싫으면 관둬. 싸게 주겠다는데, 병신 같은 놈."
"뭐야? 병신? 너, 말 다했어?"
"다 못했다. 야, 이 한심한 새끼야!!
그렇게 앉아서 푸념만 하고 있으면 티켓이 나와 뭐가 나와?
자살도 못하는 병신 새끼 주제에!!!"
"이 년이!!"
남자는 갑자기 내 손을 꽉 잡아 비튼다.
"아얏!!"
"그래, 이 년아. 한번 먹어보자.
돈에 환장한 년, 테라로 도배를 해 줄 테니 이리 와!!"
"뭐야? 놔!! 놓으라구!!"
남자의 목소리는 이미 자제력을 잃은 사람의 그것이었다.
잘못 됐다... 괜한 걸 건드렸다.
"어이, 다들 여기로 오라구!!
이 매춘부께서 자살도 못하는 병신 같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다리를 벌려 주시겠다는군."
"이거 놔. 뭐 하는 거야?"
어둠 속에서 소스라치게 느껴지는 인기척이 늘어갔다.
누군가는 내 다리를 잡았고, 또 누군가는 내 머리채를 휘감았다.
"꺄악!!!!"
허옇게 드러난 내 목 뒤로 누군가의 끈적한 입김이 느껴졌다.
곧 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아크릴 탑이 찢겨져 나가고,
드러난 가슴을 향해 머리통 몇 개가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아~~악!!! 왜 이래? 다들 떨어져!!!"
이 사람들은 미쳤어.
죽어 가는 행성이, 사라져 가는 태양이,
가난한 이들을 미치게 만들었어.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데려다 줄 티켓을 향한 한 매춘부의 처절한 열망이,
절망을 품고 사는 불쌍한 이들을 미치게 만든 거야...
"더러운 매춘부년. 에이 퉷!!"
끈적한 가래침이 발가벗겨진 내 몸 여기저기로 날아와 붙었다.
한참을 내 몸 위에서 욕정을 풀어내던 그들은
쓸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여깄다, 니 년이 환장한 테라다.
어차피 종이 쓰레기가 될 돈, 니 년한테 버리고 간다."
돌아서 나가는 여럿 발자국 소리가 잦아들자 난 천천히 몸을 움직여 보았다.
눈이 안 떠지고, 온 몸이 콕콕 쑤셔대는 걸 보니
구두 발로 몇 번이나 차였던 게 맞나보다.
불쌍한 인간들... 때리긴 왜 때려...
몸을 조금 일으키자 아래로 흘러내리는 촉감이 느껴진다.
그들의 눈물, 그들의 침, 그들의 정액,
그리고, 나의
붉은 피...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테라들을 힘겹게 끌어 모았다.
테라... 그들에겐 쓸모가 없는 내 목숨, 내 의지, 그리고 내 사랑...
루...
이런 모습으로 널 떠올려 미안해.
그런데 지금은,
너의 그 천사 같았던 미소가 너무너무 그리워.
수... 하며 불러주던 너의 목소리,
루가 불러줬던 내 이름이 가장 좋았어.
몸을 더 일으켜야 하는데...
어서 정신을 차리고, 루에게 가야 하는데...
자꾸만 이렇게 눈이 감기면... 안 되는데...
또각... 또각...
익숙한 발자국 소리.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소리...
그리고 또각... 또각........ 뚝!!!
겨우 겨우 고개를 들어 내 앞에서 멈춘 검은 형체를 올려다본다.
"... 마.. 마... 타라...?"
검은 그림자는 몸을 숙여 내 얼굴 앞으로 다가온다.
"수... '클럽 오나크'의 매춘부, 수.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거지?
오호라, 한 무더기의 인간 말종들이 '클럽 오나크'를 나간다 싶더니...
오... 불쌍한 수, 온 몸이 피투성이로구나."
"마마..."
"죽어 가는 거냐, 수?
너에겐 삶도 힘겨웠을 것을... 죽음까지 잔인하구나."
"... 마마 타라... 부탁이..."
"유언이라 생각하고 들어주마."
말해야해...
잠들기 전에... 누군가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것이 마마 타라라는 건 어쩐지 개운치가 않지만...
"저의 테라를... 제가 모아 둔... 테라..."
"테라?"
"제 방... 침대... 네 번째 타일 속...."
