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계엄령 사태가 불러온 대가는 한국의 5100만 국민이 오랜 시간에 걸쳐 분할로 치러야 할 것이라는 우울한 글로 마무리된 국제경제전문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 씨의 칼럼(포브스 2024년 12월 6일) 제목은 윤석열 대통령의 필사적인 곡예가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킬러인 이유였다.
칼럼 제목처럼 123 내란 사태가 한국 GDP의 살인범이라는 사실이 속속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0.1%였다. 이는 내란사태가 일어나기 전인 지난해 11월 한은이 내놓은 전망치 0.5%보다 0.4%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한은은 정치 불확실성 확대로 소비심리가 위축돼 민간소비에 악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내란 사태가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뜻이다. 성장률을 0.5%로 가정할 때 4분기 실질 GDP는 575조 770억원(약 62조 6280억엔)이지만 성장률이 0.1%일 때는 572조 8550억원(약 62조 3860억엔)다. 2조 2220억원(약 2420억엔)가 줄어든 것이다.
내란 사태의 여파는 지난해 4분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올해 성장률을 1.9%로 전망했다가 최근 이를 1.6~1.7%로 하향 조정했다. 역시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정치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경제심리 위축이 성장률을 0.2% 포인트 낮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성장률을 1.9%로 가정할 때 실질 GDP는 2332조 4130억원(약 254조 90억엔)인 반면 1.7%로 가정하면 2327조 8350억원(약 253조 5105억엔)에 그쳐 4조 5780억원(약 4985억엔)가 감소한다. 내란 사태로 인한 지난해 4분기 GDP 감소분과 올해 예상되는 GDP 감소분을 합치면 6조 8000억원(약 7400억엔)에 이른다. 7조원 가까운 GDP가 사라지는 것이다.
청구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란사태 전 1달러당 1400원 안팎에서 맴돌던 원-달러 환율은 내란사태 다음 날인 12월 4일 한꺼번에 1410원까지 떨어졌고 이후 환율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1달러당 1470원까지 떨어졌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글로벌 달러 강세 등의 영향 외에 정치적 이유만으로 떨어진 환율 상승분이(1달러당) 약 30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경기를 떠받쳐 서민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는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했지만 환율 상승으로 한국은행은 16일 금리를 동결할 수밖에 없었다. 안정세를 되찾아가던 물가도 환율 하락으로 다시 요동치고 있다.
고용 쇼크도 일어났다. 지난해 12월 취업자 수는 전년에 비해 5만 2000명 줄었다. 취업자 수가 감소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1년 2월 이후 처음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는 12월에 88.4에 그쳐 11월에 비해 무려 12.3포인트나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같은 수준의 하락폭이다. 1월 들어서도 3.0 포인트 반등에 그쳤다.
대외 신인도도 떨어지고 있다. 정부는 글로벌 신용평가사에 한국의 국가 시스템이 차질 없이 운영되고 있음을 알리는 데 나서고 있지만 신용평가사들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당장 국가신용등급에 변동이 없겠지만 국가 이미지 실추는 면하기 어렵다. 페섹은 칼럼에서 현대 아시아에서 계엄령 시행자를 떠올릴 때 투자자들은 인도네시아, 미얀마, 필리핀, 태국, 그리고 이제는 한국까지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서부지법에서의 폭동사태는 한국이 불안한 나라라는 인상을 더욱 강하게 주었을 것이다.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잇달아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응할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27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국 새 정부의 일률 관세 부과 가능성과 후발국의 기술 추격 등을 언급하며 "앞으로 6개월이 우리 산업의 운명을 가를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 뒤 내란 사태가 벌어졌다. 세계경제 질서가 바뀔지도 모르는 지난 6개월간의 골든타임 동안 우리 정부와 국회가 정확하고 밀도 있는 대응책을 펴나갈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망상에 사로잡혀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후퇴시킨 민주주의의 킬러는 국민이 생계와 일상을 영위할 기반을 파괴하는 경제의 킬러이기도 하다. 하루빨리 내란사태를 법적 정치적으로 종결시키는 것만이 국민의 고통과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