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랜토리노`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주연의 2009년작이다. 6.25전쟁에 참여했던 퇴역군인으로 포드 자동차공장에서 은퇴하고 지금은 70대 노인으로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가장 보수적인 주인공 `월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미국 이민자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그랜 토리노는 포드에서 만든 1972년형 캐딜락 차의 이름이지만 영화에서는 제목이자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인공 `윌터`처럼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지킬 것도 많아지고, 약해지는 육체로 인해 겁도 많아진다.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 보수의 기저에는 공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과 보수를 고집하는 주인공 `윌트`는 호불로가 갈리는 사람이다. 평생 보수적이며 미국 전통을 지켜온 주인공 윌터가 영화의 마지막 이민자들을 포용하고 자신의 애마인 `그랜토리노` 차를 건네주는 모습 속에서 복수보다는 근심, 응징보다는 책임, 원칙보다는 관용을 보여주는 모습속에서 어른이 가져야할 본분을 제시하고 있다. 전통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항상 틀린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균형이 필요하다.
`새는 두 개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원래 1990년대 중반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수구 냉전적 사고를 비판하기 위해 쓴 이영희 작가의 책 제목이지만, 지금은 정치 생존을 지키기 위해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각 당들이 애용하는 구호가 되었다. 새는 한쪽 날개로는 날수가 없다. 그런데 일부는 한 쪽만으로 날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보수와 진보일 것이다.
이 두 사상은 서로 경쟁하며 견제와 비판을 통해 수레의 바퀴처럼 서로를 보완해 왔다. 다시 말해 보수와 진보는 보완관계이지 적대 관계가 아닌 것이다. 일부 편협 된 사고방식의 사람들은 이 관계를 적대적으로 몰아가려 한다. 특히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 부류에 속하며 역사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가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지금 현실은 사이비와 가짜의 대립처럼 보인다. 보수와 진보는 둘이 아니라 친구처럼 하나가 되어야 한다.날개가 불균형이면 그 새는 얼마가지 못해 추락할 것이고 결국 고통 속에서 죽어갈 것이다. "인생은 멀리서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챨리 채플린의 명언이다. 현실도 그렇다. 멀리서보면 지역은 잘 돌아가는 듯 보인다. 여러 가지 핑크빛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가까이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연명 치료하는 환자와 다를 게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의정은 희극 관람하듯 멀리서 수수방관하며 `베르너증후군` 환자처럼 행동한다. 베르너증후군(조로증)은 유전자 돌연변이로 20대에 급속도로 노화가 진행되며, 다양한 성인 질환을 겪으며 40~50대에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다.
현재 의회를 보면 출범한지 2년 만에 타이틀을 차지하기 위해 벌써 레임덕 현상을 보인다. 신체는 젊지만 정신은 사망 직전의 노인을 보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 어디에도 시민은 없다. 해법이 없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장기적인 플랜을 준비와 그 속에서 미래의 생태 환경과 민초들의 실생활에 끼칠 경제적 파급효과와 불확실성을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고민하기도 부족한 시간들이다.
현실은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데, 누군가 책임지는 성숙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이전투구와 요란한 날갯짓만이 민초가 우거진 흙바닥에 먼지만 일으키고 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중앙당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지방의 의회가 아니라 울산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의회의 본연의 모습이 당연시 되는 그런 풀뿌리 민주주의 의정이 되길 기대하며, 포용과 관용을 보여준 주인공 `윌터`처럼 지역에서도 좌우가 없는 `울산당`으로 대동단결하여 태풍과도 같은 험난한 이 시기를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새는 좌우 두 날개로 난다. 만고불변의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