"그 안에 테라를 숨겨뒀구나."
"... 그걸... 루... 루에게..."
피아,
난 니가 부러웠어.
병들어 버려진 비운의 댄서 피아,
천사 같은 루에게 사랑 받는 행복한 피아...
루는 널 위해서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가려는 거야.
너만을 위해, 오직 너만이 희망인 루.
그 아름다운 태양을 가진 니가, 나는 부러웠어...
"루? S-cell의 배달부, 루?"
".... 저의 마지... 막... 소원...을..."
"쉿!! 쉬잇....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 그만해도 돼.
가엾은 수... S-cell의 배달부를 사랑해버린 불쌍한 매춘부.
이제 그만 자거라. 너의 마지막 소원은 잘 들었으니..."
루...
난 이제 정말 끝인가 봐.
마지막으로 널 보고 가려했던 건 욕심이었어.
욕심쟁이 수,
그래도 루만은 날 욕하지 마.
루...
열 다섯 번째 행성은 정말 아름다울 거야.
오랜 시간 태양이 떠 있고,
예쁜 색의 꽃들과 푸른 나무가 자라는 곳.
하지만 정말 그 곳이 아름다운 건, 루가 있기 때문일 거야.
그래서 지금 수에겐,
여기 열 네 번째 행성이 제일로 아름다워.
행복했어.
루를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보내기 위해 살아왔던 내 삶은,
단 한번도 망설이거나 후회 없이 행복하기만 했어.
너와 함께 있을 피아가 눈물나게 부럽지만
피아는 해주지 못한 일을 수가 할 수 있어서 또 눈물나게 행복해.
이젠 정말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다.
루,
.... 안녕.....
6. 클럽 오나크
화려한 정복 차림의 벨라가 마마 타라의 방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야?"
"마마 타라. 루 녀석이 좀 뵙자는 군요."
"루? 호오... 그 배달부 녀석이 왔단 말이지?"
마마 타라의 징그러운 눈매가 꿈틀거렸다.
먹이를 앞에 둔 강자의 비열한 미소가 보였다 사라진다.
"마마 타라. 매춘부, 수가 남겨놓고 간 테라는 어떻게 할까요?"
"멍청하긴!! 그딴 건 잊어버려.
죽은 년에게 테라가 다 무슨 소용이야?"
"하지만 루에게..."
벨라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마마 타라의 새빨간 눈동자가 자신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루를 들여보내."
"네, 마마 타라."
마마 타라는 꽤나 흡족했다.
예전부터 탐내왔던 물건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루의 공허한 눈빛,
하지만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 귀여운 루야. 무슨 일로 날 찾아 왔느냐?"
루의 새빨갛고 탐스러운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루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뒤 있는 힘껏 주먹을 쥐며 재빨리 말해버렸다.
"마마 타라, 절, 사주세요!!"
잠시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마마 타라는,
(한편으론 입맛을 다시는 듯한 표정이었다.)
천둥 보다 더 큰 소리로 웃어 재 꼈다.
"아하하하하하!!! 하하하!!!"
루는 고막이 터질 것 같아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그것이 마마 타라의 마음을 상하게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러지 못했다.
"하하하!! 넌 참 재미있는 아이로구나, 루~"
루는 사실,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자신의 마지막 희망이 마마 타라 라는 사실은 죽기 보다 더 끔찍했다.
하지만 달리 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피아를 보낼 수 있는 티켓만 살 수 있다면,
마마 타라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에도 희망을 걸 수가 있었다.
"하지만 루, 너도 알다시피 난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전에 그러셨어요.
너라면, 꽤 비싼 화대를 지불할 의사도 있다, 라고 말이에요."
이런 말을 자신의 입으로 하게되자,
루의 얼굴이 그만 빨갛게 달아올라 버렸다.
마마 타라는 그 모습이 귀여워 씹어먹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쩔쩔매는 루의 모습을 더 즐기기로 마음먹은 게 분명했다.
"글쎄다...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분명히 했어요. 그 전엔 미리 겁내지 말라는 말도 했어요.
정말... 기억 안 나세요?"
루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마마 타라는 또 한번 크게 웃어 버릴 뻔했다.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곧 희망의 눈빛을 보이는 루...
"또 어찌 보면 기억이 안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울상이 되어버리는 루...
