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겠지만 잠시 집안에 있는 사람은 TV, 사무실은 PC 뒤쪽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면 이리저리 뒤섞여 있는 전원 케이블이 생각날 것이다. 무선 랜, 블루투스, 적외선 통신, 3G, CDMA, GPS 등 각종 무선기술이 넘치는 세상이건만 아직 전원은 유선으로 연결해야 한다. 예컨대 무선 랜, 무선 마우스를 사용하는 노트북이라 하더라도 배터리가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전원 어댑터를 꽂아야 한다. 이는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가전제품과 디지털 기기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다.
만약 전기도 무선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면 진정한 유선 탈출 세상이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번거롭게 전원 어댑터를 연결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거치적거리는 케이블이 없으니 사용자 편의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장점은 이뿐이 아니다. 실내 인테리어를 훨씬 깔끔하게 만들 수 있고, 합선과 같은 전기 사고도 미리 예방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이런 무선 에너지 전송 기술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이미 상용화된 제품도 있고 앞으로 휴대폰을 비롯해 MP3 플레이어, PMP, 휴대용 게임기 등 각종 디지털 기기에도 적용될 계획이기 때문. 물론 실제 적용될 기술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말이다. 같은 무선 에너지 전송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다 같은 것이 아니라는 뜻.
전동 칫솔 & 팜 프리에 쓰인 자기유도 방식은 구세대 기술 사실 무선 에너지 전송 기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론 기술이 확립되어 있었다. 실제로 미국의 발명가 테슬라는 지난 1897년 특허를 출원해 1900년 등록하기도 했고, 1901년에는 무선 에너지 전송 타워(테슬라 타워)를 건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상황이 뒷받침되지 못해 결국 1917년 폭파되지만 말이다.
현재 무선 에너지 전송 기술은 크게 세 가지. 첫 번째는 원거리, 두 번째는 근거리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비접촉 전송이 그것.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김용해 책임연구원은 "원거리 전송은 말 그대로 거리가 수Km에서 수백Km까지 전기를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면서 "예를 들면 위성궤도에 띄워진 태양광 발전소에서 지구로 전기를 보내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원거리 전송은 수GHz 주파수를 사용하며 고출력 에너지를 보내기 때문에 위험성이 높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주 태양광 발전소에서 지구로 에너지를 전송할 때 중간에 어떤 물체가 있다면 새카맣게 타버리고 말 것이다. 더구나 기상 조건이나 지구 자전에 따른 발전 효율성 때문에 이를 실행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근거리 전송은 어떨까? 김용해 책임연구원은 "근거리 전송은 거리가 수m에서 10m 내외의 비교적 짧은 거리에서 전기를 공급하는 방법"이라면서 "수십MHz나 수백MHz 정도의 주파수를 사용하고, 출력은 1W 정도로 작지만 고출력일 경우에는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비접촉식 전송은 이미 실용화된 기술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선 면도기나 무선 전동 칫솔기다. 이들 제품을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거치대에 올려놓기만 하면 자동으로 충전이 이뤄지고 사용 방법도 간편하다. 아이폰 대항마로 주목받고 있는 팜 프리도 같은 기술을 쓴다. 하지만 이 기술은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강승열 팀장은 먼저 발열 문제를 꼽는다. "비접촉식 전송은 자기 유도 방식을 이용하는데 이 때 코일에서 많은 양의 열이 발생하므로 에너지를 많이 보낼 수 없다"면서 "특히 조금만 방향이 틀어져도 제대로 충전이 이뤄지지 않고 1cm만 떨어져도 충전 효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도 문제"라고 언급했다. 비접촉식과 근거리 전송의 문제를 해결한 차세대 무선 에너지 전송 기술이 각광받는 이유다.
공명 유도 방식 "한꺼번에 휴대폰 5대 충전 가능" 차세대 무선 에너지 전송 기술의 핵심은 공명유도 방식이다. 쉽게 설명하면 A와 B라는 물체에 코일을 감고 같은 MHz 대역의 공진 주파수를 맞추는 식이다. 예컨대 휴대폰 공진 주파수는 10MHz 그리고 전기를 공급하는 전원 스테이션 공진 주파수도 10MHz로 맞추는 식이다.
강승열 팀장은 "공명 유도 방식은 비접촉식과 달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충전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단 한 대의 전원 스테이션 단말기로 여러 대의 디지털 기기 충전이 이뤄진다"면서 "특히 에너지 효율이 우수해 자체 실험에 의하면 60cm에서 75%, 1m에서 60%를 기록했고 중간에 자력을 가진 물체만 없으면 어떤 장애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참고로 공명 유도 방식은 지난 2007년 MIT 물리학과의 마린 솔랴치치 교수팀이 만든 것으로 이미 인텔을 비롯해 여러 회사에서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퀄컴이 가장 적극적인데 이 회사는 지난 6월 17일 열린 월드IT쇼에 공명 유도 방식 무선 충전 시스템을 선보였을 정도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한꺼번에 여러 대의 디지털 기기를 충전시킬 수 있고, 굳이 거치대에 올려놓을 필요도 없다. 강승열 팀장은 "현재 기술로도 충분히 작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며 퀄컴의 경우 5W정도 전력을 무선으로 보낼 수 있는데 이는 한꺼번에 5대 정도의 휴대폰을 충전시킬 수 있는 에너지량"이라면서 "다만 무선 주파수를 교류로 만들어주는 새로운 소자가 필요하고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상용화되었을 때 다른 곳에서 몰래 전기를 사용할 수 있으므로 통신 기능을 추가해 암호화를 해야 하고 만들어진지 2년 밖에 되지 않아 표준화와 안정화가 급선무"라면서 "무엇보다 이 기술을 실제 제품에 적용시킬 수 있는 제품이 필요하므로 관련 회사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