마마 타라는 지금이라도 당장 저 귀여운 녀석을 안아 쓰러트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무렴 어떨까? 어차피 이 행성도 마지막인데.
특별히 너에게 선심을 쓸 수도 있는 일이지.
더군다나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와 사정을 해대니 말이야. 후후후."
자신의 다이아몬드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마마 타라는,
얼어붙은 채 울먹이고 있는 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두꺼운 손으로 루의 새하얀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좋아. 널 사주겠어.
그래, 얼마를 원하는 거야?"
루의 환한 표정, 그리고 쓸쓸한 표정...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가는 티켓을 사야 해요."
"그럼... 삼만 이천 테라?"
고개를 끄덕이는 루를 보며 마마 타라는 짐짓 놀란 척을 했다.
"우리 '클럽 오나크'의 일급 매춘부도 그런 테라를 받지 못해.
아마 평생을 내게 몸을 바쳐도 그 돈의 절반도 구경 못할 테지.
그런데 네 녀석은 하루 밤 몸값으로 뭐? 삼만 이천 테라?"
"부탁해요, 마마 타라.
당신에겐 그 돈이 루드베키아의 씨앗을 사는 것 보다 하찮잖아요."
마마 테라는 제법 흡족했다.
루의 말처럼 삼만 이천 테라라는 돈이 하찮지는 않았다.
이 곳의 테라는 열 다섯 번째 행성에서 역시 통용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루라 하더라도 선뜻 내 놓긴 배가 아플 정도로 아까운 액수였다.
하지만, 비열한 마마 타라에게는
이 모든 딜레마를 해결해줄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루도 갖고, 테라도 건드리지 않는 아주 흡족한 방법.
"좋아. 널 사주지."
"마마 타라, 그게, 그게 정말인가요?"
제 몸을 팔고도 저렇게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마마 타라는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열 다섯 번째 행성에서도 널 본다는 건,
제법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마마 타라."
루는 그 티켓으로 비행선을 탈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피아라는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 이제 넌 내꺼다!!!"
굵은 침을 질질 흘리며 마마 타라의 거대한 얼굴이
루의 새하얗게 질려버린 얼굴을 가렸고,
루는, 눈을 감아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옅은 햇살에 눈을 뜬 루는 침대에서 벌떡 하고 일어났다.
"아..."
발가벗겨진 몸은 군데군데가 빨갛게 변해있었고,
커다란 몽둥이질을 당한 것처럼 여기저기가 욱씬거렸다.
루는 이 곳을 찾아오고 처음으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하지만 그것은 몸을 판 수치심이나,
어젯밤 새 침대 위에서 느꼈던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피아를 보낼 수 있다.
루는, 가슴이 벅차왔다.
대충 옷을 걸치고 나온 루는,
여기저기 짐꾼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는 모습에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짐꾼들 사이에서 안면 있는 얼굴을 발견한 루는 무작정 그의 팔을 잡아 매달렸다.
"명 아저씨, 대체 무슨 일이죠?"
"넌 루로구나. 여기엔 웬일이지?
아, 아니야. 난 지금 바빠. 너랑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니가 왜 이 곳에 있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
"무슨 일인대요?"
'클럽 오나크'에서 노래를 만드는 명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한 시간 뒤에 그로우 항공사에서 비행선이 뜬대.
지금 가지 않으면 늦는다구."
"네??!!!"
한번도 쉬지 않고 마마 타라의 방으로 달려간 루는
이미 떠날 준비를 마친 그녀의 팔에 매달려 소리쳤다.
"마마 타라, 테라를 주세요.
제게 약속한 것을 지금 당장 주세요."
"난 지금 바빠. 저리 꺼져."
"마마 타라!!!"
"정말 귀찮은 녀석이야, 넌.
후... 벨라에게 맡겨 뒀으니까 찾아가든지, 말든지.
아, 마침 저기 벨라가 오는군.
이 봐, 벨라!! 여기 이 귀찮은 녀석에게 그 상자를 건네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멀뚱히 서 있는 벨라에게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가간 마마 타라는
그녀의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이런, 멍청한 년 같으니라구!!
죽은 수의 방에서 가져 온 그 상자 말이야."
"아...!!"
마마 타라는 무서운 눈으로 한번 더 벨라를 노려보곤,
이내 짐 가방을 들고 루의 앞을 지났다.
"그럼, 루~
열 다섯 번째 행성에서 다시 보자구. 하하하하하!!!"
7. 마지막, 그리고 또 다른 태양을 기다리며
벨라가 건네주는 검은 상자를 재빨리 받아든 루는
그것을 가슴 깊이 꼭 끌어안고 미친 듯이 달리기를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얼른 피아를 데리고 '그로우 항공사'로 가야만 했다.
달리는 내내 루는 가슴에 안은 검은 상자만 들여다봤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루는 단지, 숨이 조금 차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들어간 루는 창가에 앉아 있는 피아를 일으켜 세웠다.
"루? 어디에 다녀온 거야?
루가 오지 않아서 피아는 무서워 죽을 것 같았어."
"미안해, 피아. 사정이 좀 있었어.
그리고... 아냐, 일단 가자. 시간이 얼마 없어."
"응? 루, 어딜 가자는 거야? 루!!"
피아는 벌써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는 루여서 다행이었다.
루는 분명 너무 아파할 거니까...
"루, 어디 가는 거야?
천천히 좀 가. 너무 어두워서 잘 안 보여."
"피아, 지금은 태양이 살아있어.
그런데도 잘 보이지 않는 거야?"
"그건... 내가 너무 집 안에만 있어서일 거야.
그리고 이 행성은 사실 너무 어둡잖아?"
"다 왔어. 조금만 참아."
피아의 손을 쥔 루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피아는 앞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볼 수 있을 때 보다 훨씬 든든했다.
그로우 항공사는 이미 모인 행성 사람들로
발 딛을 틈 하나 없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루는 피아의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녀의 아름다운 블론즈 머리를 묶고 있는 머리 끈을 풀어
잡고 있는 두 사람의 손목 위로 칭칭 감았다.
"피아, 절대로 떨어지지 마."
고개를 끄덕이는 피아에게 조금 웃어준 루는
곧 단단한 표정으로 티켓을 팔고 있는 곳으로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갔다.
피아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녀를 감싸 안은 루의 팔에는
어느새 하나 둘씩 상처가 생겨나고 있었다.
"헉.. 헉... 티켓을 주세요.
테라는 여기 있어요."
매표소 앞의 늙은이에게 상자를 내밀며, 루는 그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늙은이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매진이야."
루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럴 리가 없어... 이럴 수는 없어!!!
"아니에요. 매진일 리가 없어요. 어서 주세요.
늦으면 비행선을 놓칠지 몰라요."
"아니. 정말 티켓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아.
넌 너무 늦었어. 여길 떠나지 못할 거야."
"그럴 리가 없어!! 거짓말하지 마!!"
루는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어떻게 구해 온 테란데, 티켓이 없다니,
피아를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보낼 수가 없다니!!!
"한 장이면 돼요. 단 한 장이면 돼.
여기, 여기 피아만, 피아만 태우면 돼요."
루의 말에 이번에는 피아가 소리를 지른다.
"무슨 말이야, 루!!
나만 태우면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가만있어, 피아."
"싫어!! 피아는 안 가!!
혼자서는, 루 없인 아무데도 안 가!!"
"피아!! 조용히 해!!"
루는 처음으로 피아에게 소리를 지른다.
처음으로 피아에게 목이 터져라 화를 낸다.
그리고 피아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천천히 고개를 떨구어버린다.
루...
피아는 이제 볼 수 없지만,
지금 루의 얼굴은,
... 조금은... 미울 것 같아...
"할아버지, 제발 딱 한 장만 주세요.
정말 딱 한 장만 있으면 돼요."
늙은이는 고개를 저으며 측은한 눈으로 루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때,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매표소 근처의 누군가가 소리쳤다.
"비행선이 뜬다. 비행선이 떠!!!"
그 절망의 한 마디,
루는 활주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목에 묶여 있는 피아 역시,
병든 몸을 팔랑이며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루... 헉.. 헉.. 루..."
"뛰어, 뛰어, 피아. 놓치면 안 돼."
".... 루...."
"조금만 힘을 내. 넌, 반드시 저 비행선을 타야 해."
하지만 달리던 두 사람은 얼마 가지 못해
활주로로 향하는 인파에 막혀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필사적으로 그 틈을 헤치려는 루의 얼굴에는
날카로운 상처 자국이 늘어만 갔고,
머리 끈으로 묶어 놓은 루와 피아의 손목에서도 피가 흘렀다.
"안 돼!!! 안 돼!!!"
루가 비명을 지른다.
루가 울부짖는다.
루가... 루가... 절망한다...
"루... 이제 그만해..."
피아의 작은 목소리...
하지만 루는 인파를 헤집으려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루... 이미 늦었어... 그만 돌아가자."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루의 귀에는 이제 더 이상 행성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어깨에 기대 조용히 속삭이는 피아의 예쁜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루는,
절망하는 사람들 머리 위로 날아가는
그토록 피아를 태우고 싶어했던,
그 희망의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향하는,
반짝이는 비행선을 봐버렸기 때문이었다.
"아~~~악!!!! 안 돼!!! 가버리면 안 돼!!
아직 피아가 타지 못했어!! 안 돼~~~~!!!!"
루는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실어 그렇게 소리쳤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사람들의 절규 소리에 가려져 잘 들리지도 않았지만,
그는 그렇게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안 돼...... 안....."
어느새 그들을 남기고 떠나버린 희망의 비행선은.
열 네 번째 행성에서 점점 멀어져, 반짝이는 별로 보였다가,
이제 그 작은 점까지 사라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루, 집에 가자. 피아는 집에 가고 싶어..."
"피아... 비행선이 가버렸어...
널.. 널...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데려다 줄 비행선은...
이제... 없어..."
"괜찮아... 루... 피아는 상관없어... 이제 그만 집에 가자.
피아는, 조금... 피곤해..."
그리고 피아는 땀으로 흠뻑 적은 루의 등뒤로
그 깃털같이 가벼운 몸을 푹 기대어 왔다.
"... 피아... 피아!!!!!"
힘들어하는 피아를 안고 인파 속을 빠져나온 루는
활주로 입구 어딘가에서 아무렇게나 앉아버렸다.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피아는
쌕쌕거리는 가는 숨소리만 들려주고 있었다.
그 곳을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간혹 남은 몇몇은 루와 피아처럼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고,
또 몇몇은 활주로 끝까지 내달려,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몸을 던지기도 했다.
열 네 번째 행성에 남겨진 것은,
까마득한 어둠과,
더 까마득한 절망뿐이었다...
어느새 태양은 지고 없었다.
겨우 오전 11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그들이 남겨진 열 네 번째 행성은 불빛 하나 없이 깜깜했다.
루는 비행선이 사라진 새카만 하늘만 공허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무나 힘든 하루였다...
"루... 무슨 생각해?"
"... 피아를 처음 만났을 때, 생각."
"피아도 루를 처음 만났을 때 생각을 하고 있었어."
피아를 좀 더 편안히 기대게 하기 위해 팔을 뻗으려던 루는
하나로 묶어져 있는 그들의 손목을 보았다.
그리고 루가 피로 젖어 있는 머리 끈을 풀려고 하자
피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둬... 이렇게 묶어 놓으니까 마음이 편안해져..."
루는 피아의 손목이 얼마나 아플 지를 알고 있었다.
자신의 손목이 그만큼 쓰라렸으니까...
하지만 루는 그것을 풀지 않았다.
피아가 좋다면 그걸로 되었다.
"미안해... 피아...
보내주지 못해서... 널... 지켜주지 못해서..."
피아는 힘겹게 손을 올려 루의 입을 막았다.
"쉿..."
"꼭 열 다섯 번째 행성으로 보내주고 싶었어.
난... 널 꼭 보내주고 싶었어..."
"... 쉿... 루..."
손끝에서 느껴지는 루의 따듯한 입김을 간직한 채
피아의 손이 스스륵 떨어졌다.
"피아... 그 곳은 아름답겠지?
햇빛도 많고, 맛있는 음식과 마실 거리들도 가득할 거야.
그 곳에서의 피아는...
정말로 아름다울 텐데.........."
"... 루... 피아는 루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예뻐.
루가... 피아의 루가 있는 이 곳이... 가장 아름다워....
... 열... 다섯 번째 행성에는... 가고 싶지 않았어..."
"피아..."
피아의 긴 속눈썹이 점점 아래로 떨구어졌다.
"루... 함께 있어... 피아를 혼자... 보내려 하지마...
피아는 루와 같이 있을... 때가 가장... 좋아....."
루는 떨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묶여 있는 손으로 그녀의 작은 손을 꽉 쥐었다.
"그런데 루... 피아는 조금... 졸려...
집에... 우리 집에 가기 전에... 조금만... 잘래..."
"...... 그래... 그래, 피아..."
"루를 두고... 잠들어 버려서 미안해....
루의 어깨는... 정말... 편해..."
피아의 입가에 예쁜 미소가 보였다.
그녀의 작은 머리는 루의 어깨 안쪽으로 깊숙이 숙여졌다.
그리고 곧 가녀린 몸이 편안하게 늘어지며,
루의 예쁜 피아는,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피아의 태양 루는,
열 네 번째 행성에서 마지막으로,
반짝이는 눈물을 흘렸다.
"피아... 칭에게 가자...
단테 할아버지가 떠나버려서 칭은 외로울 거야.
... 우리... 같이 가서 칭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자.......
나는... 그 친구가 너무나 보고 싶어..."
댓글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님들의 따듯한 댓글과 시작하는 월요일은 정말이지 신나는군요. ^^ 그리고, 서경=_=!!님.. '루'는 '단테'가 '칭'을 대신 보내려던 걸 몰랐었거든요.. 그래서 '칭'도 남겨졌다 생각한 거죠. 너무 간단한 설명인가요? ^^;;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
첫댓글 너무 끝이 슬프다..너무 가슴에 와닿는 글이네요..사빈님 굿^^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빈님의 글! 그런데 왜 이렇게 슬픕니까.. T^T 앞으로도 글 많이 많이 올려주세요!!
아- 보는 중간 중간 울뻔 했어요- 너무 가슴 아파서.. 휴.. 역시 사빈님의 글은 대단해요-
절망과 희망이 몸을 지나가는 느낌이랄까. 표현력과 글의 구성에 언제나 감탄입니다.
너무 슬픈 sf영화를 본 듯한 기분...넘 재밌게 읽었어요^^
꼭 미래를 보는 느낌이 듭니다.......... 쓸쓸하네요.
너무슬퍼요ㅠㅠ
헉..은하철도999를 시로 쓴 듯한 느낌...요즘 사빈님의 글은 상당히 감상적인 듯 한...^^; 암튼, 이번 글도 잘 읽었습니다. 담에도 좋은 글 기대합니다. 건필~!!
아오오 ㅠ_ㅠ 가슴 아프네요...
눈물을 자아내는 군요.. 슬프네요.. 저번 소설도 그랬지만.. 정말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에요. 정말 즐감했습니다.
진짜 슬프네요 ㅠ_ㅠ.. 안타까운 게 맘에 와닿아요 ㅠㅠ 근데 단테 할아버지가 갔다니..?
이야~ 잘쓰셨네요...
댓글 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 님들의 따듯한 댓글과 시작하는 월요일은 정말이지 신나는군요. ^^ 그리고, 서경=_=!!님.. '루'는 '단테'가 '칭'을 대신 보내려던 걸 몰랐었거든요.. 그래서 '칭'도 남겨졌다 생각한 거죠. 너무 간단한 설명인가요? ^^;;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
정말...사람을 울리는 묘한 재주가 있으시군요.늘 절망하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희망이었다는게...안울래야 안울수가 없게 만드는군요.
정말 읽으면서 눈물이 나네요...
정말 정말 슬퍼여,,,,ㅠ.ㅠ역시 사빈님 글은.....한편의 슬픈 드라마를 보는듯한,,,,,ㅠ.ㅠ 잘 읽고 갑니다.
T-T 한 없이 슬프기만 하네요...
우어...반쯤 읽고 밥먹고 와서 다 읽었는데...소화가 안되네요ㅜ.ㅜ 왜 저를 울리시나요 사빈님 크헉 ㅠㅠ;; 그런데..피아 좋아하시나보당^^;; 저도 좋아해서~;;
저도 피아 라고 적힌 말 보고선 혹시 밴드피아? ㅋㅋ 제일 좋아하는 밴드거든요 ㅋ
너무 슬퍼요 공포가 아니라 맬로네요~피아가 겁나게 부럽넹?ㅡ,.ㅡ;쩝 나라도 아마 좋아하는 사람하고 같이 죽는게 더 좋읗꺼예요~나 이런 예기 겁나게 좋아하눈뎅~~
정말 눈물 납니다 ㅠㅠ 너무 가슴 아프네요 -
가슴이 저려오네요ㅜ.ㅜ
아, 사빈님-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